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38. 통일한국의 미래, 왜 디자인을 말해야 하나?

SERVICE DESIGN 2023. 7. 13. 00:18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세대가 다음 세대로 주도권을 넘기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성장중심의 논리로 소수의견은 무시되고, 사회안전망은 갖추어지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바라는 정당한 소망은 살만해진 자의 투정으로 치부된다. 약자를 배려하고 살피는 홍익인간의 가치관은 파괴되었다.
자살율 세계 1위,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 1위,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 꼴찌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음을 말하는 많은 숫자들은 인간성이 무시되어 온 결과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산업적 성취를 이루고 난 지금, 우리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진정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가는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간 성장을 최대 목표로 구축했던 국가 인프라는 이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통일 후 북한은 70~80년대 우리가 겪었던 단계를 뛰어넘으면서 더 고속 압축 성장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기간산업을 갖추는 것부터 성장해 온 우리의 경험은 통일 후 북한의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좋건 싫건 간에 참조가 될 것이다. 우리는 화려하면서도 난폭한 성장의 시기를 넘어 이제야 비로소 국민 행복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돌이켜보려하고 있다. 북한도 우리가 경험한 전철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면 함께 통일 후를 미리 디자인해야 한다. 

특히 국가 기간망이 구축될 때 충분히 국민의 행복을 고려하지 못했던 우리의 실책을 피해갔으면 한다. 예를 들어 도로, 철도, 국가기간도로망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목표로만이 아니라 개인과 서로의 삶을 풍부하게 하자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고려해 디자인되어야 한다. 산업단지도 생산기지로서의 기능과 효율성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의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될 방안을 고민해 디자인되어야 한다. 국가가 껍데기만 성장하는 것이 아닌, 사회, 문화적으로도 전통의 가치를 수호하면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산업발전단계가 우리보다 앞서 있는 선진국들은 서비스산업, 공공서비스 영역에 UX, 서비스디자인이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며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맞춤형 서비스 수요가 커지고 있고 정부서비스의 비용 효율성 요구가 커지는 만큼 정부서비스에서 UX, 서비스디자인 수요는 확대될 것이다.

통일 이후엔 큰 사회문화적 갈등을 봉합하고 경험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공공서비스시스템, 국가의 운영 시스템이 완전히 새롭게 갖추어져야 할 것이기에 그로 인해 사상 최대의 공공부문 디자인 수요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국민 생활과 관련된 전반의 경험을 다루는 서비스디자인, UX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예상된다. 

행정시스템, 공공서비스전달체계, 공공환경디자인, 새로운 정책디자인 등 디자인계는 이 수요에 대응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급진적 과제를 다뤄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앞으로 수십 년 후 닥칠 수 있는 미래를 대비해, 통합된 세상을 대비해 디자인의 역할과 해야 할 일을 구상해두어야 한다.
통일 한국이 설계되는 초기에 디자인이 충분히 개입하지 못한다면, 국가 인프라 시스템이 인간 중심으로 설계되지 못한 것에 대한 댓가로 후손들이 오랫동안 불편함을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970년 수출을 통한 산업진흥의 지상과제를 위해 포장에서부터 제품, 시각, 경험, 서비스디자인까지 각 디자인영역이 전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미치는 영향과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제조와 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국민의 생활의 질을 높이고 인간 중심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초기부터 전체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함을 배웠다. 디자인이 공식적으로 역할하지 않으면 인간이 느끼는 미세한 위화감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과 소수의견을 고려하자는 목소리는 쉽게 나타나지 않거나, 있더라도 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점도 배웠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인간 본연의 마음속에 숨겨진 욕구를 찾기보다는 기술 중심으로, 효율성 중심로 번쩍번쩍하는 목표로만 내달리게 된다. 그래서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 기회를 잃게 될 수 있다. 북한도 우리가 그간 놓쳐왔던 인간 중심의 가치를 또 놓치게 될 수 있다. 통일한국은 국민이 행복한 나라여야 한다. 그러자면 디자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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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