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인은 스프린트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 서비스디자인네트워크 비르깃 마거 대표 방한 세미나 후기

2024. 12. 6. 10:03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인 소식

2024.11.28. 분당 코리아디자인센터 한국디자인진흥원 지하1층 DK캠퍼스

 

“서비스디자인은 스프린트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Martin Jordan, Head of Design & User Research at the German government's Digital Service.) 서비스디자인 네트워크(SDN)의 비르깃 마거 대표는 독일 정부 디지털서비스 디자인팀장인 마틴 조단의 말을 빌어 서비스디자인의 현황을 설명했다. 2024 서울디자인국제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초청으로 11월 28일 서울에서 작은 규모지만 깊은 논의가 오간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 공공서비스디자인의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고, 글로벌 흐름 속에서 한국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공공부문 서비스디자인의 성장 과정을 함께해 온 디자이너, 공공기관 관계자들도 참여해 뜻깊은 논의를 이어갔다.

SDN과 비르깃 마거 대표

서비스디자인 네트워크(SDN)는 2004년 설립된 세계 최대의 서비스디자인 전문 커뮤니티다. 50개국 이상에 네셔널 챕터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의 디자이너, 연구자, 실무자들이 교류하며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매년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사례 연구와 이론적 발전을 다룬 서비스디자인 저널 '터치포인트'를 발행하는 등 서비스디자인 확산과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비르깃 마거 대표는 세계 최초로 서비스디자인 학과를 설립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고, SDN 설립을 주도하며 전 세계에 서비스디자인의 개념을 전파했다. 그녀는 독일 퀼른 국제디자인학교(KISD)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서비스디자인 전문가를 양성했으며,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과 민간 모두에서 혁신적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그녀는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디자인의 도입과 확산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자리 잡았다.
마거 대표는 “서비스디자인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조직과 사회를 혁신하는 강력한 촉매제”라며, 이를 통해 공공 정책과 서비스가 시민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녀의 이러한 활동은 서비스디자인이 단순히 디자이너의 영역을 넘어 정책과 조직 혁신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공공서비스디자인 글로벌 성공 사례와 교훈

마거 대표는 이번 강연에서 로마 사피엔차 대학, 핀란드 헬싱키의 오디 도서관, 독일 퀼른의 이동형 팝업 연구소, 싱가포르의 디지털 고용 허가 시스템 등 세계적 성공 사례들을 소개했다.
로마 사피엔차 대학의 서비스디자인 박사 과정은 공공서비스디자인에 특화된 첫 박사 과정으로,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디자인의 전략적 활용을 연구하고 정책 수립에 기여할 전문가를 양성한다. 이 과정은 공공서비스의 효율성과 시민의 삶의 질을 동시에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 로마 사피엔차 대학 서비스디자인학위과정 : https://phd.uniroma1.it/web/SERVICE-DESIGN-FOR-PUBLIC-SECTOR_nD3972_EN.aspx
싱가포르의 디지털 고용 허가 시스템은 복잡한 행정 절차를 디지털화하고, 단일 접점으로 통합하여 시민의 편의성과 공무원의 효율성을 동시에 높였다. 이 사례는 서비스디자인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 서비스디자인어워드 수상작 중 해당 프로젝트 소개 글 : https://www.service-design-network.org/community-knowledge/modernising-singapores-employment-pass-legacy-systems 
독일 퀼른의 이동형 팝업 연구소는 공공기관이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새로운 형태의 참여 플랫폼이다. 공공 정책 설계 초기 단계부터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 디자인을 위한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 독일 퀼른의 이동형 팝업 연구소 : https://kisd.de/en/projects/the-pop-up-lab-city-of-cologne/ 
핀란드 헬싱키의 오디 도서관은 시민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설계된 공공시설이다. 단순히 책을 대출하는 공간을 넘어 지식, 기술, 문화를 공유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허브로 탈바꿈했다. 헬싱키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며 도시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한 이 사례는 서비스디자인이 공공 영역에서 얼마나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참고 : 헬싱키 오디 도서관 https://servicedesign.tistory.com/592

독일과 한국: 서비스디자인 확산의 현재와 과제

독일은 유럽 내에서 서비스디자인의 도입이 상대적으로 더딘 국가로 평가받는다. 현재 독일 정부에는 소수의 서비스디자이너가 활동 중이며, 서비스디자인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독일 공공기관의 계층적 구조와 보수적 문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독일 디자인카운슬과의 협력을 통해 SDN은 서비스디자인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2026년 프랑크푸르트를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한 것도 이 노력의 일환이다.
반면, 한국은 2010년대 초반부터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디자인을 도입하며 비교적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이끄는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서비스디자인이 일부 공공기관에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과제로 남아 있다. 민간 기업은 서비스디자인을 디지털 전환의 일부로 이해하거나, 단순히 외부 컨설팅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공공서비스디자인의 방향과 과제

마거 대표는 한국 서비스디자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제시했다.

작은 성공에서 시작하라
공공기관에서 서비스디자인은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작은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신뢰를 쌓고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과의 융합 강화
한국 행정 서비스의 디지털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의 경험을 중심으로 디지털화를 재설계하는 것이 서비스디자인의 역할이다.
시민 참여를 확대하라
한국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가장 큰 약점은 시민 참여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헬싱키나 퀼른 사례처럼 정책 설계 초기부터 시민을 협력자로 끌어들여야 한다.
민간 부문과의 협력 구축
민간 기업이 서비스디자인의 가치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공공서비스디자인은 이제 시작 단계에서 벗어나 더 큰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마거 대표는 “서비스디자인은 마라톤이다. 작은 성공에서 출발해 신뢰를 쌓고, 장기적 관점에서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1995년 독일에서 비르깃 마거 대표가 서비스디자인 학과를 설립하고 이 분야를 체계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출발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서비스디자인은 협력과 인내로 완성되는 마라톤이다. 한국의 서비스디자이너들은 시민, 공공기관, 민간 기업과 손잡고, 축적된 공공부문 경험을 기반으로 민간 부문으로 확산하며 독창적인 성공 사례를 만들어갈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협력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여정 속에서, 모두가 함께 갈 때 한국 서비스디자인은 세계적 무대에서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마라톤에서, 포기하지 않는 주자가 되기를 바란다.

 

윤성원. 2024.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