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8. 23:42ㆍ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기업 디자인 활용률 제고
37%에 멈춘 디자인 활용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전략
핵심 문제
한국 기업의 디자인 활용률은 37.3%에 머물러 있다. 디자인 선진국은 이보다 훨씬 높다. 대기업(67.4%)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극단적이고, 디자인 역량은 일부 대기업 안에 갇혀 산업 전반으로 퍼지지 않는다. 디자인은 가치사슬 전반에 작동하는 중간재이자 인프라 산업이다. 그런데 그 확산을 떠받칠 정책적 뒷받침은 아직 미미하다.
* 이 블로그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관점/제안이며,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포함한 어떠한 기관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1. 현황과 문제점
37.3% — 10년 가까이 제자리
산업통상부의 「디자인산업통계」(통계법 승인통계, 위탁기관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가장 최근 확정치인 2023년 기준 한국 기업의 디자인 활용률은 37.3%다. 디자인 부서 보유, 디자이너 고용, 또는 디자인 외주 용역을 발주하는 기업의 비율을 뜻한다. 전년 대비 0.03%p 증가에 그쳤다. 추이를 볼 때 정체가 분명하다. 2018년 35.9%, 2019년 37.1%, 2020년 39.9%(코로나19로 디지털 서비스가 급증한 영향), 2021년 37.4%, 그리고 2023년 37.3%. 코로나 특수를 제외하면 사실상 30%대 후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구조적 지원 없이 자연적으로 오르기 어려운 수준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격차는 더 큰 문제다. 업종별로는 디지털·멀티미디어 디자인(66.2%), 패션·텍스타일 디자인(58.2%)이 높은 반면 전통 제조업은 훨씬 낮다. 규모별로는 대기업이 67.4%인데 중소기업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지역별로도 서울권역(52.1%)과 지방의 차이가 뚜렷하다. 디자인 역량이 '대기업·수도권·디지털 업종'에 쏠려 있다는 뜻이다.
디자인전문기업의 역설 — 늘어나는 기업, 줄어드는 단가
디자인을 공급하는 쪽도 사정이 어렵다. 2023년 기준 디자인전문업체는 20,044개로 전년보다 1.2% 줄었고, 디자인 산업 규모는 18.6조 원이다. 이 가운데 디자인을 '쓰는' 일반업체가 69.3%를 차지하고 디자인전문업체는 30.7%에 그친다. 공급은 분산되는데 무게중심은 여전히 활용 기업 쪽에 쏠려 있는 구조다. 디자인전문기업이 영세함과 단가 경쟁에 시달리는 현실은, 우수한 역량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신호다.
디자인 활용이 왜 중요한가 — 경제적 근거
디자인 투자 효과는 해외에서 반복적으로 입증됐다. 영국 디자인카운슬은 디자인 리더십 프로그램 참여 기업 기준으로 디자인에 1파운드를 투자하면 매출은 20파운드 이상, 수출은 5파운드 이상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덴마크 정부 조사에서는 디자인을 활용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총매출이 250% 더 성장했고, 수출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4%로 비활용 기업(18%)의 두 배에 가까웠다. 디자인을 단순 스타일링이 아니라 혁신 과정에 통합할 때 투자 대비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 공통된 결론이다.
한국에서도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는 큰 규모로 측정된다. 다만 2023년 기준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는 159.9조 원으로 전년 대비 10.3% 감소했다. 산업 규모와 기업 수는 늘어나는데 경제적 가치는 줄어드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양적 성장이 질적 가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신호이며, 활용률 정체와 같은 뿌리를 둔 문제다.
2025년 산업부의 새 방향 — 글로벌 디자인 기업 육성
산업통상부는 2025년 「글로벌 수준 디자인 기업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K-디자인 스타 기업 육성, '한국형 비핸스' 플랫폼 구축, 디자인 R&D 신규 과제 등에 약 1,000억 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고, 트렌드 분석·디자인 유사도 검색 등 AI 서비스 개발과 디자인 전(全) 주기에 걸친 AI 선도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방향은 타당하다. 다만 관건은 따로 있다. 지원의 무게중심이 '기업 내부(인하우스) 디자인'에서 '디자인전문기업 역량 제고'로 옮겨가는지, 그리고 디자인 수요 자체를 넓히는 기반이 함께 마련되는지다. 스타 기업을 키우는 것과, 산업 전반의 활용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다른 과제이기 때문이다.
2. 국내외 사례
🇩🇰 덴마크 — 디자인 사다리로 성장 경로를 설계하다
덴마크 디자인센터(DDC)가 개발한 '디자인 사다리(Design Ladder)'는 기업이 디자인을 어떻게 쓰는지를 1단계(비활용)→2단계(스타일링)→3단계(프로세스)→4단계(전략)로 진단하는 도구다. 덴마크는 이 진단을 기업 지원 정책에 직접 연결해, 기업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파악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디자인을 '꾸미기'가 아니라 '경영 전략'으로 끌어올리는 경로를 제도가 안내하는 방식이다.
🇬🇧 영국 — 지원금이 아니라 '역량'을 키운다
영국 디자인카운슬은 소규모 기업에 디자인 컨설팅을 제공하며 디자인을 경영 전략 차원에서 활용하는 역량 자체를 키워 왔다. 단순 보조금 지급이 아니라, 기업이 디자인을 스스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접근이다. 오늘날 디자인카운슬은 디자인을 혁신 생태계의 핵심 요소로 보고, 기업이 디자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도록 정부·산업계에 정책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역할도 한다.
🇯🇵 일본 — '디자인경영 선언'과 중소기업
일본 경제산업성·특허청이 2018년 발표한 '디자인경영 선언'은 디자인을 경영의 핵심에 두는 전환을 제시하면서 중소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포함했다. 디자이너를 경영진 수준에 두는 최고디자인책임자(CDO) 개념, 기업 디자인 역량 측정, 중소기업 디자인경영 진단·컨설팅이 연계됐다. 지원금이 아니라 경영 구조 자체의 변환을 목표로 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 싱가포르 — 강한 권한을 가진 디자인 기관
싱가포르 디자인카운슬(DesignSingapore Council)은 기업이 디자인을 경제·사회적 성장에 활용하도록 돕는 것을 핵심 미션으로 삼는다. 디자인 컨설팅, 역량 진단, 글로벌 진출 연계를 통합 지원하며, 디자인 마스터플랜을 국가 전략으로 운영한다. 기업 지원에 관한 권한과 예산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부여된 구조다.
🇺🇸 미국 — 전략 가치로 성장한 디자인전문기업
IDEO는 디자인전문기업이 단가 경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이라는 전략적 가치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 준 대표 사례다. 외형 디자인을 넘어 기업의 과제 자체를 재정의하는 컨설팅으로, 디자인전문기업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디자인전문기업 사례가 있지만 아직 드물고, 대다수는 영세함과 단가 경쟁에 머물러 있다. 차이를 만든 것은 규모가 아니라 '전략적 가치를 제공하는 역량'이었다.
3. 제안
법
산업디자인진흥법에 활용률 목표 법제화: 국가 디자인 활용률 목표(예: 2030년 55%)를 법령에 명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연도별 실행계획 수립 의무를 규정한다. 측정만 하고 목표가 없는 현 구조에 책임성을 부여한다.
디자인경영 도입 기업 세제 지원 근거 마련: 일본 디자인경영 선언처럼, 디자이너를 임원급에 배치하거나 디자인 부서를 신설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는 근거를 법령에 둔다.
제도
디자인 성숙도 단계별 맞춤 지원: 덴마크 디자인 사다리처럼 기업을 1~4단계로 진단하고 단계별로 다른 지원을 제공한다. 현재 지원이 주로 2단계(스타일링)에 몰려 있는 만큼, 3~4단계(프로세스·전략) 전환 지원을 별도 트랙으로 신설한다.
인하우스 중심에서 디자인전문기업 활용 중심으로: 내부 디자이너 고용과 함께, 외부 디자인전문기업과 협력하는 구조를 동등하게 지원한다. 디자인전문기업 생태계가 살아야 산업 전반의 활용률이 올라간다.
디자인 역량 진단 서비스 제공: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주기적 디자인 역량 진단을 권고하고, KIDP가 무료 진단을 제공한다. 진단 결과가 맞춤형 지원으로 연결되는 경로를 만든다.
정책
디자인 수요 확대 기반 조성: 공공조달 평가에 디자인 항목을 강화하고(21번 가치기반 발주와 연계), 서비스디자인·디자인 리서치 등 새로운 수요처를 넓힌다. 정부가 좋은 기준으로 구매하면 시장이 따라온다.
디자인전문기업 육성으로 전략 전환: 기존 역량강화사업에 더해 전략기획·글로벌화·공동 브랜드 육성 등 전문기업 대상 사업을 기획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디자인전문기업을 한국에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 시대 디자인 역량을 중소기업까지: 산업부의 AI 디자인 확산 전략을 중소기업 맞춤형으로 설계해, AI 도구 활용 교육과 프로세스 도입을 지원한다.
지역 디자인 활용률 균형 발전: 서울권역과 지방의 격차 해소를 위해 지역 디자인 거점의 기업 지원 기능을 강화하고, 지역 제조업과 디자인을 연계하는 모델을 확산한다.
사업
디자인 바우처 확대·서비스디자인 포함: 기업이 디자인전문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바우처를 확대하고, 서비스디자인·UX디자인·정책디자인을 바우처 대상에 포함한다.
K-디자인 스타 기업 육성과 글로벌 진출 연계: 산업부의 스타 기업 육성을 세계 시장 진출과 묶어, 글로벌에서 경쟁하는 K-디자인 브랜드를 만든다.
디자인 혁신 기업 인증제: 3~4단계 디자인 활용 기업을 국가가 인증하고 조달·금융에서 우대해, '디자인을 잘 하는 기업이 유리한 구조'를 제도화한다.
산업디자인의 공공성 회복: 디자인을 공공재적 시선에서 다룰 정책 기반과 협업 구조를 마련한다. 디자인은 특정 기업의 경쟁력이기 이전에 산업 전체의 인프라다.
4. 기대효과
단기: 단계별 맞춤 지원과 역량 진단으로, 그동안 사각지대였던 중소기업·지방 기업의 디자인 접근성이 높아진다. 바우처 확대로 디자인전문기업과의 협력이 늘어난다.
중기: 활용률이 50%를 넘어서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좁혀진다. K-디자인 스타 기업이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면서 국내 디자인 산업의 단가와 품질이 함께 올라간다.
장기: 활용률이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면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이 디자인에서 나오는 구조가 자리 잡는다. 경제적 가치의 감소 추세가 반전되고, 디자인이 양적 규모가 아니라 질적 가치로 경제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이 포스팅과 연결된 주제
국가 디자인 역량 고도화 — 기업 활용률은 국가 역량의 가장 직접적 지표
국가 디자인 분류 체계 일원화 — 측정 기준이 통일돼야 활용률 정책이 가능
공공조달 가치기반 발주 전환 — 정부 조달이 디자인 수요를 만든다
서비스 R&D 투자 확대 — 서비스디자인 활용률 제고의 투자 근거
참고 자료: 산업통상부·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산업통계」(통계법 승인통계 제115026호) — 2023년 기준 디자인활용률 37.3%(전년比 +0.03%p), 산업규모 18.6조 원, 디자인전문업체 20,044개, 경제적 가치 159.9조 원(전년比 △10.3%); 대기업 67.4%·디지털멀티미디어 66.2%·패션텍스타일 58.2%·서울권역 52.1% / ※ 2025 디자인산업통계(2024년 기준) 공표 — 세부 확정 수치 확인 후 갱신 권장 / 산업통상부, 「글로벌 수준 디자인 기업 육성방안」(2025) / UK Design Council, "The Value of Design"(디자인 1파운드 투자 → 매출 20파운드·수출 5파운드 증가) / 덴마크 디자인센터(DDC), Design Ladder 및 덴마크 정부 디자인 투자효과 조사(총매출 +250%, 수출비중 34% vs 18%) / 일본 경제산업성·특허청, 「디자인경영 선언」(2018) / DesignSingapore Council, Design Masterplan / IDEO 사례 / 윤성원, 『모두의 질문Q』(2025) /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이 궁금해』(2022)
2026.06.02. 윤성원 + 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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