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9. 10:14ㆍ디자인/디자인이야기
어제(2018.12.8.)는 홍대 근처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을 방문했었습니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은 선문대학교 박암종 교수님이 25년 이상 수집해 온 한국디자인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 2008년에 개관된 국내 최초의 디자인역사박물관입니다. 마침 관장이신 박암종 교수님이 계셨고 관장님께서 직접 재미있는 옛날 디자인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함께 갔던 학생분들과 보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흥미진진한 한국디자인사. 잠시 함께 살펴보시죠.
* 2018.12.7-12.22. 디자인에피소드전. 근현대디자인박물관 www.designmuseum.or.kr (사진 안에 고릴라가 있습니다. 찾으셨나요?)
담배카드를 보는 중입니다.
잉? 담배카드가 뭐임?
이겁니다. 당시 담배갑안에는 폐암, 후두암 사진 대신 생활상을 기록한 이쁜 카드가 들어 있었네요.
성냥갑도 세련되고 뉴욕의 밤문화 일러스트가 똭! (왜죠?)
'담배는 원래 건강에 좋습니다'고요?
담배가 무지 작아요. 미니어쳐 같습니다.
당시엔 유명인사를 앞세워 '담배가 건강상의 혜택을 가져다 준다'고 광고했다고 해요.
말론 브란도 같은 분이었을려나...
작아서 덜 해로울꺼라고 했다면 모를까... 담배로 망친 건강 인삼으로 회복하자는 담배인삼공사 같으니라고.
담배산업육성의 일환이었을까요?
* 찾아보니 치과의사가 '니코틴의 살균력이 충치를 막아 준다'(1936년 8월 30일자 기사)는 이야기부터... 1950년대 미국에서도 담배가 인체에 무해하니 안심하고 피우라고 광고한 예가 있네요. 체스터필드 담배(제조사 필립모리스) 광고 ("담배가 건강에 좋다"고 광고하던 시절 이야기) http://blog.naver.com/unchi/50174198628 등. 50년대 이후에서야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가 밝혀지면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군요.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언론, 광고는 믿으면 안 됩니다.
뒤에 반쯤 찍힌 간판. 배담 아니고 담배입니다.
일제강점기 흔했던 담배광고용 간판입니다.
당시 생활상이 기록된 사진엽서에 이 광고판이 꽤 많이 등장하고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해요.
* 우리나라 간판 100년의 역사를 정리한 '간판, 눈뜨다'(박암종. 2012)라는 책이 출간된 바 있습니다. 서점에서는 안 파는 것 같고요, 박물관에서는 아직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 권 마련함.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1/61177
당시 명함입니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는 당연히 없고요.
아마 실제를 보면 다들 깜짝 놀라실껄요. (무지 작음.)
비율은 황금비 1:1.618이 분명할 것입니다. 재볼 수 없으니 그렇게 우길랍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명함은 민영익이 사용한 것으로 가로 6.2㎝, 세로 9.7㎝라고 하네요.
이것은 지금의 명함과 거의 같은 크기이군요. 고려대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다고 합니다.
화투를 개발한 닌텐도의 창업자도 디자이너였다?
화투 문양을 보면 놀이문화 유산이 잘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전통만 잘 지켜지는지 알 수 없지 말입니다.
실은 이 화투 문양을 처음 디자인 한 사람은 야마우치 후사지로라는 일본인입니다.
그리고 당시 가장 많이 화투를 팔던 회사가 바로 닌텐도(=임천당任天堂)입니다.
맞아요. 여러분이 아시는 첨단 게임전문기업 닌텐도입니다. 화투 제조업으로 창업, 기본기를 쌓아 온 회사였던 것입니다.
'19세기말 일본 메이지 시대, 교토에 살던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는 그림을 잘 그리고 손재주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개화 후 서양 문물이 들어오며 트럼프 게임을 처음 접한 그는, 조개 껍데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본 풍속과 결합해서 스스로 독창적인 카드를 만듭니다. 1년 12달을 상징하는 카드마다 4장씩 엮어서 총 48장의 놀이용 카드를 그렸는데요, 각 달마다 스토리를 담고 카드마다 점수를 다르게 매겨서 다양한 게임을 표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화투의 기원인, 하나후다(花札, hanafuda)입니다. 이 화투로 사업의 가능성을 걸어본 야마우치는 본격적으로 상점을 열고 자신이 개발한 카드를 제조-판매합니다. 메이지 22년(1889년) 9월 23일, 자신의 사업을 하늘에 맡긴다는 뜻으로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임천당골패)>'로 지은 카드 상점은 이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 출처 : http://gamelog.kr/687 [김태현의 망상과 공상]
몰랐습니다. 알고보니 닌텐도의 창업자 야마우치가 화투를 발명한 게임기획자이자 게임디자이너였네요.
닌텐도는 화투 제조 판매만이 아닌 애당초 게임개발사였던거고요.
화투가 왜 디자인박물관에 있는지 이제 이해가 갑니다.
역시 역사와 전통의 힘은 대단한거에요. 그쵸?
화투 48장 + 트럼프 52장 = 100장 이랍니다. 신기하죠. 아셨나요?
동서가 화합하면 백전불태. 이런 숨겨진 뜻인건지요?
전 평생 노름을 멀리해와서인지 첨들어 봤고요. 위 사진에 화투와 트럼프를 담은 장표엔 시조가 적혀 있습니다. 카루타라는 일본의 게임에서 유래한,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화가투라고 불렸던 게임 도구입니다. 놀이를 즐기는 가운데 시조를 저절로 외우게 되는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교육. 근래에 몇몇 사람이 복원했으나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는 놀이입니다. * 화가투 놀이방법
선비들의 품위 있는 노름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없어진 것 같습니다.
광고판인데 아래 한쪽이 떨어져 나갔어요.
관장님은 방문객 누군가가 가져가신 줄 알고... 왜 한 짝만 떼가셨나... 궁금해하던 차에 이번에 근현대디자인박물관 10주년 기념전을 준비하다보니 창고에 쌓아둔 수만점의 다른 수집품 안에서 나머지 조각을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역시 방문객이 가져간 것이 아니었죠. 마음도 하얀 백의민족이 그럴리가 없어요.
앞으로 방문해보시면 완성체를 만나실 수 있겠네요.
박물관 경영,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 2~4호(창간호 빠짐)
보유하고자 하는 물건이 경매에 나타나는지 아닌지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과거 유물이 발견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만사를 제치고 찾아가 경매에 참여해서 보유하는 식으로 하나 둘 소장품을 늘려오신 것이라고 해요.이 모든게 열정과 의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겠죠.
이것도 어렵게 경매에서 창간호를 손에 넣었으셨으나... 가짜임을 알게 되어 반품하였다고 합니다.
고미술품 경매시장도 중고나라랑 다를 게 없네요.
한성순보 1호 안보실 분은 관장님께 연락주심. 꼭요.
사진의 아래줄은 한성순보 이후에 나온 한성주보입니다.
한성순보, 한성주보의 기사 내용이 궁금해지신 분은 http://www.koreaa2z.com/viewer.php?seq=88#35 에 가보세요. 오래전 기사지만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국기가 수록된 자료집인데 당시 우리나라 국기가 없어서 용을 그려넣었다고 하네요.
'청나라는 당시 청 황실의 깃발로 사용하던 삼각형 황룡기를 변형하여 속국의 모습을 보이라고 제안하였는데,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명령이었다.황룡기 이 과정에서 황색을 청색으로 바꾸어 청룡기를 쓰라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었다. 동양의 오방색에서 황색은 중앙을, 청색은 동쪽을 의미한다. 또한 청룡은 동쪽을 관장하는 신수이니, 청나라가 황룡기를 사용하고 조선이 청룡기를 사용하라는 의미를 충분히 알 만하다. 또한 조선의 용은 격식을 낮게 표현하여 발톱이 하나 적게 하도록 하였다.' * 출처 나무위키 : https://namu.wiki/w/태극기
당시의 그 청룡이 이 청룡인 듯 합니다. 발톱은 숨겨져 잘 안보입니다.
황제국 각국의 대통령들 사진 모음. 우리나라가 출간한 것도 아닌데 황제국으로 당당하게 고종황제가 표기되어 있는 사진입니다.(위에서 두번째 줄) 일제 침략 이전이기에 가능했겠죠.
한 명은 고종, 한 명은 그의 아들 순종인데 분간 안 됩니다. 물론 나만 그럴 듯...
조선일보 창간호 복사본입니다.
제호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히틀러의 유아시절 사진 보는 느낌??
동아일보 창간호 (원본)
이것도 제목 형태는 지금하고 왠지 비슷한 느낌이죠?
'미술과공예'. 무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잡지 창간호입니다.
최초 of the 최초의 위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잡지는 1921년 10월에 발행한『서화협회보』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내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잡지는 1917년 4월에 발행된『미술과 공예』다. 이 잡지의 창간호는 현재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근현대디자인박물관 2층 상설전시장 제2관에 전시되어 있어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 http://www.daljin.com/column/12218
관장님은 그렇게 믿고 계시지만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초의 미술잡지가 뭔지 모를 것입니다.
시대를 앞서 간 천재, 이상. 그는 원래 디자이너였다?
이상이 디자인 한 시집 표지. (검은색 바탕에 은색 띄 두 줄 있는 표지)
그래요. 우리가 아는 시인 이상 그 분입니다.
자기 시집이 아니고 김기림이라는 시인의 시집 《기상도》(1936) 표지를 디자인했는데 파격적인 모던한 디자인이 주목을 끕니다.
당시 다른 표지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혁신적인 디자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지도 내공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볼 수는 없었고요.
이상은 자기가 경영했던 다방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고 '조선과 건축' 표지 공모전에서도 1등, 3등을 동시에 하기도 했던 디자이너였습니다. 원래 건축전공이었고요.
프레드 머큐리도 그래픽디자인 전공자였다죠. 천재. 창의성 폭발. 요절... 비슷하네요.
왜 일찍 돌아가시는 천재들이 많은 것인지... 아쉽습니다.
전시장을 만들라니까 대웅전을 만들었다는...
국내 최초 상업사진관 '천연당 사진관'. 역사의 기록자
맨 위는 법과대학 졸업식 사진입니다. 사회 최고의 엘리트들이었을 것... 다들 인물도 출중하시고요.
한국 최초의 상업 사진관인 '천연당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조선말기 서화가인 김규진이라는 분이 천연당 사진관(김규진 사진관)이라는 상업 사진관을 오픈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지도층 인사 몇몇 외에는 기록의 목적에서만 사진이 촬영 되었는데 천연당 사진관 개원한 이후에는 일반인들도 생활사진을 촬영하게 되는 것이죠.
천연당 사진관의 사진도 지금 몇 장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당시 필름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어 인화된 사진만 다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천연당 사진관에서 찍은 이 사진을 확보하는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네요. 관장님은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를 수집하고 있는 한미사진미술관이라는 한미제약이 운영하는 사진박물관과 경매에서 매번 맞닥뜨리게 된다고 해요. 경매 때면 둘이 서로 경쟁해서 경매가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때도 낙찰가가 많이 올라갔었는데 사진도 엄연히 디자인의 영역이고, 디자인역사의 빈틈을 잇기 위해 중요한 사료라는 판단으로 큰 비용이 들었음에도 확보하셨다고 하네요.
당시 슬라이드인데요, 필름이 아닌 두꺼운 유리입니다. 촬영 후 이미지에 색을 덧칠한 것입니다.
'갑신정변 실패 후 김옥균은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조선 정부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됩니다.(1894년). 본국으로 송환된 그의 시체는 능지처참됩니다. ‘대역부도 옥균(大逆不道 玉均)’이라는 깃발과 함께 한성부 저자거리에 효수된 김옥균을 찍은 사진'이 좌측 아래 사진입니다.
* 참고한 글 : http://
오리지날과 복사판. 박가분 & 촌가분
국내 화장품 중 최초로 상표등록된 상품 박가분입니다.
이제 100년이 넘은 기업 두산이 지금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첫번째 히트 상품입니다. 박가분은 하루 5만갑씩 팔릴만큼 공전의 히트를 했는데 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예쁜 패키지 디자인이었습니다.
박(朴)가분은 가운데 것인데 촌(村)가분이라는 가짜(오른쪽)가 나타납니다. 한자모양도 비슷하게. 패키지도 비슷하게. 촌가분 말고도 당시 유사한 가짜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혁신상품의 외형을 배껴 반짝 수익을 얻으려했던 못된 카피본이었네요.
우리나라 최초의 분유 남양분유 패키지입니다. 제가 이것을 먹고 자랐습니다.
달콤했던 맛이 생생하네요. 남양분유덕에 우량하게 자라던 저는 70년대 초반 어느날엔가 어머니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왜 제 사진이 분유통에 있는거죠?"
어머니는 말잇못... 전 정말 궁금했더랬습니다.
다른데 가서 안물어본게 다행이죠.
한국 최초의 산업디자인. 금성 A-501 라디오.
한국 최초의 제품디자인, 금성 A-501 라디오입니다.
관장님은 "1959년에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니다. 미래를 앞당긴 대단한 제품"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디자이너 박용귀. A-501. 이 정도면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용귀님은 한국의 디터람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멋집니다. 야심차게 3천대를 생산 목표로 했었는데 당시 수요가 많지 않아 단 80대만 생산되고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주변에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이유가 그거였군요. 여기 외에 또 어디에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희귀하고 국내 가전산업의 시조새 같은 의미가 있다보니 어떻게 알았는지 홍콩에서 꼭 사고 싶다는 요청이 왔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역사 보존을 위해 끝내 소장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걸 홍콩가야 볼 수 있게 된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지 않나요? 꼭 오래 보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초의 TV. 금성사. 이것 역시 디자이너 박용귀.
박용귀 님은 국내 최초의 수 많은 제품을 디자인했어요. 우리 국민이 처음으로 대량 생산된 제품, 산업디자인을 경험하던 시기에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예술 - 산업디자인의 원형을 만든,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다리가 긴 것이 인상적입니다. 처음 TV를 만드는거다보니 당시 일본의 TV 스타일을 따라 제작해서 그랬다고 하고요. 이것이 이후 국내 문화를 반영하게 되면서 다리가 짧아졌다고 해요.
위에서 애벌빨래를 할 수 있게, 빨래판이 마련된 세탁기 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개념의 세탁기가 또 나오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보시죠. 구개념의 재탄생.
애벌빨래부터 본 세탁까지 한 번에 끝내는 전자동 세탁기 '액티브워시'. (아. 삼성이네. LG는 찾아봐도 없네. 근데 애벌빨레 세탁기가 뭐라고 9시 뉴스에 나오는지...) https://www.youtube.com/watch?v=n4f4pQbMayU
관장님께서 기념엽서도 챙겨주셨어요.
한국 최초의 산업디자인. 기념도장 꽉!
아직 안보셨다면 꼭 가보시길. 그리고 설명을 들어보시고, 공부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함께 한 디자인의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특강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네요.
관심있는 분들 참여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2월 20일(목) 오후 5시,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갤러리모디움
1. 오교수의 시선으로 본 한국 근대디자인 - 오근재 홍익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디자인학회 회장
2. 근대디자인 명품에 담긴 10가지의 혁신적 키워드 - 박암종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관장, 선문대 교수
#근현대디자인박물관
#박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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