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30. 21:22ㆍ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정책랩과 리빙랩의 사이, 청년디자인리빙랩의 이해
정책랩과 리빙랩은 무엇이 다른가,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어떤 특징을 갖는가
정책 실험의 새로운 흐름: 리빙랩과 정책랩의 부상
최근 공공정책 영역에서 시민 참여와 실험 기반 접근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 정부 사업은 대부분 '기획 → 실행 → 종료'라는 일방향의 구조로 운영되며, 실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나타나더라도 신속한 조정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 공모사업의 경우, 지자체의 기획자가 쓴 기획서가 선정되면 그 시점에서 사업 내용은 확정되고, 그대로 실행되어야 한다. 진행 중 원래의 계획보다 더 좋은 방안이 발견되더라도 계획을 바꾸기 힘들다. 이런 구도안에서는 실험과 검증, 다양한 가능성 탐색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세계 각국의 공공부문에 등장하고 있는 모델이 정책랩(Policy Lab)과 리빙랩(Living Lab)이다. 이들은 수요자의 의견 수렴을 넘어, 공공 문제를 사용자 중심으로 재정의하고 현장에서 실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책랩과 리빙랩: 개념과 차이
'정책랩은 정책 기획의 실험, 리빙랩은 정책 실행의 실험이다.' |
정책랩은 정책 기획 과정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업해 문제를 수요자 중심으로 재정의하고 창의적·통합적 해결책을 구상하기 위한 대안적 구조이다. 반면 리빙랩은 그렇게 구상된 정책이나 서비스를 실제로 운영하면서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실험하고 보완해가는 사용자 주도 실험의 장이다.
정책랩은 정부 또는 공공기관 내부에 설치된 상설 조직으로, 정책 형성 초기 단계에 개입하여 문제를 재정의하고 정책을 설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서비스디자인, 디자인씽킹 등 창의적 방법론을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정책이 갖는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실험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제도 설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이다.
우리나라에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행정연구원이 ‘열린정책랩’을 임시 운영한 사례가 있으나, 이는 단기적 연구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도되었던 것으로 정부 상설 조직의 성격이 아니었고 디자이너가 주도했던 것도 아니었다. 국내에 정책랩 운영 사례는 아직 없다.
네스타(Nesta. 영국 정부가 설립한 국가 혁신재단으로, 정책혁신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와 실험을 선도하는 세계적 권위의 공공 이노베이션 싱크탱크)는 전 세계적으로 100개 이상의 정책랩(Policy Lab)이 운영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영국 정부 내 정책랩의 진화와 정책을 위한 디자인 활용'(2021)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정책랩은 다양한 혁신 방법을 활용하여 시민과 이해관계자를 정책 개발에 참여시키는 다학제적 정부 팀이다. 이들은 공동 제작(co-production), 공동 창조(co-creation), 공동 디자인(co-design), 행동 통찰(behavioral insights),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 민족지학(ethnography), 데이터 과학(data science), 넛지 이론(nudge theory), 린 프로세스(lean processes)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을 사용한다.
2014년 창설된 영국의 폴리시랩은 이러한 접근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 정책랩이다. 캐비닛오피스(우리나라의 국무조정실) 내 정규 조직으로, 앞서 언급한 전문성을 갖춘 약 30명의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디자인연구자인 카밀라 뷰캐넌(Dr. Camilla Buchanan)과 예술가인 스티븐 R.G. 베넷(Stephen R.G. Bennett)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 관련 글 : 영국 정책랩 블로그 , 영국 정책랩을 탐색하다 , 영국 정부의 정책랩 진화와 정책을 위한 디자인 활용 ,
정책디자인, 세계의 정책랩
리빙랩은 실제 생활 환경에서 시민과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해 정해진 문제를 실행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실험 기반 플랫폼이다. 리빙랩은 정책이 실행된 이후 사용자 경험을 통해 현장 적합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있으며, 기획 구조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중앙 정부 및 지자체의 다양한 사업에 지역 주민 참여형 실험실이 시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핀란드 헬싱키의 리빙랩 사례에서는 도시 물류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었으며,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
* 관련 글 : 헬싱키 리빙랩 사례
정책랩 vs 리빙랩 비교표
항목 | 정책랩 (Policy Lab) | 리빙랩 (Living Lab) |
개념 | 정부의 상설 실험조직으로, 정책 기획·설계 단계에서 사용자 중심 방법론(서비스디자인 등)을 활용해 정책을 재구성함 | 시민이 참여하는 실생활 기반의 현장 실험 공간으로, 특정 과제를 실험하며 검증하고 개선 아이디어를 도출함 |
설립 목적 | 정책 문제의 본질을 구조적으로 재정의하고 수요자 중심 정책 설계 실현 | 정해진 문제에 대해 시민 참여를 통해 현실 적용 가능성과 서비스 완성도 제고 |
정책과정 중 개입 시점 | 주로 정책 형성 초기 단계 (의제 설정 → 정책 기획 → 정책 설계) |
주로 정책 집행 이후 단계 (현장 적용 → 사용자 경험 수렴 → 피드백) |
문제 정의 주체 | 정책랩이 문제를 정의하고 구조화 – 정부, 디자이너, 분석가 중심 | 문제는 대부분 정의되어 있음 – 시민은 문제를 재정의하지 않음, 대신 실행 중 개선점 제안 |
개입 방식 | 정책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입하고, 실험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거나 전환, 정책공급자 및 이해관계자간 협업 | 정해진 정책이나 서비스를 실행하면서 보완·개선·확장 아이디어를 실험 |
주요 기능 | 정책문제 구조화, 사용자 리서치, 시나리오 설계, 정책 프로토타이핑 | 사용자 경험 공유, 실행 결과 평가, 서비스 적합성 향상, 공동 창조(co-creation), 프로토타이핑 |
조직 구조 | 정부 또는 부처 산하 상설조직 (정규 예산 및 전담 인력 포함) |
지역 기반의 프로젝트형 임시 조직 (지자체, 대학, 중간지원조직 등이 운영) |
참여자 구성 | 공무원, 서비스디자이너, 다학제 전문가, 데이터분석가, 일부 이해관계자 등 | 서비스디자이너, 시민, 커뮤니티, 기업, 대학, 비영리단체 등 현장 중심 참여자 |
주요 사례 | UK Policy Lab, Canada IIU, Australia BETA | Helsinki Living Lab, Amsterdam Smart City, MIT City Science Lab |
성과의 초점 | 정책 기획 구조의 혁신, 수요자 중심 정책 전환 | 서비스·정책의 현장 적합성 개선, 시민 체감도 제고 |
핵심 차이 요약
구분 기준 | 정책랩 (Policy Lab) | 리빙랩 (Living Lab) |
정책과정 개입 단계 | 기획 및 설계 | 집행 및 평가 |
문제 정의 주체 | 랩 내부 (정부·디자이너 중심) | 외부에서 정의된 문제에 시민이 참여 |
개입 목적 | 정책구조 설계 자체를 바꾸는 실험 | 실행과정에서 보완·개선하는 실험 |
Case 1. 국민디자인단
우리나라에서 실험적 정책구조라고 할만한 사례는 2014년부터 운영된 ‘국민디자인단’을 꼽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한 이 사업은 약 12년간 2,000여 개 과제를 통해 수요자가 정책 기획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실험해왔다. 이 과정에서 단순 수요자 참여, 자문의 역할을 넘어 정책 방향을 전환하거나 실행 방식을 바꾸는 사례가 다수 등장했다.
국민디자인단은 상설 정책랩처럼 조직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정책랩이 수행하는 주요 기능 - 수요자 중심 문제 재정의, 수요자 참여 정책 설계, 실험 기반 검토 - 을 상당 부분 수행했다. 그런점에서 국민디자인단은 한국형 ‘비정규 정책랩’의 대규모 실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참고 : 국민디자인단 소개, 국민디자인단 우수사례
Case 2. 청년디자인리빙랩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정책 실험 모델이다. 국민디자인단 모델을 산업단지에 구현한다는 취지로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제안하여 산업통상자원부의 ‘문화선도산업단지 조성사업’ 내에 운영 구조가 마련되었다. 2025년 창원, 구미, 완주 등 3개 산업단지가 지정되어 4년간 리빙랩이 상설 운영되며, 2030년까지 총 10개의 문화선도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산업단지 내 청년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식을 실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산업단지 환경개선사업을 위시한 기존의 정부 공모사업이 ‘기획 → 실행’의 구조였다면, 청년디자인리빙랩은 ‘기획 → 실험 → 실행’으로, 실험 단계를 삽입한다. 수요자인 청년들이 초기 기획 단계에 참여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그 아이디어의 현실성과 적합성을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구조로, 기획 단계에 디자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실험 결과는 지자체 정책과제, 제안서, 지역 전략계획 등에 반영될 수 있는 경로를 갖추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기존 리빙랩의 틀을 유사하게 따르면서도, 기능적으로는 정책랩이 수행하는 정책 기획 개입, 실험적 설계, 구조 개선과 같은 핵심 역할을 일부 시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정책랩과 리빙랩 사이를 연결하는 전략적 실험 플랫폼으로 볼 수 있다.
* 참고 : 청년디자인리빙랩, 청년디자인리빙랩 소개용 발표자료(PDF)
정책 실험의 전환점으로서의 의미
청년디자인리빙랩은 단순히 수요자 참여 확대를 도모하는 사업이 아니다. 수요자 욕구를 양적으로 많이 모으는 것은 시민 참여형 플랫폼 등 이미 기존의 활용 가능한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1만명, 10만명 또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그 요구를 실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무엇을 원하게 될 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동을 관찰하고 맥락을 살펴야 마음 속에 숨겨진 욕구를 찾을 수 있다.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질적 조사방법으로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의 하루 경험을 이해하고 문제를 재정의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방향에 따라 해답도 달라진다. 새로운 관점에 따라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다양하게 제안하게 될 것이다.
청년디자인리빙랩은 수요자 중심 정책기획 구조를 제도적으로 삽입하기 위한 실험이며, 기존 국민디자인단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수요자 중심 정책 실현 제도화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정책을 사용자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실험은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서 정규 정책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할 단계에 와 있다.
청년디자인리빙랩은 바로 지금이 그 전환기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2025.5.30.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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