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어, 의태어는 눈치와 공감의 언어 - 한국어가 가진 잠재력

2025. 9. 18. 08:26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허리를 휘청휘청 굽혀 모를 심을 때마다 물결은 사박사박 흔들리고, 찰박찰박 튀며 반짝반짝 부서진다. 흙탕물이 출렁출렁 넘실대고, 손끝은 파르르 떨리며 모가 꾸벅꾸벅 자리 잡는다. 그때 하늘에서 비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더니 이내 주룩주룩 쏟아지며 소란이 와글와글 번져간다.

한국어에는 통상 국어사전에 수록된 의성어·의태어(표준어)만 해도 약 5천여 개에 이르며, ‘-하다, -대다, -거리다, -이다’ 등과 결합하여 동사나 형용사를 형성하는 파생어까지 고려하면 15,000여 개에 달한다. 이는 사전에 실린 약 6만여 개의 순우리말 가운데 4분의 1 수준이다. 즉, 순우리말 넷 중 하나는 흉내말이나 그 파생어라는 얘기다.
* 출처: 박동근, 「국어사전의 의성어·의태어 미시 정보 제시 방법과 문제점」, 2024.

한국어 외에 가장 많다고 알려진 일본어도 2천 개에 불과하고, 영어는 500개 남짓, 유럽 각국의 경우도 수백 개 수준이다. 의성어·의태어는 세계 언어 중 한국어가 최대라고 보아야 한다.

왜 한국어는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은 감각과 정서를 포착하는 표현을 가지게 되었을까? 

답은 한국의 자연환경과 공동체 조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마다 전혀 다른 기후가 찾아온다. 눈은 펑펑 내리기도 하고, 소복소복 쌓이기도 하며, 보슬보슬 흩날리기도 한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생활과 농사에 불리했다. 언어는 외부 자극을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는 관찰의 도구이자 센서였다.
특히 쌀농사는 밀이나 옥수수보다 몇 배 더 체력적으로 힘들다. 허리를 굽혀 모를 심고, 물을 대고, 물이 찬 논에서 김을 매고, 수확하는 전 과정이 극심한 노동 강도를 요구했다. 모심기에 알맞은 날은 번개같이 지나갔기에 혼자서는 불가능했고, 마을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상태를 살피고, 말하지 않아도 의도를 읽는 눈치를 발휘해야 했다. 긴 설명보다 짧은 표현 하나로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의성어·의태어는 공동체 안에서 빠르게 감정을 나누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언어적 도구로 발달했다.

한국어 의성어·의태어의 예외적 다양성은, 생태적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눈치와 공감력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척척, 사박사박, 보슬보슬, 아슬아슬…
이런 표현들은 한국이라는 독특한 조건 속에서 공동체가 협력하고 공감하기 위해 발달한 언어적 센서이자 채널이었다.
서비스디자인에서도 디자이너는 관찰과 공감을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삼는다. 우리의 삶의 조건에 의해 형성되고 한국어 안에 뿌리내려 강화된 감각 체계야말로, 우리가 서비스디자인을 잘할 수 있는 토양이자 자산일지 모른다.

2025.9.18.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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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핵심 주장
Iconicity correlated with vowel harmony in Korean ideophones (Nahyun Kwon, Laboratory Phonology, 2018) (Journal of Laboratory Phonology) 한국어 의성어·의태어(ideophones) 어근 내부의 모음 조화(vowel harmony) 체계와 상징성(iconicity)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실증 분석. 즉, 음운 형태(소리 구조)가 의미(감각/상태 등)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줌. (Journal of Laboratory Phonology)
Korean Mothers Attune the Frequency and Acoustic Saliency of Sound Symbolism (Jo et al., 2018) (PMC) 한국 엄마들이 아기 말 발달 단계에 따라 의성어·의태어 및 소리 상징성 단어(sound-symbolic words)를 더 자주, 더 두드러지게 사용한다는 연구. 언어습득 초기부터 공동체 내 소통에서 소리 표현의 중요성이 높다는 증거. (PMC)
What Sound Symbolism Can and Cannot Do: Testing the Iconicity of Ideophones from Five Languages (Dingemanse et al., 2016) (ResearchGate) 여러 언어(한국어 포함)의 ideophone을 대상으로 의미 추론 가능성과 표현 형태의 상징성 테스트를 함. 일부 언어권 화자들이 unfamiliar한 ideophones도 의미를 어느 정도 추측 가능하다는 결과 → 소리와 의미 사이의 상관성이 보편적 가능성도 있음. (ResearchG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