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사람에게 더 상처받는 이유 - 서비스디자인의 교훈

2025. 10. 3. 14:35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가까이하지 말아라. 그와 가까워질수록 당신은 불행해질 수 있다.

이타적인 사람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1. 완전이타형 : 나를 돌보지않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유형
2. 반이타형 : 타인을 위하나 적당한 선을 지켜 자신도 아끼는 유형

완전이타형과 가까이하면 불행해진다.
가까운 사이가 될수록 완전이타형은 상대를 자기와 동일시한다. 그는 타인을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먼 타인을 위해 이미 자신과 동일시 된 가까운 상대를 희생한다.

엄마에게 누구에게 했던 것보다 심한 말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은 뇌 속에서 ‘나’와 가장 중첩된 존재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뇌는 ‘상대=나’로 처리한다.
거울뉴런(mirror neuron)과 자기-타자 중첩 회로(overlapping self-other representations)가 활성화되며, 뇌가 엄마·배우자·자녀 같은 존재를 자기의 연장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다. 완전이타형은 그 경계 붕괴가 더 심해진다. 그래서 그는 먼 타인을 위해 자기와 동일시되는 가족을 희생하고 가까운 이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뇌는 이타적 행동 자체를 보상으로 처리한다. 연구에 따르면 기부하거나 남을 돕는 행위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고, 쾌감을 느낀다. 완전이타형은 이 도파민 보상에 강하게 의존한다. 문제는 가까운 관계에서조차 ‘가장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선택’(예: 낯선 다수를 위해 나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을 희생하는 것)을 했을 때 더 큰 보상감을 느끼는 구조가 생긴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친밀한 상대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고, 가까운 사람이 오히려 불행을 경험한다.

일부는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타심은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가치 아닌가?” 맞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자기 자신을 돌보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반이타형(자신도 돌보는 유형)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자기보호와 사회적 균형을 조율한다. 즉, ‘내가 너무 희생하면 장기적으로 관계도 깨진다’라는 계산을 한다. 완전이타형은 도덕·문화적 신념이 자기보호 신호를 억압한다. 뇌 수준에서 보면, 편도체(감정)와 보상회로(쾌감)가 전전두엽(합리적 조율)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희생정신은 인류를 발전시켰다. 종교나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이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역사적 사례들이 증명한다. 위대한 희생을 감행한 이들은 종종 자기 가족을 소홀히 했고, 가까운 사람들을 불행 속에 남겨두었음을. 주인공의 위대함 뒤에는 가까운 이들의 개인적 비극이 있었다.

그림: 챗GPT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많이 그렸다. 그가 해바라기를 많이 그렸던 때는 1888년, 곧 아를에 도착할 고갱의 방을 꾸미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반 고흐는 편지에 “당신이 해바라기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고 썼다. 끼니도 거를만큼 재정적 여유가 없는 상황임에도 고갱이 머물 방을 꾸미기 위해 작은 물품을 사들이는 노력을 한다. 남을 위하는 반 고흐의 심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타인과 예술을 위해 자기 몸과 정신을 불살랐던 그는 가까운 주변인들에게 고통을 주었고 마지막에는 절망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남은 동생 테오는 빚과 병으로 무너졌다. 반 고흐는 인류에게 중요한 예술 자산을 남긴 반면, 가까운 가족에게는 고통과 파멸을 남겼다.

톨스토이도 인류애를 외쳤지만, 그 도덕적 고집은 아내와 자녀를 파괴했다. 스스로는 성인이 되고자 했지만, 가정은 불행의 장이었다. 
두 사람은 위대한 유산을 남겼으나 가까운 가족에게는 불행을 안긴 완전이타형이었다.

다른 길도 있다. 샤갈은 아내 벨라와의 사랑을 그림에 새기며, 예술과 가족을 동시에 지켜냈다. 그의 화폭은 인류애이자 가족애였다.
바흐는 음악과 신앙, 교육을 집 안에 녹여 20명의 자녀를 음악가로 길러냈다. 그의 자녀 중 4명은 유럽 음악사에 남을 작곡가로 성장했다. 그의 가정은 하나의 예술 공동체였다. 두 사람은 자기와 타인을 함께 지킨 반이타형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서비스디자인을 떠올릴 수 있다.
‘수요자 중심 지향’은 이타심의 발로이며 선한 의도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비스디자인에서의 이해관계자는 수요자 뿐만이 아니다. 내부 고객, 내부팀과 클라이언트도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다.
디자이너가 “나는 수요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명분으로 내부팀이나 의뢰기관의 요구사항을 중요하지 않게 취급한다면, 그것이 바로 완전이타형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대중을 위한다는 이유로 가까운 내부 고객의 맥락과 어려움을 무시한다면, 서비스는 불신과 저항 속에서 무너지게 된다.
그러니 서비스디자인은 반이타형의 길을 택해야 한다. 가까운 내부 고객과 이해관계자의 제약과 목소리를 존중하면서 최종 수요자에게도 가치를 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가까운 수요자의 경험을 보듬는 것, 그 균형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서비스의 출발점이다.

완전한 이타심은 불행을 낳고, 균형 잡힌 이타심은 위대함과 행복을 함께 남긴다. 일상에서든 서비스디자인이든, 가까운 사람과 내부 고객을 지키는 균형이 필요하다.

추석을 앞둔 지금, 먼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보자. 그러다보면 가족과 동료가 희생될 수 있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이타심의 불균형은 조직 내 면역체계를 무너뜨린다. 목적을 위해 가까운 이해관계자를 희생시키게 된다면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2025.10.3. 윤성원


참고자료


거울뉴런(mirror neuron)과 자기-타자 중첩
Gallese, V., Keysers, C., & Rizzolatti, G. (2004). A unifying view of the basis of social cognition.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8(9), 396–403.
→ 거울뉴런이 타인의 행동과 감정을 자기 것처럼 모방·내면화한다는 이론.
Decety, J., & Sommerville, J. A. (2003). Shared representations between self and other: A social cognitive neuroscience view.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7(12), 527–533.
→ 자기-타자 중첩 회로(overlapping self-other representations)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

전전두엽과 감정 조절
Miller, E. K., & Cohen, J. D. (2001). An integrative theory of prefrontal cortex function. Annual Review of Neuroscience, 24(1), 167–202.
→ 전전두엽이 자기조절과 균형 판단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연구.

보상회로와 이타적 행동
Moll, J., Krueger, F., Zahn, R., Pardini, M., de Oliveira-Souza, R., & Grafman, J. (2006). Human fronto–mesolimbic networks guide decisions about charitable donation. PNAS, 103(42), 15623–15628.
→ 타인을 돕거나 기부할 때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며 도파민 쾌감을 유발한다는 fMRI 연구.
Harbaugh, W. T., Mayr, U., & Burghart, D. R. (2007). Neural responses to taxation and voluntary giving reveal motives for charitable donations. Science, 316(5831), 1622–1625.
→ “남을 위한 희생”이 자기 보상 체계에서 강화되는 현상 증명.

가까운 사람에게 더 심한 말을 하는 이유
Baumeister, R. F., & Leary, M. R. (1995). The need to belong: Desire for interpersonal attachments as a fundamental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Bulletin, 117(3), 497–529.
→ 애착 관계에서 억제가 완화되어 가까운 이에게 더 거칠게 감정을 표출한다는 설명.
Laurent, H. K., & Powers, S. I. (2007). Emotion regulation in emerging adult couples: Temperament, attachment, and HPA response to conflict. Biological Psychology, 76(1–2), 61–71.
→ 가까운 관계일수록 갈등 시 감정 통제가 약해지는 생리적 근거 제시.

반 고흐 사례
Van Gogh, V. (1888). Letters from Arles to Theo Van Gogh. (반 고흐 서신 모음, 특히 고갱에게 해바라기 언급한 편지).
Naifeh, S., & Smith, G. W. (2011). Van Gogh: The Life. Random House.
→ 고갱과의 동거, 테오와의 관계, 해바라기 그림이 장식용이자 배려였음을 다룸.
(영상) 세계 미술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 화려한 명성 속 숨겨진 그림자 #정우철 #지혜의다락방 226회


톨스토이 사례
Bartlett, R. (2010). Tolstoy: A Russian Life. Profile Books.
→ 말년의 도덕적 이상 추구와 그로 인한 가족 갈등 기록.
Wilson, A. N. (1988). Tolstoy: A Biography. Norton.
→ 아내 소피야와의 갈등, 재산 문제, 가족 파괴적 측면 분석.

샤갈 사례
Chagall, B., & Alexander, S. (1994). Burning Lights: A Unique Autobiography. Schocken.
→ 벨라와의 사랑, 그림 속 가족애 강조.
Wullschlager, J. (2008). Chagall: A Biography. Knopf.
→ 예술과 가족적 삶의 균형에 대한 서술.

바흐 사례
Wolff, C. (2000). Johann Sebastian Bach: The Learned Musician. Norton.
→ 바흐의 가족관계와 자녀 교육, 4명의 작곡가 아들(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등).
Schulenberg, D. (2006). The Music of J. S. Bach: Analysis and Interpretation. University of Nebraska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