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4. 23:24ㆍ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인 성공사례
1) 금융산업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 개발. 더 저금하게 하는 디자인, ‘잔돈은 가지세요. Keep the change’
미국, IDEO
세계 최대의 디자인기업 IDEO가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의뢰를 받아 개발한 ‘잔돈은 가지세요(Keep the Change)’라는 이름의 금융서비스이다. 이것은 행동을 바꾸는 디자인의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가?
'미국의 디자인기업 아이데오(IDEO)는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BoA)의 의뢰를 받아 개발한 ‘잔돈은 저금하세요(Keep the Change)’라는 이름의 금융서비스 디자인으로 무려 1,200만 명의 은행 고객을 창출하는, 그야말로 ‘대박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일목요연하게 디자인으로 형상화한 ‘잔돈은 저금하세요’ 서비스는 시행 첫해에만 250만 명의 신규고객이 생겼다. 2006년에는 미국 경제잡지 비즈니스위크로부터 ‘사회경제적 영향을 미친 최고의 서비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비스의 요체는 체크카드로 지불하는 물건 값의 거스름돈을 돌려받지 않고 그 차액을 저축 계좌에 바로 입금해 주는 것. 예컨대 4,8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5,000원을 결제하면 200원을 잔돈으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별도 계좌로 이체시키는 방식이다.'
[창조경제 이끄는 서비스디자인] <1> 1200만 명 고객 늘린 BOA. 2013.05.22. 서울경제.
기존의 스타일링을 위한 디자인의 개념으로 보자면 금융서비스라는 분야는 디자인이 별로 쓰임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분야라 할 수 있다. ‘잔돈은 가지세요’ 서비스의 핵심 아이디어는 체크카드로 지불하는 물건값의 거스름돈을 돌려받지 않고 그 차액을 저축 계좌에 바로 입금해 주는 것이다. 4,8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 나머지를 잔돈으로 주는 대신 별도의 계좌로 이체시킴으로써 저금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언제 사용할지 모르는 잔돈이 늘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것이 귀찮지 않았던가? 그걸 예금으로 바꿔주니 은행도 좋고 고객도 좋고. 정말 멋진 아이디어다!
그런데 이것은 현금을 사용하는 서비스도 아니고 체크카드를 쓰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본래 자기 통장에 있던 예금액을 다른 계좌로 옮기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서비스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마도 경제학과 마케팅, 기술적 관점에서 이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도 아닌, 의미 없는 비즈니스 모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서비스 이용자는 금융 전문가가 아니다. 대부분의 서비스는 일반인을 위한 것이기에 인간의 보편적 욕구나 사고방식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자신을 모른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항상 (우리가 사용자를 모르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사용자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중년 주부들의 행동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한 결과 저축에 관심은 많지만, 왠지 어렵고 복잡하고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가계부를 쓰는 주부들이 각 상품의 금액을 계산해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에 번거로움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더 싸게 느껴지도록 판매 가격을 1만9천8백 원과 같이 정하기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전 세계 기업이 다 이모양이다.) 어떤 주부는 12.6달러를 사용했지만 가계부에 13달러로 기재하고 잔돈은 따로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잔돈이 나타나지 않게 된다면 주부에게는 약간의 여윳돈이 생기는 부가적 이득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비스의 제목도 '잔돈은 가지세요'가 되었다.
구매 행동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물건을 사고 남는 거스름돈을 저금통에 모아두었다가 은행에 저축하는 습관을 바탕으로 이를 더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서비스모델로 구현하게 된다. 이런 서비스를 사용하면 저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실제로 저축하게 된다.
인간의 의사결정이 실제로는 이성이 아니라 상당 부분 감정에 따른 결과이고 인간은 심리적 동물이라는 점이 서비스산업에 디자인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결과는 무엇인가?
‘잔돈은 가지세요’ 서비스는 불과 3개월 만에 20만 명, 시행 첫해에는 250만 명의 고객을 끌어들였고, 결과적으로 1,200만 명의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개발된 다음 해인 2006년 비즈니스위크에 의해 ‘사회경제적 영향을 미친 최고의 서비스’로 선정되었고 ‘세계 상품개발관리협회(PDMA) 선정 최고 기업 혁신상’을 수상하였다.
저축을 권장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캠페인 수준이 아니라 고객이 바라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고객이 저금할 수 있도록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구체적 동기부여 조건을 디자인했다는 것이 기존의 디자인과 비교되는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례는 서비스디자인의 특징을 매우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사례를 통해 서비스디자인의 특징을 ① 기존 디자인과의 차별점, ② 타 영역(경영컨설팅)과의 차별점으로 구분해 살펴보겠다.
① 기존 디자인과의 차별점 -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다.
금융서비스 산업을 위해 기존의 디자인이 기여해 왔던 역할은 무엇일까? 기존의 디자인은 광고, 브로슈어, 브랜드, 사이니지, 통장, 카드, 건축, 인테리어, 매뉴얼, ATM기기, UX, 웹, S/W UI, UX.... 등 금융서비스의 터치포인트(고객과 서비스 제공자가 만나는 접점)를 디자인해 왔다. 그것은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하고,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잘 전달하여 소비자의 서비스 이용을 촉진하는 측면에서 설계되고 제공된다. 그러나 ‘잔돈은 가지세요’ 서비스는 소비자가 ‘더 저금하게끔’, 행동 변화를 끌어내는 새로운 개념의 금융서비스를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기존 디자인과 큰 차별점을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에 따라 서비스디자인은 기존 디자인과 다른 새로운 역량이 필요하게 된다. 기존 디자인은 이미 주어진 조건(정해진 스펙 또는 규정된 문제) 안에서 문제 해결자로서 역할을 해 오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면 되었었다. ‘어떻게’의 영역에서는, 문제를 푸는 ‘방법론’과 ‘스킬’에 집중하면 되었다. 서비스디자이너는 ‘왜’ 그리고 ‘무엇을’ 디자인해야 할 것인가와 같이 조건을 규정하는 새로운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서비스디자이너는 기존 디자이너와 또 다른 역량이 필요해졌다. 더 저금하도록,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디자인을 해내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어떤 역량을 더 갖추어야 할까?
② 타 영역(경영 컨설팅)과의 차별점 - 바라보는 관점, 태도, 접근법이 다르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디자인기업이 아닌 경영컨설팅 기업에 똑같은 과제를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경영컨설팅 회사 내부에서 ‘잔돈은 가지세요’의 아이디어가 제안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는 그 아이디어를 선택하였을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아이디어가 채택되기 어려운 토양이기에 아마도 아이디어는 채택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막연히 이렇게 하면 저금을 더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편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줄 수 있으나, 논리적으로 보자면 고객에게 어떤 경제적인, 실질적 부가가치를 주는 아이디어가 아님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보면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사람은 느낌, 감정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다. 금융산업이 가정해 왔던 합리적 인간 가설은 부정되었다. 사용자가 이런 서비스를 통해 저금할 수 있겠다고 느낀다면 그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고, 결국 저금을 더 하게 된다. 이성적 판단에 소구 하는 것보다 오히려 느낌과 감성, 심리적 터치가 더 유효할 수 있다. 가장 건조하고 이성의 관여도가 높을 것 같은 금융서비스업에서도 말이다.
경영전략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초기의 여러 가설을 부정해 가면서 최적의 대안을 찾는 수렴적 방법을 사용한다. 과학이란 조건이 통제된 상황에서의 동일한 투입은 늘 일정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항상성을 전제로 한다. 모든 조건을 합리적으로 고려한 모델을 통해 최적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기에 경영컨설팅 기업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하나로 수렴되기 마련이다.
이에 비해 디자인은 확산과 수렴을 반복하는 접근법을 취한다. 그래서 디자인기업의 개발과정에는 늘 시안 A, 시안 B, 시안 C... 와 같이 다양한 선택지가 등장한다. 의도적으로 변형을 만들어내고 그 변형 안에서 기존과는 좀 더 색다른, 창의적 해결책을 찾아내 또다시 변형하는 식으로 개발한다. 강성의 돌연변이가 종의 진화를 이끄는, 생태계 진화의 메커니즘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프로젝트에서도 IDEO는 20개 정도의 서비스 모델을 제시하였고 그중 채택된 아이디어가 ‘잔돈은 가지세요’였다.
이 사례는 서비스산업의 혁신을 위해서는 과학과 합리적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강박적 전제를 탈피해 고객의 잠재된 심리적 욕구에서부터 출발할 때 생각지 못했던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사례이다. ‘잔돈은 가지세요’ 서비스는 서비스산업에서 디자인이 기존의 역할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 관련된 글 : 해외사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잔돈은 가지세요’ 서비스. IDEO https://servicedesign.tistory.com/35#gsc.tab=0
'Keep the Change' 사례 소개, DALHAM : https://youtu.be/ZDg1BfzYmAU?t=41
* 출처 :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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