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공공정책과 디자인은 왜 만나야 할까?

2023. 4. 2. 23:11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이너를 위한 안내서

4장.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공공서비스디자인

4.1. 공공정책과 디자인의 만남

4.1.1 공공정책과 디자인은 왜 만나야 할까?

'디자인은 공공 정책 및 서비스 개발 시에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행동 변화를 유도하여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세심한 디자인의 개입 여부가 교통사고율 같은 주제에까지도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영국과 독일을 우리나라의 높은 교통사고율과 비교해 지적한다. 공공정책과 공공서비스를 현명하게 디자인한다면 효과적으로 국민의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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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틀어 국민이 중심이 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가장 노력했던 지도자라면 세종대왕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볼 때 국민의 불편 해소와 편안함의 추구를 의사결정에서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세법 개정에 관한 일화를 보면 국민을 중심에 두고자 하는 세종대왕의 진심이 더욱 드러난다. 세종은 기존의 세금 정책인 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 풍흉을 직접 조사하여 세금을 매기는 방식. 당시 토지를 조사하는 위관(委官)들의 성향에 따라 세금이 좌우되는 등 각종 폐단이 발생하였다.)이 문제가 되자 이 정책을 폐지(세종 12년)하고 새롭게 개선된 세금 정책인 공법을 확정(세종 26년)하기까지 14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국민들의 참여와 의견 수렴을 거쳐서 정책을 만들어 간다.
그 와중에 실로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우선 기존 세법의 문제를 파악한 후, 선비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하여 나은 방안에 대해 의논하였다. 계획된 새 세법에 대해 고관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무려 17만 명의 전 국민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 의견을 바탕으로 개선안을 개발하였다. 개선안은 몇 개의 지역을 선별해 먼저 시범 적용하면서 위험요소를 미리 파악하고 문제점을 보완한 후에야 비로소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시행했다.
하나의 정책이 설계, 집행, 평가, 개선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14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릴 만큼 세종대왕은 백성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다는 민본, 애민(愛民)의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준 위대한 리더였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공공정책(일반적으로 정책이란 주요 행동지침 또는 기본방침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공정책은 권위 있는 정부 기관이 공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결정한 활동지침이다. 정책은 연구자의 관점, 목적이나 분석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 다의적 개념이지만 이러한 개념이 상호모순되기보다 상호보완적인 것으로서 인식해야 할 것이다. - ‘현대행정학’, 2013, 법문사)은 이처럼 국민을 배려하는 수요자 중심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공공정책이 형성되고 실현되는 과정은 많은 혁신을 거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이 정착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공공정책은 수요자의 요구를 바탕으로 기획되거나 세심한 배려를 통해 설계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들은 낮은 편의성과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다. 구청, 우체국, 보건소 할 것 없이 서비스가 제공되는 관공서나 공기관을 중심으로 공공의 영역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불편함은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삶의 피로도를 높여 국민의 행복감을 낮추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국민 중심의 정부가 되자면 국민을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론과 이것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 민간 서비스산업에서는 서비스 고도화 방법론으로서 고객 관찰을 바탕으로 잠재적 욕구를 발견하고 서비스 경험을 향상하게 하는 ‘서비스디자인’(서비스를 설계하고 전달하는 과정 전반에 사용자 중심의 리서치가 강화된 디자인 방법을 적용하여 사용자의 경험을 향상하게 하는 분야로서 제조에 서비스를 접목하거나 신서비스 모델을 개발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함)이 주목받고 있다.
‘공공서비스디자인’(공공정책 및 공공서비스를 구상해서 전달하는 과정 전반에 디자인적 사고를 적용함으로써 수요자의 욕구를 포착하고 행동 변화를 효과적으로 유도하여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서비스디자인 방법으로 공공정책과 공공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정책과 공공서비스의 개발에 디자인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디자인은 최근 공공부문의 정책 및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디자인은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유발하는 심리적 스위치를 켜는 역할을 하는 인간 중심의 서비스 개발 방법론으로서 특히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매우 실용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4장에서는 공공분야에 서비스디자인의 도입이 필요한 이유, 공공서비스디자인의 개념과 사례를 소개한다. 먼저 최근 공공정책과 공공서비스에 어떤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디자인 방법의 적용이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다음으로는 공공서비스디자인이 어떤 개념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설명한다.

공공분야에 새로운 혁신 동향과 디자인이 적용된 사례를 통해 기존 서비스 혁신 방법과의 차별점과 효과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간판, 환경시설, 공공 건축 등에 국한되어 있던 기존의 디자인 역할이 삶의 다양한 측면으로 확장되는 현시점에서 아직 디자인이 활용되지 못했던 공공정책과 공공서비스의 영역에 새로운 디자인이 도입됨으로써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 설계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질서를 지키는 국가 디자인하기

2012년 통계 기준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10.8명으로 OECD 33개국 중 1위,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4.1명으로 1위이다.(‘교통사고 사망자 수 36년 만에 감소…5천 명 이하’, 한겨레신문, 2015.2.13.)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2020년판 OECD회원국 교통사고 비교’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건수가 420.8건으로 OECD 회원국 평균 209.1건에 비해 약 2배 많고, 조사된 24개국 중 가장 많아 24위를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다.(‘2020년판 OECD회원국 교통사고 비교’, 도로교통공단, 2020.11. 8p.)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이렇게 많이 죽거나 피해를 보고 있는 이유가 신호등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런던의 거리. 사진출처 : https://eyesfinder.com/wp-content/uploads/2014/11/london.jpg
사진 출처 : https://eyesfinder.com/wp-content/uploads/2014/11/london.jpg


이것은 런던 시내 사진이다. 영국인은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런던은 2만 개가 넘는 엄청나게 많은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도시로도 유명하다. 시내버스 후면에도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갓길 주차 차량을 적발하기도 하는 정도로 공공 교통 환경은 철저하게 감시, 관리되고 있다. 기술과 규제 중심으로 정책 목표를 실현하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을 들여야 한다.

많은 예산이 들지 않고서도 교통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더 현명한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여러분이 공공서비스 제공자라면 당연히 그 방법을 선택하려 하지 않을까? 다음은 독일의 사례이다.

사진 : 베를린의 거리



독일 국민 역시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국민으로 인식되어 있다. 위는 베를린의 사진이다. 신호등이 건널목의 앞쪽 정지선 옆에 나란히 배치된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신호등 말고는 다른 신호등은 없다. 그래서 운전자가 정지선을 지나쳐서 차를 세웠다가는 신호등이 운전자의 천장 쪽이나 측면 뒤쪽에 위치하게 되어 신호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운전자는 자연히 안전선을 지키게 되고 네거리는 질서를 찾게 된다. 기술과 규제의 힘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수요자들의 행동을 조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사진 : 광화문 거리 (사진 출처 : 다음 로드뷰)
사진 : 광화문 거리 (사진 출처 : 다음 로드뷰)
사진 : 세종시 거리



우리나라 네거리에는 신호등이 건널목 정지선 옆에 배치되어 있는데 위쪽(광화문의 경우)이나 아래쪽(세종시의 경우)으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제각각이다. 신호등은 사거리 건너편 멀찌감치 앞에 하나가 더 있다. 대부분의 사거리에 이렇게 두 쌍씩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운전자는 건널목 앞쪽에 그어진 정지선쯤은 무시하고 더 지나쳐서 차를 세워도 신호를 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운전자가 운전하면서 법을 어겨도 되는 환경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급한 처지에 있는 운전자는 눈치껏 앞쪽으로 슬슬 이동하다가 정지선을 넘게 된다. 이것은 다른 운전자들의 심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은 서로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익숙한 상태가 되고 만다.
운전자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게 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예산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다. 모든 네거리에 이렇게 두 쌍의 신호등이 설치되다 보니 설치비가 두 배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매년 이것을 유지하는 비용도 두 배가 든다. 신호등 제조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이것은 명백히 세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교통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인과 독일인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교통법규를 안 지킨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한국은 OECD 가입 후 지금까지 교통안전 부문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그 이유가 국민성 때문이라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미개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준법 국민을 만드는 것은 섬세하게 디자인된 환경이다. 국민들의 행동을 디자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환경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 그 원인은 환경이 잘못 디자인되었기 때문이고, 환경이 잘못 디자인된 것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잘못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정책과 공공서비스를 설계하는 과정을 지금보다 더 현명하게 디자인한다면 이 문제는 개선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정책의 설계 과정에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를 토대로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인 서비스디자인의 도입이 고려되어야 한다.

* 출처 : 공공정책, 책상에서 현장으로. 2017. 한국디자인진흥원

* 출처 :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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