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20. 15:53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2025년 9월 18일 ‘한강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도시의 상징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모습이다. 단순 이동수단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눈에 띄는 핑크색이며, 도시의 역사나 시민의 기억과는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 색이 강렬할수록, 맥락의 부재는 더 선명히 드러난다. 우리 공공환경을 디자인 관점으로 보지 않은 결과다. ‘디자인서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디자인 수준이 아쉽고 이름이 아깝다.
도쿄의 수상버스는 다르다. 은하철도999, 캡틴하록으로 잘 알려진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 Matsumoto Reiji)가 디자인을 맡아, 대중문화와 교통수단을 결합했다. 마쓰모토 레이지가 디자인한 배라고?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머릿속에 은하철도999 주제가가 울려 퍼졌고, 어린 시절 TV 앞에서 두근거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실제 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났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우주선 같은 독특한 형태의 배에 호기심을 갖고, 부모 세대는 아련히 은하철도999의 감성을 떠올린다. 그 기억은 세대 간을 잇는 경험이 되고,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하나의 생생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교통수단이 도시의 집단 기억을 불러내는 장치가 된 것이다.
공공디자인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감응에 뿌리를 둔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2005, Peter Eisenman), 부산 영도다리(2013, 복원사업 백서), 런던의 더블데커 버스(디자인 개량형 New Routemaster 2012년. Heatherwick Studio)처럼, 기능을 넘어 역사적 맥락과 시민의 일상 경험을 호출할 때 비로소 상징으로 작동한다.
1.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 정식 명칭: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유럽 유대인 학살 추모비)
- 위치: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남쪽
- 설계자: Peter Eisenman (피터 아이젠만)
- 완공 연도: 2005년
- 의의: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추모 공간으로, 독일이 과거의 죄책을 공공공간의 형태로 직시한 대표적 사례. 공공디자인이 ‘기억의 윤리’를 구현한 모델로 평가됨.
(출처: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Foundation, www.stiftung-denkmal.de)
2. 부산 영도대교(영도다리)
- 위치: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 사이
- 초기 준공: 1934년 11월 23일 (일제강점기 최초의 도개교)
- 재개통: 2013년 11월, 복원 및 재설계 사업 완료
- 의의: 한국 근대화와 전쟁 이후 재건의 상징으로, ‘기억의 다리’라 불린다. 재개통 시 시민들의 귀환 행렬과 함께 도시 기억의 회복을 상징.
(출처: 부산광역시 도시디자인과, 「영도대교 복원사업 백서」, 2014)
3. 런던 더블데커 버스
- 대표 모델: AEC Routemaster
- 운행 개시: 1956년, Transport for London에 의해 2005년 공식 운행 종료,
이후 디자인 개량형 New Routemaster가 2012년 재도입. - 디자이너: Heatherwick Studio (재디자인, 2012)
- 의의: 단순 교통수단을 넘어 런던의 정체성과 관광 상징이 된 대표적 공공디자인.
(출처: Transport for London Archives; Heatherwick Studio, “New Routemaster Design Overview,” 2012)
한강버스에는 이런 층위가 결여돼 있다. 순수하게 기능적인 ‘버스’라는 이름의 평범성에 대비된 ‘핑크색’의 기묘한 과장은 있지만, 서울의 이야기나 세대를 아우르는 기억에 소구하지 않는다. 도시의 상징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능의 충족이 아니라, 시민과 세대를 잇는 기억을 불러내는 힘이다.
‘디자인서울’을 말하려면, 교통수단에 색을 입히는 수준을 넘어, 시민의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는 서사를 담아야 한다.
시민이 그것을 떠올릴 때, 감정과 기억에 고리를 거는 앵커점이 있어야 한다. 탈 때, 그 안에서 기대했던 무엇인가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강버스, 도시를 대표할 공공디자인의 가치는 여전히 비어 있다.
2025.9.20. 윤성원
* 관련 글 : 겉과 속이 다른 정책, 버스라 불리는 유람선. 2025.9.26. 윤성원
한강버스 한달간 시민탑승 중단…성능안정 위한 시범운항 전환 (연합뉴스, 2025.09.28)
'서울시는 9월 29일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운항'으로 전환한다고 28일 밝혔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26일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22일에는 선박 전기 계통 이상으로 문제가 생겨 운항을 일시 중단하는 등 이상 상황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다. 시는 "운항 초기 최적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기술적, 전기적 미세 결함 등 오류가 발생했고, 즉시 정상화 조치를 취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운항을 위해 시범운항 기간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강버스
디자인: 공개되지 않음



도코크루즈
디자인: 마쓰모토 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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