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사업은 왜 성공하기 어려운가?

2020. 8. 10. 00:31디자인/디자인이야기

에너지 고지서 서비스디자인 시범사업 cafe.naver.com/usable/1839)*의 사례를 통해 시범사업의 주제선정, 성과측정시 고려해야 할 점, 디자인의 관리 감리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왜 에너지고지서였을까? (주제 선정하기)

산업부 디자인과(당시 지식경제부 디자인브랜드과)는 당시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와 같은 실에 배치되어 산업부 실장의 의사결정으로 그 적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였다. 시범사업은 통상 짧은 기간, 적은 예산 등 부족한 자원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하기에 효과적으로 정책 의사결정의 구조를 활용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편이 유리하다. 그 외에도 시범사업의 주제 선정에 있어 고려할 수 있는 기준은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설명

시책 부합성

국내 외로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문제일 것

적합성

서비스디자인을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주제일 것

경제성

비용이 크게 수반되지 않아도 실행 가능한 주제일 것

파급성

경제적, 비경제적 파급력이 큰 주제일 것

실행 용이성

의사결정 및 실행과 관련된 부서가 많지 않은 주제일 것

측정 용이성

적용 전, 후 효과에 대해 정량적 평가가 가능한 주제일 것

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서비스디자인 시범사업의 경우, 적당한 주제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주제의 예는 다음과 같다. 

구분

좋은 주제

나쁜 주제

시책 부합성

고령화, 음주사고

선거율을 높이는 디자인

적합성

왕따, 자살(심리 고관여)

재고상품 관리(심리 저관여)

경제성

행동변화 유발 캠페인

시설을 바꿔야 가능한 문제

파급성

자살율저감, 감염예방

수혜자가 극소수인 주제

실행 용이성

주민센터 활용 개선

교도소내 감화 프로그램

측정 용이성

골목길 범죄율 저감

재난 후 심리 피해 줄이기

 

시범사업의 성과 측정, 어떻게 해야 할까? (성과 측정하기)

우리(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디자인지식산업포럼)는 당시 디자인개발을 완료하고 적용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새로 디자인된 고지서를 방배동 아파트 단지 600가구에 1~3월간 모두 적용을 했었는데 이것은 동일한 환경조건에서 디자인만 다르게 적용된 대조군을 만들어 조사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300가구는 기존과 동일한 고지서로, 300가구는 새로 개편된 고지서로 배부하여 그 절감효과를 비교하였다면 더 확실한 성과 측정 자료로서 설득력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기재부 등 관련부처를 설득하기 위한 자료로서 에너지 절감 성과치가 전년인 2010년 동기간 대비 당해년의 절감 결과만을 제시할 수 있었기에 전년보다 기온이 따뜻해서가 아닌가라는 식의 지적(실제로는 2010년보다 2011년 기온이 더 낮았음에도)을 받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2012년 시행되었던 서울시 염리동 범죄예방 서비스디자인 사업(강효진 서울시청 디자인개발팀 팀장)의 경우, 성과 측정을 위해 범죄예방 효과 측정에 적합한 협력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프로젝트 초기부터 함께 참여하면서 과학적이고 정량적인 성과평가의 기준을 설계하고 프로젝트 결과가 적용된 후 6개월간 그 성과를 측정(을 위해 예산과 시간을 배분하고 관리)하였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 관련보고서: ‘서울시 범죄예방디자인사업의 예비 효과성분석’, 2013, 형사정책연구원
서비스디자인을 개발, 시범적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후 6개월간 성과분석 기간을 두고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정량적 성과를 확인함으로써 공감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던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수립한 범죄예방 환경설계 가이드라인을 10개 구역을 대상으로 적용 후 관련 사업 대상지 전역으로 확산할 계획을 발표했다. 
시범사업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효과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서울시의 사례처럼 사업에서 무엇을 성과지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측정할 것인지, 누구를 통해 발표되게 함으로써 권위를 부여할 것인지 등에 대해 미리 구상하고 성과를 설계, 측정, 분석, 홍보하기 위한 시간과 자원을 배분해야 할 것이다. 

 

원안이 관철되지 못했던 이유는? (시범사업 관리하기)

‘...실제 에너지관리공단이 바뀐 고지서를 아파트에 적용해서 얻은 절감효과는 2%대에 그쳤다. 원안이 대폭 수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고지서 제조업을 민간기업에 외주로 맡기고 있는데 제조업체 측에서 고지서 색상을 3가지로 늘리고, 각종 캐릭터나 시각적 이미지를 삽입하는 등 대규모로 개편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제조비용이 올라간다는 이유였다. 고지서 제조업 시장을 한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보니 경쟁입찰도 불가능했다. 결국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채택한 고지서는 기존 고지서와 수정안 사이에서 절충된 수준으로 확정됐다. 종이 상단 색깔을 3가지로 다양화하는 대신 가전제품에 흔히 쓰이는 에너지효율등급과 유사한 반원 모양 현황표를 삽입했다. 이 표에는 자기 집 전기사용량과 평균 사용량이 함께 나와 있어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전기에너지와 열에너지로 구분하는 항목은 그대로 채택됐지만 누진세 부분을 별도로 표기하는 부분은 삭제됐다. 하지만 약간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절감효과를 거두면서 공무원들 인식도 바뀌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지난해 총 30만가구에 새로운 고지서를 적용했고 올해는 100만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디자인만 바꿨을 뿐인데…전력난 막은 숨은 공신’.2013년 09월 11일, 매일경제. 정순우 기자 

 

https://www.mk.co.kr/premium/behind-story/view/2013/09/1655/

 

www.mk.co.kr

 

 

초기 디자인

 

최종 수정된 디자인


위 그림과 같이 고지서는 초기디자인에서 많은 부분 변화된 상태로 적용되었다. 변경된 디자인은 초기 지경부가 발표했던 디자인안과 기능성, 심미성의 측면에서 매우 큰 차이를 갖는다. 특히 넒은 색상면을 통해 심리적 충격을 미치는 부분, 다양한 그래프 표현으로 잔존 기억량을 늘리고 정확하도록 기억되게 하는 측면 등의 인지, 심리적 차원에서 볼 때 당초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임이 분명하다. 당초 디자인은 10%이상 에너지 절감 행동을 이끌어낸 효과성을 입증한 바 있지만 변경된 고지서 디자인은 심리적 효과 및 에너지 절감 행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확인했던 것만큼의 에너지 절감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에너지관리공단측의 이야기로는 2%의 절감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산업부 디자인과와 에너지 정책 관련 부서, 그 산하에 고지서 배부를 담당하는 에너지관리공단, 실제 배부를 위탁하여 운영한 민간기업이 고지서 디자인개선에 관여되는 주요 이해관계자였다. 특히 고지서 위탁을 담당하는 민간기업이 개발 초기부터 관여되어 핵심 아이디어가 나오는 과정에 참여했다면 초기 아이디어가 크게 수정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시범사업은 왜 성공하기 어려운가? (시범사업 관리하기)

에너지고지서 개발 시범사업(에너지 사용 저감 행동 유발을 위한 에너지 고지서 디자인하기 cafe.naver.com/usable/1839) 을 주관했던 담당자 입장에서 시범사업의 목적했던 바가 최종까지 구현되기 어려운 이유를 뽑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공영역에서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관리공단 등 고지서 공급과 관계된 이해관계자의 요구사항이 다양하게 가미되면서 원안 디자인 중 에너지 등급표의 표현방식, 색상구성, 화살표, 글자 위치, 크기 등 디테일한 디자인 요소가 거듭 수정되었다. 그리고 그 수정과정은 디자인개발팀과는 무관하게 에너지관리공단의 책임하에 진행되었기에 개발에 참여했던 디자이너가 관여할 수 없었다. 회의때 참석하여 이것은 어떤 의도에서 이렇게 디자인되었고 어떤 것은 꼭 지켜져야 하는지 등의 의견을 개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는 이유는 각 기관의 역할이 서로 순차적으로 나뉘어 연결되어 있기에(디자인 개발까지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책임지고 하고, 이후 적용은 에너지관리공단이 책임지고 하는 식) 디자인개발의 다음 프로세스에 해당하는 부분에까지 디자인이 관여되기 어려운 것이다. 디자인은 사람의 미묘한 심리와 감정을 터치하여 생각과 행동변화를 유발하는 전문영역이다. 전문가가 적절한 과정을 거쳐, 타당한 주장을 제안하였다면 이것은 당초 의도된 바대로 정교하게 구현되어야 목적했던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변형이 된다면 결과에 의도치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부분의 공기관에 디자인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전문 조직이나 전문가가 있는 곳이 없기에 디자인의 적용, 활용단계에서 원안의 아이디어가 훼손되기 쉽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조직 내부에 그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켜낼 주체가 없다면 디자인의 성과를 보장할 수 없다. 수정과정을 거치면서 가전제품 에너지 등급표와 동일한 부채꼴 모양의 에너지 등급표를 고지서 전면에 사용해야 한다고 결정되었고, 기존 광고영역이 존재하는 고지서의 경우 현실적으로 고지서 발급 비용의 문제로 인해 실행이 어렵다는 문제가 고려되는 등 많은 부분이 추가 수정되었다. 관리비 고지서의 사용자는 일반 소비자이지만 고지서의 생산에서 택내 발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 (VAN/전산업체, 광고, 아파트입주민협의회, 아파트위탁 관리업체,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가 관여되어 있어 다양한 의견을 상호 조율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정부의 방침과 최초 디자인의 배포 계획은 이미 보도되었던 사안*임에도 이후 절차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영향을 주어 현재와 같은 형태로 변형된 것이다.  
* 지경부는 ‘12년에 본 고지서 적용을 100만호까지 확대할 계획으로 보도함 (2011.11.4. 지경부 보도자료)

둘째, 정부가 가진 정책의 영향력, 조정력이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고지서 개선사업의 실질적 수행자(에너지 고지서를 인쇄 배급하는 역할을 하는)인 기업이 높은 시장 지배력을 가진 관계로 정부의 협상력이 좋지 않았다. 고지서를 제작하여 전국 아파트에 보급하는 곳은 민간 업체인데, 이 기업(이지스엔터프라이즈)은 아파트 관리비 고지를 위탁 대행하고 있는 업체로 전국 고지서 시장의 95%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고지서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이 없는 것이고 정부의 협상력이 작동할 수 없다. 에너지 정보전달체계상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는 수행자인 기업이 여러 상황상 바꾸지 못한다고 결정하면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다양한 경쟁자가 있는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시범사업 실행 이후 그 적용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시범사업을 통해 건강검진결과표가 개발(산업부 2011년 R&D과제)*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 아이디어를 채택하게 된 것은 4년이나 지난 후였다.(2015년 1월 27일 건강검진 실시기준(고시) 일부 개정안이 발령되면서 시행령에 새로 변경된 디자인이 명시, 전 국민이 사용하는 건강검진표에 적용됨)
* 건강검진 결과서, 서비스 디자인을 만나다. - 사이픽스 cafe.naver.com/usable/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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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사업 시행 후 2년간은 사업의 성과분석, 개선안의 반영, 응용안 개발, 제도화, 적용효과 분석 등 과제들이 지속되어야 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문제 제기된 주제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정책 사업화되고 각종 규정과 제도에 반영되어 정착될 수 있게 해야 한다. KIDP는 시범사업의 주제가 시행된 해를 넘겨서도 지속 관리 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의 후속조치에 필요한 예산배정과 책임과 역할을 부여해 관리해야 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국가 정책에 반영되어 궁극적으로 국민 전체에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끝까지 감리하는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자면 KIDP의 꾸준하고도 전사적인 관심과 실현의지가 필수적이다.

 

글 : 윤성원. 2020.8.10.('디자인이 궁금해' 중에서)

관련 글 : 시범사업이 필요한 이유 servicedesign.tistory.com/203

 

시범사업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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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servicedesign.tistory.com/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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