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8. 23:20ㆍ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부처 디자인 협력 사업 제도화
부처 경계를 넘는 디자인 기반 사회혁신 플랫폼
핵심 문제
저출산·고령화·기후위기·지방소멸. 이 문제들은 어느 한 부처가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이 문제들을 부처별로 쪼개 담당시킨다. 부처 간 협의는 있지만, 협력은 없다. 그리고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디자인이 공식적으로 활용되는 구조는 아직 없다. 디자인은 부처 경계를 넘어 흩어진 정책과 서비스를 하나의 일관된 경험으로 통합할 수 있다.
* 이 블로그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관점/제안이며,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포함한 어떠한 기관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1. 현황과 문제점
부처 경계가 사회문제 해결을 막는다
한국 정부의 부처 구조는 기능별로 분리되어 있다. 이것이 효율적인 경우도 있지만, 사회문제의 성격이 이 구조와 맞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 고독사를 예방하려면 복지(돌봄 서비스)·주거(1인 가구 공간 설계)·기술(센서·긴급 호출)·도시계획(커뮤니티 공간 조성)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어느 하나의 부처가 혼자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고독사 대응 업무는 복지부 소관이다. 나머지 부처는 협력 대상이지 공동 실행 주체가 아니다. 이런 문제가 저출산, 고령화, 기후위기, 지방소멸, 디지털 격차, 정신건강 위기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디자인이 다부처 협력에서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다양한 부처의 정책과 서비스를 사용자 관점에서 하나의 일관된 경험으로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행 다부처 협력의 한계
한국에 부처 간 협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관계장관회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같은 범부처 협의 기구들이 있다. 그러나 이 기구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방향을 조율하는 역할이지, 실제 사업을 공동 설계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아니다. 디자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이유도 이 구조에 있다. 부처별 사업 기획은 각 부처 담당자가 하고, 디자인은 완성된 사업의 외관을 다듬는 마지막 단계에서만 등장한다. 사용자 리서치와 공동 설계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
디자인의 두 가지 역할 — 환경 설계와 경험 통합
사회문제 해결에서 디자인이 하는 역할은 두 가지다.
첫째, 환경 설계로 행동을 바꾼다. 헌혈을 유도하는 공간 설계, 교통질서를 지키게 하는 도로 설계,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는 모두 규제나 처벌이 아닌 환경 설계로 사람의 행동을 바꾼다. 2012년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범죄예방 디자인 사업이 이것을 실증했고, 이후 서울시는 이 접근법을 '생활안심(범죄예방)디자인'으로 체계화해 2024년까지 총 67개소로 확산했다.
둘째, 흩어진 서비스를 사용자 경험으로 통합한다. 고독사 대응이 복지·주거·기술·도시계획을 아울러야 하듯, 사용자가 여러 부처의 서비스를 넘나들 때 일관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서비스디자인의 역할이다. 이것은 단일 부처가 할 수 없다.
2024~2025년 성과와 남은 과제
2024년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14번 참조)이 10년 만에 성과를 공식화했다. 다부처 협력의 관점에서 주목할 사례들이 있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협력한 사례, 통계청이 지역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개선 사례, 국토교통부가 교통 서비스를 재설계한 사례가 2025년 성과공유대회에서 발표됐다.
그러나 이것들은 개별 사업 단위의 협력이지, 부처 간 공동 설계·공동 실행을 위한 상설 구조가 아니다. 저출산·지방소멸처럼 범부처 복합 의제를 처음부터 디자인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체계가 없다.
2. 국내외 사례
🇰🇷 한국 — 서울시 생활안심(범죄예방)디자인 (2012~)
2012년 서울시는 마포구 염리동을 첫 시범 지역으로 선정해 '생활안심(범죄예방)디자인' 사업을 추진했다. 경찰청·구청·한국형사정책연구원·서비스디자이너가 협력하는 다주체 팀이 구성됐다. 주민 관찰·인터뷰로 시작해 범죄 취약 지점과 주민 불안 구간을 파악했다. 조명 개선, 소금길 조성, 커뮤니티 프로그램 설계가 동시에 실행됐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체계화해 2024년까지 총 67개소로 확산했으며, 가이드라인 1·2·3권을 공개해 타 지자체가 적용할 수 있게 했다. 단일 부처가 아닌 다주체 협력이, 규제가 아닌 환경 설계가 사회문제를 해결한 국내 대표 사례다.
🇬🇧 영국 — Future Observatory: Design the Green Transition (2021~2028)
AHRC(예술·인문학연구위원회)와 디자인뮤지엄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Future Observatory는 영국 최대의 공공 디자인 연구·혁신 프로그램이다. 총 예산 5,900만 파운드(UKRI 공식 발표)로, 100개 이상의 고등교육기관과 75개의 산업·지방자치단체 파트너가 참여한다. 탄소중립, 주거위기, 보건의료, 지역자원관리 등 사회문제를 디자인 연구로 해결하는 구조다.
Design Exchange Partnerships(DEP)는 학계-기업-지방정부가 3자 협력으로 지역사회에 실질적 영향을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특히 2025년 발표된 Design Generators 프로그램은 의료·식품·거버넌스·금융 인프라 등 기존 사회 시스템 안에서 디자인 기반 변화를 만드는 과제를 지원한다. 이 모델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정부-대학-산업-지자체의 다주체 협력이 디자인 연구를 통해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구조다.
🇬🇧 영국 — Policy Lab의 복합 의제 접근
영국 내각부 Policy Lab은 단일 부처가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 사회 의제에 다부처 협력으로 접근하는 실적을 쌓아왔다. 노숙인 문제(복지·주거·보건 협력), 육아(교육·노동·여성부 협력), 취업 지원(노동·교육·복지 협력) 등이 그 사례다. 사용자 리서치와 에스노그라피, 서비스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여러 부처의 서비스가 수요자 경험으로 통합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Policy Lab의 핵심 역할이다.
🇳🇿 뉴질랜드 — Social Investment Agency, 다부처 데이터 통합
뉴질랜드 사회투자청(Social Investment Agency)은 복지·보건·교육 부처의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가장 복합적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통합 지원을 제공하는 모델을 운영한다. 부처 간 데이터 장벽을 넘어 사용자 여정 전체를 추적하는 구조다.
OECD 2025 정부 개요(Government at a Glance 2025)는 뉴질랜드 사회투자청 모델을 복합 사회 과제 해결에서 데이터·디자인·다부처 협력이 결합된 사례로 언급한다.
🇦🇺 호주 — TACSI의 다학제 사회혁신
호주 TACSI(The Australian Centre for Social Innovation)는 사회학자·인류학자·서비스디자이너·사회복지사·재무 전문가로 구성된 다학제 팀이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독립 비영리기관이다. 정부기관이 아니지만 정부와 협력해 복합 사회 의제를 파일럿-검증-확산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단일 부처가 담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외부 다학제 기관이 조율자 역할을 하는 모델이다.
3. 제안
법
- 사회문제 해결 디자인 협력 법적 근거 마련: 행정절차법 또는 사회보장기본법에 복합 사회 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부처 디자인 협력 절차와 방법론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부처 간 공동 설계·공동 실행이 법적으로 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 수요자 참여 설계 의무화: 복합 사회 의제 관련 정책 수립 시 수요자(당사자) 참여 설계 과정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마련한다. 13번(정책 R&D 도입 의무화)과 연계한다.
제도
- 범사회 의제 디자인 협력 플랫폼 설치: 저출산·고령화·기후위기·지방소멸 등 범부처 복합 의제별로 관련 부처·지자체·전문가·당사자가 참여하는 공동 설계 플랫폼을 구축한다. 14번(정책디자인랩)과 연계해 정책랩이 이 플랫폼의 방법론을 지원한다.
- 생활안심디자인 전국 확산 표준화: 서울시 생활안심(범죄예방)디자인의 67개소 경험을 전국 표준 키트로 만들어 모든 지자체가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서울시·경찰청·지자체·디자이너 4자 협력 모델을 전국형으로 재설계한다.
- 다부처 사회혁신 과제 공동 발주 체계: 복합 의제 해결을 위해 2개 이상의 부처가 예산을 공동 편성하고, 디자인 기반 해결책을 함께 발주할 수 있는 공동 발주 체계를 제도화한다. 기획재정부가 공동 발주를 위한 예산 편성 규칙을 정비한다.
정책
- 사회문제 해결 디자인 R&D 투자 확대: 영국 Future Observatory처럼, 탄소중립·고령화·지역소멸 등 사회 의제를 디자인 연구로 해결하는 범부처·대학·산업·지자체 공동 연구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AHRC-디자인뮤지엄 협력 모델처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부·KIDP가 공동 운영하는 대형 디자인 사회혁신 R&D를 추진한다.
- 복합 의제 디자인 접근법 공무원 교육 강화: 09번(공무원 디자인 교육 체계)과 연계해, 복합 사회 의제를 다루는 부처 공무원에게 다부처 협력을 위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 교육을 의무화한다.
- 뉴질랜드 모델 참조 — 부처 간 데이터 연계로 수요자 여정 통합: 사회보장 정보시스템과 교육·고용·주거 데이터를 연계해 복합 필요를 가진 시민이 여러 부처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통합 경험을 설계한다.
사업
- 사회문제 해결 다부처 디자인 협력 파일럿: 지방소멸·정신건강·에너지 빈곤처럼 단일 부처 해결이 어려운 3개 의제를 선정해, 관련 부처·지자체·디자이너·당사자가 공동으로 해결책을 설계하는 파일럿 사업을 운영한다. 호주 TACSI의 파일럿-검증-확산 모델을 참조한다.
- 사회문제 해결 디자인 사례 아카이브 구축: 서울시 생활안심디자인처럼 효과가 검증된 디자인 기반 사회문제 해결 사례를 체계적으로 아카이빙하고 가이드라인을 공개한다. 성공 방법론이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를 만든다.
- 국제 사회혁신 디자인 협력 프로그램: 영국 Future Observatory, 호주 TACSI, 뉴질랜드 사회투자청과 공식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디자인 기반 사회혁신의 국제 경험을 한국 맥락에 맞게 적용하고, 한국의 공공서비스디자인 경험을 역으로 공유한다.
4. 기대효과
단기: 다부처 디자인 협력 플랫폼이 구성되면서 복합 의제를 공동으로 설계하는 구조가 처음으로 만들어진다. 생활안심디자인의 67개소 경험이 전국 표준 키트로 체계화되면서 다른 지자체가 이 방법론을 쉽게 도입할 수 있게 된다.
중기: 사회문제 해결 디자인 R&D가 대형 공동 연구 프로그램으로 발전하면서 탄소중립·고령화 등 복합 의제에 디자인 연구가 본격적으로 투입된다. 부처 간 데이터 연계로 복합 필요를 가진 시민의 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진다.
장기: 영국 Future Observatory처럼, 한국도 정부-대학-산업-지자체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구조적 플랫폼을 갖추게 된다. 부처 경계를 넘어 시민이 일관된 공공서비스 경험을 받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이 포스팅과 연결된 주제
디자인 정책 부처 간 분산 해소 — 부처 협력의 구조적 전제 조건
정책디자인랩 법제화 — 다부처 협력의 실행 공간
미래 사회문제 대응형 공공조직 재설계 — 복합 의제를 다루는 조직 설계
근거기반 정책 설계 정상화 — 다부처 협력의 효과를 실증하는 구조
참고 자료: 서울특별시, 「생활안심(범죄예방)디자인 가이드라인 1·2·3권」 — 2012년 마포구 염리동 시범, 2024년까지 총 67개소 확산 / 행정안전부·KIDP, 「2024~2025 공공서비스디자인 성과사례집」 / UKRI·AHRC, "Future Observatory: Design the Green Transition" — 5,900만 파운드, 100개+ 고등교육기관, 75개 산업·지자체 파트너(2021~2028) / AHRC, Design Exchange Partnerships(DEP) 및 Design Generators 프로그램(2025) / UK Policy Lab, 복합 사회 의제 다부처 접근 사례(노숙인·육아·취업 지원) / OECD, "Government at a Glance 2025" — 뉴질랜드 Social Investment Agency 인용 / TACSI, 파일럿-검증-확산 사회혁신 모델 / 윤성원, 『다시 디자인』(2025) /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이 궁금해』(2022) / 윤성원,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2025) / 윤성원, 『모두의 질문Q』(2025)
2026.05.17. 윤성원 + 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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