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6. 20:01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2019년, WWF와 호주 뉴캐슬대학교는 한 사람당 매주 신용카드 한 장에 해당하는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플라스틱은 이제 우리 몸 안에서 순환하는 '신체 구성 성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다에서 시작된 쓰레기는 식탁과 혈액을 거쳐 이제 세포에까지 이른다. 오늘 아침 티백으로 우린 차 한 잔, 지금 입고 있는 옷 속에도 미세플라스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이 파국의 출발점엔 놀랍게도 '선한 의도'가 있었다. 코끼리를 지키기 위해, 숲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을 해방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이제 우리와 지구를 해친다. 이는 물건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의 실패다. 우리가 추구했던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가 오히려 지속 불가능한 결과를 낳았던 역설적인 상황.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떻게 해야 이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선한 결정 그러나 잔인한 결말
우리의 선한 의도가 어떻게 잔인한 결말을 낳았는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모든 비극의 공통점은 바로 '구조 없는 개발'에 있었다.
코끼리를 구하려다 바다를 죽인 플라스틱
19세기 중엽, 전 세계 사교계에서는 당구가 유행했고, 고급 당구공의 재료는 단단하고 탄력 있는 천연 상아였다. 수요가 폭증하자 코끼리 밀렵은 가속화되었다. 1860년대 미국, 한 당구공 제조사는 상아를 대체할 인공 소재를 찾는 사람에게 상금을 내걸었고, 발명가 존 웨슬리 하이엇은 셀룰로이드를 개발했다. 나무 펄프 기반의 이 물질은 투명하고 가벼우며 가공이 쉬웠다. 무엇보다 코끼리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으니, 인류는 드디어 살생 없는 소비의 대안을 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편리함 자체였다. 셀룰로이드는 안경테, 단추, 빗, 장난감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후 석유화학 기술 발전으로 페놀수지, PVC, 나일론, PET 같은 더 값싸고 가공 쉬운 플라스틱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다가 그 대가를 치렀다. 플라스틱은 이제 전 세계 해양 쓰레기의 85%를 차지하며, 고래의 위장, 바다거북의 콧속, 심지어 미세입자로 쪼개져 인간의 혈액과 태반에서까지 발견된다. 생명을 구하겠다는 의도로, 우리는 결국 더 거대한 생태계의 죽음을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복 사용을 위한 '구조' 없이 편리함만을 추구한 결과로 만들어진 비극이었다.
숲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된 비닐봉투
1950년대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는 매년 수십억 개의 종이봉투가 사용되었고, 이는 대규모 벌목으로 이어졌다. '종이봉투 사용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스웨덴 엔지니어 스투레 뢰스팅은 "종이를 계속 써서는 숲이 남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제의식으로 새 소재를 찾던 끝에 1959년 폴리에틸렌(PE) 기반의 플라스틱 비닐봉투를 개발했다. 이 비닐은 단단하고 유연하며 생산 단가가 낮고 물에도 젖지 않았다. 생태적으로는 숲을 구할 수 있는 혁신처럼 보였고, "한 번 만들어 수백 번 쓴다"는 윤리적 슬로건까지 내세웠다. 실제 스웨덴에서는 초기에 비닐봉투를 빨아가며 수십 번 쓰는 문화가 확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싼 가격과 편리함이 문제였다. 1970~80년대, 유통 산업이 대형화되고 슈퍼마켓이 글로벌화되면서, 비닐봉투는 '무료로 제공되는 1회용 소비재'로 전락했다. 석유화학 공정의 기술 고도화와 맞물리며 생산 단가가 극단적으로 낮아지게 되었고 기업은 이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면서 무료 제공과 대량 배포가 이어졌다. 너무 싸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재사용을 전제로 했던 제품은 재사용하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즉시 쓰레기가 되었다. 숲을 살리려던 선한 의도가 결국 지구를 비닐 쓰레기로 뒤덮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단편적 해결책만을 내놓은 개발의 결과이다.
자유를 위한 나일론, 구속이 된 환경
1935년, 미국 듀폰사의 화학자 월리스 카로더스는 세계 최초의 합성 섬유 나일론(Nylon)을 개발했다. 실크보다 강하고 물에도 강하며, 대량 생산이 가능한 이 물질은 전쟁용 낙하산과 로프 등에 쓰이다가, 전쟁 후 여성용 스타킹으로 등장하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945년 하루 만에 400만 켤레가 팔렸고, '자유와 해방'의 상징처럼 소비되었다.
역시 너무 쉽고 편리하며 싼 가격 때문에 합성섬유는 패션, 생활, 산업 전반에 빠른 속도로 퍼졌고, 일회용 소비문화의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옷에서 떨어진 나일론 섬유가 미세플라스틱으로 바다를 오염시키는 현실을 마주한다. 해방을 위한 기술이 결국 자연과 인간을 속박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편리함이라는 표면적 가치에만 집중하고 환경적 책임을 간과했을 때 벌어지는 전형적인 사례다.
친환경의 역설: 에코백, 종이 빨대, 텀블러
최근의 '친환경 대안'들 또한 비슷한 역설을 보여준다. 당신이 '나는 환경을 생각하는 시민이니까' 하는 뿌듯함에 들고 다니는 에코백, 플라스틱 대신 선택한 종이 빨대, 그리고 여러 개 가지고 있는 텀블러 뒤에도 이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에코백: 2000년대 중반 비닐봉투 규제가 확산되면서 면 에코백은 '지구를 위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천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는 면 재배, 방직, 염색, 운송에 이르기까지 최대 2만 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덴마크 환경청은 "131번 이상 써야 비닐보다 환경에 낫다"고 평가했지만, 마케팅 굿즈 등으로 남용되며 실제 사용은 10번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친환경'이라는 명분 아래 과잉 생산되고 소비되며 오히려 환경에 부담을 주는, 반복 사용을 담보할 '시스템' 없는 개발의 전형이다.
종이 빨대: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 생태계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기업이 이를 금지하고 종이 빨대로 대체했다. 사람들은 '종이'라는 말만으로 친환경이라 믿었다. 하지만 종이 빨대는 물에 젖지 않게 하려면 PFAS(과불화화합물) 같은 방수 코팅이 필요하다. PFAS는 분해되지 않으며 생물 체내에 축적되는 대표적인 영구오염물질이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환경적 효과조차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2023년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종이 빨대는 매립 시 플라스틱 빨대보다 탄소 배출량이 4.6배 더 많다. 플라스틱을 없애며 더 위험한 화학물질과 더 많은 탄소를 남긴 셈이다. 결과적으로 종이 빨대는 친환경이 아니라 '위험한 착각'을 생산한 대표 사례가 되었다. 근본적인 환경 영향을 간과한, 단기적이고 시각적인 '친환경'에만 머문 개발의 결과다.
텀블러와 다회용컵: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다회용컵과 텀블러가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텀블러 하나를 만드는 데는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등 수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또한, 이 컵을 회수하고, 세척하고, 재유통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결국 한 번 쓰고 버리는 고급 쓰레기가 된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시민 1인당 평균 2~3개의 텀블러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사용 빈도는 낮다고 한다. 다회용컵은 1년간 40회 이상 사용하고 수명이 3년일 경우에만 일회용컵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는 다회용품은 자원 낭비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이는 사용자 경험과 회수 인프라라는 '구조'를 고려하지 못한 개발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실패 이후를 디자인하기: 조정과 실험의 시대
위 사례들의 공통점은 기술이나 의도가 아니라, 바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개발'에 있었다. 우리는 반복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프라 없이 반복 사용 제품을 보급했고, 그 결과 선의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목표로 개발했다면, 반복되도록 작동할 '구조'까지도 함께 디자인했어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란 단순한 물리적 인프라를 넘어선다. 그것은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고 지속시키는 사회적 규범과 문화,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제도, 반복 사용을 실현할 기술적 기반과 회수 시스템, 그리고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도록 돕는 사용자 경험(UX)과 피드백 루프까지를 포함한다. 즉,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목표로 한다면 이 모든 층위의 구조가 함께 디자인되어야 한다.
무언가 없었던 새로운 제품/서비스가 탄생하면 기존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펼쳐진다. 새로운 것으로 인해 기존 시스템은 영향을 받고 변화한다. 서로 간의 역학이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계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이 어떻게 바뀔지는 실제 변해봐야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언가가 만들어진 후의 세상을 고려하여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할까?"
기후 변화, 소비자 반응, 글로벌 공급망, 가격 변동성 등은 누구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완벽한 예측을 전제로 한 디자인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 기업, 디자이너는 '완벽한 설계자'가 되겠다는 목표 대신 '조정자'와 '실험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 정책은 실험을 허용하는 제도를 디자인하고,
- 기업은 조정 가능한 공급망과 회수 시스템을 구축하며,
- 디자이너는 실패를 염두에 두고 실험을 통해 행동을 디자인해야 한다.
디자인은 완성된 청사진이 아니다. 변화에 반응하고,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디자인의 본령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디자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복잡한 결과를 감당하고 그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실패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지속 가능한 세상'을 진정으로 목표로 삼는다면, 사용에 그치지 않고 반복 사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고 실패 시 이를 수정할 수 있는 피드백 루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은 의도와 다르게 '선의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그 책임을 부인하지 말고, 실패를 감당하고 보정할 수 있는 더 나은 구조를 디자인해야 할 때다.
이제 '친환경'이라는 딱지가 붙은 물건을 볼 때, 그 뒤에 숨겨진 '구조'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2025.6.6.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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