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정책, 버스라 불리는 유람선

2025. 9. 26. 08:21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한강버스가 9월18일 운행을 시작했다. 출근시간 교통 혼잡을 덜 수 있을 것이라 했지만, 시작부터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기존 대중교통보다 많은 시간 소요, 안전 점검 미비, 잦은 결항, 운항 중단까지. 많은 돈을 들여 시행착오하고 있는 중이라고,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고 위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시민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의 정치적 기획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출퇴근용 대중교통이라 홍보했다. 교통복지, 친환경, 서민 이동권이라는 말로 채색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유람선에 가깝다. 정시성도, 환승 연계도 담보하지 못하는데, 굳이 버스라고 이름 붙였다. 겉과 속이 다른 정책, 그 지점에서 시민은 불신을 느낀다. 음모가 있음을 감지한다.
겉과 속이 다르면 오래 갈 수 없다.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이라는 명분 뒤에 강바닥을 파내서 환경을 파괴하며 대운하를 준비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한강버스도 교통이라는 간판 뒤에 관광상품을 숨기고 있다. 문제는 신뢰다. 서울시는 일방적이고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시민의 신뢰라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을 잃었다.

서울환경연합이 2024년 4월 시민 8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한강에 버스를 띄우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절반 가까운 49.3%가 세금 지원에 반대했고, 이용 의향을 밝힌 이들 중 58.4%는 ‘여가 목적’이라 답했다. 출퇴근용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고작 12.7%였다. 출퇴근 시간을 늘릴 것이라는 응답도 43.4%였다. 시민의 감각은 처음부터 교통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더 문제는 재정 구조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강버스의 운영사 ㈜한강버스는 지금까지 1,5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서울시 역시 선착장 조성 등 기반시설에 227억 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이 사업은 애초부터 운행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민간은 부대 수익사업을 통해 일부 보전할지 모르지만, 서울시는 교통 인프라의 유지·관리라는 명목으로 계속 예산을 쓸 수밖에 없다. 한 해 예상 수익은 50억 원 수준인데 운영비는 200억 원이 든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 있을까? 만약 지금 시민들의 지적을 수용해 운행을 중단한다면, 이미 투입한 수천억 원의 예산을 허비한 꼴이 된다. 지자체장이 강한 확신을 가지고 추진한 사업이 흐지부지 끝나면 리더십에 손상이 간다. 다른 정책에도 연쇄적 타격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이유가 있기에, 공급자 중심 정책은 문제가 드러나도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이제 와서 물릴 수 없는 것이다. 

서비스디자인은 언제나 수요자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출발점이 지자체장의 확신이 아니라 시민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수요자의 맥락에서 출발하게 되면 애초에 쓸모없는 사업은 생기지 않는다. 중간에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개선과 조정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공급자의 체면이 아니라 사용자의 필요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디자인단(공공서비스디자인)이 이 주제에 참여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수요자인 시민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절차는 갖추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처럼 시장이 원하는 결론을 이미 정해둔 것이라면, 아무리 좋은 대안이 나왔더라도 결국 한강버스의 운항은 예정대로 강행됐을 것이다.
서비스디자인도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지가 없는 권력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러니 중요한 건 정치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시장, 시민의 의견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뽑는 일. 그것만이 정책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결국은 선거다.


2025.9.26. 윤성원
* 관련 글 : 한강 핑크 버스가 우리 도시를 기억하게 할까? 2025.9.20.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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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버스 한달간 시민탑승 중단…성능안정 위한 시범운항 전환 (연합뉴스, 2025.09.28)
'서울시는 9월 29일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운항'으로 전환한다고 28일 밝혔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26일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22일에는 선박 전기 계통 이상으로 문제가 생겨 운항을 일시 중단하는 등 이상 상황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다. 시는 "운항 초기 최적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기술적, 전기적 미세 결함 등 오류가 발생했고, 즉시 정상화 조치를 취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운항을 위해 시범운항 기간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외 사례

도시 / 사업명 내용 요약 & 특징 배울 점 / 주의할 점
방콕, 차오프라야 익스프레스 보트 (Chao Phraya Express Boat) 방콕의 메인 강(Chao Phraya 강)을 따라 운항하는 익스프레스 보트 시스템. 통근용 + 관광용 겸용 노선. 하루 평균 승객 약 40,000명. (위키백과) 만족도 조사에서는 정시성(punctuality)과 안전 설비(lifesaving facilities)의 개선 필요성 지적됨. (ResearchGate) 장점: 기존 도시 수상교통 인프라와 강변 노선을 활용한 혼합 모드 운영 가능성 보여줌.
주의점: 정시성, 환승 연결성, 안전 시스템이 핵심 약점으로 자주 거론됨. 
방콕, Saen Saep 수로 보트 서비스 Khlong Saen Saep 운하를 따라 운항하는 수상버스. 매일 약 6만 명 탑승. 운임 저렴하고 통근 대체 수단으로 기능. (위키백과) 실제로 통근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례. 다만 운하 길이·접근성 제약이 크고, 서비스 빈도나 연계 교통망이 중요 변수.
암스테르담, 도시 운하 + 자율 보트 실험 (Roboat 등) 운하가 많은 도시 구조를 활용해 자율 수상택시 프로젝트를 실험. Roboat는 전기·자율 보트로, 최대 5명 정도 태우는 모델로 운하를 순환 가능. (The Agility Effect)
암스테르담에서는 도시 물류(화물 운송) 쪽에서 수상 루트를 활용하는 연구들도 활발함. 예: 수로+도보/전기차 연계 물류 모델 검토. (ResearchGate)
미래형 실험 모델로 흥미로움.
다만 인구 밀도, 운하 폭, 법규 제약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 주의. 

* 사진출처 :   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63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