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모두를 위한 디자인

2023. 7. 13. 00:25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포용디자인이 왜 필요하고,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 중심의 관점으로 소수의 불편함도 배려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유니버설디자인, 소셜디자인, 민주적 디자인 등이 추구하는 가치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 즉 ‘포용디자인(Inclusive Design)*이라고 할 수 있다. 
* ’ 포용디자인(inclusive design)이란? : 신체, 정신, 문화, 경제, 성별, 연령 등 다양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모두를 배려하는 디자인을 의미함 
* 영국 표준원(British Standard Institution)에서의 포용디자인의 정의 : 포용디자인이란 일상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변형이나 개조 없이도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

그림 : 포용디자인(Inclusive Design) =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신제품을 개발할 때 ‘누구를 위해 디자인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고 치자. 극소수의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에서부터 모두를 위한 디자인까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할 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용편익이 가장 높은 ‘평균을 위한 디자인’을 하게 된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가장 많은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당연히 가야 할 방향이지만, 이것을 실현하자면 다양한 사용자를 고려해야 하고 그러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업들은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 수요층이 가장 많은 구역에 있는 평균 사용자를 대상으로 제품서비스 개발을 하고 시장에 내놓아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경영을 해왔다.
평균을 위한 세상에서는 평균치에 해당되는 사용자만 대우받는다. 평균치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소외된다.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들은 소외되는 쪽에 속한다. 아래 그림의 노란색 선은 넓게 분포된 사용자 전체를 의미한다. 왜 기업들이 사용자가 가장 많은 영역 만을 타깃 시장으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디자이너는 평균을 위한 디자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림 : 비용편익 최대화를 위한 선택, 평균을 위한 디자인


그런데 점차 기술로 그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다. 2018년 12월 링크드인은 2019년 50개의 빅아이디어를 발표했는데 그중 디자인 관련 주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포용디자인이 주류가 될 것이다’(Inclusive design will go mainstream)였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가 AI기술이 포용디자인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사티아 나델라는 지친 공룡이라 불리며 추락해 가던 MS를 위기에서 끌어내 시가 총액 1위로 바꾸어낸 대단한 비전을 가진 경영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왜 포용디자인이 메인스트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것일까? 

'포용디자인이 주류가 될 것이다’(Inclusive design will go mainstream)'.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n025zjyJH5Y

사티아 나델라는 위 영상에서 포용디자인이 접근성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요소라고 말하며, 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사회와 경제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또한 특정 제품의 개선 사례 - Xbox 컨트롤러의 패키지 디자인과 OneNote의 학습 도구,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Seeing AI" 앱 - 을 예로 들어 포용디자인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제품이 완성된 후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대신, 포용디자인을 고려하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제품이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수용하도록 디자인을 앞당기는 것을 의미한다. 나델라는 포용디자인이 미래에 더욱 주류화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는 AI의 발전과 함께 제품 개발의 주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존 산업의 논리('그걸 사려는 고객이 몇이나 되겠어? 경제적이지 못해'라는 생각)로 대량생산된 제품서비스는 난독증 환자, 노약자 등의 소수의 사용자를 수요자로 포용하지 못했었다. 인공지능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모든 영역의 사용자 각자에게 맞춰진 디자인을 해줌으로써 결국 모든 사용자를 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시력이 낮은 사람에게 자연적으로 더 큰 폰트로 보이는 웹브라우저와 같은 식의 맞춤형 제품/서비스를 의미) AI는 모든 이들에게 맞춰진 제품서비스가 기존과 비교할 수 없는 낮은 비용으로 제공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비용이 더 드는 것이 아니라면 한 명이라도 고객 범위를 늘리는 것이 맞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예측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포용디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용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옥소(OXO)의 예를 소개한다. 아래 사진은 옥소 본사 로비의 모습이다. ‘수많은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용자가 우리의 고객이다’라는 것을 일깨우는 공간이다. 

사진 : 옥소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사용자들의 장갑


옥소는 샘 파버(Sam Farber)가 1990년 설립한 주방용품 제조업체이다. 그는 30년간 운영하던 회사를 퇴직하고 은퇴시절을 보내던 중 부인이 손 관절염으로 감자 깎기 칼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주방용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유니버설디자인 전문가인 패트리샤 무어의 도움을 받아 2년간 연구개발 끝에 ‘굿그립’을 개발한다.

그림 : 옥소. 굿그립


관절염이 있는 사람도 편안하게 잡을 수 있는 고무 재질 손잡이의 감자깎이 칼과 같은 주방용품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2%가 넘은 상황이었고, 관절염 환자는 6천6백만 명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제품은 노인, 관절염 환자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편리한 제품이었다. 결국 미국 내 시장 점유율 50%, 매년 매출 평균 27% 상승, 지난 10년간 디자인상 180개 이상 수상 등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지금도 옥소에서는 연간 1백 종씩 신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다음 두 개의 손잡이 중 하나는 포용의 개념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손잡이이고 하나는 ‘포용디자인’이 된 손잡이이다. 왼쪽 손잡이는 손바닥으로 잡아 힘을 주어 돌려야만 열 수 있는데 반해 오른쪽의 손잡이는 손아귀에 힘이 없거나 심지어 손이 없는 사람도 열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현재 왼쪽 유형의 손잡이는 7.6%, 오른쪽은 92.4%의 비율로 팔리고 있다. 이것은 포용성을 추구하는 것이 산업적 성과에 반하지 않는다는, 두 마리 토끼 중 뭔가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다. 포용디자인을 잘 구현하면 시장에서 더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형 손잡이 보다 레버형 손잡이(포용디자인)가 시장 점유를 압도하고 있다.


앞의 사례들은 포용디자인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디자이너나 장애인과 같이 위화감에 대해 민감성이 높은 사람이 신시장을 만드는 아이디어의 도화선이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고객으로 포용하지 못했던 바깥쪽의 고객까지 고려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게 되면 오히려 기존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기회를 찾을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이것이 포용디자인의 산업적 의의라 할 수 있다. 

전화기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청각 장애인인 어머니에게 음성을 전달하기 위한 기계를 개발하면서 개발된 것이었고 타자기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계로 개발되어 발전된 것이었다. 포용성의 개념을 고려한다면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적 신제품을 만들 수 있다.

디자인은 산업적 가치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를 결정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포용국가를 만드는 데 핵심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최근 정부는 ‘모두가 다 잘 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추진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디자인이야말로 혁신적 포용국가를 실현하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혁신적 포용국가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써 포용디자인’은 포용국가로 전환하고자 하는 지금, 국정 전반에 필요한 디자인의 역할을 의미한다. 이제 산업을 촉진하는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과 문화를 바꾸는 주체로서,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주체로서 디자인이 역할을 할 수 있게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안전, 범죄예방, 지역재생, 에너지, 공유, 일자리, 복지 모든 정부의 정책에 디자인이 모든 국민을 배려하는 포용의 국정 철학으로 고려될 수 있도록 국가디자인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