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0. 01:34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신기할 만큼 레고를 진지한 업무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많다. 전략 워크숍, 조직혁신, 교육, 서비스디자인 현장에서 레고는 장난감이 아니라 사고를 끌어내는 도구로 쓰인다. 레고는 놀이의 감각을 불러오고, 놀이가 만드는 감정은 사람을 더 창의적인 상태로 옮긴다.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의 '확장-구축 이론'에 따르면 긍정 정서는 주의와 사고를 넓히는 반면, 불안 같은 부정 정서는 시야를 눈앞의 위협으로 좁힌다. 특히 기쁨은 '놀고 싶은 충동'을 통해 순간의 사고 레퍼토리를 넓힌다.
레고는 업무 도구로도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LEGO SERIOUS PLAY'(하단 설명 참고)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LEGO SERIOUS PLAY는 1996년 IMD의 요한 루스·바트 빅터와 레고 그룹 오너 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대안적 전략 도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방법론이다. 2010년 레고 그룹이 방법론을 커뮤니티 기반 모델로 공개한 뒤에는 전문 트레이너 조직을 중심으로 교육·인증·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서비스디자인은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고, 서비스 절차를 함께 상상하며, 더 나은 흐름을 만들어보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서비스를 미리 경험해보게 하는 능력이다. 레고는 특히 이 과정에 잘 맞는다. 손으로 만들고, 피규어를 움직이고, 장면을 바꾸며 서비스가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작은 무대 위에서 시험해볼 수 있다. MIT 미디어랩의 'LEGO 페퍼트 학습연구 석좌교수' 미첼 레즈닉의 연구는 "직접 만들 때 가장 깊이 배운다"는 시모어 페퍼트의 구성주의에 뿌리를 두며, 그 연구실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브릭'이 레고 마인드스톰의 토대가 되었다. 서비스디자인 역시 완성된 답을 전달하는 활동이 아니라, 참여자가 함께 만들고 실험하며 더 나은 경험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같은 철학 위에 서 있다.
특히 서비스디자인의 경험 프로토타이핑과 데스크톱 워크스루에서 레고는 효과적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서비스·경험디자인 이론서』에서는 데스크톱 워크스루(Desktop Walkthrough 서비스 모형)를 책상 위에서 서비스 환경을 작은 모형으로 구현해 실제처럼 재현하여 살펴보는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론서에서는 익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레고나 종이 인형 같은 모형은 모형 자체가 주는 재미가 있어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참여자 피드백을 반영해 재구성하기 쉽고, 반복 구현이 편해서 이를 통해 서비스 접점을 분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종이 위의 고객여정지도는 흐름을 설명하지만, 레고는 (비록 책상 위에서지만) 그 흐름을 실행해 볼 수 있게 한다.
프로토타입에는 충실도(fidelity)라는 개념이 있다. 이 이론서는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는 아이디어 발상을 위한 로우 피델리티(Lo-fi) 프로토타이핑이 많이 쓰이고, 후기 단계로 갈수록 평가를 목적으로 한 하이 피델리티(Hi-fi) 프로토타이핑이 적용된다고 소개한다. 국제적으로도 같은 원리가 통용된다. 닐슨노먼그룹은 충실도를 프로토타입이 최종 결과물의 모습·작동에 얼마나 가까운지로 설명하며, 거친 프로토타입일수록 사람들이 거기에 덜 집착하고 더 기꺼이 바꾸려 시도한다고 말한다. 회의실에서 실행되는 레고 프로토타이핑이 바로 이 로우 피델리티 프로토타이핑에 속한다. 정교함보다 아이디어와 상호작용을 우선하고, 종이보다 공간적이고 손에 잡혀 시스템·역할·흐름·관계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으며, 아직 개념이 정해지지 않은 이른 탐색 단계에 잘 맞기 때문이다. 거칠다는 것이 두려움 없이 자꾸 바꿔보게 만드는 강점이 되는 셈이다.
물론 서비스를 빠르게 그려보고, 참여자 의견을 모으고, 흐름을 바꿔보는 도구가 꼭 레고여야 할까 생각할 수 있다. 종이, 포스트잇, 화이트보드, 온라인 협업툴도 충분히 유용하다. 실제 서비스디자인 현장에서도 많이 쓰인다. 차이점은 도구가 불러오는 태도에 있다. 종이는 기록을 떠올리게 한다. 대개 혼자 쓰고, 정리하고, 제출하는 장면에 가깝다. 레고는 놀이를 떠올리게 한다. 함께 만들고, 보여주고, 다시 바꾸는 장면에 가깝다. 종이가 생각을 정리하게 한다면, 레고는 생각을 함께 꺼내게 한다. 서비스디자인은 혼자 정답을 쓰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경험을 함께 해석하고 다시 만들어보는 일이라는 점에서 레고는 서비스디자인의 태도를 더 잘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처음 레고를 보았을 때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화려한 색깔, 단단한 질감, 조각들이 맞물리며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가던 흥미진진함. 그때의 느낌을 떠올려보면, 왜 하필 레고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레고야말로 어린 시절의 놀이 기억을 불러오는 대표적인 아이콘이며 그 향수에는 힘이 있다.
세디키데스·빌트슈트 연구진은 향수가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거쳐 창의성을 높이며, 그 효과가 단순한 긍정 정서를 넘어선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레고가 그런 놀이 기억을 환기할 때, 사람들은 좀 덜 방어적이 되고, 좀 더 호기심 어린 상태가 된다. 회의실의 무거운 공기가 "한번 만들어보자"는 분위기로 바뀐다. 열정, 흥분,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감정은 참여를 끌어내고 창의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우리는 레고로 서비스디자인을 이야기한다.
*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디자인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dp_servicedesign
레고는 복잡한 서비스를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다룰 수 있게 만드는 도구다. 사람을 참여시키고, 손으로 생각하게 하며, 보이지 않는 경험을 눈앞의 장면으로 바꾸어준다. 서비스디자인이 추구하는 공감, 공동창작, 프로토타이핑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기에 우리는 여전히 레고를 꺼내 든다.
2026.6.10. 윤성원
* LEGO SERIOUS PLAY란?
LEGO SERIOUS PLAY는 1996년 IMD의 요한 루스·바트 빅터와 레고 그룹 오너 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대안적 전략 도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방법론이다. 이후 전용 브릭 세트와 브랜드, 퍼실리테이터 교육 체계를 갖추며 확산되었고, 2010년 레고 그룹이 방법론을 커뮤니티 기반 모델로 공개한 뒤에는 AoMT 등 전문 트레이너 조직을 중심으로 교육·인증·커뮤니티가 운영되고 있다.
참가자가 머릿속 생각, 조직 문제, 전략, 관계, 미래상 등을 3차원 모델로 만들고, 그 모델을 설명하면서 집단의 암묵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LEGO 공식 설명도 조직 구성원의 참여·기여·몰입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론으로 소개한다. 1996년 Johan Roos, Bart Victor, Kjeld Kirk Kristiansen 등이 전략 기획 도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출발했고, 2010년 이후에는 커뮤니티 기반 오픈소스 모델로 전환됐다. 그 뒤, 마스터 트레이너 협회(AoMT)의 표준에 따라 언어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 인증 퍼실리테이터 양성 과정이 유럽·미주·아시아에서 해마다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케임브리지 저지경영대학원의 한 연구는 LEGO SERIOUS PLAY 워크숍이 기존 형식보다 참여도와 전략적 통찰을 높였고, 특히 전통적 회의에서 말수가 적던 사람에게서 그 효과가 컸음을 보였다.
무슨 활동을 하나
세션의 구성은 먼저 오리엔테이션과 스킬 빌딩(그라운드룰, '브릭에 의미를 부여하는' 메타포 연습, 도전 과제 설정)으로 몸을 풀고, 이어 개인 모델을 만든 뒤, 그 개인 모델들을 엮어 공유 모델·시스템 모델로 발전시키며, 스토리텔링과 투표·통합 과정을 거쳐 원리를 도출하고 업무에 적용할 점을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양성과정 자체는 보통 4일에 걸쳐 핵심 이론 소개와 실시간 전략 워크숍, 그리고 직접 워크숍을 설계하는 실습으로 구성된다. 다루는 주제는 비전 공유, 일하는 방식 혁신, 조직문화 개선, 리더십, 미래 준비 아이디어, 고객경험(CX) 워크숍 등으로 나뉘며, 국내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 신입사원 비전 공유, LG전자 CTO 산하 팀들, 엔씨소프트 팀장 리더십처럼 대상에 맞춰 설계된 사례들이 있다. 토론으로 말하는 대신 손으로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른바 '손으로 하는 생각' 방식이다.
올해도 시행되나
마스터 트레이너 협회(AoMT)와 인증 트레이너들이 2026년 일정을 잡아두고 있다. 8월 7–10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로버트 라스무센이 진행하는 대면 양성과정이, 6월에는 런던과 선전(深圳)에서 대면 과정이, 온라인 과정도 5–7월에 연이어 열린다. 또 다른 트레이너 그룹은 5–8월에 리마, 보고타, 암스테르담, 슈투트가르트, 뉴욕, 자그레브, 쿠알라룸푸르 등지에서 일정을 운영하고, 밀라노·케임브리지·런던·피렌체, 덴마크 빌룬(레고 본사 소재지), 마드리드까지 9–10월 일정이 이어진다. 30년 가까이 된 방법론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정규 과정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강남에도 세계적 권위자 숀 블레어의 지도로 레벨3(시스템 모델) 퍼실리테이터 8명을 배출한 과정이 있었고, 해외에서 영어로만 진행되던 과정을 국내 기업 상황에 맞게 정리한 한국형 퍼실리테이터 양성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참여자들의 반응은?
공통적으로 "회의 같지 않다"는 반응이 많다. 국내 한 참여자는 기존 회의·워크숍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참여도와 몰입을 경험했고, 성과가 저조했던 이유를 눈에 보이게 시각화해 구체적 실행 방안까지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흥미롭게도 한 국내 퍼실리테이터는 그 핵심 프로세스가 어릴 때 무심코 하던 레고 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출처
-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경험디자인 이론서』(개정판) — 데스크톱 워크스루(서비스 모형) 정의, Lo-fi/Hi-fi 프로토타이핑 개념
- Fredrickson, B. L. (1998/2001). Broaden-and-Build Theory —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 van Tilburg, W., Sedikides, C., & Wildschut, T. (2015). The mnemonic muse: Nostalgia fosters creativity through openness to experience.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59
- Resnick, M. Lifelong Kindergarten (MIT Press, 2017); MIT Media Lab / Papert, S. Mindstorms (1980) — 구성주의(constructionism)
- Nielsen Norman Group, UX Prototypes: Low Fidelity vs. High Fidelity — 충실도 개념
- Roos, J. & Victor, B. (2018). How It All Began: The Origins of LEGO® Serious Play®. International Journal of Management and Applied Research, 5(4)
- Association of Master Trainers in the LEGO® SERIOUS PLAY® Method (AoMT) — 인증·교육 체계, 글로벌 양성 과정
- Hadida, A. (2013), Cambridge Judge Business School — LSP 효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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