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데이 논란, 우리가 놓친 진짜 질문

2026. 5. 23. 23:44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탱크데이 논란, 우리가 놓친 진짜 질문

5·18 피해자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기업의 행태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에 대해 국가가 대응하는 방식이 또다른 논란을 부르고 있다. 대통령이 SNS에 쓰고, 장관이 선언하고, 여당이 자제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하는 법 조항은 없다.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텀블러 신제품 '탱크' 시리즈 출시 이벤트를 열었다. 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이었다.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썼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올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2주기에도 스타벅스는 '미니 탱크데이' 행사를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2022년 SNS에 '멸공'을 반복 게시했고, 2021년에는 극우 성향 행사를 관람했다. 스타벅스는 워낙에 글로벌 브랜드 관리 기준이 엄격하기로 알려져있는 기업이다. 매장 운영, 제품 출시, 마케팅 문구 하나까지 체계적인 승인 절차를 거친다. 그 기업이 5·18 기념일에 이 이벤트를 내보냈다. 이벤트 기획자가 독단으로 처리했다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것이고, 스타벅스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용진 회장의 누적된 언행이 만든 조직 문화 안에서 이 기획이 승인됐다면, 기획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어느 쪽이든 현행 민사법은 이 행위로 5·18 피해자와 유가족이 입은 존엄의 훼손을 배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피해자가 법으로 보호 받을 구조가 없다. 논란이 커지자 스타벅스코리아는 이벤트를 중단하고 사과문을 냈다. 정용진 회장은 대표를 경질했다. 서울경찰청은 고발 사건을 수사대에 배당했다.

정부 대응은 빨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건 당일 SNS에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썼다. 이틀 후 국무회의에서도 같은 취지로 발언했다. 행안부 장관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가치를 상업적 소재로 활용한 기업의 상품은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부 행사에서 스타벅스 제품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여당은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스타벅스 이용 자제령을 내렸다. 한국 정부가 이렇게 특정 기업을 지목해 조달 배제를 공식 선언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두 방향으로 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5·18 피해자 보호와 역사적 사실 수호라는 관점에서는 정부 대응을 지지했다. 반복된 행태에 국가가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대편에서는 "공산주의식 조치", "인민재판"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과장된 비유지만, 이 반응이 나온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적 근거 없이 행정부 전체가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를 다루기 이전에 절차적 정당성이 있는가, 정부가 특정 기업에게 이런 조치를 하는 것이 공정한가라는 식으로 반대편이 논란을 삼을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왜 정부는 정당한 일을 실행할 때도 늘 그 정당함을 입증하는 수고를 기울여야 하는가?
답은 법에 있다. 행안부 장관이 어떤 법 조항에 따라 스타벅스 제품을 조달에서 배제한 것일까? 아니다. 현 국가계약법상 부정당업자 제재 사유는 계약 불이행, 뇌물, 담합 등 계약 관련 비위에만 한정된다. 역사적 비극의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는 현행 조달 배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번 조치의 법적 근거는 대통령의 발언과 장관의 재량 판단이 전부다. 사법 영역도 마찬가지다. 5·18 피해자와 유가족은 이 이벤트로 인한 존엄의 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법적 근거가 있을까? 아니다. 우리나라는 공법과 사법 양쪽 모두에 공백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일찍이 이 문제를 법으로 해결했다. 독일 형법 제130조는 홀로코스트 부정 행위를 최대 5년, 나치 범죄 찬양 및 피해자 존엄 훼손 행위를 최대 3년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금지 행위의 기준을 입법부가 명시했고, 집행 주체는 검찰이다. 프랑스는 1990년 가이소 법을 제정해 법적으로 인정된 반인도적 범죄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행위를 최대 1년 징역 및 4만5천 유로 벌금으로 처벌한다. 두 나라 모두 장관의 재량이 아니라 법 조항이 기준이다.

한국에도 5·18 관련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지만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는 적용 범위 밖이다. 탱크데이, 또 어쩌면 이후에도 있을 피해자를 2차로 가해하는 범죄가 모두 그 공백에 있다. 독일은 나치 범죄가 끝난 후 15년 만에 그 법을 만들었다. 한국은 5·18로부터 46년이 지났다. 그 시간의 대부분은 5·18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소진됐다. 우리에게도 독일과 프랑스처럼 피해자 존엄을 훼손하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이 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자.

(가상의 시나리오)
5월 18일, 검찰과 경찰은 이벤트 구성 요소와 정용진 회장의 누적 행적을 검토하고 수사를 개시한다. 적용 법조는 5·18특별법 개정 조항이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의 피해자·희생자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그 존엄을 공개적으로 훼손하는 표현물을 제작·배포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 그리고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이다.

수사가 기소로 이어지면 조달청이 잠정 배제를 통보하고, 피해자 단체가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두 절차는 재판과 병행된다. 법원이 유죄를 확정하면 조달 배제가 확정되고 손해배상 판결이 뒤따른다. 무죄라면 잠정 배제는 즉시 해제된다.
대통령 SNS에 별도 발언이 없다. 장관 선언이나 여당 자제령도 없다. 정당함을 입증하는 수고가 없다. 법이 있기 때문이다.

법 대신 대통령의 판단과 장관 재량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보호는 정권이 바뀌면 사라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선언이 필요 없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은 결국 법이다.
국가가 공인한 민주화운동 피해자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그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 그리고 그에 연동된 공공조달 배제 기준과 피해자의 민사 청구권 근거의 법제화다. 세 조항이 연동되면 이렇게 작동한다. 위반 행위가 발생하면 먼저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개시한다. 기소와 동시에 조달청이 잠정 배제를 통보하고, 피해자 단체가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법원이 심리하고, 유죄가 확정되면 조달 배제가 확정되고 손해배상 판결이 뒤따른다. 대통령의 SNS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시작되고 법으로 끝난다. 이것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내용이어야 할 지 구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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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형사 처벌 조항 신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8조를 개정한다. 현행 제8조는 "허위사실 유포"만 처벌한다. 여기에 다음 행위를 추가한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의 피해자·희생자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그 존엄을 공개적으로 훼손하는 표현물을 제작·배포·전시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인이 위반한 경우 해당 법인에도 벌금형을 부과하는 양벌규정을 함께 신설한다. 독일 형법 §130(4)의 형량 구조를 참조 기준으로 삼는다. 적용 대상 사건의 범위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사건으로 한정한다. 5·18 외에 4·19, 6·10, 4·16이 포함된다. 범위를 법률에 명시해 자의적 확대를 차단한다.

둘째, 공공조달 배제 기준 법제화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부정당업자 입찰 참가자격 제한)를 개정한다. 현행 제재 사유 목록에 다음을 추가한다.
"위 특별법 위반으로 기소된 법인은 수사·재판 기간 동안 공공조달에서 잠정 배제하고, 유죄 판결이 확정된 법인은 2년 이상 5년 이하의 범위에서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한다."
집행 주체는 조달청으로 명시한다. 잠정 배제와 확정 배제를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잠정 배제는 기소 사실만으로 발동되며, 무죄 확정 시 즉시 해제된다. 이렇게 하면 수사 개시만으로 영구적 낙인이 찍히는 것을 막으면서도 신속한 행정 대응이 가능하다.
이 조항이 있었다면 이번에 조달청이 기소 즉시 배제 통보를 내렸을 것이다. 장관 선언이 아니라 시행령 조항이 근거가 됐을 것이다.

셋째, 피해자 민사 청구권 근거 신설
같은 특별법에 다음 조항을 추가한다.
"위 행위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유가족·피해자 단체는 가해자에게 위자료를 포함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현행 민법상 불법행위 규정(제750조)만으로는 역사적 모욕 행위에 대한 배상 청구가 입증하기 어렵다. 특별법에 청구권 근거를 명시하면 피해자가 법원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위자료 산정 기준도 시행령에 위임해 규정한다. 상업적 이용의 규모, 노출 기간, 의도성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소멸시효는 일반 불법행위(3년)보다 긴 5년으로 특례를 둔다. 피해자가 사건을 인지하고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이 법은 그동안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5·18이 국가폭력이라는 사실이 공식 인정된 것은 1995년이다. 그 이전까지 이 사건은 법적으로 "폭동 진압"이었다. 이후 오랜시간동안 정치의 에너지는 5·18의 존재를 인정받는 데에 소진되었다. 부정하는 세력과 싸우는 데, 기념일을 지정하는 데, 왜곡을 처벌하는 데. 인정 투쟁을 하느라 제도화를 못했다. 독일이 법을 신속하게 만든 것은 그 범죄의 책임이 국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가해자였던 나라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드는 데 더 강한 의무감을 갖는다. 5·18의 가해자도 국가였지만 우리 정부는 피해자를 인정하기까지 너무 시간을 낭비했다. 그 46년 동안 피해자를 법으로 보호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어떤 기업을 어떻게 조치하자고 따지는 선언이 아니라, 그 선언이 필요 없게 만드는 법이다. 정의가 제도 위에 있지 않으면, 정의로운 정부가 있을 때만 작동한다. 그리고 그런 정의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2026.05.23. 윤성원 + 클로드 


독일 형법 제130조

출처: 독일 연방법무부(Bundesministerium der Justiz) 공식 영문 번역본 Strafgesetzbuch (StGB)
§130 — Incitement to hatred https://www.gesetze-im-internet.de/englisch_stgb/englisch_stgb.html#p1241   
§130(3): 홀로코스트 부정 — 최대 5년 징역 또는 벌금
§130(4): 나치 폭력 지배 찬양·정당화를 통한 피해자 존엄 침해 — 최대 3년 징역 또는 벌금
독일 연방법무부가 직접 관리하는 법령 데이터베이스

프랑스 가이소 법

출처: 프랑스 공식 법령 데이터베이스 Légifrance Loi n° 90-615 du 13 juillet 1990 tendant à réprimer tout acte raciste, antisémite ou xénophobe https://www.legifrance.gouv.fr/loi/id/LEGITEXT000006074978/ 
이 법의 핵심 조항은 1881년 언론자유법에 추가된 제24조의2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1945~1946)에서 확정된 반인도적 범죄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행위를 최대 1년 징역 및 45,000유로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1996년 유엔 자유권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Faurisson v. France(Communication No. 550/1993) 결정에서 가이소 법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제19조(표현의 자유)와 양립한다고 판단했다. https://hrlibrary.umn.edu/undocs/html/550-19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