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너무 많은 디자인 전공자

2023. 7. 13. 01:25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디자인 인력의 평균 연령은 33.9세였습니다. 전체 취업자 평균연령이 44.7세임을 고려하면 다른 직종에 비해 약 10년 정도가 젊은것입니다.” 
기사 ‘디자인 직종, 취업 후 3∼5년이 고비’. 연합뉴스. 2014.11.29.
중 고용정보원 관계자 인터뷰 발췌

이 말이 의미하는 실상은 디자이너가 타 직종 보다 10년 정도나 일찍 퇴직이나 전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디자인산업의 서비스 공급자(디자인 전문인력)가 다른 산업보다 10년 정도 더 경력이 적다는 것을, 디자인산업의 전문역량이 상대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디자인이 오랜 경험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문제의 기획 단계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역할로서 활용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스타일에 국한된 문제해결 방법으로 활용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또한 이 사실은, 오랜 디자인 경력을 통해 얻은 디자이너의 노하우가 사회 곳곳에 활용될 기회가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수요자를 중심에 두는 디자이너의 창의적 관점으로 고령화, 보건, 복지, 교육, 치안, 문화, 교통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와 비교할 때 사회적으로 큰 활용가치를 가진 인적자산이 잘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디자인 업종의 이직, 퇴직이 다른 직종보다 10년 정도나 빠른 원인은 무엇일까? 낮은 급여와 많은 업무 등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추정된다. 수요에 비해 과다한 인력 공급, 상당 부분 대학의 과다한 전공자 배출이 그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디자인 전공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영국 캠브리지대학 국가디자인역량평가 결과. 2009.)
디자인 전공자의 과도한 인력 배출이 디자인산업 생태계에, 좁게 보면 디자이너의 근무여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학에서의 전공자 배출은 2019년 기준 20,920명 규모로 335,903명(디자인 활용업체 디자이너 266,075명, 디자인전문업체 디자이너 17,026명, 공공부문 디자이너 621명, 프리랜서 49,847명, 고등교육 2,333명(출처: 디자인산업통계조사 2020(2019년 기준), 2021, 한국디자인진흥원) 내외인 국내 디자이너 인력 규모를 감안할 때 과공급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체 재직자의 6%에 달하는 신입 인력이 매년 고용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디자이너 자격제도 등 인력시장의 제도적 진입장벽이 없었던 결과 비전공자의 경우에도 디자이너로 취업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디자인전공자가 디자이너로 직장을 갖게 될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인력 공급은 디자인산업의 나쁜 근무여건을 만들고 있고 이는 디자인산업의 고도화를 가로막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3.58년에 불과한 디자이너의 짧은 평균 근속연수(2009 산업디자인통계조사, 한국디자인진흥원(2009), 해당 지표는 2009년 이후 조사되지 않음.)는 디자인 인력시장이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공급자 과다로 인해 생기는 디자인산업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디자인산업의 인력 수급 조절을 위한 정책과 교육의 고도화 등 디자인 교육과 관련되어 혁신적 조치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전공자가 매년 학교에서 과다하게 배출되고 있음에도 디자인 전문기업들은 사정이 좋은 극소수의 기업 외에는 예외 없이 고질적인 구인란에 시달리고 있다.(2020년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조사된 바 없음.) 그것은 또 왜일까?
디자인전문기업이 우수 인력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써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근무할 동기를 주지도 못하고 있다. 대기업 내부의 디자인팀에서 근무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한 대기업들은 우수한 인력이라면 신입이고 경력이고 가리지 않고 채용하고 있다. 우수한 디자이너가 대기업으로 옮겨가면, 여전히 디자이너로 업무를 수행하게 되지만 디자인산업 생태계에서 볼 때 기존에 공급자였던 인적자원이 수요자로 전환되는 것이며 디자인서비스업의 전문성이 소실되는 대신 대기업의 역량이 강화되는 것이다. 전문기업에서 다양한 기업들에게 디자인서비스를 제공하던 개인이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해당기업의 디자인업무만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니, 대기업으로의 디자이너의 이직은 결과적으로 전체 국가 디자인역량의 총합을 줄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수한 디자이너가 대기업으로 이직하면 디자인전문기업의 역량은 줄어들고, 이 디자인전문기업의 컨설팅을 받던 중소기업의 디자인 품질은 낮아지고, 디자인전문기업의 매출이 줄어들고, 디자인전문기업 디자이너의 근무여건은 나빠지고, 결과적으로 디자인전문기업은 우수한 디자이너를 뽑기 더 어려워진다. 이 악순환은 외부의 조정이나 개입 없이는 가속될 것이다.

이것을 해소되려면 우리나라에도 모든 디자이너들이 취업하고 싶고 근무하고 싶은 좋은 디자인기업들이 다양하게 나타나야 한다.
동시에 디자이너 경력관리를 통해 1인 기업, 작은 디자인기업에서 근무해도 디자이너로서 경력이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 디자인 대가기준, 표준계약서, 경력관리를 위한 시스템과 관리체계가 마련되어 비로소 디자인계 오랜 숙원이 해소될 여건이 갖추어졌다.

디자인산업의 인적 자원은 양적 차원에서는 세계 최고다. 경제활동에 있어 원유와도 같은 부존자원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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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