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20. 23:52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최근 지방의 디자인기업 대표님과 근황을 나누던 중, 공공디자인 기본계획 용역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나오는 공고는 사실상 우리 같은 디자인기업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순간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디자인계획 수립 용역을 디자인기업이 하지 못한다고?
제도가 보장한 주체가 현장에서 배제된다면, 이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다.
공공디자인 기본계획과 진흥계획은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정한 국가·지자체의 의무계획이다. 법 제5조와 제16조는 계획 수립 과정에서 디자인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한다. 취지만 놓고 보면 공공디자인 기획 연구 수행의 중심은 당연히 디자인전문기업이어야 한다. 따라서 발주·평가 기준에 디자인전문기업의 주도권을 명시하지 않으면, 법 취지와 배치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최근 공고에는 공공디자인전문회사와 엔지니어링사업자(도시계획 등) 자격을 동시에 요구하는 조항이 붙고 있다. 협업을 빙자하지만, 실상은 디자인기업의 주도적 참여를 막고 엔지니어링회사가 판을 주도하게 만든다.
자격 병행 요구는 사실상 디자인기업을 배제한다. 엔지니어링회사는 필요 시 공공디자인전문회사 자격을 비교적 쉽게 추가 취득할 수 있지만, 대부분 소기업인 디자인기업이 엔지니어링 등록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조건의 공고에서 디자인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례는 드물다.
여기에 발주 주체의 인식 문제도 겹친다. 디자인은 ‘그럴듯한 그림’이 아니라 정책·이용자·현장 데이터를 수합해 기준을 세우고, 이해관계자를 조정해 실행 경로를 설계하는 전문 활동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규모가 큰 회사면 안전하다”는 안전망 심리가 앞서며, 엔지니어링 자격으로 안정성을 대체하려 든다.
하나 또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공공디자인 기본계획은 소수의 전문가의 머리속에서 나오는 구상이어서는 안된다. 소수 전문가가 방에 모여 ‘그럴듯한 청사진’을 쓰는 순간, 현장은 멀어진다. 디자인 계획에 수요자 참여, 참여형 공동개발(코디자인), 프로토타이핑, 실험이 빠져서는 안 된다. 사용자를 인터뷰하고(정성), 이용 데이터를 읽고(정량), 저니맵·서비스블루프린트로 병목을 잡아내며, 파일럿·리빙랩으로 검증하고, 테스트·현장 실험으로 효과를 검증하는 절차가 기본계획의 디자인 연구 활동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기획·연구 용역에서 필요한 것은 기술사 면허가 아니라, 지식·조사·서비스디자인 역량이다. 수요자 중심의 문제정의–조사–서비스디자인–정책·공간 연계–실행 로드맵을 끝까지 끌고 갈 디자인 전문성이 필요하다. 발주·평가 체계를 다음처럼 문장으로 고쳐 쓴다면 문제를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총괄 주체: “본 과업은 공공디자인전문회사가 총괄한다. 도시·조경·교통 등은 필요 시 자문 또는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되, 총괄책임과 의사결정권은 공공디자인전문회사에 귀속한다.”
수요자 참여 의무: “과업 수행 전 기간에 걸쳐 수요자 참여(시민·현장 종사자)를 의무화한다. 최소 3회 이상 공개 세션(인터뷰/공청/워크숍)을 개최하고, 참여 결과를 산출물에 추적 가능하게 반영한다.”
참여형 공동개발·실험: “코디자인 워크숍 2회 이상, 프로토타이핑–파일럿(리빙랩) 1~2회 이상을 실시한다. 각 실험은 사전 가설–측정 지표–대조 조건을 포함한 평가 설계를 제출한다.”
조사·분석 산출물: “저니맵·서비스블루프린트를 필수 산출물로 제출한다. 정성·정량 데이터를 교차 검증하고, 병목·기회영역을 우선순위 매트릭스로 제시한다.”
통합 로드맵: “정책·공간·디지털을 통합한 3단계 실행 로드맵(단기/중기/장기)을 제출한다. 단계별 예산·책임부서·KPI·법제 연계를 명시한다.”
거버넌스: “발주기관 내 전담 TF(관련 부서+실무자)와 시민패널을 구성한다. 게이트 리뷰(Kickoff/Mid/Final) 3회를 실시하며, 통과 기준 미충족 시 수정·보완 후 재심의한다.”
평가 체계(협상에 의한 계약): “본 과업은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진행한다. 기술:가격=90:10(또는 80:20)으로 하며, 기술평가 내 세부 배점은 ① 수요자 참여 설계 20점 ② 서비스디자인 방법론 정합성 20점 ③ 실험·검증 계획 15점 ④ 통합 로드맵 15점 ⑤ 성과관리·이행보증 10점 ⑥ 조직역량·PM 20점으로 한다.
가격이 적정가에 근접할수록 고득점. 적정가보다 낮은 경우도 감점”
안정성·리스크 관리: “안정성은 재무지표와 이행보증·마일스톤 검수·대체수행자 지정으로 관리한다. 자격 병행 없이도 중도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도록 중간성과 미달 시 계약조정/해지 조항을 둔다.”
데이터·권리: “조사 데이터·산출물은 개방형 포맷으로 제출한다. 공공 재사용을 위해 저작권·라이선스 범위를 명시하고, 후속 사업에서의 재사용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총괄은 디자인, 보완은 엔지니어링 — 이 구조를 거꾸로 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공공디자인 기본계획은 이름 그대로 디자인전문성이 중심이어야 하는 법정계획이다. 발주 구조가 행정 편의와 업역 논리에 밀려 본말이 전도되면, 법은 장식이 된다. 엔지니어링의 안정성을 빌려 안심을 사는 대신, 도시의 품질을 저당 잡히지 말자. 발주 체계를 법 취지에 맞게 되돌리는 것, 그것이 공공디자인을 진흥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지키는 길이다.
2025.9.20. 윤성원
공공디자인 기본계획 발주 구조의 역설: 디자인기업을 배제하는 자격 요건 문제
2025.9.18.
1. 현황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공디자인 기본계획 및 진흥계획 연구·용역 공고에서 공공디자인전문회사와 엔지니어링사업자(도시계획 등) 자격을 동시에 요구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협업을 유도하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공공디자인전문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엔지니어링사업자가 사실상 주도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제약이 된다.
2. 법 취지와 불일치
- 공공디자인전문회사: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신고제. 전담 전문인력과 일정 매출 요건을 충족하면 등록할 수 있으며, 공공디자인 기획·조사·분석·개발·자문을 수행하도록 제도화된 주체이다.
- 엔지니어링사업자: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따른 등록제. 도시계획·조경 분야의 기술·자본·인력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본래의 목적은 공학적·기술적 용역 수행에 있다.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5조와 제16조는 국가·지자체가 공공디자인 진흥계획을 수립하고, 이 과정에서 디자인전문가 참여를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공공디자인 기본계획은 본질적으로 디자인전문기업이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법 취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주 구조가 엔지니어링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되면, 결과적으로 법이 보장한 주체(디자인기업)가 배제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3. 문제점
- 실질적 배제
엔지니어링사업자가 공공디자인전문회사 신고를 추가 취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디자인기업이 엔지니어링 등록 요건을 충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격 병행 요구는 디자인기업의 단독 참여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 정책 목표 왜곡
공공디자인 기본계획은 디자인 전문성 강화를 위해 제도화된 법정계획임에도, 실제로는 기술·엔지니어링업체가 사업을 주도한다. 이는 법의 본래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 생태계 위축
공공디자인전문기업이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접근이 봉쇄되면, 공공디자인 생태계는 성장을 멈추고 형식적 참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4. 개선 방향
- 발주 지침 재정비: 공공디자인 기본계획 수립용역의 주체를 공공디자인전문회사로 명확히 하고, 필요할 경우 도시계획·조경 등은 협력 자문 또는 컨소시엄 형태로 보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참여 구조 개선: 공공디자인전문기업이 총괄 수행기관이 되고, 엔지니어링사업자는 보조적 역할로 참여하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 법 취지 강화: 발주기관이 법 제5조(기본계획 수립)와 제16조(전문가 참여)의 취지를 준수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공디자인전문기업의 실질적 참여가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 다만, 공공디자인전문회사가 신고제라는 점을 악용하여, 엔지니어링회사 등이 사실상 형식적 요건만 갖추어 자격을 취득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 이는 본 사안과는 별개의 제도적 과제로, 공공디자인전문회사 신고제의 전문성 검증 및 운영 개선 차원에서 별도로 논의·보완되어야 할 것임.
5. 결론
공공디자인 기본계획은 디자인전문성이 중심이 되는 법정계획이다. 따라서 법 취지에 충실하려면, 엔지니어링사업자의 독점적 참여를 차단하고, 공공디자인전문기업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발주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이는 공공디자인의 전문성 강화와 정책적 목표 실현을 동시에 충족하는 길이다.
관련 근거
| 조항 | 주요 내용 | 디자인기업 중심 수행 유도와의 연계 |
|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1조 | 이 법은 공공디자인의 문화적 공공성과 심미성 향상, 국가 및 지역 정체성과 품격 제고, 국민의 문화향유권 증대를 위함. (법제처) | 공공디자인의 정체성·심미성 확보라는 목적은 기술 공학 중심보다는 디자인전문성 중심 수행을 요구함. |
| 제5조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의 수립 등) | 국가·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계승하여 지역 진흥계획을 수립해야 함. (법률정보센터) | 기본·종합계획은 공공디자인전문회사가 참여 가능한 구조여야 법 취지에 부합함. |
| 제16조 (전문가의 참여) | 국가기관 등은 공공디자인사업 추진 시 전문가를 위촉하거나 해당 업무의 일부를 맡기거나 조정 총괄하게 할 수 있음. (법률정보센터) | 전문가 참여는 디자인전문가 포함이며, 디자인기업도 주체로 참여 가능해야 함을 의미함. |
| 시행령 제? 조항 (공공디자인 용역 참여 기준) | 발주금액 수준별 상근 전문인력 기준 규정됨 (예: 5천만원 미만, 5천만원 이상 등) (법률정보센터) | 전문인력 요건은 디자인전문회사가 갖추기 유리한 조건일 수 있으나, 다른 업종(엔지니어링 등)만을 유리하게 하는 해석을 지양해야 함. |
| 시행규칙 제3조 (공공디자인전문회사의 기준) | 전담 전문인력 3명 이상 상근,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 또는 직전 3개 사업 연도의 평균 매출액이 일정 기준 이상(예: 1억원)일 것 등 신고 요건 규정됨. (공공디자인) | 공공디자인전문회사를 공식적 수행자로 신고하여, 디자인기업이 용역 수행자로 인정될 수 있는 법적 자격이 존재함. |
사례
충청남도 / 제2차 공공디자인 진흥계획 수립 연구용역
업종제한에 학술·연구용역 + 산업디자인전문회사(환경디자인/4442 또는 종합디자인/4444) + 엔지니어링사업(도시계획/3583) 또는 기술사사무소(도시계획/1351)를 조합으로 명시.
URL: https://m.momo365.net/Bid?cd=detail&iBidCode=2025080630039-0
경상북도 / 안동시 예끼마을 경관정비 기본계획 수립용역
투찰제한에 엔지니어링사업(도시계획/3583·조경/3584) + 산업디자인전문회사(종합/4444·환경/4442·시각/4440) + 공공디자인전문회사(6484) 등 조합 명시.
URL: https://dsninfo.or.kr/board/detail.do?seq=1024709&type=BID
하동군 / 경관기본계획 재정비 및 공공디자인 진흥계획 수립 용역
엔지니어링사업자(도시계획·교통·조경) 요구가 확인되며, 공공디자인 진흥계획과 결합 발주. 일부 세부항목은 원문 열람 필요하나 병행 자격 요구 관행 확인 가능.
URL: https://www.igunsul.net/detail_bid/index/bid8290045
(요건 요약): https://www.bidpro.co.kr/n0_ipchal/konggo/svc/konggo_view.asp?num=2838795
김천시 / 마잠마을 공공디자인사업 디자인개발 및 설계용역
산업디자인전문회사(환경/4442·종합/4444 또는 공공디자인전문회사/6484) + 엔지니어링사업(도시계획/3583 또는 조경/3584) 혹은 기술사사무소(도시·조경/1351·1352) 동시 요구.
URL: https://www.pro1.co.kr/n0_ipchal/konggo/svc/konggo_view.asp?num=2843966
사천시 / 경관기본계획 재정비·공공디자인 진흥계획 및 도시디자인개발사업 용역
제안공모 공고(협상계약). 원문 열람 시 업종 병행 요구가 다수 사례와 동일 패턴으로 표기되는 유형.
URL: https://www.jungi.net/detail_bid/index/bid7748986
기타 관행 참고(지자체·공기업 공고)
LH·지자체 공공디자인 관련 용역에서 엔지니어링(도시계획/조경 등) 자격 병행 요구 빈발.
LH 예: https://www.kia.or.kr/news/notice.php?category=9&idx=19360&ptype=view
지자체 예: 부산 연제구 안전통학길 조성 등에서 엔지니어링(도시계획·조경) 또는 기술사 병행 요구.
URL: https://www.dcb.or.kr/01_news/?mcode=0401010000&mode=2&no=1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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