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스크롤은 유죄 - 디자인의 역설

2025. 5. 13. 08:54디자인/디자인이야기

디자이너의 역할과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만큼 디자이너의 가치와 윤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러니 이제 사용자 중심 디자인의 원칙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사용자의 생각을 덜 필요하게 만들고, 마찰을 제거해 매끄러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사용자 편의만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한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이 지나치면 우리는 나태해지고, 삶의 리듬은 무너지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치게 된다.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사용자 편의를 추구하고 실현하려 한다면, 우리는 영화 ‘월-E’에 나오는 인간들처럼 될지도 모른다. 기계가 모든 일을 대신해주는 세상에서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이 살아가는 존재들처럼 말이다.

이미지 : 영화 Wall-E 중. 너무 게을러져서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 가능해진 인류


예를들어 위험한 도구를 만지고 싶어지도록 매력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용자를 위해 설계된 제품이나 서비스가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환경에 더 큰 폐기물을 만들어내면서도 결과적으로 사용자의 인생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무한 스크롤은 사용자 편의를 우선한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다. 전통적으로는 일정량의 콘텐츠를 본 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버튼을 눌러야 했다. 하지만 하단의 버튼을 없애면서 사용자는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끝없는 흐름 속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넷플릭스의 디자인 다큐멘터리 ‘Abstract’에서는 무한 스크롤을 처음 만든 디자이너 아자 래스킨(Aza Raskin)을 조명한다. 그는 현재 거의 모든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인터페이스의 설계자이며, 매킨토시 개발자인 제프 래스킨(Jeff Raskin)의 아들이기도 하다. 아자는 이 편리한 스크롤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는 무한 스크롤이 인류의 방대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너무나 편리하고 중독성이 강해서, 그는 이 인터페이스야말로 법적으로 금지되어야 할 첫 번째 디자인이라고 주장한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단지 사용자 요구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고민하고,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 성찰에 도달해야 한다. 디자이너에게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사용자를 배려하되, 과하지 않은 적정선을 아는 능력.
무한 스크롤은 편리하지만 당신의 삶을 갉아먹는다. 나의 삶도.


윤성원. 2020년 12월 6일.
출처 : 다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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