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정부 R&D의 서비스 분야 투자 확대

2026. 5. 18. 23:48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정부 R&D의 서비스 분야 투자 확대

기술 중심 R&D에서 경험 설계 R&D로 투자 구조 전환


핵심 문제

2024년 한국의 총 R&D 투자는 131조 원, GDP 대비 5.13%로 사상 최초 5%를 넘어 OECD 세계 2위다. 숫자만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R&D 국가다. 그런데 정부가 직접 방향을 정하는 정부 R&D에서 서비스 분야 비중은 5.5%에 불과하다. 서비스업이 GDP의 64%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정부 R&D의 20분의 1만 서비스에 쓰인다. 기술을 만드는 데는 세계 2위로 투자하면서, 그 기술이 만드는 '경험'을 설계하는 데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문제는 민간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정부 R&D의 구성이다.

* 이 블로그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관점/제안이며,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포함한 어떠한 기관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1. 현황과 문제점

131조 원 R&D, 그런데 서비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KISTEP의 「2024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2025년 12월 발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총 연구개발비는 131조 46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1% 증가했고, GDP 대비 비중은 5.13%로 사상 처음 5%를 돌파했다. OECD 국가 중 이스라엘(6.35%)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민간·외국 재원이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어서며 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이 투자의 '구조', 특히 정부가 직접 방향을 정하는 정부 R&D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분명해진다.

핵심은 정부 R&D의 잘못된 구성

민간 기업 R&D가 제조업(약 86%)에 쏠려 있는 것은 한국 산업 구조상 어느 정도 불가피하고, 정부가 직접 좌우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정작 문제는 정부가 배분 권한을 쥐고 있는 정부 R&D조차 서비스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향을 정하는 쪽이 더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산업연구원(KIET)의 「서비스기업의 R&D 실태 및 정책과제」에 따르면, 정부 R&D 투자에서 서비스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기준 5.5%에 불과하다. 서비스업이 GDP의 약 64%(2023년 63.8%)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정부 R&D의 20분의 1만 서비스에 쓰이는 셈이다. 그나마도 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 등 일부 업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부 등 일부 부처에 편중되어, 서비스디자인·경험 설계 같은 영역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다.
방향성은 KISTEP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을 경제사회 목적별로 나눌 때 '경제발전(산업생산·기술)' 목적이 약 43%(2023년 42.9%, 13.1조 원)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 R&D가 여전히 '기술=제조' 프레임에 강하게 묶여 있다는 뜻이다. 정부 R&D는 전체 R&D의 약 21%로 규모는 작지만, 어디에 투자하느냐로 시장의 방향을 만든다. 민간 서비스 R&D가 따라 늘어나려면, 먼저 정부 R&D의 정의와 과제 구조가 '경험을 설계하는 연구'를 포함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그 방향타가 서비스를 비워 둔 채 제조·기술만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문제다.
배경으로만 덧붙이면, 민간 기업 R&D 중 서비스업 비중도 낮다. 연구개발활동조사 기준 9.1%(’18)에서 12.5%(’22)로 느리게 오르는 중이지만 여전히 주요국 대비 최하위권이다. 다만 민간의 제조업 편중은 정부가 직접 바꿀 수 있는 변수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결과에 가깝다. 정부가 손댈 수 있고, 손대야 하는 지점은 어디까지나 정부 R&D의 구성이다.

서비스산업 경쟁력이 낮은 이유

국회예산정책처의 「우리나라 노동생산성 현황과 정책과제」(2025)에 따르면,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 비율은 2020년 51.5%에서 2024년 47.5%로 오히려 더 벌어졌다. OECD 평균(95.7%), G7 평균(86.7%), 일본(88.2%)을 모두 크게 밑돈다. 같은 보고서는 1인당 R&D 지출이 1% 늘면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이 0.03% 높아진다는 분석도 함께 제시한다. 투자가 생산성으로 이어진다는 근거이며, 거꾸로 말하면 R&D 투자 부족이 서비스산업의 낮은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뜻이다. 충분한 연구개발 투자 없이 서비스 경쟁력이 오르기를 기대할 수 없다.

서비스 R&D란 무엇인가

서비스산업에는 R&D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제조업에서 R&D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라면, 서비스산업에서 R&D는 '더 나은 서비스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다. 각국의 초점도 다르다. 미국·영국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에, 독일·일본은 서비스 생산성을 높이는 '서비스 엔지니어링'에, 핀란드는 보건·공공서비스에 무게를 둔다.
한국의 서비스 R&D가 갖춰야 할 핵심 영역은 분명하다. 서비스디자인, 경험 설계, 사용자 리서치, 공공서비스 혁신이다.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드는 경험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검증하는 연구개발이다. 좋은 예가 기업이 운영하는 서비스 혁신 연구소다. 새로운 서비스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제와 같은 환경에서 직접 체험하며 검증한 뒤, 효과가 입증된 것만 현장에 적용하는 방식 — 이것이 경험을 대상으로 하는 R&D다. 한국 서비스산업에는 이런 투자가 드물다.

2. 국내외 사례

🇺🇸 미국 — 서비스 경험 자체가 연구개발의 대상

미국은 GDP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에 상응하는 R&D를 한다. 아마존의 클라우드(AWS), 애플의 앱 생태계, 구글의 검색은 모두 '서비스 경험'을 연구개발 대상으로 삼아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연방정부도 공공서비스 경험을 연구·개선 대상으로 다룬다(인사관리처 산하 Lab@OPM 등). 기술과 경험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설계하는 접근이다.

🇬🇧 영국 — 서비스 설계를 연구개발로

서비스산업이 GDP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국은 서비스·디자인 분야 연구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한다. 예술인문연구위원회(AHRC)가 디자인 연구를 지원하고, 'Future Observatory'처럼 디자인·서비스 설계를 연구개발의 대상으로 삼는 국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디자인카운슬도 서비스디자인 관련 연구·프로그램을 수행한다.

🇪🇺 EU — Horizon Europe, 경험 혁신을 R&D로 인정

EU의 Horizon Europe은 2021~2027년 약 935억 유로 규모의 연구·혁신 프로그램으로, 헬스케어·교육·공공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 혁신을 지원한다. 서비스 경험 설계를 연구개발의 정당한 대상으로 명시적으로 포함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 핀란드 — 공공·복지 서비스 R&D

핀란드 Business Finland(구 TEKES)는 서비스 R&D에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특히 교육·복지 등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서비스 R&D를 통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다. 공공서비스 설계가 연구개발의 대상이 되는 구조다.

🇩🇪🇯🇵 독일·일본 — 서비스 엔지니어링

독일과 일본은 '서비스 엔지니어링'이라는 개념으로 서비스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연구를 체계화했다. 제조업의 혁신 방법론을 서비스산업에 이식하는 접근으로, 제조 강국이 서비스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한국이 참조할 만한 경로다.

🇰🇷 한국 — 시작 신호와 남은 과제

한국에서도 서비스 R&D의 토대가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한국기업혁신조사가 서비스업을 포함해 기업 혁신활동을 추적하고, 산업부 산하 KIAT가 기업 R&D·산업구조 통계를 정기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서비스 R&D를 독립적으로 겨냥한 제도와 예산은 아직 초보 단계다. 무엇보다 서비스산업 R&D 지원의 기본 틀이 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1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예산 배정의 일관성을 담보할 법적 근거가 부재하다.

3. 제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 장기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제정해 서비스 R&D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지표인 정부 R&D 중 서비스 분야 비중 목표치(예: 현재 5.5%대 → 2030년 두 자릿수)를 법령에 명시한다.

서비스 경험 설계를 R&D의 법적 정의에 포함: 현행 법령의 R&D 정의는 기술 개발 중심이다. 서비스 경험 설계·사용자 리서치·공공서비스 혁신을 R&D의 정당한 대상으로 명시해, 세제 혜택과 정부 지원이 서비스 R&D에도 적용되도록 한다.

제도

서비스 R&D 과제 유형 신설: 정부 R&D 과제 분류에 '서비스 경험 혁신형'을 독립 유형으로 신설한다. 기술 개발이 아니라 경험 설계·서비스 프로토타이핑·파일럿 운영을 목표로 하는 과제를 지원하는 별도 트랙이다.

서비스 R&D 통계 체계 강화: 연구개발활동조사·기업혁신조사가 산업별 R&D를 집계하지만, '서비스 경험 설계'를 겨냥한 투자·성과는 별도로 잡히지 않는다. 서비스 R&D의 규모·분야·성과를 분리 측정·공표하는 체계를 보강한다.

제조–서비스 융합 R&D 지원: 전통 제조기업이 서비스 경험 혁신으로 전환하는 R&D를 지원한다. 제조와 서비스의 경계를 넘는 융합 R&D가 산업 전환의 핵심 경로다.

정책

정부 R&D 배분 구조 재구성: 정부 R&D 투자방향·예산 배분·조정 단계에서 '경제발전(산업·기술)'에 쏠린 목적별 비중을 재조정해, 서비스·삶의 질·공공서비스 혁신 목적의 투자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정부 R&D 중 서비스 분야 비중(2021년 5.5%)을 끌어올리는 것을 명시적 배분 목표로 삼는다. 비중을 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GDP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산업의 혁신 역량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서비스 R&D 세제 혜택 정비: 서비스 R&D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조 R&D와 동등하게 적용한다. 사용자 리서치·서비스디자인·파일럿 운영 비용을 R&D 비용으로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공공서비스 혁신을 서비스 R&D 핵심 영역으로: 정책 R&D 도입과 연계해, 공공서비스 개선을 위한 사용자 리서치·프로토타이핑·파일럿을 정부 R&D 과제로 공식화한다. 공공부문이 서비스 R&D의 주요 발주처가 되는 구조를 만든다.

사업

서비스 혁신 연구소 구축 지원: 의료·금융·관광·교육 등 주요 서비스산업의 선도 기업이 서비스 경험 혁신 연구소를 설립하도록 지원하고, 그 성과를 산업이 공유하도록 한다.

서비스 R&D 전문 인력 양성: 서비스 경험 설계를 연구개발로 다루는 전문 인력(서비스디자이너·사용자 리서처 등)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서비스 R&D 국제 협력: 영국 AHRC, 핀란드 Business Finland, EU Horizon Europe과 공동 연구·협력을 추진해 선진국의 방법론을 빠르게 도입한다.

4. 기대효과

단기: 서비스 R&D 과제 유형 신설로 경험 설계를 목표로 하는 과제가 정부 지원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세제 혜택이 적용되면서 민간 서비스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늘어난다.

중기: 서비스업 R&D 비중이 주요국 수준에 다가가면서 서비스산업 생산성이 개선되기 시작한다. 공공서비스 혁신이 정부 R&D로 공식화되며 국민 체감 서비스 품질이 높아진다.

장기: 오랜 서비스수지 적자 구조가 반전될 기반이 마련된다. 한국이 제조 강국에서 '제조+서비스·경험' 강국으로 전환하는 산업 구조가 자리 잡고, 131조 원 R&D가 기술뿐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드는 삶의 경험까지 설계하는 데 쓰이게 된다.


이 포스팅과 연결된 주제

경험경제 시대의 디자인 전략 재편 — 서비스 R&D가 경험경제 전환의 투자 기반
정책 R&D 도입 의무화 — 공공서비스 혁신과 서비스 R&D의 결합
기업 디자인 활용률 제고 — 서비스 R&D가 기업 디자인 역량을 키운다
공공조달 가치기반 발주 전환 — 공공조달이 서비스 R&D 수요를 만든다

참고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KISTEP, 「2024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 결과」(2025.12.26. 발표) — 총 R&D 131조 462억 원, GDP 대비 5.13%(세계 2위) / 산업연구원(KIET), 「서비스기업의 R&D 실태 및 정책과제」(2022) — 정부 R&D 중 서비스 분야 비중 5.5%(’21), 일부 부처·업종 편중 / KISTEP,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 정부 R&D 경제사회목적별 '경제발전' 42.9%(’23, 13.1조 원) / 국회예산정책처, 「우리나라 노동생산성 현황과 정책과제」(2025) —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 노동생산성 51.5%(’20)→47.5%(’24), R&D 지출 증가의 생산성 제고 효과 / KIAT 경제·산업 통계(2024·2025) — 산업별 GDP 비중 서비스업 63.8%(’23) / (참고) 연구개발활동조사 기업 R&D 중 서비스업 비중 9.1%(’18)→12.5%(’22) / EU Horizon Europe(2021~2027, 약 935억 유로) / UK AHRC·Future Observatory / 핀란드 Business Finland 서비스 R&D / 윤성원, 『모두의 질문Q』(2025) /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이 궁금해』(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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