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직제 신설

2026. 5. 18. 08:18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직제 신설

공공조직 안에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사람'을 제도화하라

핵심 문제
공공서비스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202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별정직 6급 공무원으로 약 10명이 채용됐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의미 있는 전환이었다. 그러나 이 시작은 제도화된 것은 아니었다. 채용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고, 정규 직렬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 10명 중 정부에 남아있는 서비스디자이너는 없다.
공공조직에는 여전히 '문제를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만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사람'은 없다. 직제가 없으면 역할도 없다.

* 이 블로그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관점/제안이며,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포함한 어떠한 기관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1. 현황과 문제점

2020년의 작은 시작, 그리고 멈춤

202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별정직 공무원(6급) 자격으로 공공서비스디자이너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약 10명 채용됐다.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 국가기술자격이 신설된 같은 해, 제도가 사람을 만나는 상징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흐름은 계속되지 않았다. 이후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채용은 일관되게 이어지지 않았고, 정규 직렬로의 전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공공서비스디자이너'라는 공식 직렬은 공무원임용령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은 있고, 예산은 있고, 성과도 있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직제가 없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직제가 없으면 채용 기준이 없고, 채용 기준이 없으면 역량 축적이 없으며, 역량 축적이 없으면 공공조직의 디자인 역량은 영구히 외부 위탁에 의존한다.

공공조직이 디자인을 '발주'하는 한계

현재 공공조직이 디자인을 활용하는 방식은 대부분 외부 위탁이다. 디자인전문기업에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결과물을 납품받는다. 이 구조의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문제 정의가 공급자(발주 공무원) 관점으로 이루어진다. 공무원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정의하면, 디자이너는 그 정의 안에서만 작업한다. 처음부터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 빠진다. 실제로 디자인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 재정의' 단계인데, 외부 위탁 구조에서는 이 단계가 생략된다.
둘째, 조직 내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 위탁 완료 후 지식과 경험은 외부 기업에 남는다. 공공조직은 매번 새로운 위탁에 의존해야 하며, 스스로 개선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

행정절차법 개정의 의미와 그 한계

2017년 행정안전부는 행정절차법을 개정해 공공서비스디자인 기법을 국민 의사를 행정과정에 반영하는 공식 방법으로 규정했다. 서비스디자인이 법적으로 행정의 도구로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법적 인정과 직제화는 다른 문제다. 도구는 인정받았지만, 그 도구를 다루는 전문 인력의 공식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의사는 있는데 의사 직렬이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이 공공서비스디자인이 제도 안에 머물지 못하고 사업 단위에 머무는 근본 원인이다.

기존 행정직과의 역할 차이

공공서비스디자이너는 행정직 공무원과 역할이 다르다. 행정직은 정해진 절차를 정확하게 실행하는 데 강점이 있다. 공공서비스디자이너는 그 절차가 과연 옳은 것인지를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다시 묻는 역할이다. 구체적으로 공공서비스디자이너의 역할은 이렇다. 실제 수혜자의 현장을 관찰하고 인터뷰한다. 서비스 흐름의 문제 지점을 발굴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동 설계 워크숍을 기획·진행한다. 새로운 서비스 방식을 프로토타이핑하고 파일럿 운영한다. 성과를 측정하고 개선한다. 이것은 행정 업무 보조가 아니라 독립적 전문 역할이다.

2. 국내외 사례

🇰🇷 한국 — 2020년 별정직 채용과 이후의 공백

2020년 처음 이루어진 약 10명의 별정직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채용은 작지만 중요한 시작이었다. 이 채용의 배경에는 2019년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 국가기술자격 신설, 2017년 행정절차법 개정, 2014년 산업디자인진흥법 서비스디자인 편입이라는 제도적 기반이 있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직렬은 정규화되지 않았다. 2024년 공공서비스디자인 성과사례집에는 현장 성과가 담겼지만, 이것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내부 전문 인력 현황은 드러나지 않는다. 행안부와 KIDP는 2025년 9월 성과공유대회를 개최하며 사업의 지속성을 보여주지만, 기관 내부에 공공서비스디자이너를 상시 배치하는 구조는 아직 없다.

🇫🇷 프랑스 — '퍼블릭 디자이너 네트워크', 2023년 창설

프랑스 DITP(인터부처 변환국)는 2023년 '퍼블릭 디자이너 네트워크(Réseau Designers publics)'를 창설했다. 국가 공공기관 소속 디자이너들을 하나의 직업 공동체로 묶는 공식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행정직과 구별되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공식화한다. 네트워크 가입 요건은 명확하다. "디자이너일 것. 국가 행정 기관(중앙행정, 지역 행정, 국가 기관 및 운영기관)에 소속되어 있을 것. 공무원 또는 계약직 공무원일 것." 이 세 조건이 충족되면 국가 공공 디자이너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된다. DITP는 2024년 6월 기준으로 지역 혁신랩(16개 지역별 1개씩)에 디자이너를 포함한 25개 일자리를 신규 창출하고 있으며, 각 지역 랩에 디자이너 포지션이 공식화됐다. 월간 네트워크 모임, 연간 공동 행사, 범부처 워킹그룹 참여가 의무화된다.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공공 디자인 지식을 공동 생산하고 확산하는 전문가 공동체 구조다.

🇬🇧 영국 — GDS와 Policy Lab의 디자이너 공무원

영국 정부디지털서비스(GDS)는 내각부 산하 기관으로, 서비스 디자이너(Service Designer)·콘텐츠 디자이너(Content Designer)·인터랙션 디자이너(Interaction Designer)를 정규 공무원 직군으로 채용한다. 이 직군들은 UK Civil Service의 공식 직무 기준(Job Family Standard)에 정의되어 있다. Policy Lab도 디자이너·퓨처리스트·에스노그라퍼가 공무원 신분으로 근무하는 조직이다. 이 전문 인력들은 순환보직 없이 해당 전문 영역에서 경력을 쌓는다. 2025년 영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공무원의 88%가 업무에 디자인을 활용하는 수준이 된 데는, 이처럼 디자이너가 조직 내부에 상주하며 행정직 공무원과 함께 일하는 구조가 핵심 역할을 했다.

🇸🇬 싱가포르 — 총리실 공공서비스과에서 시작된 Human Experience Lab

싱가포르 공공서비스과(Public Service Division, 총리실 산하)는 2011년 덴마크 MindLab을 벤치마킹해 'Human Experience Lab'(후에 Innovation Lab으로 개명)을 설립했다. 이것이 싱가포르 정부 내 디자인 주도 혁신의 출발점이었다. 정부 내부에 디자인 역량을 심는 전략이 2025년 현재 DesignSingapore Council의 방향과 연결된다.

🇺🇸 미국 — US Digital Service의 '민간 전문가 정부 합류' 모델

미국 정부디지털서비스(USDS)는 실리콘밸리의 디자이너·엔지니어·연구자를 정부 프로젝트에 한시적으로 합류시키는 모델을 운영한다. 계약직 또는 교류 파견 방식으로 민간 전문성이 공직 내로 유입되는 경로다. 이것이 순환보직 없이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공직 내에서 작동하는 대안 모델이다.

3. 제안

  • 공무원임용령 또는 직무분류표 개정 —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직렬 신설: 현재 공무원 직렬에 존재하지 않는 '공공서비스디자이너(또는 정책디자이너)' 직렬을 공식 신설한다.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 자격 또는 동등 경력을 임용 기준으로 명시한다. 별정직에서 일반직 전환으로 이어지는 경로도 함께 설계한다.
  • 행정절차법에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역할 명문화: 2017년 개정으로 공공서비스디자인 기법이 행정 도구로 인정됐다. 이를 한 단계 더 나아가, 이 기법을 수행하는 전문 인력이 조직 내 공식 역할을 갖도록 명문화한다.

제도

  •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채용 확대 — 3단계 로드맵

1단계(2026~2027): 중앙부처 7개 선도 부처와 광역지자체 17개에 각 1~2명씩 공공서비스디자이너를 별정직 또는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한다. 총 약 30~50명 규모.
2단계(2028~2029): 1단계 성과를 평가하고, 전체 중앙부처와 기초지자체 주요 기관으로 확대한다. 총 약 200~500명 규모. 프랑스가 지역별 혁신랩에 디자이너를 배치한 것처럼, 광역단위 정책랩에 상주 디자이너를 배치한다.
3단계(2030~): 공무원 직렬로 정식화하고,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 자격과 연계한 채용·승진 기준을 마련한다.

  • 순환보직 배제: 공공서비스디자이너에게는 2년마다 부서를 옮기는 순환보직을 적용하지 않는다. 전문성은 같은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일해야 축적된다. 10번(공직 순환보직 제도 개선)과 연계한다.
  • 기관장 직속 배치 원칙: 공공서비스디자이너는 하부 집행 부서가 아닌 기관장 직속 또는 전략기획실 산하에 배치한다. 정책 기획의 최초 단계부터 개입할 수 있는 위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책

  • 프랑스 퍼블릭 디자이너 네트워크 한국형 도입: 2023년 창설된 프랑스 퍼블릭 디자이너 네트워크처럼, 한국도 공공기관 소속 디자이너들을 하나의 전문가 공동체로 묶는 공식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KIDP가 이 네트워크의 지식 허브 역할을 담당한다. 월간 모임, 연간 행사, 범부처 공동 프로젝트 참여를 제도화한다.
  • 민간 전문가 정부 합류 경로 다양화: 미국 USDS처럼, 민간 서비스디자이너가 한시적으로 공공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공식 경로를 만든다. 이것이 공직 내 역량이 쌓이는 중간 단계가 된다.
  •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역량 기준 개발: 영국 GDS의 직무 기준처럼, 한국도 공공서비스디자이너의 역할·역량·성과 기준을 표준화한다. 채용과 평가의 일관된 기준이 된다.

사업

  •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양성 교육 체계: 서비스·경험디자인기사 자격 취득자와 현직 공공서비스디자이너를 대상으로, 공공 영역 특화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공공 정책 리터러시, 행정 절차 이해, 이해관계자 공동 설계 방법론 등을 포함한다.
  •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성과 아카이브: 공공서비스디자이너가 수행한 프로젝트의 방법·과정·결과를 체계적으로 아카이빙한다. 2024년 공공서비스디자인 성과사례집처럼, 이 아카이브가 다른 기관의 학습 자료가 된다.

4. 기대효과

단기: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직렬 신설로 채용의 법적 근거가 생긴다. 3단계 로드맵 1단계로 30~50명의 공공서비스디자이너가 선도 부처에 배치되면서, 정책 기획 초기 단계에 사용자 경험 관점이 반영되기 시작한다.

중기: 전문가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기관 간 지식 공유가 이루어진다. 공공서비스디자이너가 상주하는 기관의 서비스 품질이 가시적으로 높아지면서, 다른 기관으로의 확산 압력이 생긴다. 민간 디자이너들이 공직을 커리어 경로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장기: 영국처럼, 공무원의 상당 비율이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제를 실행하는 공무원'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공공서비스디자이너'가 함께 일하는 공공조직 문화가 정착된다. 공공서비스의 품질이 구조적으로 높아지고, 복지 사각지대와 정책 실패의 반복이 줄어든다.

 

이 포스팅과 연결된 주제

  • 07. 국가 디자인 통합조정기구 신설 — 통합 기구가 공공서비스디자이너를 조율
    1. 공무원 디자인 교육 체계 수립 —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공무원의 역량
    1. 공직 순환보직 제도 개선 — 전문성 축적의 전제 조건
    1. 정책 R&D 도입 의무화 — 공공서비스디자이너가 수행하는 핵심 역할

 

참고 자료: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이 궁금해』(2022) — 2020년 별정직 6급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약 10명 최초 채용 기록 / 행정안전부·KIDP, 「2024 공공서비스디자인 성과사례집」(2025.9.) / KIDP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 소개 — 2014~2024년 2,000여 개 과제 확인 / 프랑스 DITP 공식 사이트 — 퍼블릭 디자이너 네트워크 2023년 창설 확인 / 프랑스 Acteurs Publics, "Design de service public" 웨비나 보고(2024.6.25.) — 지역 혁신랩 디자이너 25개 일자리 신규 창출 확인 / UK Civil Service, Service Designer Job Family Standard / UK Government, "Public Design in the UK Government: Evidence Review"(2025) / Singapore Springer Nature, "Service Design in the Context of Pragmatic Governance" — 싱가포르 Human Experience Lab 2011년 설립 확인 / 윤성원, 『다시 디자인』(2025) /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이 궁금해』(2022) / 윤성원,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2025) / 윤성원, 『모두의 질문Q』(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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