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6. 22:15ㆍ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인 성공사례
"사람들이 정말 원했던 공간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비상업 공간이었어요.
뭔가를 살 필요도 없고 뭔가를 해야 할 필요도 없는, 항상 환영받는 경험을 주는 공간이요."
* (영상) 도시는 나의 것 1부 시민의 거실 : 도시에는 시민의 거실이 필요하다 중 오디 직원 인터뷰에서 발췌
도서관이면서 헬싱키의 응접실이 된 오디
"사람들이 정말 원했던 공간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비상업 공간이었어요. 뭔가를 살 필요도 없고 뭔가를 해야 할 필요도 없는, 항상 환영받는 경험을 주는 공간이요."
공공도서관 직원의 말은 나를 사로잡았다. 공공 공간이 제공하는 정서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헬싱키의 공공도서관 오디(Oodi)는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공공 공간에 대해 핀란드 국민이 가진 철학이 현실에 구현된 사례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디는 2018년 12월 5일 개관되었다. 다음날인 12월 6일은 핀란드의 독립 100주년 기념일이었기에 시민들에게 선사된 독립기념 선물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1998년 도서관의 필요성이 처음으로 제기된 뒤 20년이나 걸려 만들어졌다니 참으로 각별한 선물이 아닌가. 소장 도서는 약 10만 권이다. 평범한 시립도서관인 성남 중앙도서관도 장서가 40만 권 이상이 되니 오디는 책이 많은 도서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 오디에는 책 말고 무엇이 있는 것일까?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길래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던 걸까?
오디는 시끄러운 도서관이다. 책 읽는 공간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소음이 기본값으로 깔려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것이 시민들의 모임 공간, 휴게실, 아이들의 놀이 공간,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주방,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회의실, 게임하는 공간, 극장 등 실로 다양한 기능을 하는 공간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실내까지 유모차를 가져온 가족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도 있고 안락한 소파나 계단식 의자에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도 있다.
1층은 도서관 입구 바깥쪽에 위치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가능하고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한다. 2층은 게임룸, 미팅룸, 키친, 뮤직스튜디오, 사진촬영공간, 워크스페이스가 있다. 3층은 시민을 위한 널찍한 발코니가 마련되어 있는데 도서관 맞은편에 있는 국회의사당과 같은 높이로 설계되었다. 시민과 국회의원은 동등하다는 의미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린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도서 열람 공간이 있고 무민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식당 등 상업 공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설은 무료이거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다음은 오디 1층에 게시되어 있는 오디 사용의 원칙이다.
오디의 철학, 지향점을 잘 나타내는 글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행동합니다.
차별 금지
누구나 도서관에 있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가로이 노는 것이 허용되며 심지어 권장됩니다.
인종차별과 차별은 이 도서관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이 점을 기억하세요.
존중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세요.
모든 사람은 방해받지 않고 도서관을 방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대규모 모임의 경우에는 예약 가능한 업무 시설 중 하나를 이용하세요.
편안함과 웰빙
우디는 우리의 공동 거실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편안함과 안녕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세요.
원치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약속
저희 직원이 여러분을 위해 여기 있습니다.
Oodi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걱정되는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세요.
오디. 헬싱키 중앙 도서관
서비스디자인으로 구현된 공간, 오디 Oodi
헬싱키의 공공도서관 오디는 수요자 참여형 디자인(participatory design)을 통해 개발된 대표적인 사례로, 건축 과정 전반에 걸쳐 시민들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이 과정은 무려 20년간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되었다.
1. 초기 구상, 기획
오디 프로젝트는 헬싱키 시민들에게 더 나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1998년 도서관의 필요성이 제기된 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다양한 토론회와 설문조사가 진행되었다. 초기 단계에서 시민들은 도서관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와 필요를 명확히 했으며, 이는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종적으로 실행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기는 했지만 사우나 시설을 포함시킨다는 계획이 검토되었을 정도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2. 설계 공모
2012년, 국제 설계 공모를 통해 544개 기업들이 경쟁한 결과 핀란드의 건축 회사 ALA Architects가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이 공모 과정에서도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한 요소였는데, 시민들은 제출된 다양한 설계안에 대해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3. 설계 개발, 서비스디자인
선정된 설계안은 시민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지속적으로 수정 및 개선되었다. ALA Architects는 도서관 공간을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커뮤니티 센터, 이벤트 공간, 공연장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상했다. 오디의 계획 과정에서 최상의 고객 경험을 달성하기 위해 서비스디자인을 활용했다. 시민들은 워크숍, 전시회 및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러한 설계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건설되기까지의 과정 중 2012년 추가 설계를 위해 2,300여 개의 시민 의견을 수집, 검토했다. 의견들은 간판과 가구 디자인은 물론 도서관 내부의 공간 배치, 사용할 자재, 그리고 제공할 서비스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또한 4개월 동안 28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중앙도서관의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시민들은 사용자의 관점에서 도서관 디자인에 대한 의견에서부터 서비스 기능, 이벤트 아이디어 등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한 참가자는 프로그램의 소회를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저는 도시에 대한 주인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고,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헬싱키 시민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 출처 : '오디의 서비스디자인', 오디 공식 웹사이트
4. 건설과 실행
2015년 9월 공사가 시작되었고 2018년 12월 5일 개관했다. 도서관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20년 만이다. 건설 과정 중에도 시민들의 참여는 계속되었다. 시민들은 도서관의 인테리어 디자인, 자료 배치, 프로그래밍 등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서관은 사용자 친화적인 공간으로 탄생했다. 시민들은 도서관의 서비스와 프로그램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5. 지속적인 개선과 평가
개관 뒤로도 오디는 지속적인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서비스를 개선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오디가 단순히 건설을 완료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발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공간임을 의미한다. 도서관 관계자들은 정기적으로 사용자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커뮤니티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4년 3월 17일 일요일, 1천만 번째 방문객인 17세 소냐가 오디에 들어섰다. 코로나로 인해 한 때 방문객이 줄었었지만 개관 4개월도 채 되지 않아 방문객 100만을 기록했을 만큼 주목을 받았었고 현재 오디는 헬싱키에서 가장 많은 방문자와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도서관이자 관광 명소로 확고히 입지를 굳혔다. 국제도서관협회 연맹(IFLA)은 2019년 오디를 세계 최고의 공공 도서관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오디의 성공은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첫째, 시민 참여를 통한 실제 사용자의 요구와 기대를 반영했다는 점이다.
둘째, 도서관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문화적,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으로서 기능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에서 유연성을 가지고 계획을 조정, 발전시켰다는 점도 큰 성공 요인이다. 오디의 설계 과정에서는 시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으며, 이는 공간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필요를 반영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디와 같은 공공 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오디는 오랜 기간 시민들과 공감하고 함께 과제를 찾고 구체화하는 참여형 디자인을 충실히 실현한 성공사례다. 그럼 우리나라에도 이런 방식이 재현될 수 있을까?
공공부문은 결정자나 실무자 모두 빈번하게 업무가 바뀐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사업이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장기적이고 유연하게 성장해야 할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중단될 수 있는데 장기 프로젝트일수록 그럴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소수의 전문가의 발상에 의존해 계획이 수립되는데 일단 예산을 받고 나면 좀처럼 계획을 바꾸기 어렵기에 오디의 경우처럼 시민들의 의견에 의해 내용이 계획되거나 바뀌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넘어 오디가 우리나라에 똑같이 건축된다고 해도 오디처럼 활성화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핀란드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기에 어딜 가든 책을 본다. 도서관이 있다면 핀란드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그곳에 모일 것이다. 어차피 가는 곳이니 가서 책도 보고 물건도 만들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오디의 목적은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서관보다는 백화점을 선호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공공도서관 직원들도 목적 없이 오는 시민들을 반길리 없다. 그것이 오디 직원의 인터뷰가 내게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 주변에 마음 편하게, 오랫동안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 얼마나 될까? 도서관? 주민센터? 퇴근시간이 되면 문을 닫으니 직장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오디는 평일 저녁 9시, 주말 8시까지 운영된다. 6~7시면 상업공간 대부분이 영업을 마감하는 핀란드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로 치자면 공공도서관을 저녁 11시 넘어서까지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공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너무나 빈곤하다. 우리 주변에 핀란드의 공공도서관과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쇼핑센터나 시장, 커피숍 정도가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렇다면, 시장 또는 쇼핑의 공간에 거대하고 쾌적한 공공 휴게실을 함께 제공한다면 어떨까? 그것은 한국의 오디와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공 공간의 재정의는 단순히 공간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와의 소통과 연결을 강화한다. 사용자들이 공공 공간을 이용할 때마다 자신이 환대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그 공간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공공 공간을 디자인할 때 오디의 사례처럼 서비스디자인을 한다면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은 연결을 지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공간이 인간 중심의 디자인으로 재탄생하면 우리는 더 풍요롭고 연결된 사회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간 우리 머릿속에는 몇 시간이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이상적인 공공 공간의 모델이 없었다. 이제 우리 동네에도 오디 같은 공공 공간이 생기길 희망해 본다. 제대로 만들어지게만 된다면, 나도 20년쯤은 기다릴 수 있다.
2024.4.17.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수석연구원
* 사진 출처 : ALA Architects https://ala.fi/work/helsinki-central-library/
* 참고한 글 :
오디 공식 웹사이트
백 년을 살아내니 오디가 생기더라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는 무엇이 다른가?
2019 광진구의회 출장결과보고서
2019 공공도서관협의회 출장결과보고
2019 국립중앙도서관 해외선진도서관 연수보고서
2023 강북구의회 출장결과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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