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3. 01:09ㆍ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최고의 디자인기업 중 하나인 IDEO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5개’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5, 비즈니스위크. 관련 영상) 중 하나로 꼽힌 전력이 있다. IDEO는 동시에 나머지 24개의 혁신기업을 컨설팅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MP3 제조업체 레인콤은 2002년 디자인전문기업 ‘이노디자인’의 컨설팅을 통해 삼각형 모양의 특이한 형태의 ‘프리즘’을 생산하게 되면서 당시 MP3 매출 세계 1위 기업이 되었다. 레인콤의 기술력도 뛰어났지만, 파격적인 디자인이 사용자가 구매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이노디자인의 디자인역량이 뛰어났기에 있을 수 있던 일이다. 판매하는 제품당 디자인 로열티를 받는 형식(성과 배분)의 디자인 계약으로 성과를 낸 대표사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IDEO나 이노디자인과 같은 우수한 디자인전문기업들이 있고, 그 기업들을 잘 활용한다면 혁신적 성과를 내는 기업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디자인산업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산업의 중간재’라는 것이다. 경영컨설팅, 법률, 회계 컨설팅 등과 함께 비즈니스서비스업(사업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디자인산업은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가 큰 중간재 형 산업이다. 중간재 산업의 경쟁력 수준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한 나라의 디자인산업의 수준이 디자인을 활용하는 국가 전체 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산업은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 산업(infrastructure)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인전문기업이 얼마나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가는 디자인산업뿐 아니라 전체 산업 생태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디자인전문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다른 기업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좋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중요하다. 디자인산업의 수준이 높다면 기업들은 같은 노력을 들이고도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
디자인산업은 세부 분야에 따라 매우 다른 특징과 다른 속성을 갖고 있어 디자인전문기업도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사정이 있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현재 국내 디자인전문기업이 공통으로 처한 중요 사항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디자인 수요시장이 커지지 않는 가운데 치열한 경쟁으로 디자인서비스 공급자들의 수익성이 낮아져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디자인산업은 높은 경쟁적 환경에 있다. 디자인산업의 공급자는 느는데 반해 수요는 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디자인 활용률은 34.4% (2017년 디자인산업특수분류 기준. 한국디자인진흥원)으로, 선진국(디자인 활용률 영국 67%, 독일 67%, 스위스 68%)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디자인전문기업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2021일 7월 1일 기준 10,006개의 디자인전문회사가 등록되어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1992년부터 디자인회사의 전문성 강화 및 디자인산업 육성을 위해 디자인전문회사 신고 제도를 운영 중이다.)
매출액 및 영업이익은 크게 줄고 있다.
디자인전문기업은 3,982개(’10년)에서 6,264개(’19년)로 157% 증가하였는데, 동 기간 연평균 매출액은 6.48억 원(’10년)에서 6.33억 원(’19년)으로 줄었다. 2008년 평균 매출액은 6억 6천만 원이었다. 물가상승을 고려(소비자물가지수)하면 2019년은 1.218배 (통계청 화폐가치 계산 http://kostat.go.kr/incomeNcpi/cpi/cpi_ep/2/index.action?bmode=pay ), 평균 매출액은 8억 원 이상 되어야 하지만 10년 전의 80% 수준에도 못 미친다.
유사한 지식서비스산업인 ‘지식재산서비스업’이 ’11년 평균 매출액 6.38억 원으로 디자인업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17년 11.5억 원으로 2배 성장(손수정, 양승우, 우청원, 목은지, 박현준,「지식재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산업 육성 추진전략 연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p 25, 2020.)한 것과 비교해 보면 디자인업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알 수 있다.
디자인전문기업의 영업이익 또한 9천2백만 원(’10년)에서 5천2백만 원(’19년)으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디자인산업통계조사 2020(2019년 기준), 2021, 한국디자인진흥원, p.35)
규모도 작다. 2019년 산업디자인통계조사 결과 평균 직원 수는 4.97명, 2~4명이 55.9%로 가장 많다. 디자이너 수는 평균 3.15명이다.
디자인의 활용 영역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음에도 국내 기업들이 여전히 디자인에 돈을 쓰지 않은 이유는 디자인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고, 잘 활용했을 때 어떤 가치로 돌아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잘 투자했을 때 어떤 효용이 있는지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디자인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많은 디자인수요기업들은 디자인을 잘하려면 누구와(디자인전문기업과 일을 해야 할지, 디자이너 채용을 해야 할지 등), 어떤 내용의 일을, 어떤 방법과 절차로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2. 디자인산업은 경쟁자는 많고 진입장벽은 낮다.
디자이너는 산업 규모에 비해 과잉 배출되고 있다.(연간 디자인 전공자 배출 : 한국 2만 1천 명, 영국 1만 9천 명)
또한 자격제도 등 실질적 진입장벽이 없어 비전공자도 디자이너가 되기 쉬운 여건으로 인해 전공자의 활동 기회는 더 적다. 디자인 전공자의 과다 배출은 인력시장에 많은 잉여자원을 만들어 디자이너 노동여건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취약한 생태계를 만든다.
* 디자이너 월평균 임금은 전 산업 월평균 임금보다 약 30만 원 낮다. 디자인산업(168.1만 원)은 전 산업 월평균(199.4만 원)보다 31.3만 원 적고, SW산업 월평균 (327.1만 원)보다 159만 원 적다. 출처: 한국디자인진흥원, 2019
따라서 현재 공급자 과다로 인한 서비스 제공자의 낮은 역량 수준, 과당경쟁 등 디자인산업 생태계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디자인산업의 인력 수급 조절 정책과 교육 고도화 등 디자인 교육 관련 혁신적 정책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정부는 2003년부터 IT산업에서 인력수급 조절을 위해 시행된 ‘IT인력양성 SCM(Supply Chain Management) 정책’으로 효과를 본 바 있다. 그 시행 경과와 성과를 분석해 디자인 인력시장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정보화, 세계화의 진전으로 해외의 경쟁자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대기업들의 해외 수출용 신제품, 통합적 제품 컨설팅, 신제품 전략 개발, 선행디자인 등 규모 있는 일거리는 해외 디자인기업에게로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 모 대기업에 확인 결과 국내와 해외 디자인기업에 의뢰한 용역비 예산의 비율이 2007년까지도 약 4:6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가 2010년 2:8로 해외 디자인기업의 용역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디자인리서치, 전략 개발, 고객 경험, 서비스개발 프로젝트 등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고 부가가치가 높은 디자인용역이 해외 디자인기업의 일거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국내 디자인전문기업은 난이도가 낮고 수익도 낮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공공부문의 경우는 그 나름대로 저가 입찰, 까다로운 입찰 자격 조건 등으로 인해 소규모의 디자인전문기업들이 참여 기회를 갖기 어렵다. 이런 사정으로 국내에서는 경영상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 보니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디자인전문기업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 우리나라 디자인산업이 속한 ‘사업서비스업’의 무역수지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34개국 중 33위)
*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제조업 대비 50.3%, OECD 33개국(비교가능국) 중 32위
디자인의 새로운 수요시장이 나타나고 있고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그 전망에 비해 아직 국내 디자인 서비스 제공자인 전문기업들은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디자인서비스 공급자의 역량을 고도화시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이다.
정부(산업통상자원부)의 ‘디자인산업육성정책’도 본래 디자인산업 자체를 육성해 디자인산업 간 국제 경쟁을 하려고 시작되었던 것이 아니라, 제조산업의 성장과 국가 수출 성장에 디자인이 필연적으로 필요했던 것이었기에 디자인산업 육성 정책은 오래도록 제조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시각에서만 다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기업의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의 정부 사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산업부 R&D 중 역사가 오래지 않은 ‘디자인기업역량강화사업’ 정도가 유일하게 그 취지에 부합하는 사업일 것이다. R&D도 다양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그 외에도 디자인기업의 역량을 높일 다양한 정책 사업의 개발 운영이 필요하다.
4. AI, 자동화 기술 등 신기술이 디자이너가 하던 역할을 대체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산업디자이너는 표준화된 대량 생산품을 디자인해 왔지만 인공지능이 디자인하고 개인화된 소량 맞춤 생산, 유통의 시대가 오고 있다. 디자이너의 노동력이 상당부문 AI와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신기술에 대해 높은 수용성을 가져, AI도입과 자동화와 무인화도 빨리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로봇 도입률은 세계 1위이다.
* 2016년 기준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531대로 1위. 2위 싱가포르 398대. 세계평균 69대
오랜 시간 노하우로 익혀야 했던 디자인기술을 AI와 자동화가 대신하게 되면 누구나 쉽게 디자인할 수 있게 되면서 동시에 디자이너의 일거리는 사라질 것이다.
이만하면 디자인전문기업과 디자이너에게는 사면초가라 할 만하다.
디자인전문기업의 현황, 특징
디자인산업의 공급자는 디자인전문기업이다. 디자인전문기업이란 "디자인 컨설턴트(design consultants)"나 "디자인 컨설팅회사(design consultancy)"를 말하는 것으로, 고객과 기업들을 위한 전문적인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디자인 용역을 제공하는 회사들은 컨설팅 산업으로 분류되어 서비스산업으로 분류된다. SIC 코드에 의한 산업 분류체계를 따르면, 디자인전문기업들(design consulting firm)은 경영 및 홍보 서비스(management and public relations services) 분류에 속해있다.
디자인전문기업은 소규모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대규모의 디자인컨설팅 기업으로 구별할 수 있다. 소규모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디자인의 전문분야를 다루며 대체로 작가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며 이탈리아의 스타 디자이너가 경영하는 디자인스튜디오를 예로 들 수 있다. 대규모의 디자인전문기업은 디자인의 종합적 범위를 수행하며 디자인리서치, 트렌드, 전략 컨설팅 역량이 강조되며 서비스 개발 등 경영컨설팅 전문기업과 유사한 서비스도 수행하고 미국의 IDEO와 같은 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디자인전문기업은 단순한 디자인 개발용역 이외에도 디자인 컨설팅이나 제품/서비스 개발, 사용자 리서치, 미래 전략 개발 등 여러모로 사업을 확대해가고 있다.
국내 디자인전문기업은 주로 매출을 단순 디자인 개발용역을 통해 얻고 있으며(매출비중 중 약 60%) 앞으로 단순 대행 업무를 하는 에이전시(agency), 컨설팅회사(consultancy), 독자적으로 제품/서비스를 개발하여 판매하는 기업(firm)의 개념이 비즈니스 유형에 따라 구분되어 보다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 출처 : ‘디자인전문기업 비즈니스 활성화 방안 연구’, 한국디자인진흥원, 유영선 등, 2010.
우리나라 디자인의 국제 경쟁력은 10위~15위 수준으로 측정(the Design Innovation Centre at the University of Art and Design in Helsinki (2011), GLOBAL DESIGN WATCH)되고 있으며 국내 소비자들도 산업디자인에 있어 대체로 우수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산업 전반의 수준이 아니라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소수 대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인역량을 갖추고 있어서 생기는 착시이다. 또한 이들은 디자인산업 생태계에서 서비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이다.
우리나라의 디자인역량은 과대평가된 경향이 있다. 국내 디자인전문기업은 대부분 영세하고 경쟁력이 취약하며 시간이 갈수록 경영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디자인기업은 공급과잉에 따른 과당 경쟁으로 불안정한 경영과 좀처럼 늘지 않는 수요시장 속에서 힘든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국내 디자인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좀 더 잘 설명하는 지표는 디자인이 속한 비즈니스서비스업의 무역수지라 할 수 있는데 34개 OECD 국가 중 33위로 경쟁력이 낮다. 2011년 한미 FTA는 비즈니스서비스업 세계 1위 국가인 미국과 꼴찌에 가까운 수준의 우리나라가 시장에서 경쟁하게 된 것으로, 디자인산업의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한 환경변화다. 꼴찌와 일등을 같은 조건에 링에 올려 싸움을 붙이면서 꼴찌에게 맷집이 생길 것을 기대하는 것 같은 상황이다. 국제무역의 경쟁이 높아질수록 경쟁력이 낮은 국내 비즈니스서비스업의 생존이 우려된다.
디자인전문기업 & 인하우스 디자인팀
디자이너들은 표준산업 분류상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디자인전문기업’과 기업 내부의 디자인부서 및 연구소와 소속 디자이너들, 소상공인, 1인기업, 프리랜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중 기업 내부의 디자인부서나 연구소는 디자인 서비스의 공급자가 아니다. 기업 내부 디자인 수요에 따라 디자인하기는 하지만 산업 생태계 차원에서 볼 때 디자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수요기업에 디자인을 제공하는 공급자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업 내부에 강한 디자인팀이 있는 것보다 하나의 강한 디자인전문기업이 있는 편이 산업에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든다. 삼성 회계팀에 뛰어난 전문가들이 몰려있는 것보다 회계 컨설팅을 잘하는 기업 하나가 많은 다른 기업들에 뛰어난 수준의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산업에 큰 효과를 미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대기업에 디자인역량이 몰려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 독일 IF 디자인어워드에서 55개를 수상하여 역대 최대 수상 실적을 기록하였다. 대기업들이 수없이 따내고 있는 주요 국제공모전 수상작 수를 보면 그들의 높은 디자인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대기업들의 뛰어난 디자인 수준을 우리나라의 공통역량이라고 할 수 없다. 대기업 내부로 들어간 디자인역량은 산업에서 공통 활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트에 있어야 할 카트들을 언제부터인가 각자의 집으로 가져가 사용하는 것과 같다. 산업의 중간재인 사업서비스업은 개인용 카트가 아니라 마트의 카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업이다.
디자인산업 진흥을 위해서는 수요기업들이 디자이너를 채용해 디자인역량을 내부화하기보다는, 산업에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수 디자인전문기업을 육성하고 역량을 강화시켜 뛰어난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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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디자인전문기업 성장방안 연구 -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 2021
디자인 전문기업 활성화 및 역량강화 방안 연구 - 한국디자인진흥원 중앙경영연구소, 2020
해외 디자인 서비스(활용/전문기업) 시장 동향조사 연구. 디자인하우스. 2019.
디자인전문기업 성장전략 연구 보고서 - 사단법인 한국디자인기업협회, 2015
디자인전문회사 비즈니스 활성화 방안연구 - 디지털디자인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비하여 - 한국디자인진흥원(김혜찬), 2010
해외 디자인전문회사 왜 강한가? - 한국디자인진흥원, 2010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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