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6. 18:48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넷플릭스가 원래 DVD를 우편으로 대여하던 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지금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만 인식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7년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물리 매체 제조·유통 기업이었다. 넷플릭스의 DVD 대여 서비스로 인해 1997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52억 장의 DVD가 시장에 풀렸다. 한 기업의 ‘서비스 혁신’이 지구에 남긴 흔적이라고 하기에 가공할만한 양이다.
디스크 한 장을 제작하는 데 수십~수백 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연구가 있다. 이를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수백만 톤에 이르는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남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승용차 수십만 대가 1년간 내뿜는 양에 맞먹는 규모다. 디스크는 폴리카보네이트와 금속 박막, 코팅 등 다층 구조다. 재활용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분리·재질순환 비용과 공정 복잡도가 높아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다수는 소각·매립된다. 땅속에 묻히면 수백 년 동안 썩지 않는 쓰레기로 남는다.
또 하나의 ‘숨은 발자국’은 우편 배송이다. 고객이 시청을 마치면 DVD를 반납해야 했고, 반납 확인 후에야 다음 DVD가 발송되었다. 즉, 한 장의 DVD가 소비되는 동안 최소 두 번의 배송이 발생했다. 배송 한 건당 수백 g의 CO₂가 배출된다고 보면, 52억 장의 왕복 배송은 제작 과정 못지않은 막대한 탄소를 추가로 남겼다.
넷플릭스 DVD는 편리함을 확장하는 동시에 ‘움직이는 탄소 발자국’을 전국망에 흩뿌렸다. 넷플릭스가 남긴 발자국을 토대로 나아가야 할 길을 새로 구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욕구는 끝없이 편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개인의 편리함 추구는 우리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적 이익의 추구가 결과적으로 무시못할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한 사람이 에어컨 목표온도를 1도 낮추는 사소한 선택이 모여 도시의 블랙아웃을 부르게 되는 사례를 생각해보자.
국제사회는 이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제품의 전체 수명주기 동안(특히 소비 이후 단계) 발생하는 환경적 비용에 대해 생산자가 중요한 책임을 지도록 설계된 정책 접근)’를 통해 가전제품과 포장재에 회수·재활용 비용을 기업이 부담하게 해왔다. EPR은 “제품의 전 생애에 대한 책임을 생산자에게 확장”하는 접근이다.
OECD는 전자제품·포장재 등 전통 품목에서 400개 이상 제도가 운영 중(2019년 기준)이나, 온라인 유통과 국경 간 판매가 ‘무임승차’를 키워 제도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DVD와 같은 문화·콘텐츠 매체, 더 나아가 디지털 서비스가 남기는 물리적 흔적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유럽연합은 EPR 적용 대상을 섬유·담배·전자담배·배터리 등으로 넓히고 있다. 결국 제품을 제작하고 그것으로 이익을 얻는 모든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7월 발효된 ‘지속가능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 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은 기존 에코디자인 지침을 대체하며 식품, 의약품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물리적 제품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제품의 내구성·수리성·재활용성 등 수평 기준을 마련하고, 제품별 디지털제품여권(DPP)을 도입한다. 이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순환시킬지”를 데이터로 강제하는 제도다. 섬유 분야는 2025년부터 회원국 분리수거 의무가 본격화되고, 2025년 2월 EU 입법부는 섬유·식품폐기 감축을 위한 폐기물지침 개정 잠정 합의로 ‘섬유 EPR’의 토대를 다졌다. 회원국별 도입이 가속되는 중이다.
독일 포장법(VerpackG)은 2022년부터 아마존·이베이 같은 전자상거래 마켓플레이스에 ‘EPR 등록·검증 의무’를 부과한다. 등록번호 없으면 판매금지다. 프랑스의 AGEC법은 2022년부터 마켓플레이스가 입점 판매자의 EPR 준수를 확인하거나, 대신 책임을 진다. 플랫폼 공동책임이 무임승차를 실무적으로 차단한다.
우리나라도 당장 도입을 검토할 수 있는,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알아보자.
적용대상 확대
자원의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 시행령의 EPR 대상 품목에 ‘문화용 물리매체(광학디스크, 패키징 포함)’를 신설한다. 사업범위는 ‘제작·수입·유통’까지 포괄한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과거처럼 물리유통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브랜드·라이선스 주체라면 회수·재활용 기금 분담의무가 발생하도록 정의한다. 이는 OECD가 권고한 “제품-책임의 가치사슬 전체 확장” 원칙과 합치한다.
에코-모듈레이션(차등부담금) 의무화
디스크·케이스·포장에 대해 재활용 용이성, 재생원료 함량, 유해물질 저감, 분해·분리 용이성 지표를 점수화해 부담금을 0.6~2.0배 범위로 차등한다. ESPR의 수평 기준과 호환되도록 ‘제품 정보요건’을 도입하게 하고, 당장 실현하기는 어려우니 24개월 유예 후 적용한다.
온라인플랫폼 공동책임
독일·프랑스 모델을 준용해, 마켓플레이스 사업자에게 입점사의 EPR 등록 확인 의무와 비등록 판매 금지 의무를 부과한다. 국내사업자뿐 아니라 역외 전자상거래에도 적용되도록 통관 단계에서 EPR 등록번호 제출을 요구한다. 이를 위반하면 플랫폼에 과징금과 판매중지 명령을 병과한다.
디지털제품여권(DPP) 시범
ESPR에 맞춰 광학디스크·케이스·포장에 고유 식별자(URI)를 부여하고, 재질·첨가제·재생원료·분리배출 방법을 기록하는 DPP를 시범 도입한다. 환경성적표지와 연동하고, 3년 뒤 텍스타일·완구·미디어 주변기기(플레이어·셋톱박스)로 확대한다.
공제조합(PRO) 고도화
섬유 EPR 준비처럼, ‘미디어·엔터테인먼트용 물리매체 PRO’를 신설해 회수·재활용과 파트너십(민간 파쇄·분리업체, 사회적기업 재사용 채널)을 통합 운영한다. EU에서 출범한 ‘Textile PRO Forum’의 민간 자율조정 사례를 벤치마크한다.
서비스디자인 의무조항
서비스디자인 관점의 ‘폐기물 최소화 계획서’를 대여·구독형 비즈니스의 인허가·지자체 협약 요건으로 포함하게 한다. 왕복 물류를 설계할 때 재사용 포장 표준화, 지역 순환거점 연계, 반납 트립의 탄소 집계·감축계획을 의무 제출토록 한다. 이는 제도와 디자인을 접목하게 하는 안전장치이다.
이미 EPR은 전자·포장재에서 의류·배터리·차량으로 넓어졌고, 이제 ‘온라인 유통’과 ‘제품 정보’(DPP)로 진화하고 있다.
플랫폼과 물류·제조·디자인 전 과정을 “책임 있는 편리함”으로 리디자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 DVD 배송 사업은 창업 25년 만인 2023년 가을 종료되었다.
* "미반납 DVD도 비용 없이 소장 가능"…9월 29일 서비스 종료. 연합뉴스. 2023.8.23.
이 사례는 자원의 순환과 외부효과를 함께 총체적 관점에서 서비스디자인해야 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기업이 활동을 이어가면서 최소한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일깨우는 반면교사로 남는다.
만약 넷플릭스의 서비스디자이너가 생산·유통·배송·반납·말소 전 과정을 그려 보며, 예컨대 재사용 포장 표준화, 지역 반납망 구축, 왕복 최소화 알고리즘, 대여권 공유 등을 통해 물량과 폐기물을 줄였다면 어땠을까?
앞으로 서비스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윤리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편리함을 늘리는 만큼, 그만큼 우리의 책임을 줄일 구체적 장치를 동시에 디자인한다.”는 원칙이 없다면 혁신은 빚으로 남을 수도 있다

2025.9.6. 윤성원.
참고문헌
1. OECD (2024),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OECD Publishing.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2024/04/extended-producer-responsibility_4274765d.html
2. OECD (2019),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and the Impact of Online Sales. OECD Publishing.
https://www.oecd.org/content/dam/oecd/en/publications/reports/2019/01/extended-producer-responsibility-epr-and-the-impact-of-online-sales_3475ee23/cde28569-en.pdf
3. European Commission (2024), 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 (ESPR).
https://commission.europa.eu/energy-climate-change-environment/standards-tools-and-labels/products-labelling-rules-and-requirements/ecodesign-sustainable-products-regulation_en
4. European Commission (2025), Waste Framework Directive – Textile and Food Waste Reduction (Provisional Agreement).
https://ec.europa.eu/
5. European Union, EU Digital Product Passport (DPP) overview.
https://en.wikipedia.org/wiki/EU_Digital_Product_Passport
6. LBNL (2014), The Energy and Greenhouse-Gas Impacts of DVD Delivery and Streaming Media. 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
[ScienceDaily 보도 요약]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14/05/140528204303.htm
7. IEA (2019), The Carbon Footprint of Streaming Video. International Energy Agency.
https://www.iea.org
8. Reuters (2025), EU Council agrees requirements for vehicle recycling at end-of-life.
https://www.reuters.com/sustainability/climate-energy/eu-council-agrees-requirements-vehicle-recycling-their-end-use-2025-06-17
9. 독일 포장법(VerpackG) 관련: Stiftung Zentrale Stelle Verpackungsregister.
https://www.verpackungsregister.org
10. 프랑스 AGEC 법 관련: Ministry for Ecological Transition (France).
https://www.ecologie.gouv.fr
11. Monotype Pressing (2020), The Environmental Impact of Physical Music Formats and Streaming.
https://monotypepressing.com/the-environmental-impact-of-physical-music-formats-and-streaming
12. Keele University (2019), The Environmental Impact of Music Consumption.
https://www.keele.ac.uk/about/news/2019/january/music/environmental-impact.php
13. Netflix 공식 블로그 (2023), Netflix DVD Service Sunset Announcement.
https://about.netflix.com/en/news/dvd-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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