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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디자인) 국내 최초로 대량 생산된 제품과 패키지 디자인, 박가분

SERVICE DESIGN 2019. 5. 23. 07:59

 

국내 최초로 대량 생산된 제품 및 패키지, 박가분. 
1920년에 상표등록이 되고 공산품으로서 판매되기 시작한 한국 최초의 화장품이다. 

이것은 본래 1896년 창업해 포목점으로 운영되던 박승직 상점(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상점으로 알려져 있음)에서 1914년부터 고객에게 사은품으로 제공되었던 것이었다. 박승직의 부인 정정숙이 수공으로 제조해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었었던 것인데 이것이 여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게 되어 아예 회사 이름도 '박가 화장품'으로 바꾸고 1915년부터는 정식제품으로서 판매를 시작한다. 영화관이었는데 팝콘 맛집으로 소문나는 바람에 팝콘가게로 업종전환한 격.
당시 박가분 가격은 1920년 당시 50전. 현재 가치로 5천원 정도였다.

사람들이 백분을 사용하지 않던 것은 아니었는데 특히 박가분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매력적인 패키지 때문이었다. 다른 백분은 그냥 종이로 싸서 판매하는 방식이었는데 박가분은 사진에서처럼 근사하게 디자인해서 인쇄된 패키지에 담아 팔았던 것이다. 하루에 5만갑이 팔리기도 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박가분이 주목을 끌자 이 패키지를 모방해서 촌가분(村家粉. 朴家粉에서 한 획만 고쳐 쓴 가짜), 서가분, 장가분, 설화분, 서울분... 등 비슷하게 생긴 모방제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박가분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화장품을 구매했기에 박가분은 국내 화장품 산업을 촉발시킨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박가분과 촌가분. 근현대디자인박물관(박암종 관장) 소장.

 

얼굴을 희게 만드는 효과로 특히 화류계의 여성들에게 많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1922년 2월엔 우리나라 화장품으로서는 최초로 신문광고까지 했는데, 그 광고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최고한 역사가 있고 누차 상패 받은 박가분을 항상 바르시면 살빛이 고와지고 모든 풍증과 땀띠와 잡티가 사라지고 윤택해집니다.’ 
1930년 즈음엔 우리나라에 헐리우드의 문화가 소개되며 국민들 사이에 흰 얼굴에 대한 선호가 커져갔다. 
오래 전부터 흰 피부색은 신분을 드러내는 표식이기도 했다. 땡볕 아래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높은 신분임을 나타내기 위해 더 흰 피부를 선호했고 그 목적으로 백연광이라는 납성분을 얼굴에 바르다 납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기원전 4세기 고대 아테네에서도 납가루가 많이 사용되어 많은 여성들이 죽음에 이르렀다.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백연가루를 과용하다 피부가 파랗게 변해 죽어갔고 여성들은 이를 따라하다 많이 죽었다고 한다.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더 예쁜 외모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박가분이 판매되기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나고 박가분을 오래 사용하던 사람들 사이에 피부가 파랗게 변하거나 괴사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결정적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킨 기생 한 명이 박가분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게 된다. 피부를 희게 하고 잘 점착되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납을 주성분으로 만들었었기 때문에 납중독 피해가 나타났던 것이다. 납이 섞여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된 후 1937년 박가분은 제조를 중단하고 자진 폐업하였다. 이후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이 두산을 창업하게 되었으니 실은 박가분은 두산이라는 기업이 만들어지게 한 원천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산그룹은 한국 최초로 100년 기업이 되었다. 2019년 현재 두산은 123년째 된 국내 최장수 기업이다. 중금속 중독으로 많은 젊은 여성들의 건강을 빼앗아가고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기업이었음에도 지금 두산은 생활소비재, 중장비, 인프라산업까지 넓은 영역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기업하기 참 편리한 환경임을 말해주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1937년 폐업 후 기업활동을 재게하게 두어선 안 되었던 것 아닐까? 
더구나 박승직은 일제 치하 1900년대 내내 친일행적을 보였던 반민족적 기업인이다. 친일 행적을 했던 많은 인사들이 아직 처벌도 받지 않고 자손까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 같아, 두산이 백년 넘은 역사를 가진 기업이고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 중 하나라는 점에 마음이 편치 않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으로 논란의 기업이 되었을 때라도 불매운동 등 소비자들로부터라도 강력히 응징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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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글 :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 우리가 사랑한 물건들로 본 한국인의 자화상
금속의 세계사: 인류의 문명을 바꾼 7가지 금속 이야기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folkency.nfm.go.kr/kr/topic/detail/7017
창조경영의 도전자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5&nNewsNumb=002351100016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

 진로소주, 아리랑담배, 삼양라면, 해태캬라멜, 쏘나타, 애니콜 등등. 만들어져 사랑받고, 혹은 인기를 잃어 사라진 사물들을 좇아가면 사람들의 삶도 드러난다. 진로소주의 두꺼비는 왜 달팽이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을까? 영이와 철수는 왜 교과서에서 퇴장했을까? 쏘나타의 눈은 왜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는 걸까? 왜 어떤 것은 머무르고 어떤 것은 사라질까?  디자인된 사물들은 선택받기 위해 시대의 욕망을 다양한 모양과 색채를 통해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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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1918년부터 1937년까지 박가분제조본포朴家粉製造本舖에서 만들어 판매한 화장용 백분白粉.

folkency.nfm.go.kr

 

“나라는 망해도 상권은 지켜야 한다”

근대경영 원조 박승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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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의 세계사

?저자 김동환은 국제전략자원연구원 원장이다. 남호주대학에서 국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호주연구소와 호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남호주대학 국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다수의 대기업 및 중소기업 해외자원 개발 기업들의 자문과 매일경제 자원정보 자문위원, 국제지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또한 대한금속재료학회와 국회휴먼네트워크의 회원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로 중국의 희토류를 활용한 자원민족주의를 연구했으며, 냉전기간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에 대하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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