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더 나은 디자인으로 국가를 개선하자 - Korea by Design을 꿈꾸며

2025. 9. 14. 10:23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디자인 선언을 바라보는 냉소와 기대 사이

2025년 8월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은 디자인으로 국가를 개선하자 Improving Our Nation Through Better Design"을 발표하며 America by Design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디자인이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가져야한다는 선언은 여러 국가의 지배 세력들로부터 거듭되어왔다. 그것은 디자이너들은 물론 관심을 가진 일반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갖게 했지만 번번히 실망으로 끝났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서로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디자인 전문가들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느꼈던 이유는 디자인 활용 영역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분에서 지나친 기대를 했었기 때문이고, 비전문가들이 실망했던 것은 전에 보지 못하던 휘향찬란한 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게 될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를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번엔 다를까? 이야기가 퍼지는 정황을 보자면 비관적이다. '더 나은 디자인으로 국가를 개선하자'는 선언은 분명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사적 조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초점은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영역에 맞춰져 있다. 생활의 경험을 편리하게 하고 소외받는 모든 이에게 접근성을 확장하는 '경험의 혁신'보다는 디지털과 물리적 환경을 디자인하는 차원으로만 소개되고 있다.
- “Americans’ everyday lives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웹사이트와 물리적 장소”를 우선 개선 대상이라고 못 박았다.
- “시민들이 정부와 상호작용하는 사이트”의 시각적 표현과 사용성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 각 기관은 2026년 7월 4일까지 첫 결과물을 내놓으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 모두가 가리키는 것은 뚜렷하다. 여전히 제품, 웹사이트, 환경, ‘보이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디자인은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다르다. 디자인은 결과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인풋과 아웃풋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생각의 틀에 비쳐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현실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산출물”에 집착한다. 디자이너는 무대 위에 올려놓을 근사한 결과물을 강요받고,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하는 들러리로 전락한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참여하고 언제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과정일 뿐 아니냐, 그래서 결국 무엇이 만들어진다는 것인가?”
이 질문은 디자이너를 다시 산출물 쇼의 강박으로 몰아넣는다. 초반의 기세는 사라지고, 과정은 흐지부지되며, 결과는 포장된 껍데기로 남는다.

과정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정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구체적 장면 속에서 그 실체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청년 근로자들이 점심시간에 주민센터 출장소와 연계된 ‘리빙랩 존’을 찾는다. 이곳은 단순 민원 창구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직접 경험하며 불편과 요구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공간이다.
한 청년이 말한다.
“근무시간이 일정치 않아서 건강검진 예약을 매번 놓칩니다. 모바일 예약 시스템이 저녁 시간대엔 접속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대화 내용 중 '접근성을 가로막는 지표 관련 내용'이라는 신호가 포착되며, 이 발언은 곧장 리빙랩 참여 기록 플랫폼에 등록된다.
지역 보건소와 산업단지 관리기관의 제도개선팀 화면에 ‘오늘의 과제 우선순위 2위’라는 알림이 뜨고, 두 팀은 바로 온라인 회의에 접속해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함께 온 동료도 이야기한다.
“산단 내 대중교통이 부족해 병원이나 주민센터까지 이동이 힘듭니다. 건강검진을 산단 내 클리닉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순회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어요.”
이 제안은 비슷한 불편을 겪는 그룹과 자동으로 연결되고, 정책개선팀은 이를 생활 기반 서비스 개선 아이디어로 정리한다. 이 과정에 참여를 희망한 적극적인 시민들은 즉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수집된 의견은 정책가들이 실시간으로 검토한다.
곧이어 이 제안은 청년 패널 참여로 이어지고, 디자이너와 정책가가 합류해 프로토타입 서비스를 만들고 실험 단계로 발전한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책이 기획되고 결정, 실행되는 과정과 방법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 경험을 정책 언어로 번역하여 문제를 정의한다. 
의견과 제안을 수집하고 묶어내며 참여를 구조화한다.
정책 아이디어를 실험 가능한 형태로 시각화하고 검증한다.
시민의 제안이 정책으로 이어지고 다시 피드백되는 순환 구조를 설계한다.
정책의 기획–개발–실험 과정 자체를 새로 디자인함으로써, 서비스 모델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여기에서 디자인은 정책과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과정 전체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로 작용한다. 

디자인이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책이 공급자 위주나 기술 위주로만 기획되면 서비스는 결국 국민 평균에 맞춰진 형태로 수렴된다. 그렇게 되면 평균선을 기준으로 한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디자인은 바로 그 지점을 메운다. 특정한 ‘평균’을 기준으로 하는 대신,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의 경험을 드러내고 이를 정책 언어로 번역한다. 그러한 과정이 제도 안에 녹아들어야만, 소수자·취약계층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공공서비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디자인은 화려한 결과물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문턱에서 멈추는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책 과정에 디자인이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Korea by Design을 꿈꾸며

그렇다면 ‘Korea by Design’이 실현된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까.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것인가이다. 이 판단은 정책가와 디자이너,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와야 한다.
짠하고 멋지게 나타나게 될 결과도 필요하다. 어쩌면 멋진 결과물을 통해 디자인은 안정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정이 제도화되어야 제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과정이 정례화되고, 제도화되어 기본으로 자리 잡을 때 디자인은 사용자 중심으로 관행을 바꾸고 서비스를 혁신하는 역할자로서 정당한 지위와 권한을 확보할 수 있다.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일상이 되고 문화가 되려면 디자인 과정이 제도 안에 뿌리내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다. 제도의 일부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디자인은 보여주기용 이벤트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공공 도구가 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Korea by Design’은 웹사이트를 새로 고치는 수준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공공서비스 운영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실험이 될 것이다.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선언은 또 하나의 휘황찬란한 허상으로 사라질 뿐이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디자인을 결과물이 아닌 과정으로 정착시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정례화하고 제도화하여 공공의 기본 언어로 만드는 것. 그때 비로소 디자인은 국가 전략의 진짜 힘으로 작동할 것이다.


2025.9.14.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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