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디자인 법제 통합

2026. 5. 18. 08:15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디자인 법제 통합

법이 다른 이유는 디자인을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핵심 문제
산업디자인진흥법(산업부)은 디자인을 말한다. 공공디자인진흥법(문체부)도 디자인을 말한다. 그런데 두 법이 말하는 '디자인'은 다른 것이다. 산업부의 디자인은 경쟁력이고, 문체부의 디자인은 문화·심미성이다. 법이 쪼개진 것은 결과가 아니다. 디자인을 이해하는 방식이 쪼개진 것이 원인이다. 이 인식의 분열을 해소하지 않으면 법을 아무리 통합해도 다시 쪼개진다.

* 이 블로그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관점/제안이며,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포함한 어떠한 기관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1. 현황과 문제점

법 분열의 뿌리 — 디자인은 예술인가, 산업인가, 서비스인가

한국 디자인 법제의 분열은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서로 다른 역사적 인식이 각각의 법에 굳어진 것이다.

산업디자인진흥법의 역사적 맥락: 이 법의 뿌리는 1977년 제정된 '디자인·포장 진흥법'이다. 이후 1991년 '산업디자인·포장진흥법'으로, 1997년 '산업디자인진흥법'으로 개정됐다. 법의 출발이 "수출품의 외관을 개선해 산업경쟁력을 높이자"에 있었다. 디자인은 산업의 도구였다.

공공디자인진흥법의 역사적 맥락: 2016년 제정된 이 법은 "공공 공간의 품격"을 목표로 한다. 소관이 문화체육관광부다. 디자인이 문화·예술의 언어로 다뤄진다. 국가·지자체가 조성하는 시설물의 심미성과 기능성이 핵심이다.

두 법은 디자인을 전혀 다른 언어로 정의한다. 산업디자인진흥법의 "산업디자인"은 "제품 등의 미적·기능적·경제적 가치를 최적화"하는 것이다. 공공디자인진흥법의 "공공디자인"은 "공공기관 등이 조성·제작·설치하는 것들의 미적·기능적·경제적 가치를 최적화"하는 것이다. 정의가 놀랍도록 비슷한데, 담당 부처와 예산 체계가 다르다.

국제 분류의 변화 — 디자인은 예술도 산업도 아닌 '창의 서비스'

UNESCO는 2025년 문화통계 프레임워크(FCS)를 전면 개정하면서 디자인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적으로 재정의했다. 2009년 FCS에서 디자인 활동은 일부가 '시각예술 및 공예(Visual Arts and Crafts)' 도메인에 혼재했다. 2025년 FCS는 디자인을 독립 도메인 F "디자인 및 창의서비스(Design and Creative Services)"로 격상했다.
이 변화가 한국 법제 논의에 주는 함의는 디자인을 산업(경쟁력)이나 예술(문화)의 하위로 보는 이분법 자체가 낡은 인식이라는 점이다. 디자인은 산업과 문화 양쪽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독립 영역이다. 이것이 분리된 두 법 체계를 통합해야 하는 개념적 근거다. 한국의 두 법은 각각 산업과 문화라는 낡은 이분법을 담고 있다. 2025년 국제 기준은 이 이분법을 이미 넘어섰다.

세 번째 법 발의 — 구조를 고치지 않고 층을 쌓는다

2025년 1월, 유니버설디자인 기본법안이 발의됐다. 취지는 정당하다. 장애·연령·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설계를 법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방식이 문제다. 이미 이원화된 법체계에 세 번째 독립 법안을 얹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관할 부처가 셋이 된다. 세 법의 디자인 정의가 각각 다르다. 사업자는 어느 법 창구를 쓸지 혼란스럽고, 정부는 세 법을 조율하는 데 자원을 쓴다. 잘못된 구조 위에 층을 하나 더 쌓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디자인을 둘러싼 행정 혼선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디자인의 영역은 지금까지 계속 확장되어 왔고 앞으로도 더 확대될 것인데 그에 따라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일일 것이다. 유니버설디자인 원칙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내용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세 번째 독립 법으로 담는 것이 아니라, 기존 법체계를 통합 재설계하면서 포용성 원칙을 통합 법 안에 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분열된 법이 실제로 만드는 문제

현장 담당자의 혼란: 공공 공간에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하려 할 때, 어느 법의 기준과 예산 체계를 따라야 하는지 불명확하다. 문체부 소관 공공디자인 예산과 산업부 소관 서비스디자인 지원이 연계되지 않는다.
서비스디자인의 사각지대: 2014년 산업디자인진흥법에 편입된 서비스디자인은 공공디자인진흥법의 범위에는 명시되지 않는다. 공공 서비스를 개선하는 서비스디자인이 어느 법의 보호와 지원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구조다.
예산의 중복과 공백: 두 법에 기반한 두 부처의 디자인 예산이 서로를 참조하지 않고 편성된다. 유사한 목표의 사업이 중복 발주되거나, 부처 경계에 걸친 과제는 어느 예산도 집행할 수 없는 공백이 생긴다.

2. 국내외 사례

🇰🇷 한국 — '가치'와 '실현'이 분리된 공공디자인 사업

문화체육관광부의 제2차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2023~2027)은 공공 공간의 심미성·기능성·안전성 향상을 목표로 한다. 계획은 문체부가 세운다. 그런데 이 계획을 실행하는 조달과 집행은 산업디자인진흥법 체계를 따라야 한다. 두 법의 디자인 정의와 조달 기준이 다르다. 결과적으로 계획이 수립된 부처와 집행 기준이 달라 현장 담당자들이 혼란을 겪는다. 공공디자인법은 "공공성·심미성"이라는 가치를 말하지만 구현 수단이 없다. 산업디자인진흥법은 조달·집행 수단이 있지만 공공성 기준이 약하다. 가치와 실현이 다른 법에 쪼개진 것이다.

🇬🇧 영국 — 단일 자문 기관이 모든 영역을 통합

영국 디자인카운슬(Design Council)은 2011년 독립 자선단체로 전환하면서 특정 부처에 종속되지 않는 범정부적 지위를 얻었다. 2011년 건축·환경 위원회(CABE)와 합병해 건축·도시·제품·서비스·공공·포용 디자인을 단일 프레임에서 다룬다. 영국에는 '산업디자인법'과 '공공디자인법'이 따로 없다. 디자인카운슬이 산업·공공·포용 영역을 하나의 전략 프레임으로 통합해 정부에 자문한다. 법이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전략이 영역을 통합한다. 2025년 영국 정부는 공공 디자인 증거 보고서(Public Design Evidence Review)를 발간하며 디자인카운슬에 범정부 자문을 의뢰했다. 이 보고서에서 '산업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은 구분 없이 국가 디자인 역량 전체로 다뤄진다.

🇸🇬 싱가포르 — EDB 산하 단일 기관이 산업·공공·포용을 통합

싱가포르 DesignSingapore Council은 경제개발청(EDB) 산하에서 운영된다. 산업 경쟁력과 공공서비스 품질, 생활 품격을 단일 기관이 통합 추진한다. "이 디자인은 산업부 소관인가 문체부 소관인가"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 구조다. 2025년 발표한 '싱가포르 디자인 가치 측정 연구'도 이 통합 구조의 산물이다. 디자인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가치를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디자인 영역이 단일 기관의 전략 안에 있기 때문이다.

🇩🇰 덴마크 — 법이 아닌 전략으로 통합

덴마크는 산업디자인·공공디자인·사회디자인을 별개 법률로 다루지 않는다. 덴마크디자인센터(DDC)가 정부와 협력해 국가 단위 디자인 전략을 수립하며, 산업 경쟁력·공공서비스·삶의 질 향상을 통합 목표로 삼는다. 법이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전략이 영역을 통합한다.

🇫🇷 프랑스 — 총리실 산하 범부처 통합

프랑스 DITP(인터부처 변환국)는 총리실 산하 기관으로 공공서비스 혁신과 디자인을 총괄한다. 산업디자인과 공공서비스디자인을 다른 부처가 따로 관장하지 않는다. 총리실 소속이기 때문에 어느 부처 소관 서비스에도 개입할 수 있는 조정 권한이 있다.

3. 제안

논지의 방향 — 법제 통합의 전제 조건

법제 통합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국가적 정의의 합의다. 산업·문화·포용이라는 세 언어가 하나의 언어로 수렴되어야, 하나의 법에 담을 수 있다. UNESCO 2025 FCS의 '디자인 및 창의서비스' 개념처럼, 디자인을 산업과 예술의 이분법을 넘어 경제·사회·환경을 통합하는 창의 역량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선행 작업이다.

  • 디자인 기본법 제정: 산업디자인진흥법·공공디자인진흥법의 공통 가치와 원칙을 담는 상위 법으로 디자인 기본법을 제정한다. 디자인의 국가적 통합 정의, 부처 간 협력 의무, 포용성 원칙을 하나의 법에 담는다. 두 기존 법은 이 기본법의 하위 법으로 역할을 재조정한다. 세 번째 독립 법(유니버설디자인 기본법안)을 별도 제정하는 대신, 디자인 기본법에 포용성 원칙을 명시하는 방식을 우선 검토한다.
  • 서비스디자인의 법적 지위 양법에 명시: 현재 산업디자인진흥법에는 편입됐지만 공공디자인진흥법에는 명시되지 않은 서비스디자인을 양법 모두에 명확히 규정한다. 어느 법 기준으로도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를 지원받을 수 있는 단일 경로를 만든다.
  • 공공디자인진흥법의 소관 재검토: 공공디자인이 문화·예술의 하위가 아닌 공공서비스 품질의 문제임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소관 체계를 재검토한다. 문체부 소관 유지 여부와 관계없이, 법의 언어를 "심미성·품격" 중심에서 "시민 경험·서비스 품질" 중심으로 재편한다.

제도

  • '디자인'의 국가 공통 정의 수립: 부처별 디자인 정의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국무조정실 주도로 디자인의 국가 공통 정의를 먼저 합의한다. 이 정의가 이후 법 통합과 분류 체계 개편의 기준이 된다.
  • 디자인 사업 단일 창구 운영: 기업과 디자이너가 산업디자인·공공디자인·서비스디자인 관련 지원을 한 곳에서 신청·안내받을 수 있는 단일 창구를 운영한다. 법 통합 이전에도 행정 서비스 차원에서 먼저 실현 가능하다.
  • KIDP-KCDF 역할 경계 명확화: 산업부 산하 KIDP와 문체부 산하 KCDF가 각각 수행하는 역할의 중복과 공백을 공식 분석하고 역할 경계를 조정한다. 법 통합의 선행 조건이자 실행 가능한 단기 과제다.

정책

  • 국가 디자인 전략 수립 (법 통합의 선행 작업): 영국·싱가포르·덴마크처럼, 법 통합 이전에 산업·공공·포용을 통합하는 '국가 디자인 전략'을 먼저 수립한다. 전략이 부처를 초월해 합의될 때 법 통합의 정치적 기반이 생긴다.
  • 디자인 법제 개편 로드맵 공개: 현재의 이원화·삼원화 구조가 언제, 어떻게 통합될 것인지 로드맵을 공개한다. 기업과 디자이너가 중장기 법제 방향을 예측할 수 있어야 투자와 사업 계획이 가능하다.
  • 유니버설디자인 기본법안 발의 과정 활용: 현재 22대 국회에서 심의 중인 유니버설디자인 기본법안을 단독 법안으로 통과시키기보다, 이 법안 논의를 계기로 디자인 법제 전체 통합 논의를 공론화하는 전략으로 활용한다.

사업

  • 디자인 법제 통합 연구: KIDP와 한국법제연구원이 공동으로 한국 디자인 법제 통합 방안을 연구한다. 영국·싱가포르·덴마크·프랑스의 단일 전략 또는 통합 기관 사례를 비교 분석하고, 한국형 통합 법안 초안을 작성한다.
  • 이해관계자 공론화 과정 운영: 디자이너·기업·행정 담당자·시민이 참여해 현행 법제의 문제와 통합 방향을 논의하는 공론화 과정을 운영한다. 법 개정은 현장의 경험이 반영될 때 실효성이 높아진다.

4. 기대효과

단기: 단일 창구 운영과 KIDP-KCDF 역할 경계 명확화로 기업과 디자이너의 행정 혼선이 줄어든다. 국가 디자인 공통 정의가 합의되면서 부처 간 디자인 언어가 수렴되기 시작한다.

중기: 디자인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국가 디자인 정의가 하나로 통합된다. 서비스디자인이 양법에 명시되면서 서비스디자인 사업자의 정책 접근성이 높아진다. 유니버설디자인 원칙이 통합 법체계 안에서 구현된다.

장기: 영국·싱가포르처럼 산업·공공·포용을 단일 전략 프레임으로 다루는 구조가 갖춰진다. 디자인을 "예술이냐 산업이냐"로 나누는 이분법이 극복되고, 디자인이 경제·사회·환경을 통합하는 국가 역량으로 공식 자리잡는다. 국민은 어떤 공공 접점에서도 일관된 디자인 경험을 받게 된다.

 

이 포스팅과 연결된 주제

  • 04. 국가 디자인 분류 체계 일원화 — 법이 통합되어야 분류도 일원화될 수 있다
    1. 디자인 정책 부처 간 분산 해소 — 법 분열은 부처 분산의 제도적 기반
    1. 국가 디자인 통합조정기구 신설 — 통합 법의 실행 주체
    1. 포용디자인 기준 의무화 — 유니버설디자인법 발의의 취지를 통합 법으로 구현

 

참고 자료: 산업디자인진흥법(1977년 '디자인·포장 진흥법' 제정 → 1991년 '산업디자인·포장진흥법' → 1997년 '산업디자인진흥법' → 2014년 서비스디자인 편입 개정) /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2016년 제정) / 제2차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2023~2027), 문화부 / 더인디고,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디자인 기본법, 22대 국회선 제정될까?"(2025.1.8.) / UNESCO, "2025 Framework for Cultural Statistics(FCS)" — 독립 도메인 F: "Design and Creative Services" / UNESCO, "2009 Framework for Cultural Statistics" / UK Design Council, 독립 자선단체 전환(2011) 및 CABE 합병 이력 / UK Government, "Public Design in the UK Government: Evidence Review"(2025) / DesignSingapore Council, EDB 산하 운영 체계 / DesignSingapore Council & Oxford Economics, "Measuring the Value of Design in Singapore"(2025) / 프랑스 DITP, 총리실 산하 조직 현황 / 윤성원, 『다시 디자인』(2025) /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이 궁금해』(2022) / 윤성원,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2025) / 윤성원, 『모두의 질문Q』(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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