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정부R&D와 디자인

2023. 7. 13. 00:29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디자인 R&D가 추진되어 온 경과 

한국디자인진흥원은 1984년부터 2008년까지 디자인 R&D를 주관해 왔다. 1997년~2008년 중 디자인기술개발사업의 세부사업으로 168개의 디자인 R&D 과제가 추진되며 디자인에 대한 학문적 고찰부터 소비자조사, 공용 DB 구축, 실용기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과제가 연구 개발되었다. 
2009년 정부의 R&D 통합관리 방침에 따라 한국디자인진흥원, 정보통신연구진흥원 등 산업부 산하 7개 R&D 지원기관의 평가관리 업무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으로 통합 이관되어 현재에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디자인분야를 포함하여 산업부의 R&D를 통합 관리하고 있다. 
기술분야와 통합되면서 구조적으로 디자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평가관리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점, R&D 내에 디자인의 역할 확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은 향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디자인 R&D 현황과 한계점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각 국은 서로 R&D 투자를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정부 R&D 예산도 긴축 재정의 시기에도 예산이 축소된 적이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앞으로도 기술경쟁에 노력하는 모든 국가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부 R&D 예산을 경쟁적으로 늘려갈 것이다. 따라서 정부 R&D 안에서 디자인의 역할, 지분을 키워가는 것은 ‘디자인 역량 강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2010년 당시 지식경제부의 디자인 R&D 예산은 317억으로 산업부 R&D 총예산 4.4조 원의 0.72%,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의 디자인 R&D 예산은 421억(디자인혁신역량강화사업)으로 산업부 및 중기부 R&D 총예산 4.9조 원(2017년 중소벤처기업부 분리, 2019년 산업부 R&D 예산 3.2조 원. 2019년 중기부 R&D 예산 1.7조 원)의 0.86%이다. 10년간 약 133%가 증가되었지만 아직 관계부처 R&D 예산 중 1%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산업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국내 디자인 R&D 예산은 597억 원으로 R&D 총예산 27.4조 원의 0.2%에 불과, 디자인리서치, 컨설팅 등 공통 디자인기술 연구의 질적, 양적 수준이 미흡한 상태다. 
* 민간기업의 연간 디자인투자는 3.5조 원으로 전체 R&D 투자 대비 14.6% 수준(‘08년 기준)
우리나라 R&D는 제조산업에 치중되어 있어 서비스산업을 위한 R&D 투자가 부족하다.
* 우리나라의 서비스산업 R&D 투자는 5%로 미국 32.1%, 영국 56.3% 대비 크게 미흡.(OECD 2016년 자료 기준)

디자인산업에서의 R&D 육성 전략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산업부 디자인 R&D는 주관기관이 대부분 제조기업이라 디자인기업의 역량강화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기존 정부 R&D 중 디자인 관련 예산은 디자인산업 고도화에 기여하기보다는 대부분 제조기업의 제품개발 시 제품 외관의 실제화 역할로서 디자인개발비를 지원한 성격이 많았다. 제품디자인 역할이 해당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판매촉진에 기여한 바는 분명하지만, 1) 공통 기술로서 타제품에의 응용되는 등 관련 산업에의 파급효과가 적고 2) 디자인기업의 본원적 역량 향상에 기여된 면이 적었던 점 등 한계를 가진다. 
대기업의 디자인 R&D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 현대 등 국내 대기업은 디자인 R&D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R&D에서 디자인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디자인주도 혁신 프로세스를 구축함으로써 세계 선도 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디자인 R&D 수준 격차가 매우 크고 차이가 심화되고 있다. 
디자인전문기업의 R&D 역량 부족, 디자인기술 역량이 취약한 점이 개선되어야 한다. 디자인전문기업의 영세성으로 역량 고도화에 자원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고,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 디자인전문기업에서 대기업이나 해외기업, 타 산업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디자인산업의 공급자인 디자인전문기업의 전문성이 약화되고 있다. 


디자인, R&D인가 아닌가?

디자인은 R&D인가, 아닌가? 지루하게 반복되어 온 질문이다. OECD 국가들은 정부의 R&D 투자 기준을 가늠하는데 ‘프라스카티 매뉴얼(Frascati Manual)’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요는, 디자인은 R&D인 영역도 있고 R&D에 해당되지 않는 영역도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 프로세스의 착안, 개발 및 구현(생산)에 필요한 절차, 기술 사양, 작동 특성 등을 목적으로 하는 디자인 활동이라면 R&D에 포함된다. 예컨대, 외관의 구상(drawings)도 목적에 따라서는 R&D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생산 또는 생산 준비를 위한 목적으로 하는 디자인은 R&D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업의 경영활동이 다양화되고 복잡해지면서 R&D에 해당되는 디자인 역할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디자인은 기술을 사용자에 맞추는 기술이다. 디자인의 특성은 매우 다양하여 R&D인 부분도 있고, R&D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 논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글을 공유한다. OECD 국가들은 정부의 R&D 투자 기준을 가늠하는데 프라스카티 매뉴얼(Frascati Manual)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다음은 매뉴얼 중 디자인에 관해 언급된 부분을 정리한 것인데, 디자인은 R&D인 영역도 있고 R&D에 해당되지 않는 영역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경영활동이 다양화되고 복잡해지면서 R&D에 해당되는 디자인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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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의 정의 및 범위
OECD(Frascati Manual, 2002)에 따르면 R&D는 ‘사람, 문화, 사회가 보유한 지식의 양을 증대시키거나, 새로운 활용을 고안하기 위해 이 지식을 활용하기 위하여, 체계적인 방법으로 수행되는, 창의적 작업’으로 정의된다.(2.1)
지식의 분야 또는 영역 등은 R&D 포함 여부와 무관, 즉 모든 지식 분야가 R&D에 포함될 수 있다. R&D의 범위는 자연과학 및 엔지니어링에서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망라하는데(1.6), 이는 R&D가 모든 지식 내지 학문분야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특정 활동의 R&D 포함 여부는 활동의 유형이 아니라, 활동의 목적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R&D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인정되는 과학 및 기술 정보 서비스(scientific and technical information service : 자료의 수집, 코딩, 저장, 분류, 배포, 해석, 분석, 평가 등의 전문화된 활동)'의 경우에도 만약 이 활동들이 ’오로지 또는 주로 R&D 프로젝트를 목적으로 수행될 경우‘에는 R&D 활동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해석은 가장 분명하게 R&D에서 배제될 수 있는 교육훈련(Education and Training)의 경우에도 활동 목적에 따라서는 R&D로 인정될 수 있음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예컨대, 대부분의 교육훈련이 R&D에서 배제되나, 대학에서 박사 수준 학생에 의해 수행되는 연구는 R&D의 일부로 포함될 수 있다.(2.2.1)

디자인 R&D
구체적인 디자인 활동의 R&D 여부 역시 해당 활동의 유형이나 내용이 아니라, 목적과 특성에 의해 구분된다. 즉, 디자인 활동의 목적과 특성이 R&D의 정의에 부합하는가가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된다.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 프로세스의 착안, 개발 및 구현(생산)에 필요한 절차, 기술 사양, 작동 특성 등을 목적으로 하는 디자인 활동은 R&D에 포함(2.3.4. 124)된다. 예컨대, 디자인 외관의 구상(drawings)도 목적에 따라서는 R&D에 포함될 수 있다. 
새로운 제품 또는 프로세스에 대한 구상이나 기획이 ‘설계도(drawings)’ 또는 ‘별개의 자료(separate specification sheets)’에 구현되어도 가능하다.(2.3.4. 125)
매뉴얼은 산업디자인 및 드로잉(industrial design and drawing)에 대해서 ‘R&D 활동에서 필요한 경우 R&D에 포함'되는 것으로 정의(2.3.4)하고 있다. 즉, R&D의 정의에 부합하는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디자인 활동은 R&D로 간주하는 반면, 생산 또는 생산 준비 목적에서 필요한 경우 R&D에서 배제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디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프로토타입의 개발, 엔지니어링활동 등의 R&D 포함 여부에 대한 접근에서도 다시 확인된다.(2.3.4.)
프로토타입(prototype)의 개발은 ‘일차적인 목적이 추가적인 개선(further improvements)에 있는 경우에 한하여’ R&D로 포함되며, 엔지니어링 활동(industrial engineering and tooling up)의 경우에도 신제품이나 신공정의 개발과 관련이 깊을 때에 한해 R&D에 포함된다. 한편, 디자인을 '서비스 R&D' 관점에서 파악하더라도 위의 논의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즉, 서비스 활동 중에 R&D의 정의에 부합하는, 즉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나 지식의 새로운 활용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인 활동의 포함여부에 의해 판단된다.(2.4.3.) 따라서, 혁신 제품·서비스 개발 활동으로서의 디자인 활동과 이 활동의 달성을 위해, 또는 활동 과정에서 이루어진 디자인 지식·경험·스킬 등의 개선·혁신 활동도 디자인 R&D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디자인 활동 또는 디자인 서비스의 제공과 관련한 방법론,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개발 또는 개선은 물론, 서비스의 제공방법(프로세스) 내지 조직화 방법(비즈니스모델 등)의 개발 또는 개선 등도 포괄된다.  

글 쓴 이 : 허민구 크리액티브컨설팅 대표  추가 수정 :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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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기술이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개발로서 디자인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례는 앞서 이미 소개했던 바 있는 필립스디자인센터의 예이다. 1996년 필립스디자인센터의 ‘미래의 비전(Vision of the Future)'은 10년 후 미래를 전망한 ‘선행디자인' 프로젝트로서 디자인계는 물론 연구자, 제조사, 일반인들에게는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필립스디자인센터의 영향이었는지 삼성전자도 1900년대 후반부터 디자인 주도로 미래의 상을 구상하고 이를 영상으로 발표해 왔다. 2000년 중반부터는 디자인센터 내에 CNB팀*을 구성하고 디자이너들이 신사업 콘셉트를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 Create New Business team : 삼성전자의 중장기 신사업 발굴을 위한 신사업 기획 팀의 명칭. 5~7년 뒤에 발생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모습을 디자인 관점에서 창안함. 
지금 세계 최고 기업이 된 것도 이때 디자인 주도형 기업으로 변화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 할 수 있다. 

그림 : 삼성전자의 디자인 주도 제품개발 framework


'선행디자인'이란 '일반적으로 디자인 중심의 경영전략을 의미하기도 하며, 좁은 범위로는 한 기업에서 상품개발을 진행할 때 디자인을 먼저 하여 디자이너의 의도가 제품에 충분히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 및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한다. Zapolski(2005)는 기업의 경영 전략이라는 넓은 범위에서 선행디자인 개념을 정의하여 ‘기업에서 전략적인 가치 창출의 근본적인 수단(Design as a Core Strategy)을 디자인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 출처 : ‘국내 선행디자인의 개념 및 유형에 관한 고찰’, 상품학연구 제27권 제2호, 하수경, 김유진, 신철호, 2009

현재 애플, 삼성전자, LG전자 등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제품 개발에 있어 선행디자인 프로세스를 취하고 있다. 그중에도 디자인 주도형 개발의 장점을 잘 설명하는 대표 사례는 크리스털로즈 LCD TV를 들 수 있다. 
삼성이 보르도 TV를 출시한 이후 경쟁사들이 곧 디자인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디자인조차 흉내 낼 수 없게’라는 기치로 크리스털로즈 시리즈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것은 디자인팀이 제안한 선행디자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디자인팀은 신비한 유리 질감의 테두리를 가진 TV디자인을 제안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연구진들은 베니스의 유리 기술을 참고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통해 특별한 이중 사출기술을 적용해 생산하는 독특한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이렇게 개발된 크리스털로즈 LCD TV는 출시 후에도 한동안 카피 자체가 불가능한 제품으로 시장에서 특별한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고 이것이 지금의 글로벌 최고기업인 삼성의 위상을 만들어 낸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삼성은 ‘08년 4월 크리스털로즈 LCD TV 출시 후 미국에서 40인치 이상 LCD TV 점유율에서 47.7%로 소니(26%)를 처음으로 압도하게 되었다(크리스털로즈 출시 전 시장점유 : 소니 36.2%, 삼성 30.8%). 
이 시점 이후로 삼성은 1위를 놓치지 않았고 소니는 삼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또 미국 시장조사기관 TFC 조사 결과, '100달러를 더 주더라도 삼성 LCD TV를 사겠다'는 소비자가 82.6%에 달하는 등 고객충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전 세계 특급호텔에 공급되는 등 2008년만 300만 대 이상 판매되며 삼성의 브랜드를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애플, 삼성전자, LG전자의 디지털 TV, 현대/기아의 자동차 등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제품과 기업 성장은 상당 부분 디자인 주도형 프로세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디자이너가 사업기획, 제품기획에서부터 형상화까지에 이르는 전 분야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 주도형 개발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소비자의 잠재된 욕구를 창출하기 위해 사전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이 참여하고 있다. 

기술과 제품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 또는 시장 중심의 개발이 중요해지면서 산업의 미래를 구상하는 방식도 기술로드맵 대신 시나리오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시나리오, 이야기라는 것은 본래 등장인물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시나리오는 인간의 욕구를 토대로 작성되고 그 욕구가 보편타당하게 그려진다면 실제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미래를 그럴듯하게 그리면 그것은 미래가 될 수 있다. ‘미래의 비전’의 경우와 같이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을 불러오는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는 사람들을 움직여 결국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도록 만든다.

그림 기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R&D의 변화


공감력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인간의 욕망이야말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근본적 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사회와 문화, 정치를 변화시키고 법과 제도를 변화시킨다. 앞으로 인간의 욕구에 대해 더 잘 연구하기 위한 디자인, 문화인류학, 심리학 등 인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는 학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인간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비전과 목표를 우선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찾는 것은 그 이후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인간 중심의 개발 프로세스가 실현된다면 다양한 기술과 기술, 제품과 제품, 서비스와 서비스, 산업과 산업이 만나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게 된다.


디자인이 필요한 정부 R&D 

산업연구원은 일반 기술 R&D에 투자했을 때 보다 디자인에 투자할 경우 5배의 매출 증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디자인은 창의성과 혁신의 연결고리로서 R&D의 중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 R&D에는 디자인 활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정부 R&D 과제 기획 단계에서 디자인 활용 확대가 필요하다.
정부 R&D는 대체로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과제수행)에 주로 집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그 이전 단계인 ‘어떤 필요 때문에,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과제기획)라는 본질적 탐구의 영역을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 영역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 R&D에 ‘어떤 필요 때문에,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연구할 때는 기존의 기술로드맵과 기술분야 전문가의 수요조사가 아닌, 사회ㆍ문화 맥락적 연구가 필수적으로 선행되도록 R&D의 운영 규정이 수립되어야 한다. 현재는 정부 R&D 과제가 만들어질 때 사용자가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니즈를 가지게 될지 디자인 리서치(사용자니즈 파악, 미래니즈에 대한 예측 등)와 같은 사회, 문화 맥락적 연구가 선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둘째, 정부 R&D 과제 수행에 있어서도 디자인 활용 확대가 필요하다.
정부 R&D에는 기능실현의 차원을 넘어 사용편의성, 감성적 만족 측면까지 수요자 중심의 혁신을 유도하는 장치가 없다. 어떤 기술이 시장에 나왔을 때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미세한 차별점이다. 감압식 풀스크린 터치 스마트폰(프라다폰)은 LG가 세계최초로 개발했지만 세계를 제패한 것은 아이폰이었고 우아하게 구현된 사용자경험 디자인, 편리한 사용성이 아이폰의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기존의 R&D 평가 기준에도 사용자 중심의 평가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디자인 활용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오랜 기술 중심의 정부 R&D의 관성을 깨고 사람 중심의 R&D로 변화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도하자면 보다 강력한 변화의 트리거가 필요하다. 사용자경험 만족도 등 사용자 측면에서 R&D의 평가지표를 다양하게 개발하여 적용한다면 R&D가 사용자 지향으로 변화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정부 R&D 제도개선을 통해 사용자 중심의 R&D를 실현하는 기술로서 디자인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산업부 R&D 사업비 산정기준에는 ‘디자인 정보조사’, ‘디자인 개발’, ‘디자인 컨설팅’ 등에 예산편성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보다 다양한 기술 단계별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제시해야 할 것이다. TRL* 단계별, 사업별, 제품별 특성에 따라 디자인의 활용 범위와 적용 효과는 다를 수 있다. 
* TRL은 정부 R&D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R&D의 프레임워크. 기술상용화 정도에 따라 총 9단계로 정의된다. 산업부의 R&D사업은 주로 TRL 2~7단계에 해당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본래 NASA에서 개발해 항공·우주 및 국방 분야 R&D에 적용하기 위한 것으로 국내 R&D 실정에 맞게 재개발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으나 아직 이에 대응하는 모델은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해 디자인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가늠할 수 있는 표준안과 평가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현행과 같이 ‘디자인 정보조사에 대한 예산 편성을 허용한다’는 식의 소극적 방법이 아닌, 기술과 제품 특징에 따라 필수적으로 예산의 적정 비율 이상을 디자인에 활용해야 한다는 등 변화 촉진을 위한 적극적인 관점에서의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사용자의 경험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사용자경험디자인, 서비스 이해관계자의 전반적인 욕구를 고려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만드는 서비스디자인 등 사용자 중심의 연구개발이 될 수 있게 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R&D에서 스타일링으로서의 디자인 활용은 R&D가 아니라는 논란을 가져올 것이므로 지양하는 것이 맞다. 기획과 전략을 수립하는 디자인 역할, 사용자 리서치를 통해 기술과 제품, 서비스의 기획과 전략을 수립하는 디자인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우선적으로는 디자인산업의 고도화를 위해 디자인 R&D 과제를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필요한 과제가 만들어질 수 있게 관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가능하다면 독특한 특성을 갖는 디자인분야 R&D의 전담기관으로서 사업을 총괄하여 성과를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정부 R&D 내에서 디자인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입증하고, R&D에서 디자인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체계와 규정을 연구하여 R&D에 디자인의 관여도를 높여 결과적으로 정부 R&D가 보다 인간중심, 비전중심으로 변화되게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술 중심의 세상을 좀 더 인간 중심의 세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해야 한다.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