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디자인이야기

[디자인진흥50년] 우리나라 DESIGN 진흥책에 대한 소고. 김교만 서울대학교 교수 ('디자인˙포장', 1970년 11월 창간호)

SERVICE DESIGN 2020. 5. 29. 21:09

우리나라 DESIGN 진흥책에 대한 소고
김교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2, 3년 전만 해도 전문가의 세계에 있었던 Computer가 최근에는 자동차나 건기제품과 같이 일상생활의 도구로서 등용하게 끔 되었고 어린이 세계에서만 애용되리라면 로봇트가 금일에는 공업용 로봇트로서 활용되고 있어 단순한 작업은 대단한 능률을 올리고 있다 한다.
단순한 기억과 안이한 판단은 Computer가 확실한 답을 준다. 이러한 급뎀포의 기술혁신과 정보화 사회 중에서 인간은 항상 새롭고 고도한 능력을 길러야 하며 기계로서는 해결할 디자인은 창작물체로서, 상품가치로서 크게 인 수 없는 총합판단과 창조적 태도를 배양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 사회에 공헌하는 창조적인 영역 중에 디자인은 큰 비중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디자인이란 말이 오늘날 우리생활주변에 자주 들려 오고 산업 발전에, 현대인의 환경형성에 불가결한 학문으로 확고히 인식되었다. 디자인이 전문적인 분야로서 확립된지는 다른 학문의 역사에 비하여 본다면 퍽 최근에 속하는 분야라 말할 수 있다. 
미국 근대 디자인계의 선구자 Raymond C 로이몬드씨는 Lucky Strike 담배곽 디자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디자이너로서, 공업 디자인 분야에서 유선형의 미학을 주장한 인물임, 공업디자인의 신제품개발, 건축, 실내장치, Display, Package, 그래픽디자인등 여러 분야에서 몰두하고 있으며, 뉴욕의 디자인사무소에는 200명의 디자이너를 거 느린 83세의 시장임)씨가 일본 전매공사의 Peace담배 포장디자인을 의뢰받아 당시 4,200불(약 150,000)원의 디자인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우리 기억에 아직 생생하다. 일본의 디자인계는 물론 국민들간에도 큰 경이였다. 그 과감한 처사는 일본 디자인계의 큰 희망을 불러 넣어 주었고 손바닥보다 작은 그 디자인은 창작물체로서, 상품가치로서 크게 인정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18년전 일이니까 그 당시 일본에서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우리 나라의 사정과 비슷한 것같다. 일본의 모 유명한 그래픽디자이너가 세무소에 가서 서류 직업란에 디자이너라고 기입하였더니 「재봉틀은 몇대지요?J라고 직원이 물어 왔다는 이야기나, 디자인하면 명동의 양장점을 연상하고 디자이너하면 양장재 단사로 알고있고 포장운운하면 도로포장을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슷한 시대였다. 이와 같이 다른나라에서도 디자인시대의 과도기는 있었다. 
현대의 디자인이념을 확고히 구축한 계기는 역시 1920년부터 30년 사이에 형성된 Bauhaus 운동에 의한 교육이념과 그 시스템일 것이다. Walter Gropucs에 의하여 창립되었던 Bauhaus는 「이론교육과 실제 교육과의 일체화」를 시행하였고 예술과 기계, 인간과 기술, 과학과 기술, 예술과 생활형성의 통일성 등을 목표로 삼아 종래의 예술이 개인주의 적, Saloon 분위기적, 경향을 부정하고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방법」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Gropius가 주재한 Bauhaus가 유몸에서 디자인기반을 닦아 놓았고 1930년대에 미국에서 기계에 의한 다량생산의 개화기를 맞이하였다 함은 흥미로운 결과이다. 그 후 디자인영역은 점차 발전하여 오늘과 같이 우리 생활환경을 형성하는 모든 대상에 또는 산업발전에 디자인의 영역이 미치게끔 된 것이다. 

「현대는 디자인시대」라 한다. 현대사회를 구하는 물체, 공간, 영상 등은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서 디자인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없다. 즉 인쇄물, 공예품, 사진, 일용잡화, 가구류, 건축물, 자동차, 항공기, 교통기관표지, 도시계획등 디자인 대상 영역은 나날이 확대되어 디자인시대로 특징을 보게 되었다. 또한 현대의 기업가는 참다운 자기의 기업에 대한 특징과 성격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정확히 반영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시각화 과업도 디자인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기업의 제품은 사온 사람들에 대하여 좋은 Public Relation을 갖게하기 위하여 Design Policy를 의식적으로 확립할 필요성이 있다. 사람 개인에 대하여도 시각적인 요소가 있다. 즉 신장, 체격, 용모, 표현, 복장등이 일체가 되어 한 개인을 형성하는 것과  같이 규모가 크고 여러 분야 즉 사무도서류 인쇄광고물, 생산제품, 사무안내, 가구 공장, 종업원의 Uniform등 모든 시설에 이르기까지 시청각 요소를 통하여 기업의 인상 (Cooporate Image)을 만들어 내어야 함은 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Olivetti, IBM Sony, Volswagan, Coca-cola BOAC 항공, RCA 등의 대기업체는 큰 규모의 Corporate Identity Program(기업의 Image 통합계획)을 잘 사용한 기업체로서 Design의 중요성과 우수한 Design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행함으로 Unique한 세계적인 위치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상업기업체와 같이 정부기관에서 Corporate Identity Program을 사용함은 주목할 만하다. 영국철도조직이 그것이며 기관차 디자인에서부터 건물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Design정책이 반영되고 있다. 이와 같이 Designer는 실질적인 시각전달자로서 또한 기업전체의 방향을 설계하고 제품판매 증가를 위하여 의뢰자 측의 사업문제에 대하여 보다 깊은 관심과 연구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국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기술해 보면 미술대학을 졸업한 그래픽디자이너들은 광고대행(ftfr) Studio에서 또는 Production Studio에서 Apprentice(토잼4:)으로 약 2년간의 Business Training을 받아야 한다. Training내용을 보면 Layout Studio 
사진술, 인쇄, Management(Studio의 운영방법), Commercial film(상업영상 Design), Sales training(판매 과정, 판매용법, 방법습득), Marketing plan과 Marketing Research(시장 계획과 시장조사) Product planing (제품계 획) 등을 학습하여 완전한 Commercial Designer로서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작년에 Chicago에 있는 Dickens Package Studio와 뉴욕의 Pratt 대학을 방문하였을 때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것은 일본의 Designer들은 단기 연구생으로 혹은 Apprentice로 학교에서나 Studio에서 Training을 받고 가는데 왜 한국에서는 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우리 한국에도 미술대학 졸업자가 많으니 귀사의 Studio에서 견습생으로 일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였더니 미국에서 일년간의 교육을 받은 다음에는 가능하다고 한다. 
세계에서 디자인을 가장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합리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의 Design계가 오늘날 고도로 발전된 이유의 하나는 미국의 것을 열심히 배워온데 있다. 우리 나라의 젊은 디자이너들도 선진국의 디자인교육과 그 사회에서의 실무경험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디자이너들은 물론, 정부기관에서도 적극 주선해야겠다. 

일본은 12년전부터 해외에 디자인 유학생을 정부에서 파견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력으로 해외에 진출하여 디자인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재는 있어도 국가에서 파견한 유학생은 한 사람도 없으니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Design진흥책으로 외국의 기관을 좀더 기술하여 본다. 영국정 부는 산업계의 「제품디자인의 개선과 향상」을 목적으로 1944년 COID (The Council of Industrial Design) (공업디자인협의회)를 설립하였다. 대전후 국제시장에 있어 영국제품의 수출증진을 위하여 디자인 진흥을 국가시책으로 삼았다. 이에 이어 세계각국의 선진국에서는 Design Center 또는 Design House등의 명칭으로 진흥기 구가 속속 탄생하였는데 모두가 영국의 COID의 기 구를 참조하여 설립하였다. 
영국의 COID는 정부의 보조금과 일반민간협의회에 의하여 운영되는 (영국내) 유일의 디자인기구로서, 정보부문, 산업부문 전시부문이 있어 Design Center는 건시부에서 운영하는 상설전시관이다. 년 1회 COID에서 선정된 제품들은 일반소비자 무역거래업자, 디자인교육자. 기업가, 디자이너, 여행자들에게 보이며 편영국의 모든 Design분야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전시부의 Design Center는 3층으로 이루어져 약 160점의 제품을 전시할 수 있으며 1년에 평균 400점이 전시된다. 전시를 위해 선정된 제품은 제조업 자에 전시료가 청구되는데 1967~1968년 사이에 전시료 수입도 £100,000이다. 또한 Center는 선정된 우수제품 목록을 만들어 무역업자나 구매희망자에게 소개하는데 이 목록은 Information Room에서 무료로 배부되어 고교객과 기업체가 직접정보를 교환하게 금 주선한다. Information Room에는 선정 회의에서 Pass된 제품 Card가 있어 이 Card에는 제품의 사진, 제조업체명, 색채 Size, 가격, Designer 의 이름, 계품설명등의 정보를 수록한 것으로 1만매에 달한다. 매년 회에 걸쳐 특별전시회를 갖는데 그것은 해의에서 선정된 기계제품, 공예품, 완구, 직물, 건기계품 등등의 생산품을 전시하여 국민에게 Design에 대한 시야와 십미성을 길러주며 타국의 디자인 동향을 알리기 위하여 개최한다. 70년도에 등장한 기관차의 실물크기의 모형과 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시되고 있다. 
영국의 COID 에서는 매년 Good Design을 선정하는데 왕실의 Edinburgh 공이 선정위원장이 되며 이 시상식에서는 몸소 상을 수여한다. 이와 같이 정부에서 적극 디자인진흥에 관심을 갖는 나라도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런던시내에는 「제품을 사기 전에 우선 Design Center 로 오시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된 포스터가 인상이 깊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14년 후 1958년 통산성이 Design과를 두고 Good Design 선정을 위시로 하여 해외 Design 유학생의 파견, 섬유, 도자기, 잡화, 기계의 4개 디자인센터를 설치하고 Japan Design House 의 개설등 Design 진흥정책이 적극 추진되였다. 따라서 민간기업체에서는 서로 다투어 가면서 Design Section 을 설치하여 우수한 디자이너를 찾았다. 이와 같이 세계 각국의 Design 진흥기구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Designer 들은 선전물 디자인으로부터 제품디자인 기업 Image의 통일을 위하여 폭넓은 Design 활동을 추구하였으며 경제성, 인간공학, 광고공학 제품개발의 Plan 등의 활역까지 그 범위가 넓어져 가고 있다. Design은 부강한 국가의 산물이며 Designer는 부유한 나라의 재산이며 부유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Design은 바로 산업계에서 요망하는 작업이며 Design의 차원은 그나라 경제상태의 반영이라 말할 수 있다. 앞으로의 디자인진흥을 위하여 기업체나 디자인계나 정부가 다같이 연구노력 할 시기는 바로 지금인 것이다.



* 출처 : <디자인포장> 창간호. 1970.11. 한국디자인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