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1. 13:00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TV 리모컨은 진화 중인가?
어머니가 최근 TV를 두 대 사셨다. 삼성전자 대형 최신형 TV의 화면은 크고 얇고 선명했다. 며칠 뒤 다시 뵈었을 때 어머니는 여전히 오래된 작은 TV를 사용하고 계셨다. 리모컨 때문이었다. 리모컨에 숫자 버튼이 없어서 채널을 바꾸려면 화면 속 가상 숫자 패드를 불러와야 했다. 어머니는 채널을 바꾸는 일을 부담스러워하셨다. 다이소에서 숫자 버튼이 있는 리모컨을 사드린 후에야 새 TV를 사용하실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TV를 사셨다. 이번엔 LG TV였는데 리모컨에 숫자 버튼이 있었다. 어머니는 바로 사용하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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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TV 리모컨 | LG전자 TV 리모컨 |
숫자 버튼과 함께 사라진 것
처음에는 두 회사가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생각했었다. 확인해 보니 방향은 같았다. LG도 2025년형 일부 매직리모컨에서 숫자 버튼을 뺐다. 최근 프리미엄 스마트 TV의 리모컨은 물리 숫자 버튼을 줄이고, 화면 UI나 음성으로 작동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국가, 모델, 유통 채널에 따라 일부 숫자 버튼이 있는 리모컨이 제공되기도 하지만 업계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요즘 제품디자인에는 버튼이 적을수록 좋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사용성의 개선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용성의 기준은 사용자가 원하는 일을 얼마나 빠르고 쉽게 실수 없이 끝내느냐다. 물리 버튼이 화면 메뉴 속으로 이동했다면, 줄어든 복잡함은 제품에서 사용자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기존에는 11번을 누르면 끝났다. 이제는 숫자 입력 화면을 호출하고, 화면을 보고, 숫자를 선택하고, 입력을 확정해야 한다. 조작 단계가 많아진다.
개인이 자기 속도로 익히는 스마트폰과 달리, TV는 거실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쓰는 가족 기기다. 70대의 채널 번호 습관과 20대의 OTT 습관이 하나의 리모컨 안에서 만난다. 이때 리모컨은 사용을 어려워하는 사용자 쪽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복잡한 기능을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의 수준에 맞춰야 할까. 분명한 것은 후자에 맞추면 전자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균 데이터에는 사용자의 사정이 숨어 있다
삼성과 LG가 사용자 조사를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평균 데이터로 보면 숫자 버튼 사용 빈도는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넷플릭스, 유튜브, 티빙 같은 앱 중심 시청이 늘었고 음성 검색도 보편화됐다. 채널 번호를 외워 직접 누르는 사용자는 과거보다 줄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의 사용성을 더 중요하게 보았느냐다.
평균에는 함정이 있다. 다수가 거의 쓰지 않는 기능이라도 일부 사용자에게는 핵심 기능일 수 있다. 사용 빈도가 낮은 기능과 사용 실패를 막아주는 기능은 역할이 다르다.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매번 쓰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필요한 순간에 없으면 곤란하다. 숫자 버튼도 비슷하다. 젊은 사용자에게는 없어도 될 수 있지만, 고령 사용자에게는 사실상 TV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입구일 수 있다.
초고령사회, 달라지는 기준
한국은 2024년 12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통계 기준으로 2025년 말 그 비중은 21%를 넘겼다. 고령자는 예외적 소수로 다루기 어려운 규모가 됐고 이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TV 이용 빈도는 70세 이상이 97.8%, 10대가 34.8%였고, 이 경향은 2024년 조사에서도 유지됐다. 고령층이 TV를 가장 자주 보는 사용자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최신 제품의 기준은 디지털 적응력이 높은 사용자를 중심으로 맞춰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기업은 누구를 보편 사용자로 가정하고 있는 것일까. 삼성, LG가 젊은 층만 핵심 고객으로 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숫자 버튼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어떤 사용자가 중심에 놓이고 어떤 사용자가 예외로 다뤄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다른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소니 엑스페리아 최신 계열은 여전히 3.5mm 이어폰 잭과 microSD 슬롯, 물리 셔터 버튼을 유지하고 있다. 주류 흐름과는 다른 선택이다. 이 사례는 버튼과 단자를 줄이는 일이 언제나 진화로 해석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숫자 버튼은 경영성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삼성전자는 여전히 매출 기준 글로벌 TV 시장 1위다. TV 성과는 패널 가격, 프리미엄 제품 비중, 중국 업체의 가격 공세, 환율, 유통 전략 같은 요인이 훨씬 크게 좌우한다. 숫자 버튼을 없애서 실적이 나빠졌다는 주장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사용성 문제는 단기 매출보다 반복 사용 경험에서 드러난다. 제품을 살 때 사용자는 화질과 가격과 브랜드를 보지만, 매일 쓸 때는 리모컨과 메뉴와 입력 방식을 만난다. TV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 화질 차이가 줄고 중국 업체의 추격이 빨라질수록, 사용자가 반복해서 경험하는 불편의 비중은 커진다. 어머니의 삼성 TV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듯, 작은 불편은 반복되며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으로 쌓이게 된다. 어머니는 곧 에어컨을 구입하실 계획인데, 이번에는 LG를 먼저 고려하고 계신다.
적응은 만족이 아니다
어머니는 삼성 TV를 다이소 리모컨으로 보신다. 그렇다고 사용상의 문제가 해결되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음성 검색은 사용하지 않고 앱 전환도 무엇인지 모르신다. 그 버튼들은 아마 앞으로도 눌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용자가 최신 제품을 사지만 실제로 쓰는 기능은 일부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가 이미 가진 능력과 제품이 가진 새 가능성을 잇는 일이다. 숫자 버튼 없는 리모컨의 핵심은 버튼을 없앤 뒤에도 그 버튼에 기대 TV를 쓰던 사람의 경험을 보완했는지에 있다.
많은 사용자는 불편해도 항의하지 않고 쓴다. 비싸게 샀고, 바꾸기 귀찮고, 가족이 골라줬기 때문에 쓴다. 기업은 이것을 만족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어머니가 새 TV 대신 예전의 작은 TV를 켰다는 것만으로도 리모컨 사용성의 문제는 충분히 드러난다.
삼성 리모컨보다 다이소 리모컨이 나았다. 적어도 어머니의 거실에서는.
2026.6.11. 윤성원
출처
삼성 솔라셀 리모트(물리 숫자 버튼 없이 음성·스마트 버튼 중심으로 구성). 삼성전자, '삼성 스마트 TV 솔라셀 리모트' (https://www.samsung.com/sec/tvs/smart-tv/one-remote/)
삼성 스마트 리모컨의 채널 번호 입력 방식('설정/숫자/컬러' 버튼을 눌러 가상 숫자 창을 띄운 뒤 번호 입력). 삼성전자서비스, '삼성 스마트 리모컨 단축 버튼 활용 방법' (https://www.samsungsvc.co.kr/solution/982365)
LG 2025년형 AI 매직 리모컨의 숫자 입력 방식('기능 더 보기' 버튼을 누르면 숫자·색버튼이 화면에 표시됨). LG전자 고객지원, '매직 리모컨을 사용하는 방법' (https://www.lge.co.kr/support/solutions-20153749094807)
초고령사회 진입과 고령인구 비중(2025년 65세 이상 20.3%, 향후 증가 전망). 통계청, '2025 고령자 통계' (https://kostat.go.kr/board.es?mid=a10301010000&bid=10820&act=view&list_no=438832)
2025년 말 65세 이상 비중 21.21%(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분석). 헤럴드경제, '서울마저 초고령사회 진입…한국,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 21% 넘겼다'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648353)
연령별 TV 이용 빈도(2020년 70세 이상 97.8%, 10대 34.8%). 방송통신위원회, '2020년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https://go.seoul.co.kr/news/prnewsView.php?id=210555)
연령대가 높을수록 TV 이용률이 높은 경향 유지(2024년 조사). 방송통신위원회, '2024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https://go.seoul.co.kr/news/prnewsView.php?id=361751)
삼성전자 매출 기준 글로벌 TV 시장 1위(19년 연속) 및 중국 업체의 출하량 추격. 한국일보, '진격의 차이나…전 세계 TV 출하량, 처음으로 한국 앞섰다'(옴디아 자료 인용)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1813130004821) / 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글로벌 TV 시장 삼성 1위 유지' (https://korea.counterpointresearch.com/montly-tv-market-tracker-reveals-shifting-leadership/)
소니 엑스페리아 1 VII의 3.5mm 이어폰 잭·microSD 슬롯 유지(2025년 5월 출시). PhoneArena, 'Sony Xperia 1 VII release date, price and features' (https://www.phonearena.com/sony-xperia-vii-release-date-price-features-news)
소니 엑스페리아 1 VIII의 3.5mm 잭·microSD·물리 셔터 버튼 유지(2026년 5월 출시). 9to5Google, 'Sony Xperia 1 VIII packs a redesign, flagship specs, microSD, 3.5mm jack' (https://9to5google.com/2026/05/13/sony-xperia-1-viii-specs-p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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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들여다보기 : 버려진 사용자들
숫자 버튼이 없는 TV리모컨은 좋은 디자인일까?
최신 TV리모컨.
단정하고 아름답다. 버튼도 몇 개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용자에게 그 단순함은 돌아가야 하는 힘든 절차가 된다.
번호를 누르면 끝날 일이 이제는 화면을 열고, 숫자를 고르고, 확인해야 한다.
데이터의 평균값은 “대부분의 사용자는 숫자 버튼을 잘 쓰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평균값 안에는 고령 사용자, 익숙한 방식이 필요한 사용자, 복잡한 기능 사용이 어려운 사용자의 불편이 드러나지 않는다.
숫자 버튼은 누군가에게는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접근성의 손잡이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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