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부 정책에는 연구개발이 없을까?

2024. 5. 31. 12:46디자인/디자인이야기

Why is government policy so messed up?

 

비R&D에는 R&D가 없다

정부 예산은 R&D(Research and Development)와 비R&D로 나뉜다. 비R&D는 연구개발이 아닌 정책 사업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책에는 R&D가 필요 없는 것일까?
아니다. 계획수립 시 정책의 방향성을 정하고, 목표를 명확히 하며,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 성공적 실행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면 R&D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 정책 개발 중에 R&D 활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공무원이나 정책 결정자들은 정책에도 R&D가 필요하다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는 정책 기획에 대한 인식 부족, 정책 개발 단계에 R&D를 지원하는 제도나 시스템의 부재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하며, 이로 인해 정책의 효율성과 효과성이 저하되는 문제를 초래한다.

정부 정책 수립 단계의 현황과 한계점

많은 정책은 의도와는 달리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사무관이 연구보고서 등 기존 자료만으로 가설을 세우고 사업 계획을 만든다. 이것은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눈 감고 목표물에 화살을 쏘는 것과도 같다. 그 과정에 소수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계획을 가다듬지만 이미 목표가 바르지 않으니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정책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단순한 사안이라면 연구개발 과정 없이도 효과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대체로 복잡하고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서 정밀한 연구개발 없이 잘못 만들어진 정책은 많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다.

정책 수립 과정에 검증이나 테스트도 없다. 시범사업이 본사업에 앞서 검증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이는 디자인에서 말하는 빠르게 실패하고 수정하는 프로토타이핑, 테스트와는 개념이 매우 다르다. 시범사업의 운영은 개발의 마지막 단계에 확산을 전제로 치명적인 문제나 고려해야 할 보완점들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모양새가 그럴싸하게 갖춰진 상태로 실행된다. 이에 비해 프로토타이핑은 연구개발 전 과정에 내용 검증을 위해 운영되며 짧은 시간에 손쉽게 여러 번 반복할 수 있게 거칠고 값싼 방법으로 실행된다. 
새로운 교육 정책을 수립한다면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작은 실험들을 반복하면서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다. 개발 과정에서 이렇게 반복적인 프로토타이핑과 테스트로 검증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책 실행 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을 번복하고 수습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서비스디자인의 역할

서비스디자인은 사용자 중심의 접근법으로, 실제 정책이 어떻게 작동하게 될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영국 정부는 장기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데 통상 1인당 6만 2천 파운드(약 1억 원)의 예산을 써 왔다. 서비스디자인기업리브워크Livework는 기존 고용창출 정책을 다시 디자인한 프로젝트 'Make it work'*로 고용 정책의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소요 비용을 5천 파운드(약 9백만 원)까지 약 1/10의 규모로 줄였고 1천 명 이상의 지원자 중 275명에게 새 일자리를 제공했다.
* 고용창출을 위한 사업도 디자인한다. Makeitwork (영국 Livework)
이처럼 서비스디자인은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고, 사용자의 만족도를 증가시키며,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서비스디자인 접근법을 성공적으로 도입하자면 초기부터 체계적인 R&D가 필요하다.
지자체가 공공도서관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새 정책의 도입을 고려한다고 가정해 보자. 정책을 만들기 이전에 도서관 이용자들의 필요와 불편함을 조사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한 서비스디자인을 한다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이용자 중심의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사업비 같은 것은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도서관 시설 확장이나 운영 시간 연장 등 구태의연하고 표면적인 해결책만 제시되고 혁신을 가져올 강력한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게 된다.


왜 정부정책에는 R&D가 없을까?

공공 영역은 정책 기획 단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 정부 정책 계획 수립 과정에 시간과 예산의 부족은 일상적이면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정책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검증 과정 없이 개발되고 실행된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부처 장관들이 우르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허겁지겁 실무자들이 실행 방안을 준비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연습 없이 무대에 올라와 있는 배우들을 보는 것 같다. 방향은 정하지 않고 빠르게 달리라고 다그치는 꼴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혼란의 도가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여건에서 무리하게 추진되는 정책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초래한다. 이렇게 공급자 위주로 계획되고 실행되는 정책이 계획처럼 작동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기적이다.

물론, 급박한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히 정책이 수립되는 경우도 있다. 갑작스러운 재해나 전염병이 퍼진다면 빠르게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상시에도 체계적으로 연구개발해서 정책을 계획하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하물며 긴급 상황에 과학적인 계획이 실현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효율성과 효과성을 검증하고 개선하는 사후적인 조치는 필요하다. 급조된 계획 속에 숨겨진 허점들이 나중에 정책의 장기적 효과와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 한계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에 R&D 도입이 가져오게 될 장점

정책 기획 단계에 체계적인 R&D 과정을 포함시키면 정책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수요자의 요구를 포착하고 이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는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통해 정책이 해결하려는 수요자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정의할 수 있다.
수요자의 시각에서 정확히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정책의 목표와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필수적이다. 
R&D 과정에서 가설을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정책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미리 예측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정책이 이러한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정책이라면 이 과정은 필수적이다.
R&D를 통해 정책 집행에 필요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이는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더 효과적인 정책 집행을 가능하게 한다.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R&D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R&D가 그것을 크게 도울 수 있음은 분명하다.

정책 R&D의 대안적 모델로서의 국민디자인단

국민디자인단*은 R&D가 어떻게 정책에 적용될 수 있는지 착안점을 제시하는 하나의 사례이다.
* 국민디자인단 소개 : 내 손으로 직접 정책을 디자인한다. 2023.4.8. 
아직 제대로 자원 투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현 국민디자인단 지원과제는 서비스디자이너 자문비 명목으로 
최대 6백만원 이내만 지원) 충분한 연구개발의 예시라고 하기는 어렵다. 기획과정에 수요자의 사정을 고려하는 방안으로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도입하고 있어, 그나마 정책영역에서 R&D라 부를만한 요소가 있는 드문 사례이다. 국민디자인단은 정책 수요자인 국민, 서비스디자이너, 공급자인 공무원이 정책과정 전반에 함께 참여하여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개발·발전시키는 국민참여형 정책 기획 모델이다. 이것은 정책의 기획 단계에 체계적인 연구와 검증 과정을 포함시키고, 수요자의 요구를 직접 반영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과 만족도를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  
국민디자인단을 통해 추진된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1. 같이 운동할래 프로그램 (강남구 국민디자인단 과제, 2023, 대통령상)
첫 번째 사례는 작년에 대통령상을 받은 "같이 운동할래" 프로그램이다. 장애인이 기존에 전용 체육시설을 이용해 왔는데, 접근성과 시설의 열악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역 피트니스 센터에서 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전문 트레이너들이 장애인을 위한 교육 과정을 만들어 운영하는 모델을 도입했다. 강남구에서 시도되었으며, 조례 개정을 통해 동행인이 참여할 때 무료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등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었다. 장애인들은 전용 체육시설을 이용해야 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피트니스 센터에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장벽 없이 함께 운동하고 싶어 하는 수요자의 욕구를 바탕으로 개발된 것이다. 

2. 제주도의 부모 참여 프로그램 숲돌봄 (제주 서귀포시 국민디자인과제, 2023, 국무총리상)
제주도는 전국에서 맞벌이 가구 수가 가장 많아 부모와 아이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민디자인단은 정책대상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숨은 욕구의 발견을 통해 숲 안내사가 아이를 교육하는 기존 프로그램을 부모가 아이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개편하였다. 기존 정책은 부모가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으니 아이 돌봄 공공서비스를 늘린다는 관점에서만 접근했던 것을, 부모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여 아이와 부모 간 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점을 전환함으로써 수요자의 충족되지 않았던 가족 간 관계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프로그램은 높은 예약률과 참여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3. 골든타임 72 프로그램 (교육부 국민디자인과제, 2021, 국무총리상)
세 번째로 골든타임 72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재난이 일어났을 때 학생들과 교사들이 초기 72시간 동안 트라우마를 완화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사고가 일어나고 3일간이 피해자들에게 있어 정신적 트라우마 완화 치료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그 시간 내에 트라우마를 완화하는 활동들이 있어야 되는데 교육을 의무화하는 관련 법규나 교육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실행이 잘 안 되는 실정이었다. 국민디자인단 운영을 통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련 법규를 마련하면서 프로그램이 정례화되어 2023년 1만 명 이상을 지원했고, 2024년도 1만 1천 명을 지원할 예정이다. 

* 2014~2023 국민디자인단 우수사례 모음...(디자인DB)

국민디자인단의 운영은 정부 정책에 R&D를 적용하게 되면 어떤 효과가 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이다. 2024년은 2억원의 예산으로 5개의 지원과제를 운영 중이다. 적은 예산으로 국민 생활 접점의 다양한 과제들에 공무원들과 수요자가 함께 참여해 개발하며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경험하고 디자이너들은 공공 정책 기획 영역에 관여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국민디자인단은 정책 기획 단계에서 사용자 조사 연구를 통한 사용자 중심 문제 재정의, 서비스디자인 프로세스와 방법을 통한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 개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한 공동 개발, 반복적인 프로토타이핑, 테스트, 시뮬레이션 등의 연구개발 활동이 일어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국민디자인단이 기존 정부 정책의 한계를 극복할 만능 열쇠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요자 중심 접근 방법이 비현실적인 정책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측면도 있기에 행정가나 국민들은 이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시도가 권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공공부문에 수요자 중심의 변화 동인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이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려면 국민디자인단 뿐 아니라 수백 배 이상의 규모로, 더욱더 전폭적이고 다각적으로 수요자 중심 정책의 실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정책 수립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단순히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실제 필요와 요구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체계적인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의 실효성과 국민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공공부문의 신뢰성을 강화할 수 있다. 정부는 정책 기획 단계에 체계적인 연구와 검증 과정을 포함한 R&D를 도입해 정책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자원의 효율적 사용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디자인단은 시작에 불과하다. 더 본격적인 규모의 연구개발(R&D)과 다양한 수요자 중심 접근법이 공공부문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공공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윤성원 + 챗GPT
2024.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