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이너를 위한 안내서

1.3.4 왜 디자인인가? (1) 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SERVICE DESIGN 2023. 4. 3. 00:17

'소비자 중심의 세상에서 디자인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기술에서 인간 중심의 솔루션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 하라 켄야의 전시회, 필립스디자인센터의 "비전 오브 더 퓨처", 삼성의 선행 디자인 전략과 같은 사례는 디자이너가 미래를 시각화하고 잠재된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여 혁신을 주도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인간 중심의 환경에서 연결과 융합을 촉진하는 디자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

세상이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되면서 디자인 역할도 바뀌고 있는데 크게 세 가지가 두드러지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뀜에 따라 디자인에 주목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개발의 주도권이 기술에서부터 디자인으로 바뀌고 있다. 뭔가를 새로 만들 때 우리가 가진 기술로부터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최근 몇 년째 주거의 미래를 그리는 ‘하우스 비전’이라는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재난재해, 노령화 등의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는 어떤 형태여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전시이다.

사진 : 하우스 비전 전시. 2016. 도쿄

https://house-vision.jp/
.

그는 2007년에는 사양 산업이 되어 가고 있는 섬유산업의 미래를 그리는 ‘센스웨어’ 전시로 섬유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다음 사진은 모듈형의 섬유 타일로 조합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옷이다.

사진 : 센스웨어 전시작. 모듈형 의상

 

사진 : 센스웨어 전시작. 물방울 형태의 가방



위 사진은 특이하게 직조되어 물건을 넣으면 물방울처럼 형태가 부푸는 가방이다. 디자이너가 앞으로 산업의 새로운 용처를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13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디자인포럼 발표에서 하라 켄야는 “제품 생산 위주의 산업은 끝났다”라면서, “이들(하우스 비전, 센스 웨어) 프로젝트의 목표는 새로운 산업의 비전, 가능성을 시각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디자이너의 능력으로, 인류가 가진 가능성을 눈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일반인들에게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것으로도 의식을 진보시킬 수 있다. 일반인의 의식이 변화되면 사회는 다음 단계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인들은 느끼기 어려운 사회 전반의 불편과 사용자의 드러나지 않는 요구를 민감하게 감지하여 이를 토대로 미래를 제시하는 디자이너의 능력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삼성전자는 1900년대 후반부터 디자인 주도로 미래의 상을 그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했다. 지금 세계 최고 기업이 된 것도 이때 디자인 주도형 기업으로 변화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중반부터는 디자인센터 내의 CNB 팀(삼성전자 내 Create New Business team은 중장기 신사업 발굴을 위한 신사업 기획팀의 명칭. 5~7년 뒤에 발생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모습을 디자인 관점에서 창안함)이 구성되면서 디자이너들이 신사업 개념을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는 변화가 생긴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행보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단어가 '선행디자인'이라는 용어다. ‘선행디자인’이란 ‘일반적으로 디자인 중심의 경영전략을 의미하기도 하며, 좁은 범위로는 한 기업에서 상품개발을 진행할 때 디자인을 먼저 하여 디자이너의 의도가 제품에 충분히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 및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한다. Zapolski(2005)는 기업의 경영전략이라는 넓은 범위에서 선행디자인 개념을 정의하여 ‘기업에서 전략적인 가치 창출의 근본적인 수단(Design as a Core Strategy)을 디자인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수경, 김유진, 신철호, (2009), ‘국내 선행디자인의 개념 및 유형에 관한 고찰’, 상품학연구 제27권 제2호

현재 애플, 삼성전자, LG전자 등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제품개발에 있어 선행디자인 프로세스를 취하고 있다. 그중에도 디자인 주도형 개발의 장점을 잘 설명하는 대표 사례로 크리스털 로즈 LCD TV를 들 수 있다. 삼성이 보르도 TV를 출시한 이후 (특히 중국) 경쟁사들이 곧 디자인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디자인조차 흉내 낼 수 없게’라는 기치로 크리스털 로즈 시리즈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것은 디자인팀이 제안한 선행디자인에서 시작되었다. 디자인팀은 신비한 유리 질감의 테두리를 가진 TV 디자인을 제안하였고 당시 제안된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진들은 베네치아의 유리 기술을 참고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통해 특별한 이중 사출 기술을 적용해 생산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크리스털 로즈 LCD TV는 다른 제조사들이 그 디자인을 구현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에 출시 후에도 한동안 카피 자체가 불가능한 제품으로 시장에서 특별한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다.
삼성은 2008년 4월 크리스털 로즈 LCD TV 출시 후 사상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서 40인치 이상 LCD TV 점유율 47.7%로 소니(26%)를 압도하게 된다(크리스털 로즈 출시 전 시장점유 : 소니 36.2%, 삼성 30.8%). 이후 현재까지도 삼성 TV는 미국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당시 미국 시장조사기관 TFC 조사 결과, ‘100달러를 더 주더라도 삼성 LCD TV를 사겠다’라는 소비자가 82.6%에 달하는 등 고객충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전 세계 특급호텔에 공급되는 등 2008년만 300만 대 이상 판매되며 삼성의 브랜드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필립스디자인센터이다. 1996년 필립스디자인센터는 ‘미래의 비전(Vision of the Future)’이라는 짧은 영상을 발표했다. 10년 후(2005) 미래 사회의 모습을 전망하여 어떤 생활양식이 나타날 수 있을지 제품과 서비스의 개념을 예상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3년에 걸쳐 진행된 연구 결과로 발표된 ‘미래의 비전’은 선행디자인 프로젝트로서 당시 디자인계는 물론 연구자, 제조사, 일반인들에게는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영상 : https://youtu.be/u3l139Txuk4

영상 : 미래의 비전. 필립스디자인센터 (1996)

 

디자이너뿐 아니라 문화 인류학자, 인간공학자, 사회학자, 엔지니어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300여 개 이상의 창의적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60여 개의 핵심 개념을 담은 개인, 가정, 공공, 이동의 4가지 영역으로 영상을 제시하였다. 영상 발표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 확인해 보니 제시되었던 기술 중 80% 이상이 상용화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필립스의 디자이너들이 기가 막히게 예측을 잘했다기보다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시각화된 강렬한 비전을 통해 영감을 얻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공상과학 소설가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의 상상력은 대체로 과학기술을 20년 이상 앞서갔다. NASA의 과학자들도 그의 1997년 소설 ‘3001년 최후의 오디세이’의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나노튜브를 이용한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 가능성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립스의 ‘미래의 비전’은 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뀐 세상에서 디자인이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을 제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이 외형상 매력도를 높이는 치장의 역할이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미래를 제시하고 수요자에게 잠재된 욕구를 찾는 방법으로 사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창의력이 뛰어난 누군가가 미래를 상상하여 구체화하면 그것을 보고 영감을 얻은 과학자, 기술자들은 그 상상력을 실현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 중심의 연구개발의 모습일 것이다.

위 사례들을 볼 때 인간 중심으로 변화될 때 디자인 역할이 강화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되면 이전보다 연결과 융합의 이슈가 더 중요하게 드러난다.


* 출처 :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 윤성원

< 이전 글 목차 다음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