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패키지디자인 이야기

2023. 7. 13. 00:39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문명의 아이콘, 코카-콜라 

 인물이 아닌, 소비재로는 최초로 타임지 표지를 장식(1950년)한 것은 코카콜라다. 인류 문명의 아이콘으로 표현될 만큼 코카-콜라는 주목받는 제품인데 그 독특한 패키지디자인이 크게 한몫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독특한 병 디자인은 경쟁업체로부터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코카-콜라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많은 경쟁업체가 유사품을 만들었다. 초기 코카-콜라 병은 단순한 직선 형태라 모방도 쉬웠기 때문이다.

모방을 막으려고 로고를 새겼지만 코카놀라(Koka- Nola), 마코카코(Ma Coca-Co), 토카콜라(Toka-Cola), 코크(Koke) 등 이름과 로고를 따라 한 유사품들이 많이 나왔다.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차별화된 병’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한 코카-콜라의 법무팀장 헤럴드 허쉬는 1915년 500달러의 포상금을 걸고 디자인을 공모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만져도, 깨진 병 조각들만 봐도 코카-콜라 병인지 알 수 있는 디자인일 것"

미국 인디애나 주에 위치한 루트 유리공장(The Root Glass Company)에 근무하던 병 디자이너 얼 R. 딘(Earl R. Dean)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도서관에서 코카-콜라에 대한 정보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대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던 중 '코카'라는 항목 근처에 있던 카카오나무 열매 사진에 영감을 받아 병 모양을 디자인하게 된다. 
‘카카오 열매’를 모티브로 한, 길쭉하고 볼록한 모양과 겉면의 세로 주름을 표현한 디자인으로 공모전에서 수상한다. 1915년 11월 16일 디자인 특허를 받았는데 실제 병을 디자인한 얼 딘이 아니라 당시 공장 감독 알렉산더 사무엘슨(Alexander Samuelson)이 발명가로 등재되었다. 대신 얼 딘은 500달러 보너스 또는 Root Glass의 평생직장 중 선택하라는 제안을 받고 평생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1916년 코카-콜라의 공식 디자인 병으로 지정되었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쉽게 바꾸지 못하다가 1920년이 지나서야 대다수 보틀링 파트너들이 공식 디자인으로 지정된 코카-콜라 병을 본격 생산하게 된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넘어지는 문제 때문에 원래 디자인에서 가운데 지름을 더 줄여 쓰러지지 않도록 개선한 후 생산되었다. 코카-콜라의 패키지는 그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아 1960년 미국 특허청에 상표로도 등록되었다.

그림  카카오 열매
그림 (좌)얼 딘이 디자인한 코카-콜라 병 초기 스케치. (우)스케치대로 제작된 초기 디자인의 프로토타입. 현존하는 2개 중 하나가 24만 달러(2억7천만 원)에 경매되었다.

그림 출처 : https://beachpackagingdesign.com/boxvox/tag/earl-r-dean 


국민 목욕탕 음료, 바나나맛우유

국민들이 얼마나 목욕탕에서 바나나맛우유를 먹었느냐면, 빙그레 입사지원자들이 모두 '어릴 때 목욕탕에서 먹던 바나나우유를 떠올리며'라고 해서 신입사원 지원 동기 문항을 삭제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 1위에 꼽히기도 했던 바나나맛우유는 1974년 6월 출시 이후 계속 국내 가공유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 뒤 서독에서 젖소 200마리를 지원받아 시작한 낙농업으로 우유가 생산되었는데 우리 입맛에 안 맞고 소화도 잘 안 되는 등 신체적 거부반응으로 소비가 잘되지 않았다. 정부의 우유 소비 장려 캠페인 일환으로 초코맛, 딸기맛 등 가공유가 개발되면서 당시 소량만 수입되던 바나나를 우유로 맛보게 하자는 발상으로 바나나가 들어가지 않고 맛만 흉내 낸 바나나맛우유를 개발하게 된다.

바나나맛우유의 독특한 패키지는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바나나맛우유인 만큼 한국성을 나타낼 수 있는 용기 외형을 찾던 중 도자기 박람회에서 우연히 본 달 항아리에서 영감을 얻고 단지 모양의 용기를 개발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산업화 가속으로 나타난 이농 현상을 반영해 고향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항아리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바나나의 노란색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해(그러나 바나나는 하얀색) 반투명의 소재를 사용한다. 상하 분리된 구조로 위아래 각 부분을 고속회전하면서 생기는 마찰열로 중앙부를 접합해야 했는데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설비를 독일에서 수입해야 했는데 현재는 그 제조사가 없어져서 전 세계에서 이런 용기를 만드는 회사는 빙그레 뿐이다. 출시 후에는 가운데가 볼록한 형태 때문에 유통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파손되기 쉽고 유리병이나 페트병보다 유통기한도 짧았다. 그래서 이 디자인은 출시 당시 내부 반대가 많았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50년에 가까운 세월을 동일한 디자인을 유지하였기에 이제는 용기 형태 자체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독특한 패키지디자인은 해외시장에서도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하는 장벽 같은 역할을 한다. 2008년에 빙그레가 중국에 진출했을 때 바나나맛우유가 중국인들 입맛에도 맞아 주목받게 되자 즉시 카피 제품이 등장했다.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를 수출할 때 지금까지 유통 상의 문제로 단지형 용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멸균팩(테트라팩. 직육면체 형태의 종이팩)을 사용했는데 중국에서 똑같은 형태와 색깔의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이에 대응하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았는데 결국 중국 상하이에 빙그레 현지 법인을 만들어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우유를 판매하게 되자 비로소 카피 제품과 혼동되지 않을 수 있었고 빙그레의 중국 매출은 2010년 7억 원에서 2018년 223억 원으로 고속 성장하게 되었다. 2018년 기준 가공유 시장에서 80%의 시장 점유율, 하루 평균 약 80만 개, 연간 2억5만 개 이상 판매되며 2018년엔 매출이 2,000억 원을 넘었다. 이 제품 하나가 빙그레 전체 매출의 23.4%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 지위에 있는 제품이다.
해외, 국내 음료의 역사에 기록될만한 히트상품 두 개를 살펴보았다. 음료 산업에서 패키지디자인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식품은 패키지 자체가 제품으로서 역할도 하므로 더욱 중요하다. 패키지디자인은 다음과 같은 가치를 갖는다.

첫째, 패키지디자인은 브랜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80조 원, 병 모양의 브랜드 가치는 4조 원으로 평가된다.
둘째, 패키지디자인이 특별할수록 브랜드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차별화된 패키지디자인은 외관만으로 어떤 제품인지 떠오르게 하기에 기업들은 패키지디자인을 마케팅의 중요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셋째, 특별한 패키지는 그 자체로 경쟁자에게 장벽이 될 수 있다.
복잡한 구조나 기능을 갖는 패키지는 경쟁사가 모방하기 어렵게 한다. 패키지디자인에 투입하는 노력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음료 패키지는 음료를 마시기 전까지 버려지지 않지만, 대부분의 패키지는 구매 시점에서 바로 폐기되어 사용되는 시간이 극히 짧다. 그래서 제조 기업들이 ESG경영* 실현을 위해 환경문제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할 때 가장 먼저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패키지 디자인의 개선이다.
* ESG경영 :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조직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를 추구하는 경영. 기업이 지속 가능하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중시했던 매출, 영업이익과 같은 재무적 성과 이외에도 환경, 사회적 문제, 지배구조 투명성과 같은 비재무적 요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최근 국제회계기준(IFRS)에 비재무 정보로 ESG 지표가 포함되면서 글로벌 투자사들이 투자 의사 결정에 ESG를 활용하게 되니 기업들도 여기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버리기 위해 제작되는 패키지, 디자인으로 구할 수 없을까?
 
삼성전자는 친환경 디자인으로 포장재를 감축, 대체, 재활용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갤럭시도 신제품일수록 패키지는 좀 더 작아지고 플라스틱을 줄이는 등 친환경적으로 개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아 모두 종이 재활용 코너에 버릴 수 있는 갤럭시 S20, 2020, 삼성전자 디자인 : 손목원, 김윤영
그림 대형가전의 버려지는 패키지를 가구나 반려동물용품으로 제작, 재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였다. 2020. 삼성전자 디자인 : 윤대희, 황수현, 손성도



TV 포장재에도 업사이클링 디자인*을 도입했다.
*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 : 버려지는 제품에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용도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재 제품화하는 것
2020년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 출고되는 라이프스타일 TV ‘더 프레임(The Frame)’·‘더 세리프(The Serif)’·‘더 세로(The Sero)’ 포장재에 업사이클링 개념을 적용한 ‘에코 패키지(Eco package)’를 도입했다. TV 배송이라는 임무를 마치면 쓰레기로 여겨지는 포장재에 디자인을 적용해 반려동물용 물품이나 소형 가구 등으로 재사용 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CES2020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ESG경영이 강조될수록, 그리고 지속 가능, 기후변화 등 환경과 사회문제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질수록 패키지디자인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참고한 글
백과사전 코카-콜라, 네이버 블로그 Sunrise
https://m.blog.naver.com/sieung/222081996682 
https://m.blog.naver.com/sieung/222082070922 
[코카-콜라를 만든 사람들 제2편] 코카-콜라 회사를 만든 ‘아사 캔들러’
https://www.coca-colajourney.co.kr/.../the-chronicle-of... 
코카-콜라 병 디자인은 사전에서 우연히 찾은 식물에서 탄생
https://adino.tistory.com/650
바나나맛 우유 VS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https://masism.kr/3786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성공기
 http://www.fntimes.com/html/view.php?ud=20171112221041554121232f297a_18 
바나나맛우유, 전통 지키면서도 '힙'한 이유
https://paxnetnews.com/articles/50434 
한국의 디자인 아이콘 바나나맛우유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3/78047 
'고잉 그린'…삼성·LG전자, 친환경으로 간다 
https://zdnet.co.kr/view/?no=20210615134907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