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서비스혁신 방법으로서 서비스디자인의 특징

2023. 4. 2. 23:56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이너를 위한 안내서

'서비스디자인은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의 심리와 행동에 집중하여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존스 홉킨스 병원의 사례를 통해 인간 중심의 관점을 강조한 디자인적 접근이 서비스산업에서의 문제 해결에 탁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비스디자인 기업은 고객의 생각과 행동에 기반한 혁신적 아이디어로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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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호시노 리조트의 경우와 같이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를 정량적 분석의 대상으로 보고 이를 통해 내부자원을 재배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서비스디자인 기업이 이 문제를 다루었다면 리조트 사용자 중 특정한 개인의 심리와 행동을 중심으로 충족되지 않고 있는 고객 욕구를 찾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고, 또 이해관계자 간의 관계성에 주목해서 통합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식으로 실행되리라 생각한다. SSME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서비스디자인은 인간의 감성과 심리, 경험에 집중하는 차이점이 있다.

표 : 기존 서비스 혁신 방법과 서비스디자인의 차별점(윤성원, 김미소, 2011~2014)



존스 홉킨스 병원(Johns Hopkins Medicine)*은 의사들이 퇴원 요약지를 잘 작성하지 않는 것이 고민이었다. 경영컨설팅 회사에 문제해결을 요청했었지만, 컨설팅 결과는 실패였다. 병원 측은 보다 창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끝에 같은 과제를 디자인기업에 다시 의뢰하게 된다. 디자인회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 존슨 홉킨스 병원 :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는 병원으로 20년 이상 연속 미국 최고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명성 있는 의료기관

존슨홉킨스병원 웹사이트 : www.hopkinsmedicine.org



퇴원 요약지에는 퇴원하는 환자의 진료기록과 퇴원 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기록된다. 퇴원 시점에 의사가 작성해주어야 하지만 한참 지나서야 작성되는 문제가 있었고 그마저 절반쯤 작성되거나 내용도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너무 많은 내용을 기재해서 필요 정보를 찾기 어려운 예도 있었다.

의사 대부분은 퇴원 요약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고, 인턴들에게 작성을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인턴들은 퇴원 요약지 작성법을 배운 적도 없었고 작성할 줄 몰랐다. 퇴원 요약지는 일반 병원에서 참고하는데, 일반 병원에서는 누가 작성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상세한 정보가 필요해도 다시 요구하지 못했다. 작성자 또한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자기가 잘못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프로젝트를 맡게 된 디자인기업 IDEO는 시작하면서 병원의 대표적인 이해관계자를 의사, 간호사, 환자, 환자 가족의 네 그룹으로 구분하고 이들을 움직이는 심리적 동기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한 조사를 했다.
의사의 의사결정을 이끄는 근본적 욕구, 동인(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IDEO가 찾아낸 것은 ‘공포’라는 단어였다. 의사는 어떤 누구의 조언도 받을 수 없는 고독한 존재다. 때로는 의사의 결정이 환자의 생사도 가른다. 의사는 설령 확신이 없더라도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믿고 실행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그 상황 자체가 두렵다는 것이다. 또 의사들은 자기가 정답을 모르고 있을 때도 이를 환자에게 숨겨야 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의사들의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디자인적 접근은 ‘어떻게 하면 의사에게 공포심이라는 무거운 심리적 짐을 줄여줄 수 있을까? 그 공포심을 극복하고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을 위해 디자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IDEO는 의사들이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퇴원 요약지가 잘 작성되지 않는 것은 두려움이 작동하기 때문으로 추측했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남에게 물어보지 못하는 심리, 세부요소를 빠트리면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뭔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 싫다는 무의식과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해석했던 것 같다.
설문이나 인터뷰만으로는 숨겨진 심리를 알기 어렵다.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문제에 엮이기 싫어요. 퇴원 요약지를 알아보기 쉽게 작성하기 싫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솔직하고 솔직하지 않고의 여부를 떠나서 잠재되고 억압된 욕구이다 보니 말로 표현하기 불가능하다. 공감하는 능력과 민감성이 뛰어난 디자이너가 말이나 글이 아닌 행동 관찰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먼저 인턴과 레지던트들에게 퇴원 요약지 작성법을 교육했다. 주치의가 회진할 때 중요 정보를 요약 기록해서 그것을 퇴원 요약지에 적어 넣을 수 있게 하였다. 환자가 퇴원 요약지를 들고 원외 의료기관을 찾았을 때, 그 기관의 의사들이 이를 읽고 평가, 피드백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의사들은 성적이 나쁘게 나오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그 효과는 매우 좋았다. 이 조치 후 환자 퇴원 뒤 3일 이내에 90%의 퇴원 요약지가 작성되었고 2주 후에는 99%가 작성되게 바뀌었다.

* 위 사례가 소개된 다른 글 : '디자인이 궁금해' 중 '욕구를 찾고, 혁신을 만드는 디자인'


이것은 디자인의 차별화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사례이다. 사용자의 사정을 공감하고, 그의 행동을 관찰하고, 마음속 어떤 심리가 그 행동을 만드는지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SSME가 제공자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주목한다고 했는데, 의사가 처해 있는 문제를 생산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우선 의사들이 환자에 집중할 수 없는 요인이 많음에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너무 잡무도 많고 해서 결과적으로 환자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환자에 집중할 수 있게 하자면 환자를 대하는 것 이외의 요소들을 최소화하는 해결책이 필요할 것이다. 생산성과 효율성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면 우선 의사의 자원(일할 시간, 소통의 대상 등)이 부족하다는 점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 많이,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해결 방향이 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생산자의 생산력에 집중하는 관점이다. 서비스 제공자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면 서비스가 좋아진다고 보는 시각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의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이상 그 해결책은 디자이너보다 공학적인, 분석적인 접근을 하는 전문가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된다.

반면 사용자의 경험과 심리에 집중하게 되면 그것은 게임의 규칙을 뒤집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디자이너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IDEO의 헬스케어 부문장이었던 스테이시 창(Stacey Chang)은 실은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공학자이다. 그런데도 팀장으로서 디자인 팀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디자인전공을 해야만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전공인가와 무관하게, 어떤 가치관과 철학으로 문제에 접근하는가가 차이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사실은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늘 인간을, 인간의 심리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존스 홉킨스 병원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생산성과 효율성 대신 감정과 심리에 집중하는 것이 서비스산업의 문제를 포착하고 해결하는데 탁월한 문제 인식과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간호사의 의사결정, 행동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환자에 대한 배려심, 동정심, 연민’이었다. 그 발견에 이르게 된 디자이너는 간호사의 배려심이 방해받지 않고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디자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찾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간호사의 행동을 관찰하다 특이한 장면을 포착한다.(사진) 환자의 상태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기존의 단말기는 간호사가 양손으로 조작해야 하는 것이어서 한 손으로는 환자의 손을 잡고 있었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기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고 싶은 심정이 크지만 동시에 해야 할 일도 많다. 마음속으로 환자를 아끼는 마음이 환자를 붙잡은 손에 표현되어 있었다.

그림 : 간호사의 환자를 위한 배려심을 알 수 있는 장면. IDEO는 현장의 관찰조사를 토대로 간호사가 환자를 보살 필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조작 가능한 의료기기를 디자인하게 된다

* 관련 동영상 : '디자인은 디테일에 있다'. Paul Bennett. TED 강연
IDEO의 디자이너 Paul Bennett도 TED의 강연 영상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05. https://www.ted.com/talks/paul_bennett_finds_design_in_the_details

 

Design is in the details

Showing a series of inspiring, unusual and playful products, British branding and design guru Paul Bennett explains that design doesn't have to be about grand gestures, but can solve small, universal and overlooked problems.

www.ted.com

 

위의 결과로 개발된 제품

 

IDEO는 ‘요추천자’ 기기*로 시술받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를 위해 한 손으로도 쉽게 조작, 입력할 수 있고 한 손으로는 환자를 돌볼 수 있는 기계(Medtronic)를 개발하였다. 스테이시 창은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간호사와 관련해서는 효율성을 증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며 “실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하면 간호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환자의 돌봄을 지원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요추천자(腰椎穿刺, lumber puncture, LP) 기기 : 척수액을 채취하는 수술을 할 때 사용하는 의료기기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퇴원 요약지의 문제를 해결했던 사례나 간호사가 조작하는 의료기기를 디자인한 사례 모두 디자인적 관점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의료진을 서비스 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보고 그 생산력을 최대화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고쳐야 할까를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중심적인 관점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글로벌 기업들이 고객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시장을 찾아내기 위해 디자인기업에 서비스 개발 프로젝트를 의뢰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말해 고객의 생각과 행동에 집중하여 새로운 혁신적 아이디어를 찾고 이를 통해 잠재되어 있던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하는 디자인기업의 강점이 곧 서비스디자인 기업에 주어질 중요한 역할과 기회를 만들게 될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세계적으로 서비스디자인 기업이 생겨나고 있고 글로벌 기업에도 인하우스(기업 내부에 있는 디자인 조직) 서비스디자인 조직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기존의 상품/서비스 기획 부서에서 해오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역할에 대한 필요가 생기고 있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 출처 :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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