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03. 디자인 사다리, 각국의 동향

SERVICE DESIGN 2023. 7. 13. 02:02

디자인 활용은 단계적 고도화의 과정을 거치며 발전되고 있는데, 가치생산 과정에서 디자인의 역할보다 조직과 문화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역할이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는 이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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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디자인센터는 디자인의 활용단계를 4단계로 구분해 이를 '디자인 사다리'(Design Ladder)라고 이름 짓고 자국 산업의 디자인 활용 수준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측정하는 모델로 사용한다.
1단계. 디자인 미활용 단계
2단계. 디자인을 스타일링으로 활용하는 단계
3단계. 디자인을 프로세스로서 활용하는 단계
4단계. 디자인을 혁신도구로서 활용하는 단계
4번째 단계는 디자인을 기업의 최고 혁신 전략으로 활용하는 애플과 같은 기업의 경우를 말한다.

디자인사다리. 덴마크디자인센터. 2003

 

디자인 성숙도를 ‘사다리’로 비유하고 있는 이유는 디자인의 활용 수준이 1단계에서 4단계처럼 비약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디자인을 활용해 보아야 나중에 그것을 점차 고도화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2010년 서울시가 ‘디자인서울’을 슬로건으로 내세웠을 때 전시행정이 아닌가 하는 시민들의 부정적 여론이 많았고, 힘이 될 것 같았던 디자이너들 사이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의외로 많았다. 디자인사다리로 본다면 스타일링으로서 디자인을 사용하는 2단계일 뿐인데 왜 3, 4단계를 하지 않는가라는 식의 지적이 있었던 것이고 논란이 커짐에 따라 예산도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당시 1%도 되지 않았던 디자인예산이 그렇게 모두의 주의를 집중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큰 파급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갈 길이 멀고, 많은 시도가 필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산업단지의 입주기업 80% 이상이 아직 디자인을 접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디자인을 혁신전략으로서 활용하는 디자인 혁신기업의 등장은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창의성과 상상력이 주도하는 인간 중심의 산업단지를 위해 디자인이 혁신의 도구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타일링으로서 디자인의 활용이 양적으로 많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고, 이에 더해 디자인 활용의 양적 확대에 머무르지 않고 더 고도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산업단지에서 디자인을 활용한다면 어떤 주제부터 다루는 것이 바람직할까? 디자인이 활용되고 있지 않던 영역에서 디자인을 처음 활용할 때 좀 더 효과적인 분야 또는 주제가 따로 있지 않을까?
이것은 인간의 욕구 단계에서 착안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슬로는 욕구 단계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 : 인간의 욕구가 일련의 단계를 형성한다는 동기 이론.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의 욕구가 나타남)을 통해 인간의 욕구가 일련의 단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하나의 하위 욕구가 충족되면 위계 상 상위층의 다른 욕구가 생겨나는 인간 심리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욕구가 상위층으로 점진적으로 상승하게 된다고 본다면 디자인의 활용 과제 역시 단계적으로 고도화되는 로드맵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장 하위에 위치한 욕구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이다. 이는 물리적 가치 추구의 욕구이면서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의, 식, 주, 수면, 성에 관한 욕구)와 안전의 욕구(신체적, 심리적 안전 및 위험회피에 관한 욕구)에 관한 문제를 말하는데 이에 대한 디자인 과제들이 가장 먼저 다루어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그 기준으로 볼 때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디자인 적용 분야는 범죄 예방, 안전한 근로와 생활환경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욕구수준에 따른 디자인 정책 개발 프레임 워크 .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을 참고, 고위욕구와 저위 욕구에 해당하는 디자인정책 및 프로그램 사례



영국 디자인카운슬은 '공공을 위한 디자인' (‘Design for Public Good’. Design Council, 2013, PDF)
에서 디자인이 활용되고 있는 정황을 3단계의 계단으로 표현했다.
1단계. 디자인을 통한 문제해결
2단계. 조직 역량(일하는 방법, 조직문화)으로서 디자인의 활용
3단계. 정책을 위한 디자인

The Public Sector Design Ladder. ‘Design for Public Good’. Design Council, 2013



덴마크 디자인센터의 디자인 사다리는 '가치생산과정에서 디자인의 역할'에 관한 모델이다. 디자인 사다리의 4단계는 모두 영국 디자인카운슬의 3 계단 중 첫 번째 단계(Step 1)에 해당한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생산의 도구로서 역할을 넓혀가는 정황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의 수요시장의 요구 변화, 디자인에이전시의 역할 변화 등을 보면 분명 새로운 층인 2단계(Step 2) 이상으로 발전되고 있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는 가치생산과정에서 디자인의 역할에 관한 논의보다 가치생산자의 조직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디자인의 역할에 관한 논의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2 : 디자인 활용모델>

2013년 재화를 생산하는 가치창출 과정에서 디자인의 역할을 표현한 모델 가치 창출의 주체와 이해관계자의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는 디자인의 역할을 표현한 모델로서 기존 디자인사다리 (덴마크디자인센터)는 이 중 1단계에 해당됨

<그림 새로운 디자인 역할의 의미>


위와 같은 이해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의 공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디자인 사다리"(Design Ladder), 디자인의 발전 단계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이런 류의 내용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구글에서 "Design Ladder" 로 검색한 결과. 2023.7.15.



디자인을 통해 공공부문 혁신을 시도하는 각 국의 주요 조직들
* 출처 : 정부를 위한 디자인, 2016년 4월호, 월간디자인

다음은 공공부문의 디자인 주도 혁신을 위해(앞서 살펴보았던 1~3단계의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 운영되는 조직의 예이다.

(덴마크) 마인드랩(Mindlab) http://mind-lab.dk
MindLab은 세계 최초의 공공 부문 디자인 혁신 연구소.(2002~) 그 연구는 전 세계 여러 국가에 배치된 비슷한 실험실 및 사용자 중심의 설계 방법론의 확산을 촉발시켰다. 시민과 기업 중심의 정책개발 추구, 질 높은 공공서비스의 개발, 공공부문과 민간영역에서 쉽게 확산될 수 있게 하는 사용자 중심의 툴 개발, 사용자 중심의 정책개발을 위해 부처 간에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도록 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9년 Disruption Task Force라는 명칭의 수상 직속 조직으로 바뀌었다.

(호주) 사회혁신센터(TACSI, The Australian Center for Social Innovation) http://tacsi.org.au
2009년 설립된 독립적인 비영리기관이자 호주의 대표적인 사회혁신센터. 호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들을 직접 실행하면서 대안을 만들어내는 기관으로 사회학자, 인류학자, 서비스디자이너, 사회복지사, 마을 만들기 활동가, 파이낸스 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일한다.

(미국) 퍼블릭 폴리시 랩 Public Policy Lab http://publicpolicylab.org
퍼블릭 폴리시 랩은 2011년 발족한 뉴욕의 비영리 단체로, 디자인 방법론을 통해 공공 서비스와 그 전달 방법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참여 디자인 및 시스템 사고에 전문성이 있는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를 비롯해 커뮤니티 기반의 디자이너, 서비스 디자이너 등이 초빙 연구원으로 참여한다. 뉴욕시 여러 부처와 함께 적정형 주택 공급 서비스, 공립 고등학교 진학 안내 서비스, 소수계/여성 소유 사업체(MWBE) 지원 서비스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네덜란드) 케니스랜드 Kennisland www.kl.nl
‘지식 주도 사회 개발을 위한 원동력이 되겠다는 목표로 1998년 설립한 비영리 기관이다. 온ㆍ오프라인 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을 만들어냄으로써 사회적 지위나 지역에 상관없이 여러 시민들의 지식과 재능, 경험, 직관을 모으고 이를 통해 사회 혁신을 이끌어 낸다. 크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 교육의 개선 가능성, 효율적인 정부, 개방된 문화유산, 저작권법의 현대화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혁신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영국) 행동통찰팀 Behavioural Insight Team  www.bi.team
행동통찰팀은 영국 내각의 행동경제학 유닛이다. 경제, 심리학, 정책 입안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갖춘 연구원들이 행동과학 원칙을 바탕으로 공공서비스를 다시 디자인하고 있으며 <넛지>로 잘 알려진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가 자문으로 참여 중이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노벨 경제학상 수상,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의 행동경제학 이론을 근간으로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들은, 최근 스핀 오프(spin off)하며 독립적인 기관이 되었다. 현재는 영국, 시드니, 뉴욕에 오피스를 두고 전 세계 정부들을 돕고 있다.

기타 영국 정부와 디지털서비스디자인 설계 원칙, 호주의 디지털 정부 혁신 전담반(DTO)(사용자 니즈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공서비스 개발 운영에 서비스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호주 DTO는 2010~2015년 영국의 정부디지털서비스(GDS; Government Digital Service)를 벤치마킹한 것), 싱가포르 정부 내 디자인 조직인 ‘THE Lab’ 등의 사례가 있다. 싱가포르 정부의 경우, 디자인산업 육성 전략인 ‘디자인 2025’ 발표 시 ‘정부의 디자인 활용 확대(디자인 전문가 채용, 조직 구성, 시범사업 실행)’를 강조한 바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도 디자인의 혁신적 사례를 만들고 있는 위 기관들의 비전, 정책, 사업, 성과를 모니터링하고 연구하여 정책 수립 및 신사업 개발 시에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