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26. 디자인경영, 어떻게 할 것인가?

SERVICE DESIGN 2023. 7. 13. 00:43

“스티브 잡스의 가장 위대한 디자인은 애플의 조직이다. 기술보다 디자인에 더 신경 쓰는 그 조직 말이다.”
 2011 NPR과의 대담 중.  존 마에다. 전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총장

2020년 미국의 최장수 비즈니스 잡지 포춘이 ‘현대 최고의 디자인 100’ 목록 포춘, ‘현대 최고의 디자인 100’ 
https://fortune.com/longform/100-best-designs/  을 발표했는데 1위가 애플 아이폰이었다. 

 

The greatest designs of modern times

What does it take to become a design icon? There‘s more to it than good looks. These 100 products have made our lives simpler, better, and yes, more stylish.

fortune.com


아이폰은 2007년 출시 후 스마트폰 혁명을 일으켰고 통신뿐 아니라 인류의 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 되었고, 그 결과 애플은 세계 1위 기업**이 되었다.
* 아이폰은 2017년까지 누적 판매 대수 약 13억 개, 매출은 8,000억 달러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다.(월스트리트 저널, 2017)
** 애플은 2021년 7월 10일 기준, 시가총액 2조 4천억 달러(2,756조 원)로 세계 1위 기업이다. 2위 마이크로소프트와 344조 원의 차이가 난다. 

그러니 디자인이 기업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말할 때 아이폰의 디자인과 애플을 첫 번째로 꼽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최고의 디자인을 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는 ‘조너선 폴 아이브 Jonathan Paul Ive’*이다.
* 조너선 아이브(Jonathan Paul Ive, CBE, 1967년~) : 영국 뉴캐슬 폴리테크닉(현 노썸브리아 대학) 졸업 후 1989 이래 탠저린(영국 디자인기업)의 디자이너로 활동, 1992년 애플로 이직한다. 1996년 애플의 디자인팀장이 된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사장으로 복귀한 후 iMac, iPod, iPhone, iPad 등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을 디자인하여 애플이 디자인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20년 디자인기업 LoveFrom을 창업한다.

조너선 폴 아이브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시작은 엉망이었다. 1992년 스티브 잡스가 방출되었던 시기에 애플에 입사했던 그의 첫 프로젝트는 악몽과 같았다. 디자인에 대해 최고의 수준을 지향했던 스티브 잡스가 떠난 당시의 애플에는 디자인 대신 첨단의 기술을 추구하는 기술 지상주의가 완연해 있었다. 뉴턴은 세계 최초로 필기 인식이 구현되었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복잡한, 전형적인 기술 주도형 제품이다. 뉴턴 실패의 이야기는 도널드 노먼의 '미래 세상의 디자인'에 잘 소개되어 있다.

기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조직에서 디자인은 기술의 껍데기를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곤 한다. 초짜 디자이너가 거부하기 어려운 엔지니어와 경영진들의 무리한 요구가 있었을 것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계속되는 디자인 수정을 가했을 것이고 결국 첨단기술로 무장했지만 사용이 불편하고 보기에도 매력적이지 않은 제품이 출시되었다. '뉴턴'은 애플의 첫 PDA로, 1993년 출시 후 제품 라인이 연이어 시장에서 참패( 'Newton Original Message Pad'(1993)부터 'eMate 300'(1998)까지 총 8개의 제품이 출시)하면서 애플은 PDA사업을 포기했다.

그림  애플 뉴턴(Newton), 1993


1997년, 뉴턴의 실패를 넘어 파멸로 가던 애플로 스티브 잡스가 돌아온다. 그는 복귀한 이튿날 회사의 핵심 인사와 저널리스트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앞으로의 애플의 전략은 제품디자인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천명한다. 그리고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했다. 스티브 잡스는 당시 부사장이자 인지심리학자인 도널드 노먼을 포함, 전 직원의 65%에 해당하는 3천 명을 해고했다. 얼마나 무자비했던지 스티브 잡스와 엘리베이터만 같이 타도 해고된다는 풍문이 돌 정도였다.

다음으로는 디자인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외주를 주려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일반 사용자가 사용하지 않는 서버 컴퓨터를 만들 때조차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개발을 의뢰할 정도로 디자인에 대해 집착적으로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보기에 그의 복귀 전까지 애플이 출시했던 제품들은 디자인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최고 디자이너 에토르 소사스, 맨디니, 조르제토 주지아로 등을 물망에 올려서 검토하면서 동시에 내부 디자인팀은 해체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 와중에 디자인팀의 포트폴리오를 보게 되었고, 출시되는 제품은 별로였지만 디자인팀이 구상하는 단계에서의 디자인은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팀장 조너선 아이브를 임원 회의에 불러내 임원들에게 ‘앞으로 애플의 미래는 이 사람에게 물어봐라’라고 하면서 전폭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당시 조너선 아이브는 많은 동료를 해고하던 스티브 잡스가 회의에 자기를 부르자 사표를 주머니에 넣고 참석했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에 대한 확고한 태도에서 확신을 얻고 퇴사하려던 마음을 접는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8년 5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뒤 첫 번째로 공개되어 암흑기에 있던 애플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제품이 아이맥이다. 

그림  애플 아이맥(iMac), 1998


여기까지의 내용만으로는 조너선 아이브가 짧은 기간에 실력이 급향상된, 디자이너 개인의 성공 이야기로 오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이맥은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 개발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아이맥은 스티브 잡스가 보았던 포트폴리오에 있었던 디자인으로, 조너선 아이브와 그의 팀이 이미 개발했던 디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기존 제품과는 너무 달랐기에 혁신성을 감당하지 못했던 애플 경영진은 그 디자인을 무시했던 것이다. 이 자세한 내용은 '제7의 감각, 전략적 직관'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뛰어난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직에서 이런 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에 치욕적 실패를 안긴 뉴턴의 디자이너임과 동시에 혁신적 제품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 낸 최고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조너선 아이브를 최고로 만든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지 않았다면 조너선 아이브는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뉴턴의 아류작 같은 제품만 만들다 잊혀지는 디자이너가 되었을지 모른다. 이 사례를 볼 때 디자인경영의 성패는 경영자의 높은 미학적 수준, 강력한 실천 의지, 디자인 전문성에 관한 권한 이양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자이너, 내부 디자인조직, 다른 부서 임직원들이 아무리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떠든다 해도, 어떤 강력한 시스템이나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심지어 조너선 아이브 같은 디자이너가 있어도 소용없다. 오직 경영자의 수준과 안목, 디자인경영 전략이 기업의 디자인 수준을 결정한다. 조너선 아이브는 원래부터 최고의 능력자였지만, 그가 애플의 구원자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브 잡스의 혜안과 전폭적 권한 이양이 있었던 시점 이후부터였다. 

경영자가 스티브 잡스만큼 높은 수준의 통찰력과 심미안이 있고 조너선 아이브 같은 디자이너가 있다면 시장조사 등의 기술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애플이 보편적 의미에서의 마켓 리서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애플엔 약 20명의 뛰어난 디자이너가 있을 뿐이다. 
* 애플 디자인 팀원의 평균 연봉은 2007년 20만 달러로 업계 기준보다 2배 많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들은 새로운 차원의 사용자경험을 만들기 위해 충분히 실험하고 실현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연구한다. 디자인팀이 고품위의 디자인을 제시하면 엔지니어링 부서에서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강도 높은 기술개발을 한다. 아이맥의 투명하고 선명한 색채를 제품에 구현하기 위해 디자인팀과 기술팀이 사탕 공장을 여러 번 방문하고, 원하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제조할 기업을 찾느라 수개월간 아시아 공장을 찾아다녔던 사례는 유명하다. 

이 모든 것이 최고 경영자가 디자인 부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최고 경영자가 조급하게 디자인팀을 다그치고 경제성의 논리로 목표를 수정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디자인팀도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최고를 추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디자인팀은 조직의 권력관계에 영향을 받고 자신의 견해를 방어하고, 조정하고, 다른 조건을 수용하는데 귀중한 재능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소 '디자인은 인간 창조물의 영혼이다.'라고 할 만큼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던 스티브 잡스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디자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중간 의사결정 체계를 두지 않고 조너선 아이브와 직접 상의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 외에는 애플 내에서는 누구도 디자인에 관해 조너선 아이브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미적 수준은 단기간의 학습이나 경험으로 극복이 불가능하다. 미적 감수성은 속성 학습으로 향상되지 않는다. 최고 경영자가 스티브 잡스만큼의 미학적 수준을 갖추지 못했다면, 경영자가 할 수 있는 차선의 전략은 적당한 전문가를 정하고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다. 최선의 디자인 팀을 꾸린 뒤 그들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조건을 조성하고, 디자인은 전적으로 맡겨두는 것이다. 물론, 최고 경영자 외에도 디자인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조직 내의 누군가가 이들에게 해를 가할 수 있도록 방치해서도 안 될 일이다.

애플이 디자인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디자이너 조나선 아이브가 뛰어난 경영자 스티브 잡스를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티브 잡스도 없고, 조나선 아이브도 떠난 지금 (2019년 애플 퇴사 후 현재 본인의 디자인스튜디오 LoveFrom을 운영하고 있다.), 애플이 최고 디자인의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명성을 이어갈지, 아니면 디자인의 힘을 잃고 스티브 잡스가 없던 암흑기로 돌아가게 될지는 디자인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애플 안에서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