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디자인이야기

디자이너, 디자인業 - 제품디자이너의 디자인業 이야기

SERVICE DESIGN 2020. 1. 20. 23:38

디자인업의 속성, 디자인은 산업의 중간재 

디자이너의 업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디자인업의 독특한 속성을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잘 알려진 디자인기업 IDEO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5개 중 하나로 꼽힌 전력이 있습니다. 동시에 나머지 24개의 혁신기업을 컨설팅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합니다.(비즈니스위크.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5) 이 사례로 알 수 있듯, 디자인산업은 사업서비스 업종으로서 산업의 중간재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디자인산업의 수준이 디자인을 활용하는 국가 전체의 산업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한 나라의 디자인산업의 수준이 높다면 기업들은 같은 노력을 들이고도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디자인 자원은 많지만 활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디자인 전공자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디자인산업의 인적 자원은 양적 차원에서 세계 최고입니다. 경제활동에 있어 원유와 같은 부존자원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출처 : 영국 캠브리지대학 국가디자인역량평가 결과. 2009
* 한국의 디자인산업 종사자 수 33.3만명, 디자인전공자 배출 매년 2.4만명 (2018. 한국디자인진흥원)

그러나 우리나라는 디자인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기업들은 기술이 뛰어나도 상대적으로 활동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원유가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디자인이 더 많이 활용되도록, 그래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국내의 디자인 활용기업은 34.4% (2017년 디자인산업특수분류 기준. 한국디자인진흥원)으로, 선진국(디자인 활용기업 영국 67%, 독일 67%, 스위스 68%)의  1/2 수준에 불과

확장되는 디자인

디자인을 최종 결과물 유형에 따라 구분하자면 제품디자인, 시각/정보디자인, 공간/환경 디자인, 서비스/경험디자인, 패션/텍스타일디자인, 디지털미디어/콘텐츠디자인, 산업공예디자인, 디자인일반, 융합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사용자경험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이나 ‘서비스디자인’ 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분야 등 디자인의 영역은 산업 발전과 더불어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 확대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최근 산업에서의 영역 확장을 넘어 공공정책과 공공서비스를 개선하고 사회문제 해결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디자인의 분류, 개념, 역할도 산업과 사회 변화에 발 맞추어 지속적으로 확장, 재정의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 디자이너로 불리지만, 실은 너무나 다른

소트프웨어를 개발하는 엔지니어와 자동차를 정비하는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로 불리지만 서로 공통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디자이너도 그렇습니다. 디자이너라고 해도 분야에 따라 하는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분야에 따라 필요역량, 프로세스, 방법론, 사용하는 용어도 다릅니다. 자동차 외관 디자이너와 편집디자이너는 직업에 대한 의미, 직업인으로써 직장 내에서의 역할과 비전에 대해서도 서로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분야간 이질성이 너무 커서 서로 다른 디자인 영역을 하나의 산업으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특정한 디자인 분야 내라고 해도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역할과 성격을 가지는 다양한 세부 분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게임산업의 예를 들자면 게임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는 원화 일러스트레이터, 캐릭터 모델러, 배경 모델러, 애니메이터, 이팩트 디자이너, 매핑 디자이너, 렌더링 디자이너, UI디자이너, UX디자이너 등 이외에도 다양한 업역이 세분화되어 존재합니다. 각 분야별로 역할과 필요 역량은 서로 다릅니다.


디자이너의 사정 - 공통점

디자인 분야를 막론하고 국내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다음의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1. 높은 경쟁환경(1) 공급자 과다, 2) 진입장벽 낮음) 속에 있다.
 
디자이너는 산업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배출됩니다.
* 년간 디자인 전공자 배출 : 한국 2만4천명, 영국 1만9천명
디자이너 자격제도 등 인력시장에서의 작동하는 실질적인 진입장벽이 없어 비전공자의 경우에도 디자이너로 취업하기 쉽습니다. 디자인전공자가 디자이너로서 직장을 얻게 될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디자인을 활용 할 수 있는 영역은 과거보다 급속하게 확대 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디자인에 돈을 쓰지 않고 있어서 수요시장은 커지지 않고 있다. 
국내 디자인산업은 높은 경쟁환경에 있습니다. 디자인산업의 공급자는 많은 반면 수요는 많이 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전문기업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매출액 및 영업이익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 디자인전문기업은 3,982개(’10년)에서 6,624개(’19년 1월)로 증가, 매출액은 6.48억원(’10년)에서 6.41억원(’17년)으로 감소 
* 디자이너 월평균 임금은 전 산업 월 평균 임금보다 약 30만원 낮음. 디자인산업(168.1만원)은 전 산업 월평균(199.4만원)보다 31.3만원 적고, 고부가가치 산업인 SW산업 월평균 (327.1만원)보다 159만원 적음

출처 : 한국디자인진흥원. 2019.


3. 정보화, 세계화의 진전으로 해외의 경쟁자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대기업들의 해외향 신제품, 통합적 제품 컨설팅, 신제품 전략 개발, 선행디자인 등 규모 있는 일거리는 해외 디자인기업에게로 가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국내 프로젝트 수가 적고 규모도 작아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디자인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작고 힘들게 벌어 크게 쓰는 정황입니다.
* 우리나라 디자인산업이 속한 사업서비스업의 무역수지는 OECD국가중 최하위 수준  

4. AI, 자동화 기술 등 신기술이 디자이너가 하던 역할을 대체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산업디자이너는 표준화 된 대량 생산품을 디자인해왔지만 인공지능이 디자인하고 개인화 된 소량 맞춤 생산, 유통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노동력이 상당부문 AI와 기계로 대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신기술에 대해 높은 수용성을 가져, AI도입과 자동화와 무인화도 빨리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미 로봇 도입률은 세계 1위입니다.
* 2016년 기준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531대로 1위. 2위 싱가폴 398대. 세계평균 69대
오랜 시간 노하우로 익혀야 했던 디자인기술을 AI와 자동화가 대신하게 되면 누구나 쉽게 디자인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만하면 디자이너에게는 사면초가라 할 만합니다. 


디자이너의 사정 - 차이점

앞서 말한 것처럼 디자이너가 처해 있는 직업인으로의 조건에 많은 부분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해도 디자이너로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전망, 역할에 대한 고민은 분야별로 큰 차이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국내 디자인 분야 중에도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제품디자인 분야를 살펴봅시다. 제품디자인은 '제품의 사용목적에 적합한 독창적인 형태로 기능 및 사용, 가치 등을 최적화하도록 사양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일'이라 정의 할 수 있습니다.(한국디자인진흥원) 국내 디자인 산업의 분야별 규모는 제품디자인 > 공간/환경디자인 > 디자인 컨텍스트 > 시각/정보디자인의 순으로 제품디자인이 가장 큽니다. 제품디자인 분야는 꾸준히 성장해 2018년 3.6조원으로 전체 디자인산업의 20.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간/환경 3조원, 디자인 컨텍스트 2.5조, 시각/정보 2.4조, 서비스/경험 2.3조, 패션/스타일 1.1조, 디지털미디어/콘텐츠 0.7조,  산업공예 0.3조. 출처 : 한국디자인진흥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디자인회사 중 하나인 IDEO의 CEO 팀 브라운의 예를 통해 제품디자이너가 업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한 조각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제품디자이너는 늘 새로운 것, 곧 버려질 것을 만드는 사람일까?”

사진 출처 : https://www.ideo.com/people/tim-brown

 

그가 대학시절 제품디자이너로서 첫 의뢰를 받았던 목공용 기계는 잉글랜드 북부의 유서 깊은 회사의 신제품이었습니다. 그 회사는 그 제품을 출시하고 얼마 안가서 문을 닫았습니다. 두번째 의뢰 받은 팩스는 출시 1년 반 만에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두번의 경험을 거치며 그는 디자이너로서 역할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두 제품은 제품 자체로는 문제가 없었어요. 분명한 건 산업 디자이너로서 내 작업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어요. 나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소소한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었던 거죠. 항상 다음 버전을 추구하는 산업디자인계의 관행에도 정이 가지 않았죠. 내 재능을 더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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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브라운이 2000년 IDEO CEO가 되었을 시점에 마침 닷컴이 붕괴하면서 실리콘밸리 전체적으로 유래 없던 시련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고객들이 빠져나가고 상당한 규모의 감원까지 했어야 했습니다. 당시의 고통은 업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무엇을 만들지를 정해놓고 있는 기업의 도구로만 일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리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바람직한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신념을 굳혔죠. 이때에야 비로소 디자인의 역할, 디자인씽킹의 역할에 대해 전체적인 시각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IDEO는 그 뒤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서비스디자인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2005년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프로젝트 '잔돈은 넣어 두세요Keep the Change'는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출처 : 영국의 크리에이터에게 묻다. 고성연 지음

“제품디자이너는 늘 새로운 것, 곧 버려질 것을 만드는 사람인가”라는 고민을 가졌던 그가 IDEO CEO로서 경영 위기를 넘는 경험을 겪으면서 전체적 시각에서 디자인이 가진 역할에 대해 각성하게 됩니다. “디자이너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게 해주는 문제해결자”이자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역할”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품디자인산업, 제품디자이너의 미래는?

제품디자이너의 업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될까요? 현재의 디자인산업과 변화될 미래를 고려해 볼 때 생각해보면 좋을 세가지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칩니다.

1. 산업의 구조적 변화, 제조의 서비스화 
제조서비스화의 진전으로 사물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 서비스의 형태로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제품이 서비스로 전환 되면 물질적 속성으로서 ‘형태’가 갖는 의미는 줄어들게 됩니다. 제품의 외형을 만드는 제품디자이너에게는 디자인 할 대상, 업의 영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품이 사라진다면 제품디자이너는 뭘 해야 할까요? 

2. 자동화, 무인화, 맞춤형 제조의 확산
또 앞서 이야기했듯 기술혁신에 따른 자동화, 무인화의 가속화와 맞춤형 제조의 확산도 제품디자이너의 업의 속성을 변화시키는 큰 환경요인이 될 것입니다. AI와 자동화는 기계가 제품디자이너의 역할을 대신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는 오랜 시간 노하우로 익혀야 했던 디자인기술을 AI와 자동화의 도움으로 쉽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제품디자이너의 업의 장벽은 더 낮아져, 누구나 쉽게 디자인 할 수 있게 될 수 있습니다.
제품디자이너의 일을 다른 누군가가 하게 된다면 제품디자이너는 뭘 해야 할까요?  

3. 커지게 될 제품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
디자이너는 산업의 산물을 만들고 소비하게 하는 역할자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디자인의 제품/서비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수의 좋은 제품과 많은 쓰레기들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쓰레기 제품/서비스의 개발과 판촉을 위한 목적에 디자이너의 역량이 활용 되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 결과 지구는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산업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하면 지구와 소비자들에게 더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제품디자이너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20.1.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usable)에 적었던 글을 여기 옮겨 적습니다.

 

참고한 글

팀 브라운의 이야기 (TED 강연) https://www.ted.com/talks/tim_brown_designers_think_big?language=ko

 

팀 브라운 (Tim Brown) 이 디자이너들에게 더욱 크게 생각할 것을 권합니다.

팀 브라운은 지금의 디자이너들이 우리 사회의 보다 큰 문제들을 고민하는 대신에, 깔끔하고 이쁜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디자이너에게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참여하는 디자인적 사고로의 전환을 역설합니다.

www.ted.com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3031675387

 

"됐어요" 했던 잔돈 모았더니 상상못한 대박

2008년 6월. 경영전문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짤막한 글이 하나 실렸다. 제목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 글을 쓴 사람은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디자인 기업 IDEO의 팀 브라운 최고경영자(CEO)였다. 산업디자이너 출신인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난 경영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엑셀이나 회계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난 경영도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디자이너처럼 세상을 읽는다면 제품은 물론 서비스,

www.hankyung.com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2/article_no/647 

 

[DBR] 고객의 마음으로 생각하라

팀 브라운 아이디오(IDEO) 최고경영자(CEO) 토머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전구와 관련한 사업을 몽땅 장악했다. 전구는 에디슨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에디슨은 전구가 전력 생산 및 공급 시스템 없이는 그냥 하찮은 물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에디슨은 전구를 유용하게 해주는 전력 생산 및 ...

db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