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성공 & 최악의 실패: 타잔과 화성의 공주

2019. 9. 16. 19:40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원소스 멀티유즈의 성공사례 타잔 &
실패사례 화성의 공주

콘텐츠 멀티유즈의 대표적 성공사례이자 실패사례를 동시에 갖게 된 특이한 미국 작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찌되었던 그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중소설가 중 한 명이다.

물론 당신도 잘 알고 있다. 그는 타잔을 만들어낸 사람이니까.

출처 :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Edgar-Rice-Burroughs


타잔과 화성의 공주의 아버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Edgar Rice Burroughs. 1875~1950).



소설가로서 인생 2막을 열다

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버로스는 사관학교 입학에 실패하고 일반사병으로 복무했으나, 심장질환으로 제대한다. 이후 광부, 회계사, 외판원 등 15년간의 전전 끝에 35세의 어느 날 싸구려 연재소설을 읽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써도 이것보단 낫겠다.' 즐겨보던 잡지사 '모든 이야기 All-Story'에 '화성의 달 아래서'라는 제목의 SF소설을 써서 보낸 것을 계기로 소설가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작가로서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대중의 관심을 얻으며 1912년 '화성의 공주'라는 제목으로 공상과학 소설을 연재하는 기회를 잡게 된다. 같은 해 13세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이어서 연재하려고 했지만 전작이 꽤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음에도 잡지사가 게재를 거절하는 바람에 이 글의 배경을 정글로 바꾸고 재구성해 '유인원 타잔(Tarzan of the Apes)'라는 소설을 연재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를 스타 작가로 만든다.
타잔은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시리스 소설 중 하나이며(5천만부 이상 판매) 버로스는 SF, 모험소설, 역사소설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소설 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베스트셀러에서 영화까지. 원소스 멀티유스의 시작, 타잔

버로스는 캐릭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초기부터 타잔을 만화, 영화, 상품으로 다양하게 제작할 계획을 세웠다.
(원소스 멀티유스 One source multi-use, OSMU의 선구자?)
당시 미디어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매체에서 동일한 스토리와 캐릭터가 등장하면 이른바 자기 잠식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로 그의 계획에 반대했지만 버로스는 캐릭터가 복합적으로 활용되면서 나타날 파급효과를 믿고 그 구상을 실현했고 결과적으로 그가 옳았다.

타잔은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캐릭터 중 하나다. 얼마나 압도적인 성과였는지 살펴보자.
타잔은 20세기 전반부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단일 IP다. 미국영화연구소(AFI), Library of Congress, Film History Journal (2004) 등의 자료에 따르면, 타잔은 1910~1940년대 동안 가장 많이 제작·소비된 문학기반 영화 시리즈였다. 1918년 Tarzan of the Apes는 흥행수익 미화 100만 달러 이상으로, 당시 헐리우드 사상 최초의 “Million Dollar Movie”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로도 41개의 영화와 60개가 넘는 TV드라마가 제작되었다. 1932~1948년 사이에 제작된 MGM 타잔 시리즈(조니 와이즈뮬러 주연)는 전 세계 90개국 이상에서 배급되었고, 20여 년간 시리즈가 지속되었다. 이것은 동시대 어떤 문학원작 영화보다 긴 수명이다. 
수백 개가 넘는 신문에 타잔 만화가 연재되었고 만화책도 수백만 권 이상 판매된다. 타잔은 버로즈가 집필한 것만 24권의 시리즈로 만들어졌는데 하다하다 나중에는 타잔이 지저세계와 화성에까지 가는 이야기가 나오는 지경이 되자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버로즈의 소유였던 LA인근의 농장도 타잔의 성공과 함께 점점 커지며 하나의 도시가 될만큼 성장해 1923년에는 타잔을 기념하는 이름의 '타자나'라는 이름의 자립도시가 된다. 타잔은 하나의 IP를 다매체로 확장해 상업적 성공을 거둔, 현대 원소스멀티유즈 전략의 시초였다.


유인원 타잔 (1912)
타잔(조니 와이즈뮬러)과 제인(모린 오설리반)



SF소설, 스페이스오페라 장르의 개척자가 되다

버로즈는 타잔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로는 '화성의 공주'라는 소설로 SF소설사에 중요한 획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불리게 되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서부극 류의 SF소설은 180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지만 하나의 장르로 구축되는데는 인지도 높은 많은 글을 발표했던 버로즈의 노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SF소설에 외계인과 주인공 간의 로맨스가 가미된 것은 그가 최초다. 그의 이야기는 강한 체력과 뛰어난 두뇌를 가진 낙천적 성격의 영웅이 미지의 세계로 공간이동을 한 후 모든 조건에서 우세한 적과 맞서면서 위험에 빠진 명문가 출신의 여성을 구하는 모험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타잔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인데 남성의 상징이랄만한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거의 벗은 남자 주인공, 귀한 집안 출신이지만 역시 상황상 거의 벗은 몸이 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많은 창작가들의 참고서가 된 우주 서사극. 화성의 공주

그가 만든 두 명의 특출한 캐릭터 타잔과 존 카터('화성의 공주'의 주인공)는 모두 1912년에 발표된 소설의 주인공인데 동시에 여러 개의 다른 글을 함께 창작하면서 이 일을 해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타잔이 영화, TV드라마, 만화 등 다양한 매체에 복제되며 대중문화에 영향을 준 것처럼 '화성의 공주'도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TV,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참고 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만드는데,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드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제임스 카메론, 조지 루카스가 밝힌 바 있다.). 천문학자 칼세이건도 이 책에 매료되어 우주를 동경하게 되었다. 칼세이건의 연구실 앞에는 바숨(소설 화성의 공주 중 화성의 이름)의 지도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화성의 공주(1912)

 

영화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2012)
영화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2012)
영화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2012)



'화성의 공주'는 존 카터 창조 100년차인 2012년에 맞추어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개봉되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영화 역사상 손꼽힐만큼 망했다. 백년이 되었다고는 해도 원작이 만만한 원작이 아닌 만큼 순제작비만 2억5천만달러, 2,835억원으로 아바타(2억3,700만달러, 2,700억원)보다 더 들었고 마케팅 비용도 1억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망했다. 디즈니는 공식적으로 2억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 당시 월트디즈니 회장이 그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고 하니 누구의 상상도 초월하는 실패였음을 알 수 있다. 시리즈물로서 '바숨 전쟁의 서막'이라는 제목으로 발표 되었지만 서막이 종막이 되었다.
(하지만 다음해 디즈니는 '론 레인저'로 더욱 폭망한다. RIP)

'이미 너무나 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서 그가 창조한 세계관이 공유되어 식상하게 보였다', '100년이 된 스토리로는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기 어려웠다'는 등의 이유를 대고 있지만 핑계다. 100년이 되서 신선함이 없다면 인류 종말 올 때까지 우려먹을 그리스로마신화는 왜 아직 재활용 되고 있는 것인가. 어디까지나 창의력과 상상력의 문제고 창작자의 역량에 달린 것이다.

이것은 윌E와 니모를 찾아서를 만든 픽사의 대표 감독 앤드류 스탠턴이 연출한 최초의 실사 영화였다.
애니와 실사 영화의 차이에 실패의 원인이 있지 않았을까? 내 생각으론 연출과 함께 캐스팅이 흥행실패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 없는 캐릭터를 만드는 애니메이션 감독인 만큼, 배우쯤은 누가 되도 관계없이 성공시킬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닐까?


참고한 글 :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윌리엄 케인 저) 중 8장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처럼 써라

정글의 왕 타잔의 어제와 오늘, 김송호, 2005.5.13.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 위키피디아 

[김상온의 영화이야기]<77> 추억의 타잔, 김상온, 2016.7.4.    

[웹진 판타스틱] 화성 연대기, 저자미상, 2012.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