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디자인 정책 부처 간 분산 해소

2026. 5. 18. 08:16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디자인 정책 부처 간 분산 해소

건너지 못하는 횡단보도가 만들어지는 이유


핵심 문제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부서가 있고, 신호등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고, 보도 포장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각 부서는 열심히 자기 업무를 했지만 그 결과 시민이 접하게 된 것은 건너기 불편한 횡단보도였다. 이것이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이 만드는 결과다. 디자인 정책도 마찬가지다. 산업부, 문체부, 행안부가 각자의 디자인을 운영하는 동안 국민이 경험하는 것은 일관성 없는 공공 환경이다.

* 이 블로그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관점/제안이며,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포함한 어떠한 기관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1. 현황과 문제점

세 부처가 만드는 세 개의 디자인 정책

한국의 디자인 정책은 세 개의 부처에 분산되어 운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디자인진흥법에 근거해 기업 디자인 역량 강화, 디자인 R&D, 수출 패키지디자인 지원, 디자인산업통계 등을 담당한다.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이 산업부 산하 주관 기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디자인진흥법에 근거해 공공 공간의 심미성과 기능성을 담당한다. 5년 단위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을 수립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문체부 산하 기관이다.
행정안전부는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을 운영한다. 2014년부터 산업부와 협력해 시작한 '국민디자인단' 사업(수행 한국디자인진흥원)은 2024년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2025년까지 운영되었다.
결과적으로 산업디자인은 산업부, 공공공간디자인은 문체부, 서비스디자인은 행안부·산업부 공동 관리라는 구조가 됐다. 어떤 디자인 사업도 두 개 이상의 부처에 걸쳐 있다.

분산된 정책이 만드는 세 가지 문제

첫째, 통합형 과제를 추진할 수 없다. 스마트시티 설계, 재난 대응 서비스디자인, 고령자 복지시설 환경디자인처럼 공간·서비스·산업이 동시에 얽히는 과제는 어느 한 부처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통합 추진 주체가 없으니 각 부처가 자기 영역만 하거나, 협의가 길어지거나,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둘째, 예산이 중복 또는 충돌한다. 문체부의 공공디자인 예산, 산업부의 디자인R&D 예산, 행안부의 공공서비스디자인 예산이 서로를 참조하지 않고 각자 편성된다. 비슷한 목표의 사업이 부처별로 따로 발주되는 경우도 생긴다. 반면, 부처 간 경계에 걸쳐 있는 과제는 예산의 빈틈에 빠져 추진되지 않는다.
셋째, 현장 담당자와 기업이 혼란을 겪는다. 어떤 디자인 지원을 받으려면 어느 부처에 신청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이 적용되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부처마다 디자인의 정의와 범위가 다르니, 같은 프로젝트가 한 부처에서는 지원 대상이 되고 다른 부처에서는 아닐 수 있다.

협력의 시도와 그 한계

행안부와 산업부가 2014년부터 공동 운영하는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은 부처 간 협력의 긍정적 사례다. 2024년까지 2,000여 개 과제, 20,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두 부처가 손을 잡자 의미 있는 성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 협력은 두 부처에 한정된다. 문체부의 공공디자인 정책과 연계되지 않는다. 국토부의 도시 계획, 보건복지부의 의료 서비스, 교육부의 교육 환경도 제각각 별도로 운영된다. 협력이 제도화된 것이 아니라 사업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담당자가 바뀌면 이 기반도 쉽게 흔들린다. 12년 간 이어져왔던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은 2026년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종료되었다.

문체부 2차 공공디자인 종합계획

2023년 시작된 제2차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2023~2027)도 부처 협력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한다. "부처 칸막이를 벗어나 국민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바꾸기 위한 통합적 관점의 공공디자인을 구현"하겠다는 것이 핵심 목표다. 문체부는 "국토부, 행안부 등 관련 부처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의지는 있다. 그러나 그 협력을 강제하거나 보장하는 구조적 장치가 없다.

2. 국내외 사례

🇰🇷 한국 —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 협력의 성과와 한계 (2014~)

행안부와 산업부의 공동 운영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은 10년간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공무원·국민·서비스디자이너 3자 참여형 정책 개발 모델로, 2024년까지 2,000여 개 과제와 20,0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정책과 공공서비스를 개선했다. 두 부처가 손을 잡자 어느 쪽도 단독으로 할 수 없었던 성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 성과가 두 부처에 한정된다는 것이 한계다. 스마트시티(국토부), 의료서비스(복지부), 교육 환경(교육부) 등 다른 부처 영역으로 이 방식이 확산되는 공식 경로가 없다. 부처 협력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사업 단위의 협력에 머문다.

🇬🇧 영국 — '정부 내 디자인' 네트워크와 공통 기준

영국은 GDS(정부디지털서비스), Policy Lab, Cabinet Office 디자인 팀이 같은 내각부 산하에서 운영되며, '정부 내 디자인(Design in Government)' 실무자 네트워크를 공식화했다. 2024년 10월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서 영국 공무원들이 "공공 디자인의 향후 10년 역량 구축"을 주제로 발표했다. 부처 경계를 넘어 디자인 실무자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구조다.
2025년 영국 정부가 발표한 공공 디자인 증거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공무원의 88%가 업무에 디자인을 활용한다. 이 수치는 단순 디자인 부서 인원이 아니라 전체 공무원 대상 조사 결과다. 부처 간 장벽 없이 디자인이 정부 전반에 작동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결과다.

🇫🇮 핀란드 — 총리실 산하 범부처 정책 실험 조율

2024년 헬싱키 '정부 내 디자인 국제 컨퍼런스'에서 핀란드 총리실과 에스토니아 정부 공무원이 공동으로 "행동 인사이트를 디자인 프로세스에 통합하기"를 발표했다. 특정 부처가 아닌 총리실 차원에서 디자인 방법론을 범부처적으로 조율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핀란드 총리실은 부처 간 정책 실험의 조율 허브 역할을 한다.

🇸🇬 싱가포르 — DesignSingapore Council, 단일 기관 통합 운영

싱가포르 DesignSingapore Council은 경제개발청(EDB) 산하 기관으로, 산업 경쟁력과 공공서비스 품질 제고를 하나의 기관이 통합 추진한다. 산업디자인·공공디자인·서비스디자인을 다른 부처가 별도 운영하는 한국과 달리, 단일 기관이 국가 디자인 전략 전체를 조율한다. 2025년 발표한 싱가포르 디자인 가치 측정 연구도 이 통합 운영의 산물이다.

🇩🇰 덴마크 — 범부처 조율의 제도화

덴마크는 총리실 산하 정부조율위원회가 매주 회의를 열어 부처 간 정책 충돌과 협력 사항을 조율한다. SGI 2024 덴마크 평가는 이 조율 체계를 "부처 간 협력의 기능적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복합 과제가 발생할 때 단일 부처가 아닌 총리실이 범부처 워킹그룹을 구성해 공동 해결한다.

3. 제안

  • 범부처 디자인 정책 협력 의무화 법적 근거 마련: 05번(디자인 법제 통합)과 연계해, 신설 디자인 기본법 또는 상위 법령에 부처 간 협력 의무 조항을 규정한다. 협력이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 법적 근거 격상: 현재 사업 단위로 운영되는 행안부·산업부 공동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을 행정절차법 또는 별도 규정에 법적 근거를 가진 상설 제도로 격상한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지속되는 구조를 만든다.

제도

  • 국무조정실 산하 범부처 디자인 정책 조정위원회 설치: 덴마크 정부조율위원회처럼, 산업부·문체부·행안부·국토부·복지부가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국가 디자인 정책 조정위원회'를 국무조정실 산하에 설치한다. 부처 간 디자인 사업의 중복·충돌·공백을 정기 점검하고 조율하는 공식 기구다.
  • 부처 횡단 디자인 정책 담당관 제도 도입: 주요 부처(국토부·복지부·교육부·과기부)에 '디자인 정책 담당관' 직위를 신설해, 해당 부처 정책 사업에 디자인 방법론이 반영되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이 담당관들이 KIDP와 연결된 실무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 디자인 정책 예산 통합 검토 체계: 기획재정부가 예산 편성 단계에서 부처별 디자인 관련 예산의 중복·충돌·공백을 검토하는 절차를 도입한다.

정책

  • '정부 내 디자인' 국내 네트워크 공식화: 영국처럼, 각 부처의 디자인·서비스디자인·UX 실무자들이 부처 경계를 넘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정부 내 디자인 실무자 네트워크'를 공식화한다. KIDP가 이 네트워크의 지식 허브 역할을 담당한다.
  • 부처 공동 디자인 과제 발굴 체계: 스마트시티·재난 대응·초고령사회처럼 복수 부처가 관여하는 복합 의제를 정기적으로 발굴하고, 다부처 합동 디자인 기반 과제로 추진하는 체계를 만든다. 15번(사회문제 해결 다부처 협력 디자인)과 연계한다.
  • 핀란드 모델 참조 — 국무조정실 디자인 정책 조율 기능 강화: 핀란드 총리실처럼, 한국 국무조정실이 부처 간 디자인 정책 실험과 학습의 조율 허브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를 만든다.

사업

  • 부처 간 디자인 협력 우수 사례 아카이브·확산 키트: 행안부·산업부 공동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의 2,000개 과제 성과를 체계적으로 아카이빙하고, 다른 부처가 이 방식을 도입할 수 있는 '협력 모델 키트'를 개발한다.
  • 국제 정부 내 디자인 네트워크 참여 확대: 헬싱키 컨퍼런스처럼, 한국 공무원이 국제 '정부 내 디자인' 네트워크에 적극 참여하도록 지원한다. 30개국 이상의 정부 디자인 실무자와 교류하면서 한국의 공공서비스디자인 모델을 알리고 해외 사례를 도입한다.
  • 디자인 기반 부처 간 협업 시범 과제: 단일 부처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 사회 문제를 선정해, 3~4개 부처가 함께 디자인 방법론으로 해결책을 탐색하는 시범 과제를 운영한다.

4. 기대효과

단기: 범부처 디자인 정책 조정위원회 설치로 부처 간 사업 중복·충돌이 공식 의제화된다. 부처 공동 디자인 과제 발굴 체계가 작동하면서, 단일 부처가 혼자 해결하지 못했던 복합 의제에 처음으로 통합 접근이 시작된다.

중기: 부처 횡단 디자인 정책 담당관 네트워크가 자리를 잡으면서, 국토부 도시 설계·복지부 돌봄 서비스·교육부 학교 환경에도 디자인 방법론이 침투한다. 행안부·산업부 협력 모델이 다른 부처 쌍으로 확산된다.

장기: 영국처럼 공무원 대부분이 업무에 디자인을 활용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건너지 못하는 횡단보도처럼, 각 부처가 열심히 일했지만 결과는 불편한 사례가 줄어든다. 국민은 어느 부처 소관이든 관계없이 일관된 공공서비스 경험을 받게 된다.

이 포스팅과 연결된 주제

  • 05. 디자인 법제 통합 — 법 통합 없이는 부처 분산 해소도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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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KIDP,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 소개(2014~2024) — 2,000여 개 과제, 20,000명 이상 참여 /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2023~2027)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공공디자인 종합계획 발표 브리핑(2018) — 문체부 담당자 발언 / UK Government, "Public Design in the UK Government: Evidence Review"(2025) — 공무원 88% 디자인 활용 / International Design in Government Conference 2024, Helsinki — 30개국+ 공무원 참가 / DesignSingapore Council & Oxford Economics, "Measuring the Value of Design in Singapore"(2025) / SGI(Sustainable Governance Indicators) 2024, Denmark Coordination 평가 / 윤성원, 『다시 디자인』(2025) /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이 궁금해』(2022) / 윤성원,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2025) / 윤성원, 『모두의 질문Q』(2025)

2026.05.17. 윤성원 + 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