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 23:34ㆍ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이너를 위한 안내서
2.4. 서비스디자인은 무엇을 하는가?
2.4.1 세상은 여전히 공급자 중심
'우리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세상에 살고 있으며,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있는 사소한 불편함이 거대한 비효율과 스트레스를 만들어낸다. 디자이너는 노약자와 장애인 등 소외된 소수의 불편까지 고려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급자가 수요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혁신하며 더 나은 디자인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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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요자 중심의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아니라는 증거가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자동판매기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증거다. 동전투입식 자동판매기가 1800년대 후반 개발(특허를 받은 최초의 자판기는 영국 요크셔의 Simeon Denham이 1857년 개발한 우표 자동판매기이다.)된 후 2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대부분 자동판매기는 허리가 불편한 노약자나 허리를 굽히기 힘든 장애가 있는 사람이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나쁜 형태이다.
물건을 집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불편을 감수하고 이용하거나 허리를 굽히기 고통스러운 고령자들은 자판기를 이용하지 않는다. 자판기 사업자도 원래 고령자들은 자판기 사용을 선호하지 않으니 고령자를 위한 제품은 비치할 필요가 없다고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왜 모든 사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허리쯤에 맞추어 음료가 배출되는 자동판매기를 만들지 않는 것일까? 자동판매기는 전기로 작동하니 음료가 꼭 바닥으로 떨어지게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 사람은 적당히 건강하므로 사소한 장애는 쉽게 극복하고 그 상황에서 어떤 위화감이나 문제점이 존재하는지 찾아내기 어렵다. 이 불편함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위화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한(또는 불편한) 사람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세상에 갇혀 살고 있지만, 그 불편함이 치명적이지 않아서 감지하지 못할 뿐, 따지고 보면 여러 불편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샤워할 때 눈을 감고 있어서 샴푸와 린스를 쉽게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패키지 모양이 같고 샴푸와 린스를 구별할 수 있는 표식이 작아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해야 하니 패키지 모양은 똑같아야 하고 제품명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니 샴푸나 린스라는 표시보다 브랜드가 더 커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샴푸와 린스를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 사소한 불편이니 상관없다고? 건강하지 못하거나 약하고 어린, 나이 든 사용자들에게는 사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불편일 수 있다.
규칙, 규제를 통해 사소한 불편을 찾아 제거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은 표준규격 내에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 규격이 포함되어 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샴푸와 린스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패키지 옆이 울퉁불퉁한 돌기가 있는 것이 샴푸, 린스에는 돌기가 없어 두 용기가 같은 형태라고 해도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패키지를 구별할 수 있다.
* 사진 출처 : https://press.ikidane-nippon.com/ko/a00005/
* 사진 출처 : https://t1.daumcdn.net/cfile/blog/20056D334F3E338307
이것은 디자이너 성정기가 눈을 감고 샴푸와 린스 용기를 구분하지 못해 실수했던 경험을 토대로 눈감고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세로 홈과 가로 홈을 내 디자인한 샴푸와 린스 용기이다. 이것은 시각장애인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2007년 독일 레드닷 콘셉트 어워드 독일 레드닷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디자인 공모전의 하나. 제품, 커뮤니케이션, 콘셉트 부문으로 나뉜다. https://www.red-dot.org/ 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를 수상했다.
이렇게 얼마든지 해결책이 있는데 왜 세상은 여전히 불편한 걸까? 공급자 관점에서 설계된 제품과 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불편이 대다수에게 치명적인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고착되다 보니 우리는 이것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있는 사소한 불편함은 거대한 비효율과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지뢰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보편적인 수요자는 느끼지 못하는 생활 속의 숨어있는 불편을 디자이너가 민감하게 감지해 내고 그것을 해결할 대안을 제시해야 좋은 디자인이 만들어진다. 노약자, 장애인 등 소외된 소수의 불편까지 고려해서 제품과 서비스가 잘 디자인된다면 다수의 수요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쉽고 편하게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모두가 불편을 덜 느끼는 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아직 많은 부분이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된 채로 남아있고 우리는 여전히 그 세상에 갇혀있다.
이케아의 디자이너 그레엄 핀들리(Graeme Findlay)가 책상 밑에 있는 아래 사진은 자신의 아이가 체험하고 있는 세계로 들어가 보기 위해 연구 중인 장면이다. 아이들을 위한 수납장은 지금까지 천편일률적으로 네모난 서랍들을 하나로 묶어놓은 모양이었다.
Graeme Findlay는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어떻게 물건과 환경과 관계를 맺고, 어떻게 물건을 보관하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가구와 독특한 관계를 맺으며 가구 자체도 놀이의 대상이 됨을 알게 되었고 정형화된 박스형 수납장 대신 장난감을 고정하는 고무 행거를 디자인하게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장난감을 정리하는 행동 자체를 놀이처럼 하게 되는 개념의 모듈형 수납시스템 ‘Makalös’은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수요자의 처지가 되어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다.
* 출처 : Closing the delivery gap, 2005, Bain & Company, Inc.
컨설팅회사 배인앤컴퍼니(Bain & Company, Inc.)가 2005년 세계 362개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5%는 "우리 회사가 고객지향적인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또 80%의 기업들은 자기 회사가 경쟁사보다 차별화되고 우수한 상품,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업들의 믿음과 고객의 인식은 너무나 달랐다. "당신과 거래하는 기업이 경쟁사보다 차별화되고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느냐"는 똑같은 질문에 대해 고객 중 불과 8%만이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이 결과를 통해 서비스의 제공자인 기업은 고객의 속마음에 숨어있는 욕구를 포착해 내는 데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공자는 제공자로서 자기 입장과 시각을 가지고 있어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기 어려운 것이다.
공급자인 기업은 수요자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공급자는 제공자로서 자기 입장과 시각을 가지고 있어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기 어려운 것이다. 공급자에게 ‘수요자 중심으로 생각해야 함’을 지적하면 대부분 ‘우리는 원래부터 수요자 지향의 노력을 해왔다’고 말한다. 공급자가 가진 현실 인식이 고객이 느끼는 체감과 차이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처럼 A지점은 100% 공급자 중심의 제품서비스를, B지점은 100% 수요자 중심의 제품서비스를 의미한다고 가정해 보자. 초기에는 전적으로 공급자의 관점인 A지점에서 제품서비스를 제공했겠지만, 점차 수요자 중심의 B의 방향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아주아주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변화는 하고 있기에 공급자들은 ‘우리는 늘 수요자 중심의 혁신을 해오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결과가 충분히 수요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제품과 서비스가 수요자 중심인가 아닌가의 판단은 수요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8%, 앞서 언급했던 배인앤컴퍼니의 조사 결과로 설명된다. 수요자 중심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 출처 :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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