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정책디자인랩 법제화

2026. 5. 18. 23:18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정책디자인랩 법제화

국민디자인단에서 상설 혁신 플랫폼으로


핵심 문제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2,000개 과제, 20,000명 참여. 2016년 iF 디자인 어워드 서비스디자인 부문 최고상(금상) — 세계 최초.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은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규모의 참여형 정책 실험이다. 그런데 이 10년의 실험은 여전히 '사업'으로 존재한다. 예산이 끊기면 멈추는 사업이 아니라, 정책 설계의 기본 방식이 되어야 한다.

* 이 블로그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관점/제안이며,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포함한 어떠한 기관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1. 현황과 문제점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 10년 —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이 없는가

행정안전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2014년 시작한 국민디자인단(현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은 정책 수요자인 국민·서비스디자이너·공무원이 함께 팀을 이뤄 정책을 개발하는 참여형 모델이다. 10년간 2,000여 개 과제, 20,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2016년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정부3.0 정책 디자인 그룹(Government 3.0 Policy Design Group)'이라는 제목으로 국민디자인단 운영 사례가 서비스디자인 부문 최고상(금상)을 세계 최초로 수상했다. iF 디자인 어워드는 1953년 시작된 독일의 권위 있는 국제 디자인 공모전으로 제품·서비스·커뮤니케이션 등 9개 부문에서 시상한다. KIDP 50년사에도 이 수상이 주요 성과로 기록되어 있다.
2020년에는 '국민정책디자인사업'으로, 2024년에는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발전해왔다. 2024년 성과공유대회(2024.11.27. 정부세종청사)에서는 전문 심사단 10명과 소통24를 통해 선발한 시민심사단 40명 총 50명이 평가에 참여했으며, 광주광역시 동구가 대통령상, 부산시(자활 혁신)·산림청이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2025년 9월에도 성과공유대회가 이어지며 전남 여수시 섬 지역 돌봄, 통계청 지역키움통계, 국토교통부 SRT 서비스 재설계, 경기 하남시 장애인가족 지원 등 다양한 사례가 발표됐다.
그러나 근본적 한계가 있다. 이 사업은 매년 예산을 확보해야 존재하는 '사업'이다. 2026년에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었다. 또한 참여한 공무원이 학습한 방법론이 조직에 내재화되는 경로가 없다. 과제 단위로 쪼개져 운영되어 광역·전국 차원의 복잡한 정책 과제에 도전하기 어렵다. 더 근본적으로, 정책 기획의 가장 초기 단계에 개입하는 구조가 아니라 이미 방향이 정해진 사업의 서비스 구현 단계에서 디자인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정책랩이란 무엇인가

정책랩은 각국 정부가 공공부문 혁신을 위해 창의적 정책 설계와 사용자 중심 접근을 도입한 대안적 정책 추진 체계다. 디자인씽킹·서비스디자인·행동과학·데이터사이언스를 활용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업하며 정책을 탐구하고 개발한다. 기존 행정 조직과의 결정적 차이는 두 가지다. 첫째, 정책 설계를 조율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있다. 둘째, 행정직 공무원만이 아닌 다학제 전문가 팀으로 구성된다. 권위 있는 정책 이노베이션 랩 연구(Lee & Ma, Journal of Comparative Policy Analysis, 2020)는 영국 Policy Lab·덴마크 MindLab·싱가포르 THE Lab을 비교 분석하며, 이 세 가지 조건이 공통적으로 정책랩의 성공을 결정짓는다고 밝혔다. ①시민·사용자를 설계의 중심에 놓는 것, ②디자인씽킹·프로토타이핑·파일럿 전략을 활용하는 것, ③다학제 협업으로 작동하는 것.
한국의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은 이 기준에 가장 가까운 글로벌 사례 중 하나다. 규모 면에서 세계 최대 수준이다. 문제는 제도적 위상이다.

글로벌 흐름 — '랩화(labification)' 현상

학계에서는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정책 이노베이션 랩이 급증하는 현상을 '랩화(labification)'라고 부른다. Howlett 등의 연구(2022)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 세계 정책랩 수가 수십 개에서 수백 개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의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은 이 흐름 속에서도 참여 규모와 성과 측면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다. 다만 '상설 법제화 기관'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 국내외 사례

🇬🇧 영국 — Policy Lab, 10년의 상설 축적

영국 내각부 소속 Policy Lab은 2014년 설립 이후 10년간 범부처 정책 과제에 인간 중심 디자인 방법론을 적용하는 상설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설립 초기(2014~2016) 2년간 6,000명 이상의 공무원이 40개 이상의 정책 과제에 참여했고, 이후 17,000명의 공무원을 지원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Policy Lab의 핵심 강점은 세 가지다. 내각부 산하라는 위상으로 모든 부처에 개입할 수 있다. 프로젝트 실행뿐 아니라 방법론 개발과 확산을 동시에 담당한다. 성과·방법론·실패 사례를 블로그를 통해 외부에 공개하는 열린 구조다.
Anna Whicher(2021, Policy Studies)의 연구는 Policy Lab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내각부 직속이라는 위상이 어느 부처의 과제에도 개입할 수 있는 수평적 권한을 만들었다"는 점을 꼽는다. 위상이 권한을 만든다는 교훈이다.

🇩🇰 덴마크 — MindLab에서 Disruption Task Force로

덴마크 MindLab(2002~2018)은 세계 최초의 공공부문 디자인 혁신 랩으로, 재무부·내무부·경제부 3개 부처가 공동 운영했다. 전 세계 유사 랩 설립을 촉발한 선구적 모델이다. Whicher(2021)의 연구는 MindLab을 "유럽 전체 정책랩의 원형(archetype)"으로 규정한다.
2018년 MindLab이 종료되고 총리 직속 Disruption Task Force로 개편됐다. 이 전환이 중요하다. 부처 간 공동 조직에서 총리실 직속으로 위상이 격상됐고, '랩(실험)'에서 '태스크포스(실행)'로 역할이 확장됐다. 위상 격상 없이는 정책 실험이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덴마크가 스스로 증명했다.

🇸🇬 싱가포르 — 총리실 직속 정책 실험 기반

Lee & Ma(2020)의 비교 연구에서 싱가포르 정책 이노베이션 랩은 영국 Policy Lab·덴마크 MindLab과 함께 지식 창출·정책 실험·정책 이전을 촉진하는 대표 사례로 분석됐다. 총리실과의 직접 연계가 어느 부처의 정책 과제에도 개입할 수 있는 수평적 권한을 만든다는 점에서 한국 설계에 시사점을 준다.

🇫🇮 핀란드 — DfG, 대학-정부 연계 정책 실험

핀란드 알토대학의 Design for Government(DfG) 과정은 2013년 이후 매년 실제 정부부처 과제를 학생팀이 수행하는 대학원 과정이다. 학생팀의 연구 결과가 부처 공식 보고서로 채택된다. 핀란드 총리실이 이 과정을 국가 실험적 거버넌스 정책 수립의 기반으로 활용한 것은 대학-정부 연계 정책 R&D의 성공 모델이다.

🇰🇷 한국 — 제도화의 단초가 이미 있다

2017년 행정안전부는 행정절차법을 개정해 공공서비스디자인 기법을 국민 의사를 행정과정에 반영하는 공식 방법으로 규정했다. 서비스디자인이 법적으로 행정의 도구로 인정된 것이다. 이것이 정책디자인랩 법제화의 선행 조건이 충족됐음을 의미한다. 방법론은 법에 들어왔다. 이제 그 방법론을 전담하는 상설 기관의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3. 제안

  • 행정절차법 또는 정부혁신 특별법에 정책디자인랩 법적 근거 신설: 2017년 행정절차법 개정의 후속 조치로, 정책디자인랩의 설치·운영·권한을 법령에 명시한다. '사업'이 아닌 '제도'로 전환하는 핵심 조치다. 담당 부처가 바뀌거나 정권이 교체되어도 지속되는 구조를 법적으로 보장한다.
  • 정책 실험 면책 조항 포함: 정책디자인랩이 수행하는 실험적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담당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면책 조항을 명문화한다. 11번(평가·감사 부담 합리화)과 연계한다.

제도

  • 국가 정책디자인실험실 설치 — 국무조정실 산하: 덴마크 Disruption Task Force·싱가포르 정책 이노베이션 랩처럼 총리실 또는 국무조정실과 직결된 위상을 부여한다. 범부처 정책기획과 실험을 위한 통합 플랫폼으로, 모든 부처에 개입할 수 있는 조정 권한을 갖는다.
  • 광역 정책랩 체계화: 광역지자체 17개 + 중앙 1개(총 18개) 정책랩을 구성해 지역 정책 실험기획·기관 간 시범사업 설계·정책 전환 모델 제안을 담당하게 한다.
  • 공공서비스디자인 방법을 정책 개발의 정규 단계로 편입: 일정 규모 이상 공공사업의 기획 단계에 수요자 참여 설계를 의무화한다. 선택 사업이 아닌 정책 개발의 기본 절차로 규정한다. 13번(정책 R&D 도입 의무화)과 연계한다.

정책

  • 정책랩 성과 지표 전환 — 학습·실험 지표 도입: 단기 KPI 대신 "무엇을 실험했고 무엇을 배웠는가"를 측정하는 학습·실험 지표로 평가한다. 실험 자체·학습 내용·다음 실험으로의 연결이 평가 대상이다.
  • 정책랩 지식 공유 플랫폼 운영: 영국 Policy Lab의 오픈 블로그처럼 전국 정책랩의 성과·방법론·실패 사례를 공유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한다.
  • 대학-정책랩 연계 프로그램: 핀란드 DfG처럼 국내 주요 대학의 디자인·행정·사회과학 대학원이 실제 정책랩 과제를 수행하는 공식 연계 과정을 만든다.

사업

  • 정책랩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퍼실리테이터·서비스디자이너·정책 리서처를 전문적으로 양성한다.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 참여 경험자를 우선 대상으로 한다.
  • 글로벌 정책랩 네트워크 공식 참여: 국제 '정부 내 디자인' 컨퍼런스(2024년 헬싱키 30개국+ 참가)에 적극 참여하고, 영국 Policy Lab·핀란드 Sitra와 공식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참여형 정책 실험 경험을 가진 한국이 글로벌 정책랩 논의를 주도하는 위치를 선점한다.
  • 공공서비스디자인 온라인 교육 플랫폼: 영국 Policy Lab의 FutureLearn 과정처럼, 한국형 '수요자 중심 정책 설계' 온라인 과정을 무료 공개한다. 공무원뿐 아니라 시민·연구자·지방의회 의원도 접근할 수 있게 한다.

4. 기대효과

단기: 정책디자인랩이 법제화되면 예산 편성과 무관하게 지속성이 보장된다. 공공서비스디자인 방법이 정책 기획의 정규 단계로 편입되면서 수요자 참여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된다.

중기: 광역 정책랩이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 차원의 정책 실험이 활성화된다. 대학-정책랩 연계 과정이 운영되면서 학술과 실무가 연결된다. 지식 공유 플랫폼에서 우수 사례가 빠르게 전파된다.

장기: 한국의 공공서비스디자인이 '사업'에서 '정책 설계의 기본 방식'으로 전환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되는 제도로 자리잡는다. 10년의 실험이 쌓은 방법론·사례·역량이 국가 자산이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규모의 참여형 정책 실험 경험이 글로벌 정책 혁신의 모델이 된다.


이 포스팅과 연결된 주제

정책 R&D 도입 의무화 — 정책랩이 실행하는 R&D의 제도적 기반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직제 신설 — 정책랩을 운영할 핵심 인력
공무원 디자인 교육 체계 수립 — 정책랩 참여 공무원의 역량 기반
사회문제 해결 다부처 협력 — 정책랩이 작동하는 핵심 영역

참고 자료: 행정안전부·KIDP, 「2024 공공서비스디자인 성과사례집」(2025.9.) / KIDP, 공공서비스디자인사업 소개(2014~2024) — 2,000여 개 과제, 20,000명 이상 참여 /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디자인진흥원 50년사』(2021) — 2016년 iF 디자인 어워드 서비스디자인 부문 최고상(금상) 세계 최초 수상 기록 / 위키백과, 국민디자인단 항목 — 수상 사실 확인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국민이 만드는 정책, 올해의 우수 공공서비스디자인"(2024.12.) / Lee & Ma, "The Role of Policy Labs in Policy Experiment and Knowledge Transfer: UK, Denmark, Singapore", Journal of Comparative Policy Analysis(2020) / Whicher, "Evolution of policy labs and use of design for policy in UK government", Policy Studies(2021) — MindLab "유럽 전체 정책랩의 원형" 기술 / Howlett et al., "Policy labs: definition, typology and future research agenda"(2022) / UK Policy Lab 소개 자료(2018) — 6,000명 이상 공무원, 40개 이상 정책 과제 확인 / 핀란드 Aalto University, Design for Government(DfG) 과정 / 윤성원,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2025) / 윤성원, 『모두의 질문Q』(2025) /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이 궁금해』(2022) / 윤성원, 『다시 디자인』(2025)

2026.05.17. 윤성원 + 클로드