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21. 수요시장의 변화 1) 제조의 서비스화

SERVICE DESIGN 2023. 7. 13. 00:58

사용자의 욕구에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수요시장을 만들 수 있다. 제조의 서비스화를 통해 제조기업이 서비스 기업으로 전환하게 되면서 제품 판매로 이익을 내는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제조의 서비스화에 있어 디자인은 사용자 중심의 제품/서비스를 실현하는 효과적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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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본연의 경쟁력 보다 사용자의 욕구에 집중


전구 제조업을 예로 든다면, 이제까지 전구의 경쟁력은 ‘얼마나 밝고, 오래가고, 가격이 싼가’이다. 우리나라 전구 제조업체가 여전히 밝고 오래가는 전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을 때 필립스는 약 20년 전부터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넘어, 빛이 사람에게 어떤 경험(감각, 감성, 감정, 느낌, 심리, 기억 등)을 주는지를 연구해 기존에 없던 제품으로 새로운 수요시장을 만들었다.
필립스 조명의 ‘Hue’(사진)는 스마트폰으로 조명을 제어해 집안 분위기를 조절한다. 미세하게 조정된 빛이 뇌에 전달되어 정서적 안정, 기분 전환, 집중력, 에너지를 높여 주는 것이다. 제조기업이 수요자의 욕구에 관심을 가질 때, 새로운 수요시장이 열린다. 

사용자 경험에 주목하는 필립스 조명. Hue는 스마트폰으로 조명을 제어해 집안 분위기를 조절한다. 사진 출처 : 필립스조명



제품은 서비스의 플랫폼이 된다

삼성의 패밀리허브 냉장고는 식품을 신선하게 보관한다는 제품 본연의 기능을 넘어 식재료를 인식해 식단을 짜고 식재료를 구매하는 등 가정의 식생활 서비스의 플랫폼으로서 기능을 하는 제품이 되고 있다. 
아이폰 구매자는 뛰어난 기능, 품질, 가격 때문에 아이폰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제품이 제공하는 쾌적하고 통합된 서비스경험 속에서 익숙해진 사용자는 점점 이탈하기 어려워진다. 냉장고, 휴대폰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제품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전환되고 있다.
제조원가가 250달러로 추정되었던 킨들 파이어는 2011년 199달러에 판매되며 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기자들이 어떻게 이런 가격에 판매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구입할 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때 벌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e북을 보기 위한 단말기 구매는 한 번 뿐이지만 e북을 읽기 위해서는 수시로 e북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제품이 서비스의 플랫폼이 되면 서비스의 빈번한 구매가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또 제품이 서비스의 플랫폼이 될 때, 사용자경험디자인은 기존 개념의 제품에서 보다 월등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제품판매가 아니라 사용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필립스 라이팅 (2018년 시그니파이 Signnify로 사명을 바꿈.)은 2015년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조명기기를 설치하고 유지보수했다. 공항에 설치된 전등은 필립스의 소유로, 이에 따른 모든 설치 및 유지보수의 책임을 진다. 필립스는 이 모든 비용을 무료로 하는 대신 얼마나 공항을 밝게 해 주었는가를 기준으로 공항으로부터 비용을 받는다. 공항 측에서는 초기비용 없이 효율성 높은 LED로 교체,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LED 사용에 따라 절감된 전기사용료를 내면 된다. 
제조에서 서비스업으로 성격을 확장하는 것은 제조기업에게도 많은 장점을 준다. 필립스는 제조-유통-사용-폐기에 이르는 제품 라이프사이클 과정 전반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제품 수거 후 재처리가 쉬워지는 등 효과적으로 원가절감을 이루게 된다. 또 마음 놓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된다. 
제조기업이 제품 판매를 통해서만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에서는 경쟁사보다 조금 더 잘 만들면 된다. 지나치게 내구성이 좋아 오래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령 영원히 작동하는 전구를 만들 수 있다 해도 그 제품을 팔면 미래의 전구시장이 없어지기에 기업은 그런 제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전구의 밝음을 서비스로 제공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최대한 오래, 잘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데에도 유리하다.
* 관련 글 보기 : 필립스, 조명 기구 대신 빛을 팝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 사진 출처 : 필립스 https://blog.signifykorea.com/?p=8239


제조의 고부가가치를 위한 제조서비스화

2017년 이후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기존 산업을 보다 효율 높은 산업으로 변화시켜 적은 생산인구로도 경제의 산출을 유지, 확대해야 한다. 더 많은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낼 수 있게 바꾸어 노동력이 사라지는 당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자면 제조업은 더 많은 부가가치를 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조의 서비스화(Servitization)’가 촉진되어야 한다. 
* Servitization : 제품과 서비스의 결합, 서비스의 상품화, 기존 서비스와 신서비스의 결합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 결과적으로 산업에서 서비스의 비중이 높아가는 현상.

세계적으로 제조업 가치사슬(생산, 판매, 유통, 유지보수컨설팅)에서 서비스가 중간재로써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제품 판매보다 디자인, 브랜드, 유통, 사전/사후 서비스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제조서비스화 사례>

생산 : 아디다스와 나이키는 생산과정 중 ICT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 1:1 맞춤형 제품을 생산한다.
판매 : HP는 프린트기를 사용량(Pay per Use) 기준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유통 : 하이마트, 삼성디지털플라자 메가스토어 등 가전 체험공간을 운영하고 온라인몰로 유통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했다. 
유지보수 컨설팅 : 애플은 아이튠즈, 앱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판매한다. 
* 출처 : ‘한국 제조업의 서비스화 현황과 해외 진출 사례’, 2020,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서비스 중간 투입률이란 제조업에서 최종 부가가치 창출까지 디자인·광고 등 서비스가 중간재로 투입되는 비율을 말하는데, 2015년 기준 미국 34.9%, 독일 31.7%, 일본 27.5%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18.1%로 낮은 수준이다.
* 서비스 중간 투입률 = (서비스 중간재 부가가치) / (제조업 최종수요 부가가치)
* 출처 : ‘한국 제조업의 서비스화 현황과 해외 진출 사례’, 2020,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특히 디자인·엔지니어링 등과 같은 비즈니스 서비스에 대한 활용 인식 부족 및 제조업의 긴축경영의 결과로 제조업의 서비스 중간 투입의 비중은 지금까지 매우 부진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제품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제조 중간과정에 제조품의 가치를 높여 줄 수 있는 서비스업에 대한 투입이 부족해서이다. 지식서비스 중에서도 특히 디자인, 컨설팅과 같이 제조업을 지원하는 비즈니스서비스업의 투입 예산을 늘릴수록 그만큼 제조품의 가치는 더 올라간다. 비즈니스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제조업이 고부가가치화될 수 있다. 

제조산업이 스마트해지는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서비스의 확산은 제조의 서비스화, 서비스업 고도화, 나아가 산업의 서비스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루기 위해 정부도 비즈니스서비스산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디자인은 
1)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용자의 잠재된 욕구를 만족시키는 신제품을 만들고(Hue), 
2) 제품이 서비스 플랫폼으로서 역할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통합적인 사용자 경험을 만들고(아이폰 UX 디자인), 
3) 제조역량을 토대로 서비스비즈니스 모델을 설계(스키폴 공항의 조명 서비스 운영 모델)하여 ‘제조를 서비스화’ 한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디자인이 수요자 중심의 제품/서비스를 실현하는 효과적 방법이라는 점을 어필하여 산업서비스화를 선도할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디자인산업을 강화, 확장함으로써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사용자 경험상의 불편함을 민감하게 포착해서 개선하는 디자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