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밥을 만드는 것은 가능할까? - 정량화의 허점

2020. 8. 10. 23:15디자인/디자인이야기

사진출처 :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thepen/article/27468



"손등에 찰랑창찰랑 할 때까지 넣으면 돼. 이렇게..."

어머니가 밥하시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밥을 맛있게 하려면 물은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가 궁금해졌었다.
젊은 어머니의 손은 정말로 예쁘고 통통했다. 언젠가 내가 밥 할 기회가 되었을 때는 납작한 내 손 두께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손목까지 물을 넣었다가 쌀죽을 만들었다.

집마다 밥솥의 크기는 다 다르고 손의 크기도 다 제각각이다. 쌀의 양도 매번 다르다. 물의 양을 재려고 쌀을 누르는 힘도 사람마다 다르고 잴 때의 상황마다 다르다. 손이 작은 사람은 물이 부족해서 거친 밥을 먹게 될 것이고 손등이 통통한 사람은 질척한 밥을 먹게 될 것이다.
이 많은 변수 속에서 최고의 밥을 위한 찰랑거림의 선을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맛있는 밥을 위한 정량화에는 큰 허점이 있다.

인터넷에 찾은 글에는 밥 부피의 1.2배의 물을 넣으라고 설명되어 있다. 쌀쌀맞은 표현이다.
쌀의 1.2배의 물을 어떤 방법으로 계량하라는 건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알려줄 방법을 못 찾은 것이 분명하다.


밥솥 안쪽에 눈금이 표시되어 있으니 그것을 따라하면 된다는 글도 있다. 최상의 밥맛을 만들 밥과 물의 황금비를 찾으려 했던 연구원들의 많은 시식의 노력이 눈금이라는 결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밥솥 안쪽에 눈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밥짓기 적당한 물 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도 여전히 허점이 있다. 쌀은 물에 닿는 순간부터 물을 흡수하면서 부피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쌀을 씻고 물에 불린지 뒤 얼마나 지났는지에 따라서도 쌀에 부어야 할 물의 양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치자면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할지를 제대로 알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손등에 찰랑찰랑'의 세계와 '1.2배'의 세계는 너무 다른 세계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세상 중간 어디쯤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최고의 밥맛을 위해 딱 맞는 물의 부피를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상향의 밥맛의 세계에 갈 수 없음을 알아도 어쩔 것이냐. 그럭저럭 사는 수 밖에.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 글. 윤성원이 페이스북에 쓴 글. 2019.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