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25. 시범사업,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SERVICE DESIGN 2023. 7. 13. 00:45

 지난 글에서는 국내에 서비스디자인 분야가 확산된 계기가 되었던 에너지고지서서비스디자인 시범사업을 통해 시범사업의 의미와 필요성을 살펴보았다. 시범사업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고려가 필요한지, 주제선정 시, 추진 시 고려해야 할 점, 디자인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에너지고지서가 서비스디자인의 첫 시범사업 주제가 되었던 이유는 산업부 디자인과(당시 지식경제부 디자인브랜드과)는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와 같은 실이라서 실장의 의사로 적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 실제 에너지관리공단이 바뀐 고지서를 아파트에 적용해서 얻은 절감효과는 2%대에 그쳤다. 원안이 대폭 수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고지서 제조업을 민간기업에 외주로 맡기고 있는데 제조업체 측에서 고지서 색상을 3가지로 늘리고, 각종 캐릭터나 시각적 이미지를 삽입하는 등 대규모로 개편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제조비용이 올라간다는 이유였다. 고지서 제조업 시장을 한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보니 경쟁입찰도 불가능했다. 결국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채택한 고지서는 기존 고지서와 수정안 사이에서 절충된 수준으로 확정됐다. 종이 상단 색깔을 3가지로 다양화하는 대신 가전제품에 흔히 쓰이는 에너지효율등급과 유사한 반원 모양 현황표를 삽입했다.(중략)  하지만 약간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절감효과를 거두면서 공무원들 인식도 바뀌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지난해 총 30만 가구에 새로운 고지서를 적용했고 올해는 100만 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 ‘디자인만 바꿨을 뿐인데… 전력난 막은 숨은 공신’. 정순우 기자, 2013.09.12, 매일경제


좋은 디자인 결과물, 하지만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고지서 제작, 배부를 책임지는 민간 기업이 구현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전면에 색상이 바뀌는 디자인을 적용할 수 없다고 했기에 기존 안은 수정되었다. 본래 의도한 디자인이 최종까지 이어지지 못했기에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변경된 디자인도 에너지 절감 효과는 있었지만 핵심 아이디어를 지켰다면 더 큰 효과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최초 제안 디자인으로 에너지 절감 효과 10% 달성, 수정된 디자인의 에너지 절감효과 2% 
 

좌: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제안했던 디자인, 우: 에너지관리공단이 수정한 디자인. 실제 적용된 아파트 에너지 고지서


그림에서처럼 고지서는 초기 디자인에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초기 산업부가 발표했던 디자인과 기능성, 심미성의 측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특히 넓은 색상면을 통해 심리적 충격을 주는 부분, 다양한 그래프로 정확하고 오래도록 기억되게 하는 측면 등 변경된 디자인은 당초 의도와 부합하지 않는다. 심리적 효과 및 에너지 절감 행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확인했던 것만큼의 에너지 절감 효과는 얻지 못했다. 에너지관리공단 측은 2%의 절감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 에너지 고지서 디자인 그 뒷이야기 https://cafe.naver.com/usable/2430

 

'디자인으로 사람들이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게 만들 수 있을까? - 에너지 사용 저감 행동 유발을

에너지 고지서 디자인은 현재 원안에서 많이 변형된 상태로 에너지관리공단에 의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 눈에도 본래 제안되었던 디자인안과 최종 변경된 후의 디자인은 확연히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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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사업, 어떤 주제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시범사업은 통상 짧은 기간, 적은 예산 등 부족한 자원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하기에, 효과적으로 정책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편이 유리하다. 그 외에도 시범사업의 주제 선정에서 고려할 수 있는 기준은 다음 표와 같다. 

서비스디자인 시범사업 선정시 고려기준 예시

국내외로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문제일 것 서비스디자인을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주제일 것 경제성 비용이 크게 수반되지 않아도 실행 가능한 주제일 것 파급성 경제적, 비경제적 파급력이 큰 주제일 것  실행 용이성 의사결정 및 실행과 관련된 부서가 많지 않은 주제일 것 측정 용이성 적용 전, 후 효과에 대해 정량적 평가가 가능한 주제일 것 
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서비스디자인 시범사업의 경우, 적당한 주제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주제의 예는 다음과 같다. 

서비스디자인 시범사업의 좋은 주제와 나쁜 주제의 예

좋은 나쁜 주제 시책 부합성 고령화, 음주사고  선거율을 높이는 디자인 적합성 왕따, 자살(심리 고관여) 재고상품 관리(심리 저관여) 경제성 행동변화 유발 캠페인 시설을 바꿔야 가능한 문제 파급성 자살률저감, 감염예방 수혜자가 극소수인 주제 실행 용이성 주민센터 활용 개선 교도소 내 감화 프로그램 측정 용이성 골목길 범죄율 저감 재난 후 심리 피해 줄이기
시범사업 성공과 신 디자인영역 확대를 위해서는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까?

개발 과정에서 획기적 아이디어의 발견, 의도와 부합하는 디자인 개발, 효과 확인의 과정을 거쳐 실제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최종 단계에서 개발 의도와 달리 디자인이 변경되는 것을 경험했던 담당자 입장에서 시범사업이 목적했던 바가 의도대로 구현되기 어려운 이유, 주의해야 할 점을 뽑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다음 내용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시범사업을 준비한다면 성공에 가까이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공공영역은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인식 확산, 교육의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시범 개발된 디자인을 본 사업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관리공단은 고지서 공급과 관련한 이해관계자 요구사항을 다양하게 가미하면서 원안 디자인이 가진 아이디어의 핵심적인 부분인 에너지 등급표의 색상 구성과 표현방식에서부터 글자의 위치, 각 요소의 크기 등 세부적 요소까지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다. 그리고 수정과정은 디자인개발팀의 의도와 무관하게 에너지관리공단 책임 하에 진행되어, 수정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가 관여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의도에서 디자인된 것인지, 어떤 것은 꼭 지켜져야 하는지 등 의견을 개진할 수 없었다. 디자인 개발까지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했지만 이후 적용은 에너지관리공단이 책임지고 하는 식으로, 공공기관은 서로의 역할이 분야별로 나뉘어 디자이너가 디자인 전후 공정까지를 통합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디자인이 관련된 전체 프로세스 전체를 관리하자면 관여된 공공기관들을 총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서비스디자인은 사용자의 심리와 감정을 미묘하게 터치해 행동 변화를 유발해야 하는데 이것이 애초 의도된 바대로 정교하게 구현되지 않는다면 목적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공공부문에는 디자인 관련 의사결정을 총괄 관리해 권한을 행사할 전문가나 조직이 없기에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 제시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원안의 아이디어가 훼손되기 쉽다. 외부 전문가가 좋은 디자인이 만들어 전해주어도 조직 내부에 그 가치를 이해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주체가 없다면 디자인 성과는 보장할 수 없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생산에서 발송까지 VAN, 전산업체, 광고, 아파트 입주민 협의체, 아파트 위탁 관리기관, 관리사무소 등 많은 이해관계자가 관여되어 있어 상호 조율에 어려움이 컸다.
 공공분야에서 디자인을 잘 활용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 공무원 디자이너를 채용하거나 디자인전문가가 관여해서 정책을 계획하고,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정책수요자가 겪는 애로사항을 포착하고 수요자 중심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우리나라의 공공 부분에서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자면 우선 공무원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디자인이 공공부문 혁신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하에 디자이너에게 그 역할이 주어지고, 디자인사업들이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공무원에게 디자인 인식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공공분야의 서비스 계획과 개선에 디자이너가 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디자이너가 공공분야에서 활동하게 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공무원 중 디자인 분야 역할자는 공공환경디자인 전문가 정도가 있을 뿐이고, 2020년부터 비로소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전문직 공무원 채용이 시작되었다. 이들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공공서비스를 개선, 개발하는 디자이너 역할이 점차 커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둘째, 정부가 가진 정책의 영향력, 조정력이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 
협력기관 사업 책임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가진 정책의 영향력, 조정력이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고지서 개선사업의 실질적 수행자로 에너지 고지서를 인쇄 배급하는 역할을 위탁 대행하고 있는 기업이 당시 전국 고지서 인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너지관리공단)의 협상력이 좋지 않았다. 고지서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이 없는 것이고 그래서는 협상력이 작동할 수 없다. 절대적 역할을 하는 기업 결정에 따라야만 한다. 이 사례를 볼 때 정부는 특정 기업이 장악하는 구도를 피하고 다양한 경쟁자가 있는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범사업 주제 탐색 단계에서 이해관계자가 복잡하지 않고 정부의 영향력이 큰 주제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진 중 장애가 생겼을 때 다소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범사업 실행기관의 사업 책임자 및 담당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셋째, 성과 도출과 측정이 쉽지 않다.
시범사업 시작단계에서부터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시범사업은 새로운 분야에 시도되는 것이어서 검증된 성과 측정 방법이 없다. 성과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범사업의 성과 측정 및 성과 도출에 대해 착안점을 얻을 수 있는 사례는 2012년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범죄예방 서비스디자인 사업이다. 이 사업은 범죄예방 효과 측정에 적합한 협력 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프로젝트 초기부터 함께 참여하면서 과학적이고 정량적인 성과평가의 기준을 설계하고 시범사업을 마치고 결과가 적용된 후 6개월간 그 성과를 측정하는 등 매우 모범적으로 운영되었다. 서울시는 서비스디자인을 개발, 시범 적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후 성과분석을 위해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 6개월의 기간을 두고 사업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정량적 성과를 확인함으로써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범죄예방 환경설계 가이드라인을 수립하여 우선 10개 지역을 대상으로 적용하고 관련 사업 대상지 전역으로 확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시범사업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효과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서울시의 사례처럼 사업에서 무엇을 성과지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측정할 것인지, 누구를 통해 발표되게 함으로써 권위를 부여할 것인지 등에 대해 미리 구상하고 성과를 설계, 측정, 분석, 홍보하기 위한 시간과 자원을 배분해야 할 것이다. 

넷째, 시범사업 실행 이후 그 적용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범사업 시행된 후에도 지속 관리, 성과 확산을 위한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산업부의 2011년 R&D과제였던 ‘의료기기/환경의 수요자 중심 혁신을 위한 융합형 의료 서비스 디자인 플랫폼 개발’ 연구로 실행되었던 서비스디자인 시범사업으로 건강검진결과표가 개발, 시범 적용 된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 디자인을 채택해 전국 확산을 결정한 것은 개발시점으로부터 4년이나 지난 뒤였다. 2015년 1월 27일 건강검진 실시기준(고시) 일부 개정안이 발령으로 전 국민이 사용하는 건강검진표에 적용되었다. 시범사업을 통해 개발된 디자인이 전체 적용되기까지 주관기관이었던 한국디자인진흥원의 관여가 없었다면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시범사업 시행 후 최소 2년간은 사업의 성과분석, 개선안의 반영, 응용 안의 개발, 제도화, 적용 효과 분석 등 관련 과제가 정착될 수 있기까지 지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범사업을 통해 제기된 주제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정책 사업화되고 각종 규정과 제도에 반영되어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범사업을 주관하는 기관이 시범사업의 주제가 시행된 해를 넘겨서도 지속 관리 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의 후속 조치에 필요한 예산 배정과 책임과 역할을 부여해 관리해야 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 아이디어가 국가 정책에 반영되어 궁극적으로 국민 전체에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끝까지 감리하는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담당자의 관심과 헌신에 의지하는 것을 넘어, 과제 수립 시점이나 시범사업 적용 후 결과 평가 등에도 확산 계획과 실적을 평가하고 점검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시범사업은 디자인이 그간 활용되지 않던 새로운 부문에서 활용될 때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기회다. 에너지 고지서 서비스디자인 사례에서의 시사점을 참고한다면 앞으로 실패의 위험을 낮추고 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논문) 에너지고지서 서비스디자인 사례를 통한 시범사업의 효과적 추진방안 연구 - 2021. 윤성원. 디지털예술공학멀티미디어논문지

 

(논문) 에너지고지서 서비스디자인 사례를 통한 시범사업의 효과적 추진방안 연구 - 2021. 윤성원.

에너지고지서 서비스디자인 사례를 통한 시범사업의 효과적 추진방안 연구 A study of the effective implementation of pilot projects, drawing on the ener...

www.designdb.com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