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9. 21:23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사망한 아이들 53명 중 98%인 52명이 3등실의 아이들이었다.
타이타닉은 시스템이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떤 처지의 사람들이 가장 피해를 입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1912년 4월 14일의 비극은 현실의 충격을 낭만적 서사로 완화시킨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랬던 것처럼, 어른 남성이 가라앉기를 선택했기에 여성과 아이가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미담으로 설명되곤 한다. 이 서사는 재난 대응의 책임을 개인의 도덕적 선택의 수준으로 환원한다.
남성보다 여성과 아이가 더 높은 비율로 생존했음은 맞다. 성인남성의 생존율은 12% 였고 성인여성의 생존율은 72% 였다. 그러나 이 데이터가 보여주지 않은 다른 현실이 있다. 그가 몇 등실에 있던 사람인가가 생사를 가른 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점이다.
1등실의 생존율은 63%
2등실의 생존율은 42%
3등실의 생존율은 25%
등실은 요금을 기준으로 나뉘었지만 더 많은 요금에는 더 우월한 공간적 위치, 더 우월한 정보 접근성, 더 많은 생존 기회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같은 여성, 같은 아동이라도 등실에 따라 생존률이 크게 달랐다.
평균 성인여성의 생존율은 성인남성 생존율보다 6배가 높았지만 3등실의 성인여성 생존율(35%)은 1등실의 성인남성 생존율(32%)과 별차이가 없었다.
아동은 최우선 보호 대상이었기에 1, 2등실의 아동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아동이 생존했다. 하지만 3등실의 아동은 34%만 생존할 수 있었다. 사망 아동 53명 중 52명, 98%가 3등실의 아동이었던 것이다.
시스템은 위기일수록 기본 설정값을 그대로 실행한다. 타이타닉의 하부 갑판이 먼저 잠겼듯, 사회의 하부에 배치된 사람들은 가장 먼저 국가의 보호권에서 멀어진다.
타이타닉이 주는 경고는 오늘의 현실에도 유효하다.
대형 자연 재해에서 대피 정보와 이동 수단은 자산과 주거 형태에 따라 갈린다. 같은 폭우와 산불 앞에서도 관리 주체가 있는 주거지는 즉각 대응하고, 저지대·노후 주거는 늦는다.
감염병의 경우는 어떤가. 재택근무와 유급 병가는 감염 위험을 낮췄고, 현장 노동과 일용 소득은 출근을 강요했다. 규칙은 공평한 것 같지만, 전제 조건이 다르기에 실은 공평할 수 없다.
기후위기는 더 노골적이다. 폭염과 한파 속에서 단열·냉방·개인 이동수단을 가진 사람은 견디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위험 집단이 된다. 피해는 자연이 아니라 인프라와 정책의 기본값에 의해 배분된다.
위기는 모두에게 오지만, 생존의 조건은 균등하지 않다. 기울어진 배에 물이 차오른다면 낮은 쪽이 먼저 피해를 입는 것과 같다.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쪽이 더 잘 살 수 있다.
여기서 국가는 구조자가 아닌 생존의 배분 장치가 된다. 평소 중립적으로 보이던 행정의 동선, 정보의 전달 순서, 지원의 요건은 위기에서 자동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탈락시킨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계획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은 약자를 버리는 방향으로 구축된다.
특별한 악의가 없어도, 선한 의지의 영웅들이 있더라도, 사회의 기본값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반복될 것이다.
닥칠 대형 재해, 감염병, 기후위기에서 가장 소외된 지점을 찾고 그 기본값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 타이타닉에서 무엇이 달라지길 기대할 수 있을까?
누구도 하부 갑판에 남겨지지 않도록, 시스템의 기본값을 다시 디자인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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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사고
1912년 4월, 북대서양을 항해하던 대형 여객선 타이타닉은 빙산과 충돌한 뒤 침몰했다. 사망자는 약 1,500명으로, 당시 기준 단일 해양사고 중 최대 규모였다. 구명정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배치와 동선 또한 비합리적이었다.
전쟁을 제외한 세계 최대 사망 해양사고,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
우키시마호 사건은 1945년 8월 24일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교토 앞바다에서 폭발해 침몰한 사건이다. 배에는 해방을 맞아 고향에 돌아가려던 강제동원 피해자 등 많은 한국인이 타고 있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 사망자 수는 524명이나 이는 믿을 수 없고, 생존자 증언과 연구자 추정으로 볼 때 3,000명에서 최대 8,000명에 이른다. 상한 추정치로 볼 때, 이는 전쟁을 제외한 단일 해양사고 중 세계 최대 인명 피해 사고이다. 이 사건은 강제 노동으로 핍박받던 한국인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 피해를 증언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적 살해 사건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단순 해양 사고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한국 국민이었으며, 고의적 폭침 또는 관리된 폭발에 의한 집단 살해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사고 이후 관련 기록은 남지 않았고, 책임을 묻는 절차 역시 없었다. 진상 규명은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역사적 책임이다.
참고한 자료
침몰 공식 생존 데이터 → Wikipedia 위키백과
성별·연령 생존 경향 → Anesi 통계 자료 anesi.com
성별×클래스 상호작용 → 시각화 자료 optional.is
학술적 분석 → Hall (1986) ScienceDirect W Hall, Social class and survival on the S.S. Titanic (1986)
윤성원.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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