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디자인이야기

잘난 공급자는 사용자의 사정을 알기 어렵다. 일본 육군은 왜 각기병에 걸렸을까?

SERVICE DESIGN 2020. 7. 25. 14:12

사진 : 맛있는 카레라이스  https://www.pexels.com/ko-kr/photo/674574/


단기기억력 상실, 체중감소, 식욕저하, 통증, 하체가 저리고 손발의 감각이 떨어져 잘 걷지 못한다. 호흡곤란, 혼수상태에 이르거나 사망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타민 B1 부족으로 생기는 병이므로 음식을 고루 먹으면 낫는다.

러일전쟁때 일본군은 100만명이 넘게 참전했는데 이중 25만명이 이 병에 걸렸다고 알려졌을만큼 각기병은 일본에 치명적 타격을 안긴 병이었다. 각기병에 걸린 병사들은 모두 육군이었다. 육군만 25만 명이 걸렸고 2만7천 명이 죽었다. 당시 일본 해군 중 각기병으로 죽은 사람은 몇 명되지 않는다.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났던것일까?

180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일본 해군들은 각기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1879년 영국에 유학갔던 '다카기 가네히로'(1849~1920)가 귀국 후 의무국 부장에 취임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그가 알아낸 것은 장교들은 각기병에 거의 걸리지 않고 사병들만 주로 걸린다는 점, 항해 중에만 발병되고 항구에 정박했을 때는 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카기 가네히로는 영양 불균형이 각기병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빵과 고기스튜 등의 양식으로 해군식단을 교체하고자 노력한다. 1884년 2월부터 11월까지 이어졌던 츠쿠바의 항해에서 각기병 환자는 단 15명, 사망자는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가 얼마나 잡곡을 먹으라고 노래를 했는지, 잡곡이 싫었던 병사들로부터 '보리밥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그는 영국 유학시절에 접했던, 영국군들이 먹던 카레를 일본인 입맛에 맞게 개량해 밥과 함께 먹게 하면서 비로소 병사들에게도 인기 있는 식단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카레라이스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아직도 금요일마다 카레라이스를 먹는다.(본래 군용 식단으로 개발되었지만 오늘날 카레라이스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일본인들의 카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카레의 날'(1월22일)이 있고, 이날은 전국 초등학교에 카레가 급식으로 나온다.) 카레라이스를 비롯해 해군 내부 식단이 다양화되면서 해군에서 각기병은 깨끗하게 사라지게 된다.

육군 군의부장이었던 '모리 린타로'(1862~1922)는 해군의 사례를 듣고도 여전히 각기병이 영양소 결핍이 아닌 병원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는데 실증된 많은 사례를 보았음에도 왜 그렇게 확신했던 것일까? 
망치 든 사람 눈에는 못만 보인다고, 모리 린타로는 세균학을 전공했다. 그의 눈에는 각기병이 전염병이라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그는 각기병은 영양 불균형 같이 쉬운 문제가 원인일리가 없다고 믿고 흰 쌀밥 배식을 계속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한 유학파였는데, 어쩌면 영국에서 공부하고 온 다카기 가네히로를 속으로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모리 린타로는 아홉살부터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익혔고 도쿄대학 의학부를 19세에 졸업했었던, 그의 최연소 졸업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을 정도로, 그는 당대 최고로 주목 받았던 천재였다.  군의관일 때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영어와 독일어를 유창한 수준으로 했으며 군인이자 작가로도 창작활동을 하면서 '모리 오가이'라는 필명으로 일본 근대문학의 일인자로 뽑힐 정도로 큰 이름을 남겼다.  
군인으로서는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사병을 죽이거나 병자로 만든 나쁜 리더로 역사에 남았지만 문인으로써는 일본 근대문학을 이끈 최고의 거장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육군의 모리 린타로와 해군의 다카기 가네히로는 각기병에 대해 서로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해군이 그 문제를 이미 해결한 뒤에도 육군은 해군을 따라할 수 없다는 식의 자존심(!)으로 모리 린타로와 육군의 의사결정자들이 고집을 부렸고, 그 결과 많은 육군 사병들이 각기병으로 고통 받았고 모든 각기병 환자는 육군에서만 나왔다.

모리 린타로에게는 자기나 자기 주변의 장교들 식단이 영양 불균형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장교들은 쌀밥 외에도 다양한 반찬을 먹으며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사병들은 정말 쌀밥만 먹었기에 영양 불균형, 비타민 부족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왜 사병들은 쌀밥만 먹었을까? 그들은 가정의 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반찬을 배식한 것이 아니라 각자 구매해서 먹었어야 했었기에 대부분의 사병들은 그 돈을 아껴서 후방의 집에 보내느라 최소한의 반찬으로만 식사를 했다. '단무지 한조각, 간장...'과 같이 표현된 당시 글을 보면 군인들은 극도로 열악한 영양상태에 처해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장의 사용자의 사정을 알 수 없는 엘리트가 정책을 결정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쌀이라도 보급 상황이 안 좋았다면 오히려 잡곡을 먹고 병사들은 건강을 회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쌀은 조선의 것을 빼앗은 결과 전쟁 중임에도 식량 배급에 아무 차질이 없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일본 군인들의 각기병 증세를 키웠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모리 린타로 자신은 세균을 피하기 위해 과일 조차도 끓이거나 데쳐서 먹었고, 남이 들어갔던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도 매우 꺼렸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 건강을 염려했던 사람치고는 어이없게도 폐결핵으로 운명을 달리한다.

생전 그의 입장이 얼마나 완고했었는지, 1922년 그가 죽고 나서야 1923년 육군은 식단 개선을 할 수 있었고 적군보다도 일본군을 더 괴롭혔던 각기병도 드디어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기록될, 지식의 저주로 꼽힐만한 사례가 되었다.

사용자의 처지를 알기는 어렵다.
잘난 공급자라면 더더욱.

다시 디자인, 2020, 윤성원
https://servicedesign.tistory.com/200#gsc.tab=0

[참고한 글]

일본 해상자위대는 왜 금요일마다 카레를 먹을까? https://www.asiae.co.kr/article/2019121014074977316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 일본 해상자위대는 왜 금요일마다 카레를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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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 나무위키 https://namu.wiki/w/일본군/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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