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없는 정책 개발, 실패는 왜 반복되는가?

2025. 8. 11. 12:52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김건희법 (개의 식용 목적 사육·도살·유통 종식 특별법) 은 개 식용 종식을 목표로 36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육견 농가의 신속한 폐업을 유도했다. 그러나 집행 단계에서 지자체 인수, 비식용 전환 등 구체적 실행 지침이 부재했고, 그 결과는 심각했다.
법 시행 후 식용견 약 46만 마리 중 15만 마리가 단기간에 사라졌다. 지자체 인수는 한 건도 없었고, 비식용 전환 비율은 0.3%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대규모 도축을 촉진한 셈이 됐다.
* 관련 기사(영상) : 식용견 종식 '김건희법' 1년‥사라진 15만 마리는 어디로? 2025.08.11 뉴스데스크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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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이해관계자들의 욕망을 살펴보지 않고 파급력이 큰 정책 조치인 법제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기술적인 문제를 꼽는다면, 잘못된 인센티브 설계이다.
1년 내 폐업 시 60만 원, 2년 내 폐업 시 20만 원이 지급되어 폐업이 빠를수록 마리당 지원금이 높아지게 했던 것이다. 빠른 성과 달성을 위해 고안한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보호·입양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에서 농가 입장에서는 개를 살려두는 것보다 즉시 판매하거나 도축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했다. 또한 폐업 보상금 지급 조건이 ‘사육을 중단했다는 확인’에 불과해, 개의 처리 방식에 대한 실질적 검증 장치가 없었다.
이로 인해 많은 농가가 보상금을 받기 위해 단기간 내 사육견을 시장에 내다 팔거나 도축장에 넘겼다.
결과적으로 인센티브 제도가 유예기간 동안 개의 생존을 보장하기보다, 조기 사육 종료와 대량 도축을 촉발하는 역할을 했다.
- 목표와 실행의 괴리: 종식이라는 명확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지원금 구조가 도축을 유인.
- 이해관계자 분석 부족: 농가, 지자체, 보호단체 간 역할·책임 미조율로 비식용 전환 유인 상실.
- 집행·관리 미비: 사후 모니터링·추적 체계 부재로 정책 효과와 부작용 파악 불가.
- 정책 신뢰 훼손: 대량의 생명 손실이 알려지며 도덕적·사회적 정당성 약화.

이 사태는 정책 설계 실패가 대규모 생명 손실로 이어진 전형적 사례다.
동일한 설계 결함은 취약계층의 생명과 직결되는 복지·보건 정책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수십만 명의 사람을 단기간에 잃는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많은 정책이 ‘사전 검증’ 없이 시행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책 수립 단계에 ‘디자인 리서치–정책 시나리오 설계–정책 시범 운영(Pilot Test)’의 세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영국 Policy Lab의 ‘시스템으로서의 정부(Government as a System)’가 제시하는 56개 정부 정책 조치 중, 법제화처럼 장기적·구조적 영향을 미치는 항목에 대해서는 서비스디자인과 사전 실험을 필수 절차로 두어야 한다. 말하자면 '정책의 임상시험' 같은 것 말이다.
*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소개 글 : https://servicedesign.tistory.com/566

특히 생명과 직결되는 정책은 이해관계자 분석과 사전 실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시행할 수 없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국내에서 이러한 ‘사전 검증’을 제도적으로 실천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 공공서비스디자인(국민디자인단) 사업이다(행안부, 한국디자인진흥원, 2014~). 지금까지 2천여 개 과제, 2만 명 이상의 국민이 참여하며 수요자 중심 정책을 기획·검증해 왔다. 그러나 이 사업은 매년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올해 역시 예산 확보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하나의 프로그램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 정책은 수요자 요구에서 출발하고, 근거 기반으로 기획되며, 사전 실험을 거쳐야 한다.

정책은 설계·집행·평가 전 과정이 ‘정밀 공학’이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그 과정을 소홀히 했을 때 무엇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수십만의 생명을 잃게 만든 설계 결함이, 내일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정책 실패’라는 말로 이런 재앙을 가볍게 부를 수 없다. 지금 당장 제도를 바꿔야 한다.


2025.8.10. 윤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