디자인/디자인이야기

폴리 베르제르의 바, 그 거울 저편에 근대회화가 있었다.

Service Design 2025. 4. 7. 08:09

폴리베르제르의 바(Un Bar aux Folies-Bergère),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1882



1839년 사진이 발명된 지 약 50년. 『폴리 베르제르의 바』가 그려진 1882년, 사진은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화가는 더 이상 현실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를 되묻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현실을 재현한다는 행위에 대한 자기 성찰, 그리고 철학적 자기 해석이 회화 내부에서 본격화된 시점이었다.

이 그림은 거울로 나뉘어진 두 세계를 보여준다. 그림의 전경에는 바의 여성 종업원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나 거울에 반사된 배경엔 그녀가 한 남성과 대화 중이다. 몸의 동작, 얼굴의 각도가 다르다. 반사의 위치도 맞지 않는다. 거울과 반사라는 고전적 장치를 활용하면서도, 그 법칙을 의도적으로 무시해 감상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거울 안과 밖이 서로 다른 시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네는 그 틈을 통해, 회화가 더 이상 현실의 그림자가 아님을 말한다. 화가가 대상을 '보는 행위'를 새롭게 접근했다. 그것이 근대회화의 시작이었다.

마네의 시선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되묻는 것이었다. 마네는 그림 속 장면을 통해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 거리"를 드러낸다.
이러한 태도는 철학사에서 말하는 '인식론적 전환'에 비유할 수 있다.
인식론적 전환이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한 철학의 흐름이다. 즉, 사물 그 자체보다 '인간의 인식 주체가 어떻게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가'에 주목하는 전환이다.
마네는 관람자가 어떻게 '보게 되는가', 그 보는 방식이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드러냈다. 그의 회화는 재현을 넘어, 인식의 조건을 해부하는 도구가 되었다.

세잔은 어떤가? 그는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불린다. 피카소가 그를 두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했을 정도로, 이후 회화의 언어를 바꾼 장본인으로 평가된다.
세잔은 마네와는 정반대되는 지점에 서 있다. 마네가 '보는 자'의 인식 조건을 회화적으로 묻고자 했다면, 세잔은 '보이는 대상'—즉, 사물 그 자체의 구조와 질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에게 회화란 감각의 순간을 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적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에서 산은 형태와 색, 질서의 실험 대상이다. 그는 사물의 구조와 질서—존재 방식 자체에 주목했다. 대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기보다는, 그것을 구성하는 원리와 관계를 회화로 탐구했다.

폴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


이러한 세잔의 회화적 태도는 철학사에서 말하는 '존재론'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그는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떤 질서와 관계 속에 놓이는지를 탐색했다는 점에서, '존재론적 회화 사유'를 시도한 인물이었다.
세잔에게 사과는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원과 색면, 명암과 배치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존재였다. 그는 현실 대신, 현실을 구성하는 조형적 질서를 탐구했다. 이러한 태도는 마네의 인식론적 시선과 나란히 놓이는 또 하나의 철학적 전환이다.
마네가 '보는 나'에 주목했다면, 세잔은 '보이는 세계'의 내부 구조를 보려고 한 것이다. 이 두 시선은 각기 다른 철학의 문을 열며, 근대회화라는 이름의 시각적 사유를 시작하게 했다.

이후 피카소와 브라크는 마네와 세잔의 사유를 이어받아 새로운 회화 방식을 시도했다. 세잔이 대상을 해체하며 보여준 실험을 더 극단적으로 확장해서 대상을 단순히 하나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시간과 위치가 다른 모습을 한 화면 안에 담았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큐비즘이다.
큐비즘은 전통적 회화가 추구하던 단일한 시점과 고정된 공간의 환영을 거부하며, 회화를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구조로 바꾸었다.

아비뇽의 처녀들, 피카소, 1907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은 그 대표작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전통적 원근법을 무시하고, 인물의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해체하며, 서로 다른 시점을 하나의 화면 안에 병치시킨다. 이는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구조화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회화였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실험은 마네와 세잔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연장선에 있었다. 마네가 흔들어 놓은 시선, 세잔이 해체한 구조 위에, 그들은 '보는 방식'과 '보이는 대상'을 동시에 분석하고 조합하려 했다. 큐비즘은 그렇게 탄생했다. 큐비즘의 회화는 단일한 시점이나 고정된 인상을 담지 않는다. 시간과 대상을 나란히 구조화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쓰려 했다.
이러한 태도는 훗날 레비스트로스나 소쉬르의 구조주의처럼, 인간 인식과 세계 구조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사유로 이어지게 된다. 회화는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세계를 다시 사유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세 갈래의 시선은 단절이 아닌 연속이다. 마네, 세잔, 피카소는 인식론, 존재론, 구조주의와 평행한 사유를 회화로 풀어냈다.
각자의 방식으로 회화의 본질을 묻는 이 질문들은, 궁극적으로 '세계는 어떻게 인식되고 구조화되는가'라는 철학적 물음과 겹쳐진다. 이들은 회화가 더 이상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사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마네가 의도적으로 시점을 어긋나게 표현했던 『폴리 베르제르의 바』였다. 그 거울 저편에서, 회화는 재현을 넘어 ‘세상에 대한 질문’이 되었다.


2025.4.7. 윤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