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3. 01:52ㆍ디자인/디자인이 궁금해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설립된 배경을 살펴보면 정부정책에서 디자인진흥기관이 했어야 할, 해야 할 역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을 설립(1970)하고 디자인 진흥을 위한 법을 마련(산업디자인진흥법, 1977)하는 등 정부가 디자인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 지 만 50년이 넘었다. 그간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기세로 성장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세계 최초로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고 2020년 세계 GDP 10위이자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이어 3위 국가가 되었다. 그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할 고도성장의 배경에는 1962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졌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이 근대화를 명분으로 한 불균형 성장 전략, 국가 주도로 일사불란하게 추진되었던 산업발전의 계획과 실행이 자리하고 있다.
불균형 성장 전략이란 한정된 자원을 특정한 곳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양적 고도성장을 달성하는 방법이다. 재벌 육성, 서울, 영남 등 특정 지역의 집중 개발, 중공업, 중화학공업 등 제조업 중점 개발, 수출 중심 경제와 같이 특정 분야를 선택해 집중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초고속 압축 성장이라는 빛과 양극화라는 그림자를 얻게 된다. 정부 주도 계획 경제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이 이루어졌기에 그 내면을 이해하자면 정부 정책이 어떤 목표를 정했고 실현했는지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디자인산업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통해 정책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디자인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이해해야 한다. 1970년 이후 정부가 국가 발전을 위해 디자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추진체계로 한국디자인진흥원(당시 한국디자인포장센터)을 설립한 후 디자인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펼쳐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조응해 디자인산업에 관한 정부 정책을 실행해 오는 과정에 디자인산업의 변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디자인산업 진흥의 역사를 디자인의 발전사와 분리해 내서 살펴보려고 시도한다면 디자인산업의 현실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계점도 분명하다. 정부(산업통상자원부)의 디자인산업 육성은 디자인산업 자체를 육성해 디자인산업 간 국제 경쟁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제조산업과 수출 성장에 디자인이 필연적으로 필요했던 것이었기에, 제조산업 외 생활 문화, 환경, 공공정책 곳곳에 역동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디자인의 다양한 면모를 아우르지 못한다. 국내 디자인산업 현황을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에 의한 결과로만 보기에는 그간 정부 영향이 시장을 좌우할 만큼 압도적 자원이 투입되었던 것도 아니다.
정부 주도산업 육성 정책은 대체로 두 가지 한계점을 갖는다. 해당 행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특정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과 전략적 선택의 과정에서 의도적으로나 그랬거나, 의도치 않았지만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함으로 인해 배제되는 영역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정책의 작용 결과를 인과관계로 따져보기 어렵다는 한계점이 있다. 비약적 경제 성장으로 세계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 우리나라는 이제껏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정책의 성공 요인에 대해 정확히 평가,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산업 발전에 있어 경제 발전 모델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지도 못했고, 달성한 성과와 함께 사회문화적으로 발생한 각종 문제 요인과 문제의 원인, 해결 방법 등에 대해서도 이해가 높지 않다.
* 출처 : 이종일, 박문수, 「한국경제 50년 사 분석 및 산업정책 시사점 고찰」, 한국뉴욕주립대학교, pp.4-5, 2013.
우리의 예상 범위를 넘어 산업, 기술이 너무나 빠르게 발전, 변화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 문화, 우리가 처한 환경도 빠르게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성장, 포용성의 상실, 자원의 불균형 심화 등 당면하게 된 총체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한 효과를 높이자고 하면, 지나온 50년의 디자인산업 육성정책의 성과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타날 기술, 사회변화 동향을 예측하고 이를 통해 향후 정부 정책 방향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인산업 육성 정책의 발전단계 또는 시대별 구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부터 정의하고 단계별로 당시 정부가 투입한 자원과 전략, 추구했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디자인수요시장의 상황, 사회, 경제, 문화적인 상태에 따라 달성된 것이 무엇인가를 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간의 디자인 정책 성과 분석과 평가를 통해 코로나 이후 시대 디자인 정책이 추구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찾는 연구가 필요하다.
수출 강국의 꿈, 정부 주도 디자인 정책의 시작
한국디자인진흥원은 국가 주도로 설립된 디자인 진흥기관으로서 디자인 법/제도, 디자인권리보호, 인재육성, 기업지원, 문화확산, 인프라 제공 등 한국의 디자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디자인과 포장으로 수출 한국을 견인하겠다는 목적으로 한국디자인포장센터라는 이름으로 1970년 창립되었다.
1960년대 수출 중심 성장이라는 국가적 과제는 정부 주도 디자인산업 진흥이 시작되었던 배경이다. 1960년 2천2백50만 달러, 1961년 4천1백만 달러였던 수출이 1964년에 1억 1천9백만 달러로 급격히 증가 (1964년 11월 30일 1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정부는 이날을 기념해 ‘수출의 날’로 정했다. 출처: ‘기록으로 보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국가기록원 웹사이트(주요 이슈 > 수출 증대). 2021.)하자 사람들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완성연도인 1971년 수출 목표 10억 달러 달성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예감하게 된다. 1960년대 10년간 연평균 41%, 세계 최고의 수출 신장(동 기간에 수출 신장 연평균 30%를 넘었던 국가는 세계에서 2개국, 한국과 리비아 뿐이다.)을 기록하며 우리나라는 저개발국가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했고 1971년 수출 10억 68백만 달러로, 도달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던 수출 목표를 달성한다.
사진 출처: ‘자랑할 건 '가을 하늘' 뿐이던 나라서 반도체 자동차 등 연 6000억 달러 '수출 강국'으로’, 주간한국, 2019.09.23.
‘자랑할 것 없는 나라, 세계 제일은 가을 하늘’. 이 표제가 등장한 1964년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1966년)이 시도되던 중으로 월남전 파병, 한일협정으로 외화를 벌던 시기였다. 당시 우리나라 산업발전상황에 대한 현실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1968년 해외 수출품에 대한 문제 제기가 13%에 달하고 그중 중요한 문제가 포장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오자, 포장 문제는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디자인과 관련해 1965년 10월 29일 상공부 인가로 설립된 민간기구 ‘사단법인 한국포장기술협회’, 1966년 정부가 우수 디자인 제품 생산을 통한 수출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한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는 설립 첫해인 1966년 ‘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를 처음으로 운영했다. 이것이 현재의 DK어워드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이다.), 1969년 수출용 골판지 상자 제작해 수출기업에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수출품포장센터’와 같은 기관이 있었다. ‘사단법인 한국포장기술협회’와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는 포장기술과 디자인의 연구개발 기관이었고, ‘한국수출품포장센터’는 포장재인 골판지의 생산 공급으로 수출 포장에 직접 관여하는 기관이었다.
1969년 정부는 외국 저명 디자이너 초청, 포장센터 설치 등에 예산을 배정(출처 : ‘수출진흥확대회의 녹취록 심화 연구’, p152, KDI, 2014)했고 1970년 4월 20일 개최된 청와대 수출진흥확대회의(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0월 5일 수출제일주의를 정부 경제시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을 것을 천명하고 1965년 2월부터 1979년 9월까지 14년간 월 1회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관했다. - 출처 : 수출진흥확대회의 녹취록 심화 연구, KDI, 2014)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기존 세 기관을 통합해 ‘재단법인 한국디자인포장센터’를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5월 19일, 당시 상공부 장관인 이낙선이 겸직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정부 기관과 민간이 통합된 디자인 진흥기관인 ‘한국디자인포장센터’가 설립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한국디자인진흥원’이다.
* 출처 : 오근재, ‘디자인 코리아’(2020, 한국디자인진흥원) 중 발췌, 요약. pp25-28.
‘한국디자인진흥원’은 10억 달러의 수출 목표를 꿈꾸었던 1970년, 수출 상품 포장 개선의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디자인으로 국민의 염원인 수출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2차 경제개발계획까지 경공업 수출에 집중했던 우리나라는 수출의 비약적 확대를 위해서는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년~1976년)부터는 중화학공업에 집중하여 종합 제철, 석유화학, 기계공업 등 중화학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1970년대 중화학 공업을 산업화의 성장 엔진으로 삼고 정부가 집중적으로 지원한 결과 1979년 중화학 공업화율은 51.2%에 달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70년대에는 기계, 선박, 철강 등 중화학 공업 제품이 수출의 40-50%를 차지한다.)
이것은 수출의 극적인 확대로 이어져 1980년 초까지를 목표로 했었던 1백억 달러 수출을 1977년에 조기 달성하게 되었고, 외신들은 한국의 놀라운 경제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하면서 한국을 싱가포르, 홍콩, 대만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부르게 된다.
* 출처 : "중화학 국가로 간다"… 박정희 대통령 결단, 國力 증폭시켰다. 2014.08.28. 아시아경제
1960년대는 낮은 인건비를 경쟁력으로 하는 1차 산업 생산품과 옷, 신발, 가발 등 경공업 제품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포장과 제품개발 등 디자인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될 수 있었지만, 1972년부터 중공업, 중화학 중심의 수출로 정부 정책이 크게 전환하게 되면서 한국디자인진흥원도 수출에 기여하는 기관으로서 역할 정립에 대한 큰 고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창립 이후 시대별로 정책과 사업이 어떤 양상으로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출처 : 디자인이 궁금해, 2022, 윤성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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